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8/71)

"맙소사!저이가 지니 크로웰이라고?"

"그,그럼 로스 황자 쪽이 더 유력해지는 것 아닌가?"

"그런......하,하지만 르네 황자님 곁에는 로베닌 공자가 있으니......"

"아니!로베닌 공자보다는 크로웰 양이 더 유명......"

꺄우,본래 나를 주제로 쑥덕거리는 것은 싫어하지만 귀족들의 혼란도 이해하는 바다같이 넓고 깊은 마음으로 용서하련다.

한껏 콧대가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로베닌을 쳐다보았다.

헌데,녀석의 눈길이 한층 더 투기로 불타는 것이 아닌가?뭐야?

놀란 표정도 아니고.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쫄아줘야지!

역시 이해가 안 가는 녀석이다.

나 지니 크로웰이라니까?

"인정할 수 없습니다!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지니 크로웰이라니......사칭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지니 크로웰을 사칭하는 자는 그렇지 않아도 대륙 각지에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마,맞아.그렇군.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소?"

"제국공신을 사칭하면 사형이오.그럼 자연히 로스 황자는 황태자 후보 실각......"

아 거,속고만 살았나?

나는 생각지도 않은 원로회의 반발에 입술을 삐쭉였다.

나를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저 원로회 양반들은 순전히 '지니 크로웰'이라는 가산점이 되어줄 존재가 에쉬 쪽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 같았다.

르네 황자파인 그들로서는 내가 적으로 보일 테니.

웃겨!로베닌은 좋다구나 반겨놓고 나는 방해된다 이거지?

"보세요.금발에 푸른 눈,그리고 물의 정령사.완벽한 지니 크로웰이 아닙니까?아무리 세상이 거짓으로 씨들었다지만 이리 못믿어주시니 슬프군요."

"믿을 수 없소.금발은 염색하면 되는 것이고 푸른 눈은 흔하지,물의 정령사는 흔하지 않지만 없다고는 못하고 말이오.증거가 없다면 그건 분명 사칭이오."

가볍게 정체나 밝히고 에쉬의 점수나 올려줄 생각이었는데 원로 귀족들이 계집애처럼 따져왔다.

대충 넘어갈 기세가 아니었는데 내가 증거를 못 대면 에쉬를 황태자 후보에서 실각이라도 시킬 태세다.

저것들이......모조리 갈아버릴까 보다!

에쉬 잘 되는 게 그렇게 배 아프냐?

헌데 나를 나라고 증명할 증거가......뭐가 있지?

나는 잠시 머릿속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증거,증거......아하,그 사람이 있었지?

"......증거는 없지만 증인은 있습니다.그것도 신원이 아주 확실한 자죠."

"누군가?그 증인이라는 자가?지금 당장 이곳에 올 수 있는 자인가?"

황제가 관심을 보였다.

그로서는 이왕이면 르네보다는 에쉬 쪽이 계승자가 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럼,신원확실하고 이곳 네이칼에 사는 사람이지.내 얼굴 또한 확실히 알고 말이야.

"로베닌 페드리......"

"로베닌 공자 말인가?로베닌,자네 저이의 신분을 보증할 수......"

"아,잠시만요,폐하.페드리 공자라는 게 아니라 그의 친동생인 랏샤무페드리 공자라 말하려던 것입니다.그는 그 건국기념 파티 때 저와 함께 있었으니 제 얼굴을 잊지 않았을 겁니다.그러니 증인이 필요하다면 그를 불러주십시오."

어떻게든 나를 외면하려던 귀족들은 내가 뜻밖에 증인을 들먹이자 표정을 구겼다.

물론,로스파로 보이는 몇몇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어이,원로회!댁들이 좋아 죽는 로베닌의 동생이야.

그것도 네이칼의 귀족이지.불평을 못 할걸.

"쯧......"

못 마땅한 원로 귀족의 혀 차는 소리가 홀 안으로 퍼졌다.

이봐,마법 켜져있거든?

나라는 존재는 이 시합에서 꽤나 영항을 끼치고 말았다.

원래라면 내 소개를 끝으로 공을 뽑아야 하는데 내가 진짜 지니 크로웰인지에 대한 진실 여부를 놓고 시합을 중단하고는 랏샤무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본의 아니게 심각해진 상황 덕에 괜스레 에쉬에게 미안해졌다.

"미안,에쉬.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아니야.시합이야 곧 다시 시작될 거고......잠시 미뤄진 것 뿐일걸.그리고 시합은 너희들이 해주는 것이니 나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어.오히려 너희에게 짐만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하긴,시합을 하는 것은 가디언들이다.

황자들이 '헤이오스의 저울'에서 하는 것은 그저 결과를 기다리는 것 뿐.

옛날에는 황자들도 시합을 했다고 하는데 근세에 와서는 모든 황자들이 무술을 갈고 닦는 것이 아닌지라 가디언들만 시합을 치르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에쉬 같이 무력을 가꾼 황자가 있는 가하면 르네 황자같이 지식을 쌓는 황자가 있으니 결투는 불가능한 것이다.

"어이,지금 댁이 한가하게 사과나 하고 있을 때야?"

머리 위로 누군가의 손이 얹어졌다.

큼직한 걸로 보건데 채드의 것이 분명했다.

아악!이거 안 놔!

감히 이 몸의 머리 위에 손을 얹다니!

백만 년은 일러!

"에잇!이거 놔!"

"딴 짓 하지말고 저 녀석이나 수습하란 말이야!우린 네가 지니 크로웰이든 드래곤이든 에쉬에게 도움이 된다면 상관 안 해.하지만 저 녀석은 어쩔 거야!애가 혼이 빠졌잖아,혼이!"

"아앙?"

머리 위에 얹어진 녀석의 손이 흡사 병뚜껑이라도 따는 양 제멋대로 내 고개를 돌렸다.

가,감히!

로베닌이나 이 녀석들이나 내 위대함을 왜 모르는 거야!

사납게 이를 드러내는데 고개가 돌려진 곳에는 넋을 잃은 불쌍한 영혼 하나가 계셨으니......로크스였다.

"지니 씨가 크로웰님,지니 씨가......크로웰님,지니......크로웰.에헤에야,어허이."

"......에헷."

그러고 보니 로크스는 지니 크로웰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정말 지니 크로웰이라는 정식 교단을 세운다면 당장에 광신도로 변할지도 모를 정도로.

야야,정말 그런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면 안 된다.

그런 거에 빠지면 바보야,바보.

심하게는 병자라고 칭해주겠다.

하긴 이젠 나라는 괴팍하고 이중적이며 이기적이라면 대륙 최고를 자타가 공연하는 이 실체를 알았으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 덕에 로크스의 넋이 나간 것은 둘째였다.

"오죽 현실을 인정하기 싫으면 저러겠냐?"

"근데......정말 그 지니 크로웰이 맞아?혹시 사기치고 있는 건 아니지?"

"아이참!분명하다잖아요.증인도 있으시다는데 게일님은 왜 그래요?그나저나 지니님,정말 교단도 가지고 계세요?제가 들은 교단만 세 개가 넘어요!지니영광교,지니부흥교,지니추앙교."

"나도 그 소문 들었어.지니영광교의 가입자 수가 벌써 10만 이라는......"

어이,어이.그거 다 사이비야!

그리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날 빼놓고 무슨 놈의 교단을......

이러다 만다라까지 만들어내는 거 아닐까 걱정이었다.

그만큼 내가 영향력이 있다는 거겠지만 전혀 달갑지 않았다.

"난 모르는 일이야.나는 줄곧 너희랑 있었잖아.그저 믿을 곳 없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는 사이비 교단이라고.신경 꺼."

"아,사이비야?우리 친척 가입했다던데.금발인 사람은 가입비 무료랬어.푸른 눈은 50프로 면제 혜택."

"맞아요.헤이케에서도 가입하신 분이 꽤 있으신데.드미트리인은 가입비가 무이자 12개월 할부 가능에 연회비 면제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제발 부탁이니 다들 해산하라고 전해줄래?

나는 그런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헛웃음이 나오는 사람이야.

대륙에 워낙에 사건이 없다 보니 나라는 존재를 참 오래도 진하게 우려먹는다.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데 위드리가 슬쩍 귓속말을 해왔다.

"저기 그리고요 지니님,로크스님은......"

"응?"

"비극이지만......영광교,부흥교,추앙교 다 가입한 것 같던데요.전에 회원패 봤어요.그것도......전부 골드."

어이쿠,저기 병자 하나 추가요.

나라는 잘 포장된 인간을 가지고 설립되었다는 사이비교에 가입하신 로크스께서 내 실체를 깨닫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구경하는 사이,드디어 랏샤무가 도착했다.

약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이가 지니 크로웰이 맞는가?"

"마,맞습니다.분명......지니 크로웰 본인입니다."

그 멍한 얼굴은 여전하구나,랏샤무.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원로회 귀족들에게 여봐라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희들 밉보인 거 알지?

신원 확실한 증인의 등장에 홀 안은 다시 한 번 술렁였다.

대부분이 경악을 토했으며 소수는 두려움에,소수는......투기 좀 그만 쏠래,로베닌?

이제 부담스럽거든?

"저기 보세요,지니님.크리디트님이 바들바들 떨고 계시는데요."

"당연하지.나 보고 평민에 상것에 천한 것까지......그리고 몇 시간 전에는 황궁의 꽃을 땄으니 엄벌에 처하라는 망발까지.찔리는 곳이 많을걸."

"그러게요.조금 불쌍하네요.지금도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데......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본인이 자처한 건데,뭐.후회는 없을 거야,푸흐흣."

앗,푸흐흣이라니......

이거 라이의 웃음소리인데.

전염되어버린 것인가?라이 바이러스냐?

안 돼,안 돼.

지니님의 품위가 있지 이런 상스러운 웃음소리를 낼 수는 없다고.

슬쩍 입을 가리는데 랏샤무가 다가왔다.

"지니 양......"

"크로웰 양이라고 불러주세요."

"크,크로웰 양.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요.저도 참 의외네요."

나도 랏샤무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될 줄은 몰랐거든.

신원은 보증해야 하는데 본국에서 사람을 불러올 수는 없고,로베닌 녀석이야 10년 전에 싸운 지니 크로웰을 잊은 지 오래일 테니 결국 남은 것이 랏샤무였다.

그때 작업 걸었던 것 칭찬해주지.

탁월한 선택이었어!

푸후후훗.앗!자제하자,자제.

"저어......그것은......들으셨나요?"

"......무슨?"

"저기,그,그러니까......제가......아니라......제 아버지가 보내신 건데,그러니까,그......"

"아,구혼 들어온 거요?"

그랬다.

내 희생 소식과 함께 본가로 쏟아져 들어온 요청들이 있었으니,나를 향한 구혼신청이다.

20살이면 귀족 영애치고 결혼시기를 조금 놓친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유명세를 탄 탓인지 각국에서 나름 내로라 하는 신랑감들의 구혼신청을 해왔다.

아버지의 전언에 따르면 그 중 공작가문이 두 개 있는데 하나가 바로 랏샤무 페드리,이자였다.

아버지는 랏샤무가 가장 내 신랑감으로 마음에 든 듯 했다.

엘란의 공작가에,차남에,직업 확실,앞날 창창.

물론 나야 뉘 집 일이냐는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네헤에.그거요,그거!"

"아아,대답이 듣고 싶은 건가요?"

"아니,저기......그것은 무례고,단지 알고 계시나 해서요.그 뿐입니다.아무렴요."

이봐,표정이 대답해달라는 표정인데?

괜히 오래 끄는 것은 내 취향도 아닐 뿐더러 기대하게 해봤자 실망만 안겨주게 될 것이었음으로 나는 나름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결혼 생각이 전혀 없어서요.그러니 기대하지 마세요.가망 없으니까요."

"예에?그,그럼......사귀는 거라도......아니면 딱히 사귀는 남성분이 계시는 겁니까?"

"글쎄요.있다고 해야 하나,없다고 해야 하나......"

에쉬에게 반지는 받았지만 고백은 시합 뒤로 밀어둔 상태.

상황이 모호했음으로 나는 볼을 긁적였다.

"확실치 않은 상대라면 차라리 저는 어떠십니까?이래뵈도 손꼽히는 신랑감......"

"아,지니님은 사귀는 분 계세요!바로 저기!"

"......저 안경?"

"아뇨,그 옆에 에쉬 황자,아니 에피로스 황자님이요."

어찌어찌 틈새공략을 하려던 랏샤무가 위드리의 지적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내로라하는 신랑감이라고 해도,상대가 황자인 걸 어쩌리오.

미안,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어.

"그,그러십니까?하하,저기......그럼 저는......형님에게 가보겠습니다.이만......실례."

터덜터덜 멀어지는 랏샤무가 조금 불쌍했다.

이거 미안한데.

나랑 닮은 미아라도 소개시켜줄까?

걔는 참 착한데,조금 괴짜지만.

자신의 이름이 나오제 에쉬가 무슨일이냐는 듯 다가왔다.

"무슨 얘기한 거야,지니?"

"응?별거 아니었어.그냥 구혼신청했었는데 답을 듣고 싶은 것 같기에 답해줬어."

"구혼신청?누가?랏샤무 페드리 공자가?네게?"

"음,왜?질투해?키킥."

당황하며 되묻던 에쉬가 얼굴을 붉혔다.

얘도 참 귀엽게 논다니까.

"대답은......뭐라고 했는데?"

"당연히 거절이지.네가 있잖아."

"으흠......"

애초에 결혼 생각도 없고 말이다.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던 에쉬는 이내 들려온 불만 가득한 원로회의 목소리에 멀어졌다.

"지금부터 대진표를 짜겠으니 각기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와 시합장 중앙에 있는 공을 뽑으시오.같은 색을 뽑은 상대와 대결하게 되며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순서로 시합을 진행할 것이오.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이지.

고로 나는 파랑!

그러니 로베닌 네 놈도 파랑.

그러니 투기 좀 그만 태워라.열 오른다.

라이가 공을 굴리고 있으니 잘 될줄 알았는데,이변이 일어났다.

아니,라이를 잡아 죽일 일이 일어났다.

나는 분명 그 하르다프라는 5클래스 마법사를 위드리와 붙여주라고 했는데 그와 함께 빨간 공을 뽑은 것은 엔크였다.

5클래스 마법사랑 창술가.

이거 위험한데.

야!이 웬수야!

널 시킨 내가 바보다.

그 상태로도 이미 기함할 일인데 라이가 제 딴에는 수습할 생각인지 위드리와 크리디트에게 노랑 공을 쥐어주었다.

어휴,현기증 나.

불의 정령사랑 바람의 정령사가 왠 말이냐?

싸움이 끝이 안 난다고!

그나마 채드와 니켈이라는 여검사는 잘 붙여 주황색 공이 나왔지만,안정적으로 짰던 두 시합이 망가져버렸다.

야야,그렇지 않아도 전력이 비등비등한데......

이제 남은 것은 초록색 공과 파란색 공이 두 개 씩 네 개였고 각기 남은 선수도 총 넷이었다.

저쪽에 로베닌과 포네야라는 3클레스 마법사,이쪽은 나와 게일.

포네야가 초록색 공을 뽑자 게일이 자신이 나가기에 앞서 기도에 들어갔다.

"초록,초록,초록......"

"이 화상이......"

야!그래도 난 여자라고!

예의상이라도 네가 로베닌을 맡으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라이가 들어가 있는 순간 싸움의 방향은 예정된 것이었고 초록을 뽑은 게일이 환호했다.

두 시합은 내 계획과 틀어져 버렸지만 거기에는 미련을 버렸다.

라이를 반쯤 죽이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이미 남은 공이 정해진 터지만 나는 공을 뽑았다.

사실 공이라기보다는 라이를 꺼낸 것이었다.

[마스터,보고 싶었어요.마스터!흐흑.]

[알았으니까,가만히 있어라.]

으악,벌레가 기어 다녀.

몸을 부르르 떠는데 시합장 위로 로베닌이 올라와 말을 걸었다.

저 놈은 은근히 당당하단 말이지?

"지니 크로웰,기대되는군."

"나 역시."

"브레스도 막았다지?그 실력......녹슬지 않았기를 바라지."

꺼져!

흥,10년 만에 다시 싸우게 된 녀석은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른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각기 정신집중에 들어갔다.

하지만 크리디트와 겨루게 된 위드리는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싸우기에는 상성이 워낙에 안 좋은 상대와 걸렸으니 걱정스러우리라.

바람은 불을 크게 해준다.

그만큼 바람은 불에게 이로운 것이다.

불의 정령사들이 보조 정령으로 바람의 정령과 계약하기도 한다.

나는 나름 위로의 말을 건넸다.

"힘내,위드리.크리디트 구린내 따위 네가 다 날려버리는 거야."

"지,지니님.불의 정령사를,그것도 중급정령사를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여기서 지면 에쉬님이나......스승님을 뵐 낯이 없어요!"

솔직히 위드리의 승산은 많이 쳐서 10퍼센트일까?

같은 촟보 중급정령사라고는 하지만 크리디트는 족히 1년 전에 계약한 경우고 위드리는 며칠 전이다.

불에 기름 붙는 격의 싸움이 될 터이니 가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 시합은 버리는 시합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될까 봐  위드리와 그 5클래스 마법사를 붙여주려고 한 건데.

[넌,죽었어.]

[흐흐흑,용서해주세요,마스터.잘 한다고 했는데 헷갈렸을 뿐이에요.]

[죽을 준비나 하시지.]

[전 아직 만 년 밖에 못 살았는데......]

웃기셔.많이도 살았구만!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

'만 년 밖에'가 아니라 '만 년 까지밖에' 안 세어본 거잖아!

라이의 귀를 잡아당기던 나는 무언가 조언이라도 해달라는 듯한 위드리의 뜨거운 눈길을 느껴버렸다.

이런,이런......

"위드리,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말은?"

"정 죽을 겉 같으면 그냥 기권해.어차피 가망 없음이야."

"하아,방법이......전혀 없나요?"

방법이라......하나 있지.

하지만 그걸 위드리가 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해줄까 말까 하다가 일단 입을 열었다.

"있긴 있어.좀 야비하지만."

"뭔데요?저 뭐든 할게요!"

"그래?귀 좀 줘봐."

"네!"

속닥속닥

나름의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내 오랜 경험에 의거해서 말이다.

헌데 내 말을 전해들은 위드리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너무 치사했나?

그래도 황제랑 귀족들 앞에서 하는 시합인데 말이다.

하지만 확률을 높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왜?못 하겠어?못 하겠으면 어쩔 수 없지.하지만 그게 효과는 최고야."

"그,그런 게 가능해요?그걸 없앤다고 못 나온다는 게......"

"어려워?간단해.물 속에 바람이 없는 것처럼......아차,이 비유는 좀 아닌가?어쨌든 해봐.네가 걸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위드리!"

"해,해볼게요!잠깐이라도 연습해야겠어요!"

음,마나낭비 같지만 어차피 가능성이 희박하니 연습이라도 하는 편이 낫겠지.

잘해봐,위드리.

중요한 건......스피드!

이 시합은 제한시간 10분이다.

보통의 결투나 시합이 제한시간 5분인 걸 보면 매우 길다.

또한 상대를 죽일 수 없으며 기본 시합 규칙에 따른다고 했다.

빨간 공을 뽑은 엔크가 첫 타로 시합장 위로 올랐다.

일행의 격려가 잇달았다.

"까짓 마법사들,별거 없다!주문 외우기 전에 조져버려!"

"지면 안 돼,엔크!지면 지니가 죽인데!"

"파,파이팅,엔크님!꼭 이기세요."

"부탁한다,엔크."

어이,어이.

나는 죽인다고는 안 했어!

반쯤 혼을 뽑아버린다고 했을 뿐이야.

나름 열띤 응원에 엔크가 조금 긴장을 푸는 듯 했다.

참,로크스는 응원하지 않았다.

아직 혼이 돌아오지 않아서 말이다.

실제의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나 또한 그 응원에 참가하지 않았다.

왜?응원 열 마디보다 좋은 걸 해줬거든.

[이번엔 확실히 했겠지,라이?]

[네,마스터!아주 싹 갈아줬어요.무게는 그대로,강도는 극한까지.브레스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이제 가서 채드랑 게일 것도 손봐.아참!걔네 것은 검이니까 될 수 있는 한 날카롭게 해놔.]

라이에게 엔크의 창을 약간 손봐주게 했는데 딱히 반칙은 아니다.

무기가 좋으면 안 된다는 규칙 있어?

있냐고?없잖아?

그러니까 반칙은 아니지,후훗.

승리하는 자가 정의 라고!

혼자 히죽거리고 있는데 시합이 시작되었다.

[헨쇼 하르다프 대 엔크,각기 제자리에 셋,둘,하나!]

카강

시작과 동시에 돌격한 엔크의 창이 하르다트를 찔렀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전투 공식에 따라 이미 실드가 펼쳐져 있었고 하르다프는 그 안에서 주문을 외웠다.

몸을 집중적으로 단련시키는 무인들의 공격을 피하지는 못하지 애초에 실드부터 치는 것이 마법사들의 전투 방식이 된 지는 이미 오래였다.

저것 다음에는,이제 마법 하나 때리고 헤이스트겠지.

까가각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잠자코 보기만 할 바보는 없다.

엔크가 다시 한 번 창으로 실드를 강하게 찔렀다.

그러자 실드가 크게 일렁였다.

엔크가 창에 검기,아니 창기(?),어쨌든 마나를 입힌 탓도 있겟지만 라이가 무기를 업그레이드 시켜줬거든.

실드가 깨지려 하자 하르다프는 두 눈을 부릅 떴다.

엔크 본인도 두 번째 공격에 일그러지는 실드가 놀라운 듯 눈을 찡그렸지만 그렇다고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재차 창을 찍어 누르다 하르다트는 주문 외우는 것을 포기하고 실드를 해제했다.

"마나는 이 몸의 바람이 되어......헤이스트!"

"치잇!"

그와 동시에 헤이스트.

결국 저거네?

순식간에 엔크의 뒤로 움직인 하르다트의 손에서 가벼운 마나 운용이 일었다.

매직 에로우 내지는 매직 볼트겠다.

순서가 약간 바뀌었지만 정석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 했다.

"더블 매직 에로우!"

키킹!

매직 에로우,그래도 5클래스 마법사라고 두 개가 나갔지만 창이 괜히 긴 것이 아니다.

엔크는 창의 위아래를 이용해 매직 에로우를 가볍게 쳐내고 곧바로 하르다프의 하체 쪽을 노리는 듯했지만 공격은 실패했다.

겨운 잔상에 스친 창날을 고쳐쥐고 엔크가 다시 돌진했다.

"어때?누가 이길 것 같아?"

곁에서 시합장을 보며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에쉬에게 물었다.

"응?글쎄,아마도......"

"난 하르다프."

"......그렇겠지?하지만 마나가 여유 있는 쪽이 이기게 될 거야."

"그래,엔크가 빠르기는 하지만......헤이스트는 못 쫓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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