소설리스트

70화 (71/71)

그제야 아리와 일행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지만 나는 죽자고 서 있었다.

녀석의 검이 그대로 옆구리를 관통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까짓 옆구리 뚫렸다고 죽은 사람......봤나?아파!

"바인......레인!"

이를 앙물고 주문을 외웠다.

바인 레인,내가 아는 한 상대를 죽이지 않고 가두는 최고의 속박마법이다.

티아트라젠에게는 실패했지만......그때완 달라!

순식간에 공중에서 쏟아져 내린 은빛 얼음 실들이 로베닌을 감쌌다.

쉬이이익

남은 마나를 몽땅 쥐어짜서 녀석을 얼음 실로 감쌌다.

그리고 내 마나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로베닌은 족히 지름이 2미터쯤 되는 얼음 공 안에 갇혀있었다.

녀석이 몸부림친 듯 공 모양이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녀석을 가두었다.

이 안에 녀석이 들어 있다는 증거는 내 옆구리에 박힌 거밍 공에서부터 삐죽 나왔다는 것이었다.

바로 내 눈앞까지 커진 공에 슬쩍 이마를 기댔다.

아아,이마가 시랃.아니,옆구리가......아파!

내가 만들어낸 둥그런 바인 레인에 기댄 채 다리를 휘청거렸다.

야야,기절하고 싶은데 어떻게 쓰러져야 될 지 모르겠다.

이 검 때문에 말이야.누가 좀 잡아주련?

"지니!"

"......이겼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에쉬가 지척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미룰 것도 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마이 아파......

꽤나 오래 잠들어 있었다.

긴장을 했는지 피곤이 몰려들었다.

더군다나 그간 풀지 못한 피로까지,사양 않고 단꿈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꿈인 줄 알면서도 꿈에 한껏 동화되기도 했다.

"안나 씨,잘 지내죠?"

끄덕

운디네만큼이나 작은 인어의 모습을 한 안나 씨가 내 앞에 나타나 연신 거품을 터뜨렸고 나는 자랑스레 말했다.

"후훗,나요.드디어 로베닌을 이겼다구요!이제 일대 일이니 앞으로 열 번 정도만 더 이길 거에요!"

뽀르르

안나 씨는 고개를 저으며 물방울을 이용해 '겸손'이라는 글씨를 만들어 보였다.

"에이,그런 것은 제 전문이 아니에요.가끔 필요하다면 챙기지만."

이번엔 안나 씨가 손을 들어 오묘한 꿈속 세계의 끝을 가리켰다.

원래는 온통 무지갯빛으로 그 경계가 무의미한 꿈속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경계가 생겨 있었다.

더군다가 그 경계에는 뭔가 거무스레한 것이 있었다.

"저건?"

[......라.]

"에?안나 씨,말도 하네요?뭐라구요?"

안나 씨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뭐라고 하는 거지?

[어머니의 땅,아......스......]

뭐라는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무언가 내 뺨을 퍽 때렸다.

뭐지?설마 안나 씨가?

눈을 부릅 뜨고 안나 씨를 보려고 했는데 부릅 뜬 눈앞에 있는 것은 라이였다.

[마스터,까꿍.]

팍!

[비켜!]

[끄악!]

이게 어디서 감히 흉측하게......졸린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궁에 배정된 내 방이었다.

아,거참......뭔가 중요한 꿈을 꾼 것 같은데.

뭐였지?

안 중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암......"

일단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창밖을 보니 아직 아침나절이었다.

옆구리......엥?

안 아프네.

옷깃을 들춰보니 얼핏 붉은 기만 있을 뿐 멀쩡했다.

그러고 보니 기지개를 켰는데도 고통은 없었다.

[아,그거요,마스터.신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뿅하더니 우르르 나갔어요.]

"......그러냐?"

하기야 신성제국 엘란인데 신관이야 넘쳐날 터다.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꽤나 오래 잔 탓에 더 잠이 오지도 않았다.

[아참,마스터를 깨운 이유가요......]

벌컥!

"지니......!"

[얼간이들 몰려온다고요.]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 짜샤.

나는 산발이 된 머리나 흘려 입은 잠옷이나 눈곱 덕지덕지 낀 눈이 매우 민망했다.

아,침이 주르륵 흐른 입가도 물론이고.

잠옷 차림의 나를 마주한 녀석들이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끄아악!"

"꺄악!"

"악!"

"......나가서 소리 지를래?"

저것들이 숙녀의 아침을 방해하다니.

일행을 몰아내자 이번에는 시녀들이 몰려들어왔다.

옷을 챙겨주네 어쩌네 아주 소란스러웠다.

그중 왠지 익숙한 얼굴의 시녀 하나가 아는 체를 했다.

"크로웰님!저 기억하세요?첼시에요!"

"아아......"

누구더라?

"꺄악!기억해주시는군요!영광이에요!저는 그때 시중을 들어드렸을 때부터 크로웰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걸 알았다니까요."

"저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에요!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아니!저게에 말씀해주세요!초콜릿을 좋아하신다는데 원하시면 얼마든지 구해드릴게요!"

"저는 초콜릿은 기본이고 사탕까지도 가져다드릴 수 있어요!"

아하,이제야 아는 체하는 시녀가 누군지 떠올랐다.

저번 건국기념파티 때 나를 꾸며주었던 시녀.

그 파티는 잊을 수 없지.

드래곤이 나타났거든.

"그런데......지금 어딜 가려고 꾸미는 거죠?"

"로스 황자님과 그 가디언 분들을 모신 축하 조찬이 있습니다!"

"아하,황태자가 된 기념?"

"네!"

아아,거기까지 꿈이 아니라 다행이네.

정말,다행이야.

은혜갚기는 성공이었다.

내가 한다면 한다니까!

나는 포크와 나이프는 밖의 것부터라는 식사예법에 충실하게 따랐다.

"야!그것 좀 줘바라!고기,고기!"

"어?그래,그래.난 그 노란 거!"

"게일님,아......"

"아~"

라이의 말마따나 얼간이 일행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해서 괜스레 예법 따지며 먹는 내가 바보 같을 정도였다.

아,그럼 쟤네는 얼간이 나는 바보?

뭐가 더 나쁜 거지?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라 헤롱거리고 있는데 에쉬가 말을 걸었다.

"지니,상처는 어때?"

"아,괜찮아."

"그래?저기 그리고......괜찮다면 정식으로 고백......"

"악!아침 명상 안 했다!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쩐지,계속 뭘 까먹은 것 같더라!

나는 황급히 대충 손을 닦고 일어났다.

명상은 식전에 해야 한다고!

본래 새벽에 해야 하는 명상을 아침나절에 했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점심 무렵이었다.

왠지 오래 했는걸.

만족스러운 성과에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좀 자야......

[마스터,에쉬 오는데요.]

".....쉿트!"

결국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노크가 이어졌고 에쉬가 들어왔다.

지극히 예의를 차리는 이 생활이 벌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긴장만 쌓이고 몸이 굳는 기분이라 오래 즐기고 싶지는 않았다.

"지니,이거......"

"뭘 또 줘?"

이번에 에쉬가 내민 것은 넓적하고 커다란 상자였다.

아마도 목걸이 내지는 서클릿.

내 예상대로 상자 안에는 제법 오래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내......어머니께서 하시던 거야.일단 받아줘,지니.그리고 정식으로 파티를 열어서 너를 소개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에,천천히 해도 돼."

"응!얼른 서두를게!"

이런......반어법을 너무 썼더니 에쉬가 내 진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잖아?

에쉬가 싫은 건 절대 아니지만......

으윽,결혼은......왜 이렇게 안 내키지?

궁에서 생활한 지 보름이 지났다.

정식으로 황태자 발표가 있는 날에 다시 모여야 한다며 본가에 다녀오라고 했지만 내가 워프울렁증이 있어서요.

결국 어찌어찌 궁에서 시간을 때우는 나날이 이어졌다.

황궁 도서관 출입증을 얻어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는데 에쉬의 전갈이 왔다.

만나러 오라는 얘기였다.

그 바쁜 녀석이 웬일이지?

본래 누군가에게 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리지만 일주일 만에 보게 되는 에쉬인지라 별 사심 없이 녀석에게 갔다.

시녀와 근위기사를 거치고 거쳐 녀석의 방에 들어섰다.

아니,집무실이라고 해야겠다.

서류더미와 책들이 가득한 방 한가운데에 녀석이 앉아 있었다.

헌데 왠지 표정이 과하게 어두웠다.

왜 저러지?

"무슨 일이야,에쉬?"

"지니,저기......미안해."

"뭐가 미안해?"

"황태자 즉위식 날,황태자비를......소개하게......됐어."

잠시 멍해졌다.

뭐가 미안하나 했더니 그거냐?

그러니까......나더러 그 자리에 나가라는건......아니겠지?

아니,그거군.

싫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저기......난 결혼 생각 아직 없어."

"미안......"

"에쉬,미안이고 자시고 나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너는 좋아하지만......"

"미안해,지니.상대가......따로 있어."

앙?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황태자비를 소개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열 배,아니 백 배는 멍해졌다.

절로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지금 뭐라는 거야?"

"미안,정말......미안해."

"그러니까......다른......상대가 있다?황태자비로?"

에쉬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것이 불쌍하기보다는 얄미웠다.

네가 이럴 줄은 몰랐어,에쉬.

아니,네 의지보다는 제국의 의지가 더 많은 거겠지만 실망이야.

이 처참한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에쉬가 변명을 하려는 듯 입술을 뗐지만 그 마저도 짜증스러웠다.

"난,난......지니!"

"됐어,아무 말하지 마.다른 여자랑 결혼한다 이거잖아.내가 아니고."

"너,너를......"

"그래,나로는 안 됐다,이거지?나도 나름 유명하다고 자부했는데 말이야.황태자비 감으로 부족했던 모양이야.그렇지?"

입으로 연신 짜증스러운 말을 뱉어내며 에쉬에게 받은 오래된 목걸이와 묘안석 반지를 뺐다.

그리고 그것을 한손에 모아 좌르륵 책상 위로 쏟아냈다.

나도 배신당할 때가 있네.그것도 사랑에!

황태자비 자리는 원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면 에쉬일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멍청한 생각이었나 보다.

"지니!"

"만약 결혼은 다른 여자와 하지만 계속 만나자느니,사랑한다느니 하면......죽여 버릴 거야."

널 황태자로 만들어준 건 나야.

옆구리 뚫리면서도 너를 위한답시고 설친 게 나라고!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네가,너 같은 순둥이가......

"화나는 거 알아.하지만 저기......이건 그냥 받아줘!"

"필요 없어!"

만약 여기에 라이가 있었다면 너는 목이 뜯겨져 나갔을 거야,에쉬!

나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내가 들은 현실로 충분했다.

'너로는 안 돼'

나는 황태자 비라는 거한 자리를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 자린 애초에 내게 어울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또 오만에 빠져 있었던 거야.

난 멍청이 바보였어!

잔뜩 화가 난 지니가 집무실을 나서고 홀로 남은 에쉬는 망연자실했다.

그대로 책상을 짚고 그 위로 눈물을 뚝뚝 흘려냈다.

서류의 글씨들이 번지는 것을 보고 느낄 여유는 없었다.

쉬이잉

그런 에쉬의 곁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공간을 비틀고 사람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금발에 금안,장난기 가득한 눈빛.

지니 크로웰의 남동생 데니카 크로웰과 닮은 듯했지만 분명 달랐다.

명백히 기운이 달랐으며 그 넘치는 오만함이 그러했다.

자신이 오만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 역시 그랬다.

"지니,갔어?"

".....예."

에쉬가 눈물 맺힌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황태자가 존대를 쓰는 이자는 누구일까?

정확히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선 그는 에쉬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알았어.만약......다음에 또 지니 옆에 있다 걸리면 너희 나라는,나라는......음,뭐더라 그 단어가?"

"......파멸이요?"

"그래,그거!너희 나라는 파멸이야!이 골드 드래곤 마기코스의 이름을 걸고!그러니 지니 건들지 마!"

쉬이잉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진 골드 드래곤 마기코스.

다시 홀로 남은 에쉬가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훔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이 연신 흘렀다.

"끄흑......"

꽤나 소리죽여 울던 에쉬가 지니가 던지듯 놓고 간 목걸이와 반지를 꼭 쥐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배신한 듯한 기분이었다.

당장에 황궁을 뛰쳐나왔다.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맙소사!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만큼 기가 막혔다.

그래!내 주제에 무슨 사랑이야!

결혼은 안하고 연애만?

그게 이 세계에서 가능한 일이냐고!

[마스터,지금이라도 제가 가서 그 놈을 죽여......]

[됐어!집에 갈 거야!가서......마구마구 쉴 거야!]

발에 걸리는 돌멩이들을 사납게 차며 길을 걸었다.

네이칼을 나가는 대로 라이를 타고 당장에 드미트리로 가서 오렌만에 본가에 들르는 거야!

그리고,그리고......우씨......

[마스터......]

"콧물이야,신경 꺼."

[아참,마스터는 눈에서 콧물이 나오죠?]

"......그래!"

거의 뛰듯이 걸어가 네이칼의 성문에 다다랐다.

이제 네이칼도 안녕!에쉬도 안녕이다!

난 은혜는 다 갚았어!

그리고 여하튼 다신 보지 않길 바라게,에쉬.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성문에 다다르자 성문 옆에 만들어진 계시판 앞에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뭐지?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라 슬쩍 다가가 보았다.

이 꿀꿀한 기분을 개선해줄 뭔가가 있을 것도 같았다.

"호오,역시 로스 황자님밖에 없다니까!"

"그럼!이번 즉위식은 엄청 화려하대!듣자 하니 황태자비도 발표된다나 봐."

쳇,그 얘기냐?

잠시 멈췄던 발을 다시 터벅터벅 움직였다.

그 놈 별거 없어,배신자라고!

"아벨라스에 갈 용병을 모집한대."

"그래,우리 아들놈도 이미 신청했어.미지의 대륙 아벨라스를 탐험하는 원정대의 일원이라고 하면 어디 가서 기는 안 죽을거라나."

"그렇대.하여튼 그곳은 이곳에서 없어진 모든 생명들이 모여 있다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사람을 파헤치고 계시판 앞에 섰다.

어디 보자.

에잇,이 쪽은 에쉬 즉위식 얘기고.

아,이쪽이다!

미지의 대륙 아벨라스를 알고 계십니까?

그곳을 탐험할 용사 분들을 모집합니다.

그곳은 우리의 땅이며 그곳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도 우리입니다.

그곳에 숨겨진 전설을 파헤쳐 용사가 되실 분,지금 당장 신청하세요.

당신의 용기가 당신을 용사로 만들어드립니다.

참가자격:엘란 연합국 소속 계급 상관 없음(노예계급 신청가능)

         17세 이상,성별 제한 없음

         코이렌연합국 소속 절대불가

주의사항:각기 무기 및 기본 생활품 지참할 것

         멀미 있는 자는 알아서 멀미약 준비할 것

         배를 타고 석 달간 가야 함

대우:면접을 통해 정해집니다.최소 한 달에 2콜드,최대 100골드 보장

신청방법:가까운 치안대나 마법사의 탑

                                 -엘란 연합국

호홍,아벨라스라......평생 못 가볼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원정대를 조직하는 모양이다.

하긴,계속 놀리기에는 아까운 땅이지.

[푸히히히.재미있겠다.마스터,여기 가실 거죠?네?]

"......고민 좀 해볼까?"

사실 말이 고민이지 가고 싶어 죽겠던 차다.

마침 기분도 꿀꿀하고 그것을 타개해줄 신선한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나는 당장에 마탑으로 달려가 통신부터 걸었다.

그리고 어쩌긴?떼썼지.

[자넬......누가 이기나?에휴......]

학장님이 날로 늙어가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누가 학장을 괴롭히는 거야,대체?

아참,이엘 스승님......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1년 쯤?

더 길어질지도 몰라요.

후훗,에이니.

환수 잡아다줄게!

그로부터 두 달 뒤,나는 항구도시 페밍턴에 도착했다.

그리고 페리농 항구로 달려가 원정대 배에 올랐다.

당연히 지니 크로웰로서.

내가 가주는 것만으로 든든하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선장의 호의로 제일 좋은 방도 배정받았다.

인어의 껍질로 만든 목걸이도 확실히 장착했으니 두려울 것은 없었다.

아버지에게 조금 혼나고 오라버니에게도 조금 많이 혼났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걸!

석 달이나 가야 하지만 곧 도착할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아직 주요인사 몇 명만 배에 오른지라 한적한 갑판 위를 서성였다.

그리고 드넓은 바다를 보며 호기를 다졌다.

기다려라 아벨라스!

내가 간......뜨아아!

"여어."

"......꺄아악!"

[앗,로베닌이다.]

로베닌 네가 왜 여기 있어?

내 성스러운 원정길에 왜 네가 있는 거야앗!

"반갑군."

"......어,어떻게 여기에?설마 댁도......아벨라스에?"

"그런데?"

"어째서?왜에?"

당신이 왜 가아?내가 얼마나 많은 잔꾀와 떼를 써서 가는 건데......

드미트리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원정대에 겨우 참가한 건데!

"그쪽이 간다기에 신청했지."

"......하아?"

"또 싸우자.이번엔 내가 이긴다."

"꺼지세요."

휴우우

갑판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우,이놈이랑 앞으로 최소 1년을 함께해야 한단 말이지?

내 옆구리에 바람구멍을 낸 놈이랑!

"아참,이름이 뭐지?무슨......크로웰이던데."

"진이 크로웰이다!"

이를 갈던 차라 최근에는 쓰지 않던 원래 발음이 나와 버렸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테지,하고 생각하는데 로베닌 녀석이 곧잘 입을 놀렸다.

"진이 크로웰?"

".....뭐라고?"

"진이 크로웰,아닌가?진이......특이하군."

이건 뭐,내가 살다살다......이 세상에서 내 이름 정확하게 발음하는 건 네가 처음이다.

"그게......발음이 돼?"

"그럼 안 되나?"

"아니 그게......"

[끄,끄아아악!]

돌연 머릿속을 꽈아아악 채우는 라이의 우렁찬 비명소리.

그에 미간을 찡그리며 머리르 감싸 쥐는 나를 로베닌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네가 이 소리 들어봐라!

라이는 갑판의 바깥,그러니까 바다 쪽을 보며 기겁하고 있었다.

라이의 몸이 후덜덜 떨렸다.

"왜 그래,라이?"

[마,마,마,마......]

뭐라고 하는 거야?

굳어버린 라이를 다독이는데 난간 위로 사람의 손이 올라왔다.

뭐,뭐야?

저 밑은 분명 바다였는데?

"누,누구야?"

"지니......!"

마기였다.

저 귀여운 얼굴은 틀림없는 마기의 폴리모프 모습이었다.

내가 집어준 모습이니 모를 리 없었다.

녀석이 천사같이 웃으며 내 품에 안겨왔다.

절로 비명이 나왔다.

라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꺄아악!아악!"

"보고 싶었어,지니.엄마가 놀아도 된대!같이 놀아."

마기다아아아!끄아악!이게 뭐야아?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얼핏 로베닌이 내 품에 안긴 마기에게 물었다.

"누구냐,넌?"

"......응?그러는 너는 누구야?지니는 내 거야!"

"그래?좋겠네."

"그렇지?히힛,근데 넌 뭐냐?"

뭐가 '좋겠네'야?넌 뭔데?

생각지도 못한 로베닌과 마기의 등장에 치를 떨었다.

한 사람만 더 나오면 나 기절한다.

야!신!그만 보내라고!

"로베닌!"

"그래?난 마기코스.인간,너 마음에 든다.가끔 지니 빌려줄게."

"오호,좋다.싸워도 되냐?"

"그래!대신 흠집 내면 안 돼!"

꼬르르륵

이 감당 못할 괴짜들을 어찌하리오.

절로 몸이 휘청거렸다.

품에 마기를 안은 채로 난간에 쓰러지듯 기댔다.

[마스터!끄악!죽으면 안 돼요.마스터!저만 놓고 가면 안 돼요.]

"에엣,지니.왜 그래?벌써 죽어?"

"안 가!나 아직 안 죽었어!"

우씨!여행은 이제부터라고!

로베닌과 마기 때문에 포기할 수 는 없지.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기다려라,아벨라스!

넌 내가 접수한다.이 녀석들과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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