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해,위드리!"
"아참,실프!윈드......윈드.......붐."
......저걸 그냥!
윈드 커터 정도는 써줘야지!
윈드 커터가 바람의 칼날이라면 윈드 붐은 그저 강풍이다.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는 되지만 충격을 주기는 부족하다.
그저 윈드 붐을 이용해 시합장 밖으로 크리디트를 몰아낼 셈인가 본데 쉽게 밀려 나가줄 크리디트가 아니었다.
악착같이 시합장 위에 버티고 서는 크리디트.
그녀의 독한 구석은 내가 잘 알고 있었는데 크리디트는 정령이 나오지 않자 자신이 자랑하던 용암석의 무능함에 광분했다.
반지 낀 손을 허공에 몇 번 휘젓나 싶더니 아예 반지를 이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노히 바지히!쓰모가 어허!"
"실프!계속 윈드 붐!시합장 밖으로 밀어내!"
그 순간이었다.
자신의 반지를 물어뜯던 크리디트의 입에 붉은 구슬이 하나 물려있었다.
틀림없는 용암석이었다.
얼마나 악착같이 물어뜯었으면 그게 떨어지냐.
황망한 눈길을 보내는데 크리디트가 자신의 입에 물린 용암석을 손바닥 위에 뱉어내더니 신경질적으로 용암석을 던졌다.
용암석은 언 브리딩을 넘어 위드리 앞까지 날아와 툭 떨어지나 싶더니......
파항!
"꺄악!"
"으흐?아,셀레멘허!"
으악,실패다!
용암석은 과연 화기 충만한 보석답게 주인의 이갈림에 이어 바닥을 구른 충격을 한껏 흡수했는지 '펑!'터져버렸다.
그에 위드리의 옷자락에 작은 불씨가 붙었고 크리디트는 옳다구나,하고 셀레멘더를 불러버렸다.
아무리 소환이 난해한 불의 정령이라지만 불이 있는데도 안 나오지는 않았다.
화륵
위드리 옷의 불씨가 한층 커지며 붉은 불도마뱀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꺄악!앗 뜨거.옷!내 옷......으앙!게일님......"
야야!오지마!
시합장 위에서 놀라 펄쩍 뛴 위드리는 아예 게일에게 울며 안길 태세였기에 나는 손을 저어 보였다.
뒤로 돌아!
게일은 지금 바빠.
라이에게 야바도주에 대해 심도 깊게 설명중이라고!
크리디트가 독이 잔뜩 올라 위드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죽었어,이 계집애!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아예 숯으로 만들어주마!"
"아아,실프으......"
위드리는 그런 크리디트와 나 사이에서 갈등했다.
계속 싸울 용기가 안 나는 모양이다.
쳇,이미 겁을 집어먹은 위드리는 더 이상 가망이 없었다.
더군다나 저 성질 더러운 여자가 정말 위드리를 태워 죽일지도 모른다.
제 엉덩이 만졌다고 사람을 불구 만드는 여인네가 아닌가.
"셀레멘더!바이어 플레어!"
앗,저 계집애가?
크리디트의 주문에 나는 당장에 운디네를 불렀다.
"운디네!워터 볼!"
운디네의 소환과 동시에 워터 볼,그것이 명중된 곳은 위드리의 불타는 옷자락이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위드리의 옷자락에 붙은 불이 꺼짐과 동시에 용암석의 잔재들이 터져나갔다.
퍼버벙
파팡
어찌나 사납게 터져나가는지 폭죽소리보다도 시끄러웠다.
귀를 틀어막는데 크리디트가 소리쳤다.
지독한 고음으로 말이다.
"저,저 계집애가?당신 무슨 짓이야!시합에 끼어들......"
"위드리,기권이오!"
"뭐얏?"
"기권합니다.저렇게 사람을 죽이려는 여자랑 위드리를 시합 시킬 순 없네요.분명 시합일 뿐인데 죽이려 하다니.저쪽도 규칙을 어겼으니 저는 정당방위입니다.그렇죠,원로회 여러분?"
크리디트가 쓴 바이스 플레어는 본래 불이 있는 곳에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이다.
만약 내가 위드리의 옷자락에 붙은 불을 끄지 않았다면 지금 쯤 위드리의 하반신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크리디트가 쓴 마법의 정체를 모르는 듯 위드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다가 기권이라는 말에 슬쩍 대기 장소로 돌아 왔다.
[지니 크로웰의 말이 사실인가,바네사 크리디트?]
"꼭......그렇지는......"
"바이스 플레어가 내는 폭발력은 거의 대포의 폭발력과 맞먹습니다.그런 것은 사람에게 써놓고 꼭 그렇지 않다니......당신 저능아인가요?자신이 쓴 마법의 공격력도 몰라서야 정령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랄한 비판에 크리디트는 여전히 구린내 나는 입을 앙다물며 독기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운디네를 가리키며 하는 말.
"이익,그리고......당신!정령을 꺼내놓다니,여유가 넘치는 모양이지?그래선 로베닌 공자에게 처참히 질걸!"
"어머?운디네는 방금 소환했는데,당신이 공격을 시도함과 동시에."
"마,말도 안 돼!물의 정령은 소환속도가 더디......"
"내가 누군지 잊었나 보지?난 지니 크로웰이야.당신이 생각하는 물의 정령사와는......좀 다르다고.정말 저능아가 아니라면......내가 누군지 잊지마."
이로서 이대 일.
지고 있는 쪽이 우리였다.
남은 것은 게일과 내 시합.
우린 이제 더 이상 져서는 안 된다.
만약 게일이 진다면 우린 세 번을 지는 것이니 더 이상의 시합은 없었다.
괜스레 침울해지는 것을 느끼며 에쉬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에쉬.내 멋대로 기권해서.하지만......가망이 없었어."
"됐어,지니.네가 아니었으면 위드리 양은 죽었을 거야.난 누군가를 죽이면서까지는 황태자가 되고 싶지 않아.그러느니 포기하겠어."
나는 누군가가 죽어서 네가 황태자가 된다면 그 누군가를 죽일 수 있어.
그게 내 은혜 갚기니까.
난 아직 네게 은혜를 갚지 못했어,에쉬.
그러니 멋대로 포기하면......곤란해.
라이와 게일,위드리가 뭉쳐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위드리는 시합에서 진 데다가 게일이 라이에게 집중하고 있느라 자신의 시합을 못 봤다는 사실에 더욱 좌절하는 것 같았다.
"알겠니?야반도주라는 건 야밤을 틈타 쥐도 새도 모르게,몰래 도망가는 것을 말해."
[그 큰 인간이 도망가는데 쥐랑 새가 왜 몰라,이 바보야.]
"이,이제 알아들었니?"
[꺼져르르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라이가 까칠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나는 일단 게일을 불렀다.
"게일,네 차례야."
"에?위드리는 어떻게 됐어?"
"졌어."
"......게일님,너무해요.흐흑,저보다 멍멍이가 소중하신 거죠?"
뻔하지 뭐.
게일이 위드리 시합을 보려고 해도 라이가 그걸 놔뒀을 리가 없다.
'크르르르'하고 목을 울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빨리 설명하라고 보챘겠지.
미안하진 않아.
그냥 미리 애 키우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해.
"그럴 리가 위드리!"
"그럼 대답해보세요!저랑 멍멍이랑 누가 먼저에요!"
"그야 당연히 위드......"
"콰르르릉."
라이가 심술을 부렸다.
평소에는 게일이 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신경도 안 쓰면서 말이다.
슬쩍 라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내 의자로 돌아왔다.
[자자,이제 게일의 시합이 시작될 거니까,게일은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갖게 해주자꾸나.]
[쳇,그 게일이라는 인간 멍청해요,마스터.]
[왜?제법 똑똑한 녀석인데?그나마 가장 정상적이고.]
[하지만 왜 야밤에 도주하는데 '야반'도주냐고 물으니까 '멍멍이 착하지?'이러는데 토 나올 뻔했어요.]
네가 토 나올 게 어디 있니.
아,라이가 토하면 그건 보석이려나?금속?
여하튼 라이는 토하는 것도 돈이 될 것 같았다.
문득,재촉하는 원로회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게일!에피로스 황자님의 가디언 게일,안 나오나?]
"갑니다,가요!"
[저게 정상이에요,마스터?]
게일은 지각하는 아카데미의 학생처럼 손까지 번쩍 들어보이며 시합장 위로 날듯 뛰어올랐다.
저놈이......
가장 정상적인 놈 맞지?
나도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크흠!그럼 시작하지.포네야 대 게일,각기 제자리에......셋,둘,하나!]
시합과 시합 사이에 주어지는 시간은 10분 정도이다.
시합시간이 10분이라는 것을 볼 때 긴 편이지만 본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증거로 나만 해도 벌써 심장이 쿵덕쿵덕 심하게 뛰고 있었다.
앞으로 20분 뒤면 내 시합.
지금 남의 시합 볼 정신이 아니었지만 이 시합의 승패에 따라 나는 시합도 못해보고 떠나야 할지도 몰랐다.
파항!
과연 자신의 검만큼 빠른 검은 드물다고 자신하던 것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게일은 벌써 포네야라는 여마법사의 실드를 깨부순 차였다.
뭐,실드가 그렇게 빨리 부서진 것은 라이가 그 검을 업그레이드 해준 덕도 있다고!
벌써 시합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상대는 3클래스 마법사.
이제 겨우 헤이스트를 배웠을 즈음이다.
그에 반해 게일은 에쉬가 대려온 가디언 답게 소드 유저의 실력자다.
그녀는 실드가 깨지자 당황한 듯 바로 헤이스트를 시전하지 못했다.
"소,손끝에서 나아가라,매직 에로우!"
티딩
대신 메모리즈 해둔 듯한 매직 에로우 하나를 겨우 날렸는데 게일은 가소롭다는 듯 가뿐하게 그 공격을 검날로 쳐냈다.
급하게 만든 것이라 매직 에로우 자체도 매우 빈약했다.
검기를 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게일은 보는 이가 싱겁다고 느낄 정도로 손쉽게 검날을 돌려세워 포네야의 목에 가져다댔다.
항복을 받아낼 셈인 것 같았는데 주르륵 포네야의 턱 밑에서 핏물이 검을 타고 흘렀다.
분명 날이 없는 쪽을 댔을 텐데?
"......으악!"
그에 놀란 게일이 화들짝 몸을 튕겨 떨어지더니 자신의 검을 훑어보았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양날?"
게일의 것은 분명 외날이었다.
헌데 그것이 왜 양날이 되어 있을까?
아,오늘따라 현기증이 계속 도지네.
나는 손을 들어 이마를 매만졌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뒤돌아서는 라이의 꼬리를 꽈악 잡아 쥐었다.
"어디 가니,라이?"
[사,산보 좀......]
"네가 산보라는 단어도 알고......많이 컸구나."
범인은 라이가 분명했다.
무기 업그레이드 시켜주면서 좀 갈아주라고 했더니 쓸데없이 검을 양날로 만든 모양이었다.
너를 시켜서 망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
그런데 매번 시키게 된단 말이야.
내가 귀차니즘 말기라 어쩔 수 없잖아.
이제 일 좀 제대로 할 때도 되지 않았니,라이?
[꺄힝,저는요,마스터.그러니까 마스터가......]
[자,골라라.화장실로 갈래,창고로 갈래?]
[......여긴 둘 다 없던데요,마스터.]
[그래?흥,그럼 일단 가서 손들고 있어.]
일단 라이의 엉덩이를 발로 차주고는 다시 시선을 시합장으로 돌렸다.
게일이 잠시 물러선 사이 여마법사가 헤이스트를 쓴 것 같았다.
아놔,물도 끓여야겠네.
오늘 보신탕이 무슨 맛인지 좀 보자꾸나.
"왜 게일의 검이 양날로 바뀌어 있지?"
"글쎄,적의 농간이 아닐까?"
시침 뚝 떼고는 적군에게 밀어버렸다.
"설마......형님이......그런 짓까지......"
야야,너의 형님은 5클래스 마법사 밀수에 심판관 매수에 편파판정 종용까지.
내게 걸린 죄목만도 한두 개가 아니거든?
진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심증은 넘친다고!
"이야압!"
"꺄악!"
연신 헤이스트에 힙입어 시합장 위를 뛰어다니던 포네야는 게일이 미리 진로를 파악하고 그 쪽을 향해 휘두르자 알아서 넘어졌다.
게일의 검이 다시 여자의 목 앞에 대어졌다.
좀 전처럼 지척에 대지는 않았지만.
"후우,항복하시죠?"
"하,항복......합니다."
포네야라는 여마법사는 이미 마나가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그녀는 더 이상의 저항 없이 바로 항복했다.
이 시합은 그래도 가뿐하게 끝나서 다행이다.
라이가 약간,아주 약간 허튼짓을 해놓은 덕에 조금 더 걸렸지만.
남은 건......
"힘내라,괴팍녀.죽기야 하겠냐?"
"후아,날이 이상해서 깜짝 놀랐네.아차,이제 지니 네 차례지?힘내라고."
"히,힘내세요,지니님.힘......"
"난 기적을 믿어.그러니 힘내라.드래곤 속에서도 살아왔는데 로베닌이야 거뜬하지?응?그렇다고 말해."
이것들이 나를 뭐로 보고.
어째서 이겨라가 아니라 힘내라고 하는 거야?앙?
눈에 불을 켜는데 에쉬가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눈빛이나.
으으,나는 왠지 이 녀석에게 약하다니까.
"힘낼 거야.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응,힘내.지니,꼭 이겨.너라면 이길 수 있을 거야."
"걱정 말라고!로베닌 쯤이야 밥......빵,아니......통돼지 구이?쉽진 않으니 송아지 구이로 해야 하나?"
"블루마인드 줄까?"
블루마인드,청심환쯤 되겠다.
약이 아니라 약초지만 진정효과가 있다고 한다.
에잇!내가 그런 것에 기댈 것 같아?
이 몸은 지니 크로웰이라고!
로베닌 정도야 가뿐하지만......
"두 개 줘."
일단 먹어두지 뭐.
두근두근
심장이 가라앉질 않았다.
블루마인드를 두 개나 먹었는데 왜 진정이 안 되는 거야!
"지니님,파이팅!신관 대기시켜놨어요!"
"자,잘해,지니!파이팅!"
[마스터,파이팅!근데......이제 손 내리면 안 돼요?]
[안 돼.]
시합장으로 올라가는데 왜 이리 뒤가 캥기는지.
로베닌 녀석은 벌써 시합장 위에 서 있었다.
그것도 전 시합이 끝난 뒤로 계속.
두쾅두쾅
내 심장이 이렇게 팔딱대는 놈이었나 싶을 만큼 거세게 뛰었다.
"으윽,아까 그 블루마인드......중국산 아냐?"
"응?어디?"
"멜라민 들어간 것 아니냐고?"
"멜라민이 누군데?"
그래,나 지금 정신이 혼란스럽다.
10년 만에 저 녀석이랑 싸울 생각에 기뻐.
하지만 혹시라도 져서 네 도움이 못 될까봐 걱정스러워.
저 녀석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두려워서 내 심당이 주체가 안 돼!
"운다인."
[네,주인님.]
초장부터 운디네가 아닌 운다인을 불렀다.
세간에 알려진 나는 중급정령사야.
운다인으로 끝내야 해.하지만 될까?
[로베닌 페드리 대 지니 크로웰,각자 위치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타박타박 시합장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제야 눈을 뜨고 로베닌을 마주보았다.
네 머리카락은 정말 붉어.
잊히지 않을 만큼 말이야.
[......셋.]
얼핏 운다인의 투명하고 예쁜 푸른빛의 꼬리지느러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슬슬 약효가 도는지 진정이 되었다.
그래,이번에는 로베닌 네가 나를 잊지 못하게 해줄 차례지?
[.......둘.]
기억해둬,내 이름은 지니 크로웰이야!앞서서는 진이!
[......하나!]
"운다인,프로즌 아이스!"
파바밧
빠르게 주변이 얼어가는 소리와 함께 로베닌의 검이 바로 눈 앞을 스쳤다.
앞머리 몇 가닥이 투툭 잘려나갔다.
내가 뒷걸음침과 동시였다.
이럴 줄 알았지.
여전히 가차 없는 검놀림이라니까!
프로즌 아이스,대기를 얼음으로 지배한다.
포그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한층 강하다.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을 얼려버린다.
내가 뒷걸음질 치자 나를 베기 위해 그 자리에 따라 들어온 로베닌의 얼굴 위로 푸른 기가 서렸다.
넌 걸린 거야!
땅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냉기가 로베닌의 발부터 옭아맸다.
전에 한 번 겪어본 녀석은 일단 돌진해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파놓은 함정이었다.
미끼로 나를 걸어야 했지만 말이다.
"치사하게 나올 거냐?"
"칭찬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잖아.
나름 속도에 자신 있지만 그건 눈 뿐이야.
몸까지 빠르지는 못하다고.
게다가 물마법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으니 버거워도 얼음마법을 쓸 수밖에!
카드득
"......윽!"
로베닌이 얼음과 함께 엉켜 붙은 발을 억지로 떼어내며 프로즌 아이스의 범위를 빠져나오려 했다.
독한 냉기에 순식간에 파랗게 질린 손으로도 검을 놓치지 않은 채 말이다.
저것의 고통은 나로서는 당해보지 않은 것이지만 피가 생으로 얼어붙는다는 것은 안다.
녀석이 나오기 전에 다른 수를 써야 했다.
"운다인,프로스트 다이버!"
운다인의 앞으로 모여든 하얀 입자가 운다인과 닮은 하얀 돌고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물이 아니라 얼음으로 만들어진 돌고래였으며 그것은 이름 그대로 적을 향해 뛰어들었다.
프로스트 다이버,적에게 뛰어드는 얼음조각.
상대에게 데미지를 줌과 동시에 강하게 빙결시킨다.
하지만 프로스트 다이버는 로베닌이 눈앞으로 치켜든 검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가 검과 맞닿아 제풀에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치킹!
쳇,검을 피할 정도의 지능도 없나?
하긴,오로지 돌진이라는 것만 설정된 마법이니.
검기를 씌운 검이었기에 검은 하등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중심으로 프로즌 아이스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운다인!워터 스트라이크!"
로베닌이 같혀 있는 프로즌 아이스의 바로 곁으로 물기둥이 소환되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듯 기둥을 한 번 뱅뱅 꼬더니 그대로 로베닌을 얼음째로 쳐냈다.
얼음이 깨지며 로베닌의 몸이 촤르륵 5미터는 족히 허공을 날았다.
저대로 떨어지면 제법 타격이 있으리라.
탁!
얌마!날아갔으면 털썩 떨어져야지!
매우 애석하게도 녀석은 공중에서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자세를 잡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당장에 주문을 외웠다.
"차가운 냉기의 칼날이여,시리고 아린 냉기의 창날이여,용서 없는 그 혹독한 마음을 모아라......"
고양이,아니 그 보다는 큰 흑표범 같은 몸짓으로 녀석은 안전하게 착지함과 동시에 여전히 하얀 서리가 낀 얼굴로 내게 달려들었다.
눈은 투기로 번뜩였다.
"눈의 여왕이 허락하셨읜 눈이 서린 공간을 지나 지금 내 눈앞에 쏟아져라.스톰 가스트!"
주문을 외울 경우,정령의 이름을 외치지 않아도 된다.
물론,정령과의 친화력도 제법 있어야 한다.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실전에서는 처음 써보는 광범위 마법이 펼쳐졌다.
나를 중심으로 눈이 휘몰아치더니 그것이 그대로 로베닌을 향해 쏟아졌다.
스톰 가스트,얼음 폭풍.
눈보라를 일으켜 범위 안에 상대를 꽁꽁 얼린다.
순식간에 죽이는 것 또한 가능하다.
본래 중급정령인 운다인으로는 쓰기 버거운 기술이었지만 로베닌을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키이이잉
"좋아.아주,좋아."
"......!"
하지만 로베닌 녀석의 검에 서린 붉은 검기가 독한 눈보라를 녹이듯 갈라서며 서서히 내쪽으로 다가왔다.
뭐,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이 마법이 마나를 얼마나 먹는데!
족히 10퍼센트는 썼다고!
라이로 마나를 보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마법이 아까웠다.
남은 마나야 반절은 되지만.
저 녀석은 어떻지?
네놈 마나는 얼마나 남은 거야?
녀석이 추위 때문인지 숨을 가쁘게 쉬며 중얼거렸다.
"마치 자연과......싸우는 것 같아!"
"젠장!운다인,윈터 리무브."
자연 좋아하시네!내가 할 소리다!
워터 리무브,상대의 수분을 빼앗는 마법이다.
10년 전 저놈에게 썼다가 실패한 마법.
하지만 이건 걔량형이라고!
물로 만들어진 그물이 순식간에 로베닌을 덮쳤다.
그것은 흡사 거미줄처럼 그대로 로베닌에게 엉켜 붙었다.
피부에 닿은 쪽부터 붉게 변해갔다.
피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옛날과 달리 몸에 달라붙는 식이라 검기로 잘라낼 수도 없을 터.
"크,이거......그렇군.그 아이......하핫."
로베닌 녀석은 표정 하나 움찔하지 않고 리무브를 온모에 단 채로 눈보라를 헤치며 내게 달려왔다.
붉은 그물을 질질 끌고 말이다.
좀 쓰러져!
녀석의 칼은 금세 눈앞으로 다가와 휘둘러졌다.
겨우 피하기는 했지만 연속해서는 자신 없었다.
녀석의 두 번재 공격에 후드자락이 길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공격이 이번에는 왼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린 것으로 보건데 분명 피가 날 터였다.
검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주문이고 뭐고 외울 여유가 없었다.
"익!"
녀석을 노려보던 나는 그제야 녀석의 뺨에 거미줄 모양의 상처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리무브에 걸린 탓인 것 같았다.
리무브는 피를 빨아낼 만큼 빨아냈는지 그 순간 툭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저 붉은 그물 같은 모양이었는데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터져버리더니 붉은 물웅덩이가 되었다.
물과 섞였다고는 하지만 저것의 반절은 분명 이 녀석의 몸에서 나온 피다.
헌데......왜 이리 쌩쌩해!
"......큭!"
아니,정정한다.
아주 쌩쌩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리무브가 떨어졌음애도 녀석의 몸은 그다지 빨라지지 못했다.
피를 빨린 것은 곧 피를 흘린 것이다.
고로 체력도 떨어졌을 터다.
눈 앞에서 세로로 그어지는 검을 피하며 주문을 외웠다.
"운다인,아이스 스피어!"
파바바박
티디딩 팅
일단 거리를 벌리기 위해 간단한 마법을 쓴 뒤 녀석이 그것들을 쳐내느라 잠시 틈이 생긴 사이에 다시 주문을 외웠다.
이제는 나도 숨이 차서 주문을 외우는 것도 벅찼다.
"운다인,아이스 캐논!"
아이스 캐논,무엇이든 얼려버리는 얼음광선.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쏘아지는 속도는 빠르다.
피이이잉
"윽!"
마침 아이스 스피어를 모두 치워내고 달려들던 녀석이 아이스 캐논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 위를 스쳐 시합장 바닥을 때리는 아이스 캐논.에라이!
"운다인,더스트......칩!"
더스트 칩,엔다이론으로 쓰기에 적합한 것이다.
정령의 몸을 기준으로 얼음바늘을 쏘아내는 마법.
운다인의 매끈한 돌고래 몸에서 뽈록뽈록 바늘이 솟아나더니 그대로 로베닌을 향해 사납게 쏘아졌다.
하나라도 더 맞아라!
티티티팅 티잉
"큭!"
얼핏 바늘 중 하나가 녀석의 눈꺼풀에 맞은 듯 녀석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이왕이면 눈에 맞을 것이지,하루 정도 마비되게 말이다.
하지만 눈꺼풀이 마비된 것으로 효과는 충분했다.
녀석이 감은 오른쪽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싸,하루는 감고 있어야 될 걸!
"운다인,바인 레......꺅!"
녀석은 한쪽 시력이 마비된 채로도 몸을 쉬지 않았다.
다시 녀석의 검이 내 눈 앞에서 날아다녔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그 빠른 공격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볼이며 팔뚝에 자잘한 상처라 늘어갔다.
가장 큰 상처는 오른쪽 종아리를 깊게 베인 것이었지만 아프다고 쉴 수는 없었다.
로베닌 녀석이 거친 숨을 뱉는데 나는 오죽하겠는가?
"후우,후......"
"운다인,바인......헉!"
푸욱
뭔가 이질적인 것이 가차 없이 내 옆구리를 뚫고 들어왔다.
아프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차갑고 뜨겁고 시렸다.
그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않고 싶었다.
부글부글
옆구리가 끓는 느낌이다.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마,마,마스터......]
"지니!"
"맙소사!"
"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