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5/71)

라이가 제 대단함을 알리려는 듯 살랑이던 꼬리를 방어막에 가져다댔다.

라이가 말과 동시에 행동에 옮기는 바람에 말릴 새도 없었다.

앗!이 바보 뱀!

끼이이잇

아까의 삐이익 소리보다 열 배는 신경을 긁는 경보음에 나는 눈을 찡그리며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바라밍 찢기는 듯 한 초고음!

"이......멍청이!"

여전히 방어막에 꼬리를 가져다대고 있는 라이를 잡아다 운다인 밑으로 패대기 쳐버렸다.

녀석의 머릿속에는 돌밖에 안 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주 중에 '저 여기 있어요.부디 잡으러 와주세요'하는 짓이나 다름없는 짓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족히 10미터 높이에서 추락했음에도 녀석은 멀쩡했다.

[끄악!마스터,저를 버리시다니요!이럴 수는 없어요,마스터.흐흐흑,저 데려가세요,마스터엉.]

"마스터엉인지 뭔지 엄살 부리지 마!너 때문에 귀가 찢어질 뻔했어!"

[제가 꿰매드릴게요,마스터.그러니 제발 절 버리고 가지 마시와요,흐흑.]

밑에서 꼬물거리는 라이는 마치 실지렁이 같았다.

기껏 따돌렸던 경비들이 경보음소리를 듣고는 냉큼 쫓아왔다.

라이 네 이노옴!

하여튼 꼭 중요할 때 도움이 안 된다니까.

라이는 내버려두고 도주를 감행했다.

[알아서 쫓아와,이 바보 뱀아!]

[에엑?마스터어~어찌 제게 그런 시련을 주시나이까.흐흐흑.]

쉬잉

빠르게 방어막의 둥그런 곡선을 타고 경비들을 피해 반대쪽으로 날아가는데 내가 도망치던 쪽의 방어막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희끗한 머리로 보건대 제법 나이가 있는 노인 같았다.

게다가 방어막을 열고 들어오는 모양새나 절로 느껴지는 오싹한 적개심.

틀림없이 적이었다.

하긴,여기 이 상황에서 아군을 기대하기란 무리겠지만.

"멈춰,운다인!"

[저 노인,강력한 바람의 정령사에요,주인님.]

점점 가까워지는 노인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동질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와 같은 정령사,하지만 나와는 달리 바람의 정령사인 그는 아마도 나와 동급의,어쩌면 나보다 뛰어난 기술과 경험을 구사할지도 모르는 상대였다.

헤이케에 있는 상급 정령사라면 리드라트 티에트라젠,그 작자뿐.

정령사면서 돈을 굉장히 밝히는 데다가 변태라는 소문이 파다한 위인.

그런 주제에 상급정령사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정령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자!

쳇,나도 상급 정령사야.

물론 '날개를 감추고 손톱을 감추라,그리고 초식동물을 가장하라'라는 미토스 대제의 명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근데 나를 초식동물로 봐주는 사람이 있으려나?

대륙 최고의 정령사

"포기해라.헛된 발악을 하고 싶거든 해봐도 좋다."

귓가에 또렷이 들리는 고약한 늙은이의 목소리에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보아 하니 정령마법을 이용해 일부러 내게 목소리를 전달한 것 같은데 그런 쓸데 없는 일에 쓰기 위해 마나를 소비하다니,마나량이 좀 되시나 봐?

[흥,운다인.워터 스트라이크!]

입을 열어봤자 '나 여자에요'하고 알려주게 될 뿐이었기에 대답을 하지는 않았고 다만 상대의 주문에 따라 흔쾌히 공격을 가했다.

그래,좋아!

어디 그 대단한 상급정령사의 실력 좀 보자고!

촤르르륵

빠르게 모여든 물방울들이 커다란 채찍 모양을 만들어냈다.

얼핏 보면 수룡 같아 보이기도 했고 어지 보면 단순히 거대한 물뱀에 가까운 모습이었는데 무얼 닮았느냐는 것보다 얼마나 빠르게 상대를 후려치느냐가 중요했다.

콰광

뱀의 모양을 딴 거대한 채찍이 인정사정 없이 노인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꼬불꼬불한 워터스트라이크의 모양 그대로 헤이케 왕궁 바닥에 짙은 자국이 남았다.

윽,조금 찔렸지만 이미 건물 하나 부숴먹은 상황이니 살포시 무시하련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방어막 안에서 의기양양하게 뻗대고 있는 얄미운 노인네였다.

바람의 정령이 밸런스 형이니,방어는 제법이겠군.

"호오,침입자.너 정령사였냐?그것도 드물게 중급 물의 정령사로군!"

그것도 몰랐단 말이야?

날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으면 정령사가 정령사를 몰라볼 수 있어!

그러고도 네놈이 상급정령사냐?

왠지 깔보였다는 생각과 더불어 '드문 물의 중급 정령사'라는 구절이 걸렸다.

현재 대륙에서 '중급 물의 정령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나,지니 크로웰이니 말이다.

게다가 워터 스트라이크를 저렇게 쉽게 막아내다니.안 돼겠어.

"......깊은 수령 속에 잠든 위대한 물의 정령이여,계약자의 부름 받으라.내 눈앞에 나타나 그 장엄함을 떨쳐라,엔다이론!"

딱히 신변에 위협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중급정령사'를 지워내고 '상급정령사'를 각인시켜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또한 저 노인네를 적당히 상대해서 제압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인지했기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엔다이론을 불러냈다.

아직 바닥에 고여 있던 워터 스트라이크의 물을 토대로 의심할 바 없이 리얼한 수룡의 모습을 한 엔다이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소환주인 나조차도 부담스럽게 하는 위압감을 과시하며 말이다.

[인간의......성인가?]

[일단 주인님께 인사나 올리시지?]

운디네의 사랑스러운 인사나 운다인의 충실함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엔다이론은 배알이 꼴릴 만큼 무뚝뚝하고 기가 세서 왠지 로베닌 녀석을 닮아 있었다.

로베닌 녀석을 앞지르려고 기를 쓰고 소환한 녀석이 로베닌의 성격을 닮았다니 정말 눈물 나도록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안녕하신가?]

"에,엔다이론!물의......상급정령?이럴 수가!"

마지 못해 인사를 건네는 녀석을 보고 기함하는 티아트라젠.

응?

잠깐,티아트라젠......이거다!

나는 황급히 품속에서 방금 찢어온 책장들을 뒤적였다.

분명 아까 정령진을 가져간 정령사 중 한 명의 성이 테트란이었다.

그리고 내가 배웠던 '외국 귀족들의 계보'에서 테트란이 라는 성을 가진 귀족 가문 하나가 다른 나라,바로 이 헤이드리케로 투신하면서 성을 바꿨는데 그 성이 티아트라젠이었다.

그것은 대륙에 유명한 상급정령사의 가문인지라 잘 새겨놨던 일이기도 하다.

맙소사,어쩐지 조금 들어본 것 같다 했더니 저 작자의 가문이었어!

내가 가져온 계약진은 공간의 정령과 행운의 정령이다.

역시 내 정령들이 최고다.

공간의 정령만 있으면 마법사들의 워프나 텔레포트에 기댈 필요도 없고 행운의 정령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행운이 깃들게 해준다.

응?이 구절이 아닌데.바로 이 근처......

두 개의 계약진을 겹쳐서 만들어낸 복잡한 그림을 이번에 내가 새로 만든 귀족위의 문장으로 삼았다.

내 이전의 이름은 세르게노 마르쵸.

지금의 새로운 이름은 세로게노 테트란.

마르쵸같이 이상한 성 따위 형에게 넘기고 나는 새로이 가문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지은 성이다.

테트란,신들의 휴양지를 등에 지고 날아다닌다는 전설 속 대조의 이름이다.

내 이름은 세르게노 테트란.

이 시대 최후의 공간 정령사다.

이거야!

역시,신이 날 돕는 거야!

날 그렇게 어이없이 죽인 게 미안해서 속죄하는 모양이다.

물론 저 내킬 때만 도와주는 것 같지만 어쩌랴.

공간의 정령사라......솔직히 워프 울렁증이 있는 나로서는 영 호감이 가지 않는 정령이지만 꼭 나를 옮길 필요는 없다.

물건을 옮길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내 쪽으로 데려올 수도 있고.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이미 공간의 정령진이 내 손에 들어온 것 같은 심정이었다.

정령진 두 개를 합쳐 귀족위의 문장으로 삼았다니 티아트라젠 가문의 문장을 책으로 찾아보거나 그 가문의 귀족패를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령진 두 개를 동시에 손에 넣게 될 터였다.

물론 합쳐놨다니 헤체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는 해볼 만했다.

"크큭,크크큭."

티아트라젠,저 노인네를 만난 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지금의 상황 상 나는 본의 아니가 악당 역할이었지만 그 정도를 감수하고서라도 얻는 것이 많았다.

우선 다른 상급정령사와 겨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골치 아프리라 예상했던 두 개의 정령진에 대한 행방도 알아냈다.

"너!대체 어느 나라에서 온 첩자냐?원하는 것이 무어냐?"

첩자로 봐주는 걸까?

하긴 갑작스런 상급정령사의 출현이라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외국에서 몰래 키운 비밀조직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런 유의 소문이 대륙에 뻔질나게 퍼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어떻게 둘러대야 나와 나를 연관시키지 않으려나,하고 잔머리를 굴렸다.

정말 첩자인 척할까?

아,그보다는 이것이 낫겠다.

[운다인.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말해줘.저 인겐에게 들리게.]

[네,주인님.]

일단 내가 상급정령사라는 것은 보여주었다.

현재 대륙에 알려진 바 없던 상급정령사의 출현!

이것을 납득시킴과 동시에 그 상급정령사를 나와 연계할 수 없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나는 이것을 꺼내들었다.

[......나는 '지켜보는 자'의 천리안 클라우드님께서 잠들어 계시는 '초록의 평안'의 스무 번째 딸......데릴사이다.클라우드님의 명을 받들어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그러니 인간,너는 방해하지 마라.]

언뜻 기억나는 다크엘프의 인사 방식을 떠오르는대로 도용했다.

다리아와 내 오빠와 같은 이름을 가진 제라스에게 조금 미안했다.

또한 몇 번째 달이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이제 곧 내가 스무 번째 생일을 맞는 고로 그 기념 사망 적당히 둘러댔다.

그리고 이어 얼마 전 배에서 만났던 데릴사위인지 하는 이름의 소녀의 이름도 도용했다.

팬던트 찾아줬잖아.

이 정도는 용서해주겠지.

-나는 '지켜보는 자'천리안의 클라우드 님께서 잠들어 계시는 '초록의 평안'의 스무번째 딸 데릴사이다.클라우드 님의 명을 받들어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그러니 인간,너는 방해하지 말라.

운다인은 충실히 내 말을 따라 전했다.

확연히 인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에 노인네는 귀를 기울여 듣더니 뭔가를 떠올린 듯 손뼉을 마주쳤다.

클라우드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써먹어봐야겠다.

급할 땐 둘러대는 게 최고거든.

"그 인사는......혹시 엘프냐?아니,엘프이십니까?"

[그렇다.]

-그렇다.

"왜,왜 정령을 통해 말씀하십니까?무얼 찾으시는 겁니까?"

엔다이론을 유지하느라 빠져나가는 마나도 만만치 않은데 잡담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비키든가!

아니면 한판 뜨든가!

짧게 혀를 찬 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인간과 직접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이다.무얼 찾는지 하찮은 인간에게는 말해줄 수 없으니 비켜라!어서!]

-인간과 직접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이다.무얼 찾는지 하찮은 인간에게는 말해줄 수 없으니 비켜라!어서!

어째 내 목소리보다 운다인의 목소리가 더 고운 것 같아 조금 셈났지만 지금은 내 목소리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

낸다고 멀찍이 있는 티아트라젠에게 들릴 것 같지도 않았고 실제 내 입을 열어 엘프의 것 같이 고귀하고 품위 넘치는 목소리를 낼 자신 또한 없었다.

마침 엔다이론이 따분한 듯 그 커다란 꼬리를 한 번 휘적거리자 크게 바람이 불었다.

[이보게,난 왜 부른 건가?]

[조금만 더 있어봐.]

[부르르르.]

[그만 해!]

그냥 내버려두자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엔다이론이 물거품소리를 냈다.

저 심심하니 어서 뭐 좀 해보라는 표시다.

저건 라이를 빼다박았군!

"에......엘프님,하지만 인간의 궁에 허가 없이 들어오신 이상......그 죗값을 치르셔야 합니다."

역시 이 정도 연극을 하는 것으론 쉽게 보내줄 수 없는 듯했다.

하긴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결국 이러헤 되면......이것 뿐이군.

[그렇다면,무력행사다!]

-그렇다면 무력행사다!

[엔다이론!아이스 레인!]

-엔다이론!아이스 레인!

엔다이론은 내 말이 끝나고 운다인의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전에 마법을 발동시켰다.

엔다이론의 커다란 입에서 새어나온 하얀 기체들은 한데 모여 커다란 구름을 만들어냈다.

그 구름들은 뼈를 아리게 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으며 실제로 그 구름에서 내린 것은 비가 아니라 우박에 가까운 얼음덩어리였다.

저 얼음비는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대지를 타고 적에게 다가가 적을 꽁꽁 얼려버릴 것이다.

엔다이론이 펼친 마법인 만큼 방어막을 친다면 방어막째로 얼려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실라페 붐 디 윈드!"

쳇!나는 방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러지 않았다.

역시나 연륜 있는 노인네답게 내 공격을 맞받아친 것이다.

붐 디 윈드,상당한 중장범위에 폭발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

언젠가 이엘 스승님이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순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가 단단히 묶었음에도 화악하고 날아가버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에 엔다이론이 펼쳤던 아이스 레인의 얼음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젠장,내 마법이!

아니 그보다 머리,머리.

[엔다이론,더스트 칩!]

-엔다이론,더스트 칩!

나는 혹여 작은 인간의 귀가 보일 것을 염려하며 서둘러 후드를 썼다.

한눈에 튀는 금발머리를 보인 것이 상당히 불안요소가 되어버렸지만 일단은 공격을 이었다.

공격을 멈추는 즉시 상대가 치고 들어올 테니 말이다.

더스트 칩,전방위 견제용 마법이다.

엔다이론의 전신에서 솟아난 작은 얼음비늘들이 사방으로 빠르게 쏟아져 나갔다.

맞기만 한다면 몸이 마비되는 정도의 효과는 날 텐데 역시나 상대는 쉽게 맞아주지 않았다.

새로운 마법을 쓸 것도 없이 소환되어 있던 실라페가 날아간 얼음비늘들을 쳐낸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바늘의 수가 많았던 탓인지 바늘 몇 개가 기존에 있던 바람 계열의 실드를 깨고 들어가 아슬아슬하게 티아트라젠의 옷깃을 스쳤다.

"실라페!레비테이션!"

약간이나마 위기감을 느꼈는지 티아트라젠이 공중부양마법으로 가장 보편적인 레비테이션을 발동했다.

공중전이라면 나로서는 밀릴 수밖에 없었고 이미 엔다이론을 소환한 덕에 마나가 상당 부분 소진되어 있었다.

저 노인네는 아직 멀쩡한 것 같은데!

쳇,마나가 필요해.

[운다인,내 말만 들어.가서 라이를 찾아와라.나는 엔다이론의 머리 위에 내려주고.]

-운다인......

[네,주인님.]

운다인은 나를 엔다이론의 머리 위에 내려놓고는 몸을 날려 휭하니 방어막의 안쪽으로 사라졌다.

지금 내가 있는 방어막은 제 2방어막.

1방어막을 부쉈지만 앞으로 부숴야 할 것이 몇 개가 될지 몰랐고 당장 눈 앞에 계신 대륙의 유명하신 상급정령사 티아트라젠을 깨부숴야 했다.

"......당신,정말 앨픕니까?"

역시나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방금 후드가 벗겨지면서 엘프 특유의 긴 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속으로는 엔다이론에게 명령을 내렸다.

[엔다이론,심혈을 기울여서 바인 레인을 준비해.저 노인네가 방심하는 순간에,알았지?]

바인 레인,공기나 땅속에 있는 물들을 실처럼 뽑아내 상대가 어디 잇든 꽁꽁 싸맨다.

그리고는 그대로 얼려버리는 강력한 포박용 마법이다.

한 번 잡히면 빠져나오기 매우 힘들다.

상대가 실드 안애 있었지만 엔다이론의 바인 레인이라면 족히 실드를 뚫고 들어가 힘을 발휘할 수있을 터!

일단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엘프라면 그 증거를 보여......윽,실라페!"

티아트라젠이 내게 재촉하듯 말했는데 엔다이론은 그 순간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힘을 발휘했다.

티아트라젠 주변으로 하얀 장막이 서리더니 그것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며 얼음실을 뽑아냈다.

가느다랗고 하얗게 빛나는 실들이 티아트라젠을 감쌌다.

내 생각과 달리 티아트라젠의 몸이 아닌 실드째 감쌌지만 말이다.

엔다이론이라면 충분히 내 생각을 읽고 그대로 할 줄 알았던 나는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엔다이론의 머리 위에서 발을 굴렀다.

[몸만 감싸야지!실드째로 감싸면 바인 레인이 깨질 수도 있잖아!]

[실드 안에서 감싸기가 귀찮다네.그러려면 실드도 깨야 하고.]

[이익!알았어!알았으니까 일단 바인 레인이 깨지지 않게 힘조절이나 해.]

나는 얼음조각을 휘날리며 하얗게 빛나는 바인 레인을 바라보았다.

실드째로 감싼 덕에 크고 동그랗다.

저렇게 해놓으면 마나도 더 든다고!

이놈의 정령이 급수 좀 된다고 말도 제대로 안 듣고 말이야!

바인 레인을 걸어놓고 이렇게 불안하긴 처음이었다.

상대가 대륙 최고의 정령사인 탓인가 보다.

쳇,실상 잘 보면 나도 상급 정령사고 이종족들 중에는 더 뛰어난 정령사도 많다고!

[마스터!]

[응?라이!잘 왔다.대체 어디 갔다 왔니?]

내가 깨고 나온 구멍으로 들어오는 운다인.

그리고 그 위에서 실날같은 존재감을 보이는 라이.

멀리서 보니 영락없는 지렁이 꼴이네.

[마스터가 저를 버리고 가셨......]

[그래!이제라도 왔으니 됐어.특별히 없어진 건 그냥 용서해줄게.]

라이가 예의 버릇없는,게슴츠레한 눈으로 운다인의 등에서 내 손목으로 넘어왔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기어와 내 어깨에 꼬리를 걸치고는 눈앞에 작고 뾰족한 뱀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마스터,나빠요.]

[내가 뭘?]

[흑!인간들이 아무리 이기적이라지만 우리 마스터는 안 그러신 줄 알았는데,실망이에요.]

[그래?내가 이기적인 걸 이제 알았다니 나도 실망이야.]

나는 같잖다는 뜻으로 '헹!'콧방귀를 뀌었다.

인간이 이기적인 건 당연한 것 아냐?

그리고 나는 그 중에서도 이기적이라면 상위 랭크일걸.

슬쩍 바인 레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티아트라젠에게 염원했다.

제발 나오지 마라,나오지 마라,그대로 얼어버려라.

나중에 녹이기만 하면 살기는 하니까 그냥 그대로 꽁꽁 얼어라.

[잉?마스터 제가 실망할 데가 어디 있어요!저같이 완벽한 보신감......아니,저같이 완벽한 정령은 이 세계 어딜 가도 없다구요!]

본인도 본인이 보신감으로 유용해 보인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같잖은 라이의 앙탈 같은 것은 무시하고 나름 심각한 눈으로 티아트라젠을 주시했다.

왠지 불안했다.

그리고 내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강력한 마나의 유동과 함께 주변 공기가 크게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 일렁임의 중심은 엔다이론이 펼친 바인 레인의 내부!

이익!티아트라젠 할아범!

핑!피피핑!

바인 레인을 형성하고 있던 얼음 실들이 힘을 잃고 끊어지더니 이내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숨 막히도록 지독한 바람!

주변 공기가 더욱 거칠게 일렁거렸다.

엔다이론을 소환할 때보다도 강력했다.

바람의 정령인 만큼 주변 바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

바람의 상급정령 실라이론이었다.

"흥!보아 하니 엘프는 아닌 것 같군.상급정령에 놀랐지만 내 실라이론에 깨지는 것을 보니 인간임이 틀림없다!"

티아트라젠이 뭐라 조잘거렸지만 나는 처음 마주한 실라이론의 자태에 반해버린 차였다.

맙소사,저 우아한 표정!

저 화려한 옷차림.

거대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

마치 전쟁의 여신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의 실라이론.

에잉,엔다이론보다는 저 쪽이 내 취향인데.

생김새가 말이다.

[마스터,마스터.저 엘프 어쩌고 하는 인간 뭐에요?]

[아,티아트라젠이야.바람의 상급 정령사.저 적자를 해치워야 여길 나갈 수 있어.]

[오호,죽이는 건가요?]

[글쎄,저런 유명인을 죽였다가는 소문이 크게 나서 골치 아플텐데.하지만......내 실력으로 저자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이 없어.]

저자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내 정령이 저자에게 얼마나 먹힐 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묘하게 두근두근,가쁘지만 기분 좋게 뛰는 심장고동을 느껴버렸다.

이거 설레는 걸.

세상에나,상급정령 간의 결투라......멋져!

나는 인간이라는 것을 들켜버린 데다가 저런 막강한 적을 만났음에도 감히 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까짓것,누구의 상급정령이 더 강한지 해보는 거야.

"실라이론의 위용에 넋을 잃었나?이미 네가 엘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챘으니 포기하고 순순히 잡히시지!"

[웃기시네.흐흥, 어디 그 대단하다는 실력 좀 볼까?엔다이론,아이시클 란스!]

아이시클 란스,종전의 더스트 칩이 무수히 많은 얼음 비였다면 아이시클 란스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거대한 크기를 가진 하나의얼음창이었다.

아니,빙하조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엔다이론은 그 커다란 입을 한계까지 벌리고는 뾰족하고 커다란 얼음조각을 울컥,빠르기 실라이론에게 뱉어냈다.

그 끝에 집중된 파괴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었고 나는 자신만만했다.

게다가 그것은 정말 얼핏,잔상을 남길 정도로 빨랐다.

내가 눈으로 쫓기 부담스러울 만큼.

"실라이론!윈드 실드!에어 바룸!"

에어 바룸,전면을 방어하는 두터운 바람벽이다.

윈드 실드까지 두 개나 되는 방어막이 가로막자 아이시클 란스는 잠시 파고들려는 듯 거세게 회전하다가 이내 힘을 잃고 산산 조각나버렸다.

내 공격보다 방어가 빨라?젠장.

[쳇,엔다이론!다시 워터 스트라이크!]

꽤나 자신있었던 아이시클 란스가 일말의 충격도 주지 못하고 파해버리자 나는 열불이 났다.

스트라이크 시켜 버릴 테다!

엔다이론의 머리 위에서 발을 마구 구르며 다시 공격을 시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라이론의 회오리 같은 바람 창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흥!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실라이론,에이로 붐!"

처음 보는 기술이었는데 실라이론의 뾰족한 창끝이 거대하게 부푸나 싶더니 그것은 커다란 주먹 모양이 되어 그대로 엔다이론을 후려 갈겼다.

투명하고 거대한 주먹은 흡사 신의 손길 같았다.

파항!

바람의 손길은 역시나 쏜살같아서 엔다이론은 그것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야 했다.

[크흑!저,저 바람순이가!감히 이 몸을!크화아앙!]

[푸헤헤헷!고놈 쌤통이다.]

엔다이론이 한 대 얻어맞은 것이 분한지 발작을 하기 시작했따.

라이는 그것이 우습다는 듯 배를 뒤집으며 웃어댔다.

머리 위에 내가 있다는 것을 잊었는지 엔다이론이 한층 더 거칠게 몸을 꼬았다.

그 바람에 나는 운다인에게 옮겨 타야 했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람의 정령의 공격은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주문과 동시에 마법이 시전된다.

나도 나름 빠른 시전 속도라고 자부했지만 진짜 바람의 정령 앞에서는 하등 자랑할 것이 못 됐다.

[내가 밀리다니,이럴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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