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리이!"
"네!왜요,지니님?"
"따라와 봐!"
"예에?"
나는 짐 정리를 끝낸 듯 이제 막 로비로 내려온 위드리를 글고 다짜고짜 여관을 나섰다.
왜 여태껏 그 생각을 못했지?
그냥 버리는 시합으로 갈게 아니라 위드리를 중급 정령사로 만들면 되잖아!
인도를 빠져 나오자 라이가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마스터?]
[마탑!정령계약진 재료를 사야겠어!위드리를 중급 바람의 정령 실라페와 계약 시킬거야!]
[오호오,그거 실패하면 죽기도 한다면서요?저도 구겅할래요.]
[안 죽어!거의.]
위드리의 본인의 의지?
상관없었다.
키워준다는데 설마 거부하겠는가?
하급정령사 위드리는 그저 이 언니만 믿으라고!
아참,내가 동생이지.
바람의 정령을 불러내기 좋은 곳은 계곡이다.
하지만 엘란의 수도 네이칼에서 계곡을 찾기는 힘들었고 대신 나는 도시 외과겡 위친한 산으로 올랐다.
"지니님,힘들어요."
"얼른 와!"
위드리의 문제점은 저것도 있었다.
체력이 유난히 달린다는 것.
에잇,티아트라젠 할아범!
제자를 저렇게 키워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분명 재능 있는 걸 질투해서 대충 키운 것이 틀림없어!
그 심술보에 뻔하지!
힘드네,죽네 엄살을 피우는 것에 단련된 터라 다른 사람의 엄살에도 강했다.
[마스터!흙이 아니라 암석이에요!]
[그래?]
먼저 꼭대기에 다녀온 라이의 말에 더욱 열심히 정상으로 올랐다.
역시나 흙보다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의 정상.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탑에서 사온 재료들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일단 분필을 드렁 마법진부터 그렸다.
"지,지니님!정말 하시게요?"
"물론이지!겨우 하급으로만 평생을 살 생각이야?인생은 도전이야!"
"하지만......스승님은 적어도 2,3년은 더 수련을 쌓으라고 하셨는데요."
"이봐,위드리!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고 십 초 뒤에 이 산이 무너질 지도 몰라.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도전하라고!"
내가 죽어봐서 아는데 죽는 거 순식간이다.
일말의 기척도 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나는 운 좋게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현재에 열심이라고.
주어진 모든 것에 진심으로 대해.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저는 딱히......도전하고 싶지 않은데요.저는 현재에 만족......"
"하라면 해!"
"히잉."
분필을 이용해 바람의 중급정령 실라페의 계약진을 그러는 것은 쉬웠다.
어려운 것은 정으로 그 그림 그대로 홈을 파는 일이다.
두 개의 정을 사왔음으로 하나는 위드리에게 건넸다.
"자,위드리 당신은 반대편을 맡아.나는 이쪽.라이는 가운데."
"......멍멍이도?"
[푸헤헷.이건 제가 전문이죠,마스터!]
위드리는 불안한 듯 했지만 라이는 우리 둘보다 훨씬 빠르고 매끄럽게 홈을 파냈다.
손톱으로 땅을 긁으면 그대로 홈이 파이니 내가 쓰는 마법 정보다 훨씬 성능이 좋았다.
라이는 중앙을 모두 파내고 여유가 있는지 내 쪽의 그림에도 손을 댔다.
"우와,멍머잉 대단하네요.지니님,어쩜 저렇게 손톱이 예리하죠?"
[나는 위대하다.고로 우리 마스터는 더 위대하시다!캬!명언인걸.역시 제가 천재기가 있죠,마스터?]
"음?약을 잘못 먹었다니까?"
천재가 다 죽었냐?
라이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정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라이의 활약으로 계약진은 금세 완성되었고 나는 마나 용액을 틈새로 부으며 요정가루를 위드리에게 던졌다.
"흐아아,정말 계약하는 거에요?"
"그럼 장난인 줄 알았어?일른 해!주문은 알지?"
"시,실패하면......어쩌죠?"
실패?
내 사전에 실패가 있긴 해.
하지만 그 옆에 보조어로 이런 말이 있지.
"무한반복."
될 때까지 한다.
내가 페인이랑 계약했을 때의 얘기를 해줬던가?
내가 웃음 짓는 반면 위드리는 울상을 지었다.
위드리는 역시 내 예상대로,사실 반반이라고 예상했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가뿐히 실라페와 계약했다.
한 번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계약을 시도해보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자신이 계약해놓고도 얼떨떨한지 반쯤 얼이 빠진 위드리를 끌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여관이 그렇듯 이곳도 1층은 식당이었는데 마침 일행이 식사중이었다.
"응?둘 다 어디 갔다 왔어?"
[산에.]
게일이 먼저 말을 걸었는데 나보다는 위드리가 걱정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에쉬는 아직 안 왔네?
응?로크스도 없잖아?
"게,게일님.저요......중급이 되어버렸어요."
"뭐?그게 무슨 소리야,위드리?"
"그러니까 지니님이......라이가......계약진이......시,실라페가아......"
허둥지둥 말하는 위드리.
후후,내 덕에 실라페랑 계약했으니 나중에 한 턱 쏘기나 하라고!
아참,재료값도 청구할까?
흐음,뭐 전력이 상승했으니 거기에 만족하기로 하자.
허둥대는 위드리를 달래느라 게일이 일어난 자리로 나는 냉큼 들어갔다.
그리고 우선 과일을 집어 한 입 물었다.
역시 과일이 최고야.
그리고 고기는 더 최고.
쾅!
달달한 과일 맛에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는데 돌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매우 위협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터라 여관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여기!에쉬라는 자를 아는 자 있는가?"
그리고 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무장한 기사들이었다.
열 명,아니 아홉 명의 기사들이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잘 벼린 검처럼 날이 잘 선 이들이었다.
뭐야,저것들은?
왜 에쉬를 찾지?
입에 문 과일을 꿀꺽 삼키고 일단 상황을 살폈다.
탕!
[호오,마스터.저 창 맛있을 것 같아요.]
"에쉬라는 갈색 눈을 가진 남자를 아는 자 없냔 말이다!"
"누구십니까?저희가......그의 일행입니다만."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 하나가 기다란 창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다시 외쳤고,마침 위드리와 얘기하느라 서 있던 게일이 나섰다.
위드리를 슬쩍 뒤로 보내며 말했는데 본인도 꽤나 떨리는지 몸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었다.
애초에 기사들이 저렇게 험하게 나온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거다.
채드 녀석이면 모를까,에쉬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을 리도 없고.
왜 기사단에서 에쉬를 찾......아하,그건가?
벌써 하는 건가?
"그자는 현재 귀족 살인죄로 수배중이다.그것을 당신들은 몰랐는가?"
"네에?에쉬가요?말도 안 돼!"
첫 번째 시험,'믿음'이던가?
'헤이오스의 저울'을 치르기 위해서는 앞서 두 가지의 시험이 치러진다.
하나,황자가 가디언 후보들에게 얼마만큼의 신뢰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믿음'테스트.
거기서 가디언들이 황자에게 불신을 보인다면 바로 시험 탈락.
헤에,이런 식으로 치러지는구나.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서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는 짐작가는 바가 있는지라 태연함을 유지했다.
뭐 채드나 엔크,게일,위드리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말이다.
"그와 함께 움직인 이상 당신들 또한 범죄자일지도 모른다.어쩌면 그 살인자의 공범일지도 모르지.그런 고로 당신들을 체포한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에쉬가 그럴 리 없습니다!우리도 결백해요!"
"맞아요!에쉬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요.당신들이 잘못 안 거라구요!이건 명예훼손이에요!"
"에쉬 그 착한 놈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이 개가 길을 가다가 넘어져 죽는 게 빠를 걸."
야,채드 이 녀석!
거기서 왜 라이를 걸고 넘어져?
다행히도 일행은 에쉬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듯 했다.
만약 누군가 불신을 보이려 했으면 내가 막았겟지만.
나는 대장 기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이면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분명 우리 일행의 반응을 면밀히 훑고 있는 바.
이것은 시험이었다.
그리고 내 예감상 이 시험은 가볍게 통과.
"그의 결백을 따지는 것은 나라에서 할 일!일단 당신들을 구속 조치하겠으니 순순히 투항하도록.반항한다면......에쉬라는 자의 죗값만 무거워질 것이다."
"이익!"
"말도 안 돼요!이런 행패가 어디 있......"
"조용!다들 조용해.에쉬의 결백은 당연한 것이니 우리가 거칠게 나갈 이유는 없어.잠자코 잡혀줬다가 에쉬의 결백이 증명되면 그때 저자들을 한 방씩 때려줘도 늦지 않아."
내 말에 일행은 금세 조용해졌다.
에쉬도 로크스도 없는 이 자리에서 발언권이 제일 센 쪽은 나였다.
나는 여유 있다는 듯 손에 든 과일을 공중에 띄워보였다.
기사 대장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고 나는 가볍게 웃었다.
자,다음 시험으로 넘어가시지?
윽,냄새.
그 기사들은 우리를 진짜 감옥으로 데려왔다.
정체 모를 냄새가 지독해서 코를 막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따로따로 갇혔는데 라이만이 나와 같은 감옥에 들어왔다.
라이의 사나운 이빨 앞에는 기사단,아니 시험관들도 두 손 들었던 것이다.
우리를 제법 오래 가둬둘 생각인지 배가 고파지자 간단히 빵과 스프를 주었다.
식당에서 먹지 못한 음식들이 눈에 밟혔다.
으으,좀 싸올걸.
[마스터,왜 감옥에 온 거에요?]
[시험이라니까.에쉬 황자 만들어주기 프로젝트 첫 번째.]
[첫 번째?그럼 두 번째는 뭐에요?]
[그건 나도 몰라.알려진 것은 믿음,그러니까 황자와 가디언 사이의 신뢰를 시험한다는 것과 마지막에 '헤이오스의 저울'이라는 시합이 있다는 것밖에.가운데 하나의 시험이 더 있다고는 하는데......그건 알려진 바가 전혀 없어서......]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정도도 대단한 것이었다.
아예 '시험의 길'자체를 모르는 이도 허다하다.
일단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감시원이 가져다준 빵을 꾸역꾸역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식사가 썩 나쁘지 않은 것에 만족하며 다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쯤 르네 황자 쪽도 시험 중이겠지?
그쪽은 어떻게 됐을까?
합격?
흐음,로베닌 그 녀석은 어쩌고 있으려나?
보나마나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 테지?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 듯 말이야.
그 제 1황자 르네는 뛰어나고 잔인한 책략가라고 했다.
그러니 첫 번째 시험 정도야 통과할 구멍을 만들어놓았을 터.
그래도 명색에 에쉬의 라이벌인데 벌써부터 떨어지면 실망이라고.
다음날,결국 더러운 감옥 안에서 억지로 잠을 청한 탓에 허리와 어깨가 뻐근한 몸을 이끌고 나는 취조실로 들어가야 했다.
취조관인 듯한 늙수그레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이런 더러운 취조실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외알 안경을 끼고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시험관이군.
대번에 감을 잡은 나는 일단 잠자코 의자에 앉아 노인을 마주보았다.
일부러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웃어 보일 필요도 없고 인상을 찡그릴 필요도 없다.
그저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다른 일행도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
"아악!나는 죄 없어!에쉬도 결백하다니까!풀어줘!"
거참,아마도 옆 쪽의 취조실에 채드가 있는 모양인데 그 녀석 고함소리가 참 컸다.
저 자식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는 않겠지?
만약 그렇게 되면......넌 죽음이야,채드.
"후우,옆 취조실이 좀 시끄럽지요?"
".....그러네요."
댁은 이게 좀 시끄러운 건가 보지?
연륜 있는 그의 목소리에 살짝 긴장했다.
이자가 시험관인 건 알겠는데,대체 무슨 시험을 치르는 거지?
감히 잡히질 않아 답답해하는데 라이가 물었다.
[마스터,마스터.혹시 옆방에서 곰탱이 고문하는 거에요?]
[여긴 고문실이 아니거든?]
"흐음,개를 데리고 다니는군요.동물을 좋아하십니까?"
"......싫어하진 않아요."
취조관의 탈을 쓴 시험관이 라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대체 무슨 수작이지?
"그러시군요.일단......한 가지 말씀 드리자면 에쉬라는 자는 현재 재판중입니다.하지만 재판이 그가 범인이라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데,당신의 생각은 어떠......"
"결백하다.에쉬는 죄가 없다는 것에......제 목을 걸죠."
"......목을?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을 위해 목숨을 겁니까?"
"남이라기 보다는 사람 보는 나의 눈에 목을 건 거죠."
질문이 이어지는 걸로 보건데 이번 시험은 가디언 후보들의 사상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사상이 위험한 자는 애초에 걸러내는 건가?어쩐다?
내 사상이 조금 위험한데 말이다.
"당신은 특이한 사람이군요.뭐,좋습니다.그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알겠어요.그러면 다음 질문을 하죠.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야,내가 제일 싫어하는 철학적인 질문이 나와 버렸다.
뭐라고 한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흐릿해진 전생으로도 넘어가보았다.
뭐 번지르르한 말 없을까?
아,이걸 써야지.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사람은 모두 생각을 하고 사는데요?"
"사람은 모두 생각을 한다.고로 사람인 저도 생각을 한다.그냥 평범한 사람이다.그걸로는 대답이 부족한가요?"
[마스터,저는 생각하는 개 할래요.]
라이는 이제 제가 늑대라는 걸 잊은 모양이다.
그래,그냥 개인 걸로 하자꾸나,라이.
그것도 충분히 귀여우니까.
문제라면 보신탕 감으로 보인다는 정도?
"아뇨,충분합니다.그럼 다음 질문.가장 싫어하는......인간은?"
싫어하는 인간?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인간이라......
조금 의외의 질문이었지만 고민할 거리는 못 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종류야 뻔하지.
"노예상인."
"노예상인?어째서요?"
"옛날에 노예상에게 신세진 적이 있어서요.노예상이라면 이를 갈죠."
얼마 전에도 몇 십명 쓸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죽여도 무관한 인간들은 노예상이다.
뭐,죽여도 된다는 얘기까지는 안 하겠지만.
위험한 사상가라고 찍히면 어떡해?
"그렇습니까?노예상이라......싫어할 만하시군요.그럼 마지막 질문 드리죠."
"얼마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아름다운 것......
뭐가 있을까?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이라고 할까?
아니면 선한 마음?
뭐라고 대답해야 이 시험관이 만족스러워하려나?
머리를 돌돌돌 굴렸다.
그리고 이내 내 마음에도 쏙 드는 답을 찾았다.
"세상 그 자체."
취조실에서 나온 나는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안내되었다.
시험에 통과된 것 같았다.
대기 중인 마차에 올라탔는데 그 마차에는 나뿐 아니라 다른 일행도 모여 있었다.
얼떨떨한 게일과 위드리,그리고 졸고 있는 채드와 엔크.
"니들은 이 상황에서 잠이 오냐?"
"맞아,갑자기 사람을 감옥에 쳐넣을 게 뭐람?그래놓고 갑자기 이상한 질문이나 하더니 이번에는 호화스러운 마차?대체 뭐하자는 짓이지?"
"아하암,감옥에서 잠을 설친 탓이라고."
뭐하는 짓이긴.
황태자 선별 시합에 가지언으로 뽑힌 것이지.
일행은 하나같이 현재의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유유자적한 것은 이 상황의 배경을 알고 있는 나와 라이 뿐이었다.
"맞아,나는 위드리가 걱정돼서 밤새 한잠도 못 잤다고!"
"게일님!"
"위드리!"
으에엑,이것들은 여기서도 연애행각이냐?
게일 너도 그러는 것 아니라고!
나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쳇.
마차를 타고 몇 십 분쯤 달려가니 화려한 황궁이 나왔다.
마차는 별 검문도 없이 황궁으로 들어섰다.
시합은 궁 안에서 치러지는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의 황궁을 구경하던 나는 점점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돈을 쳐발랐군!
호화로운 황궁에 일행은 하나같이 얼이 빠져버렸다.
"화,황궁?여기 황궁 맞지?"
"뭐야?우리 혹시 황궁 감옥에라도 들어가는 거야?"
"황궁에도 감옥이 있어?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대체!"
감옥에 황궁에......
참 극과 극인 장소였다.
일행의 혼란은 한층 더 가증됐지만 진정시켜주는 이는 없었기에 별의 별 추측이 난무했다.
로크스가 보이지 않았지만 일행은 워낙에 정신이 없는 탓인지 그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게일!너 네이칼 출신이라며?뭐 좀 아는 것 없어?"
"네이칼 출신이지 황궁 출신이 아니라고!"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앙?내가 원 살다 살다 황궁에 들어와볼 줄이야."
나는 한 번 와본 적이 있기는 했었지만 그때는 수행원으로 온 것이었기에 워프를 이용했다.
고로,황궁을 느긋하게 감상할 일은 없엇던 것이다.
새삼 겉에서부터 본 엘란의 황궁은 장엄하다 못해 웅장하기까지 했다.
내 눈이 피곤해질 정도니 호화로움의 극치라 하겠다.
[쓰르릅,마,마,마스터!저거,저거 먹고 싶어요!]
[안 돼.]
[끄앙,조금만 먹으면 안 돼요?]
[나부터 먹어라.]
다른 것도 아니고 감히 황궁에 장식된 보석들에 눈을 빛내는 라이.
야!이것들 잘못 건드렸다가는 헤이케 궁에서 쫓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경비병들이 새까맣게 몰려올껄.
그러면 너나 나나 인생 쫑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헤이케에서의 일이 걸리던 차라 나는 창문에 매달려 입맛을 다시는 라이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끄앙!마스터,하나만......]
[워워,하나 먹을 때마다 한 번씩 죽을 줄 알아,라이!]
넘치는 먹을거리에 혼이 빠진 듯 오늘 따라 보채는 라이를 진정시키는데 마차가 멈춰섰다.
라이의 꼬리에서 손을 뗐다.
마차 밖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의 기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응?왠 사람이 저렇게 많아요,마스터?]
"뭐지?저것들 기사 아냐,기사?"
"엥?옷이 하얀데?요리사 아냐?"
"어쨌든 황궁 사람들이잖아!"
창문 너머로 늘어선 새하얀 옷차림의 사람들.
어휴,저 바보 채드.
하얀 옷 입으면 다 요리사냐?
일행은 쉴 새 없이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그들과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싶었다.
두 열로 줄을 맞춘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마차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문을 열고 내릴까 하다가 이런 분위기라면 누군가 문을 열어줄 수순이었기에 잠자코 기다렸다.
생각보다 환영하는 분위기라 다행이었다.
나는 이보다는 비밀스럽게 시합이 치러질 거라고 여겼는데 말이다.
"내리시지요.우리는 당신들을 환영하는 바입니다.가디언 여러분."
마차 문은 지극히 조용하고 정중하게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깔끔한 예복 차림의 젊은 사내였다.
그는 적당히 예를 갖추고 있었다.
문가에 있던 위드리에게 그가 손을 내밀었지만 위드리는 눈을 동그랗게 뜰 뿐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대신 내가 몸을 일으켰다.
남자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이 짓도 오랜만이네.
"고마워요."
"별말씀을.다른 분들도 내리십시오.황자 전하께서 기다리십니다."
"황자 전하?"
"황족?"
가장 먼저 마차에서 내린 나는 옆에 선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늘어선 사람들을 훑었다.
어디 보자,이 단단한 기운은......기사로군.
아마도 기사단 하나가 통째로 나온 것 같았다.
갑옷 차림이 아니라 예복 차림인 것은 아마도 나름의 예를 갖추겠다는 의미와 혹여 갑옷일 경우 우리가 겁먹을 것을 염려한 듯했다.
"저 무서워요,게일님!"
"내가 지켜줄게,위드리!"
"니들......맞고 내려올래?그냥 내려올래?"
늑장을 부리는 것도 모자라 삼류 순정영화를 찍는 게일과 위드리가 마차에서 내리자 엔크와 채드는 별 거리낌 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약속이나 한 듯 내 뒤를 쪼르륵 붙는 게 나를 의지하는 듯 했다.
이것들이 저들 필요할 때만......기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똑바로 선다,실시!"
"지,지니......좀 봐줘라.우린 이런 상황이 익숙치 않다고!"
"맞아요.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하나도 모르겠고......무서워요,지니님."
"옳소,나도 무서......"
나도 이런 상황이 익숙지는 않아.
그리고 채드 네놈은 눈곱이나 떼고 무섭다고 말해!
나는 채드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에쉬도 없고 로크스도 없어.고로,대장은 나야.그러니 가슴 펴고 똑바로 서!"
[똑바로 서!푸히히.]
"쳇,왜 네가 대장이냐?"
"그럼 네가 맨 앞에 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