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과 떨어져 나 홀로,아니 라이와 함께 정처 없이 미젤란을 떠돌던 나는 작은 사탕가게를 발견했다.
그리고 당장에 가게에 들어가 여러 종류의 사탕을 한 움큼씩 샀다.
간식거리가 거의 없는 이 세상에서 사탕은 가장 대중적인 간식이었다.
개인적으로 초콜릿을 좋아하지만,아무데서나 팔지 않으니 일단은 사탕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탕 가게 점원이 내가 고른 사탕을 잘 포장해 건넸고 나는 사탕을 받아들며 물었다.
"여기 서점은 어디에 있어요?"
"서점이요?음,서점은 좀 멀리 있는데......아,그 대신 가게 나가셔서 바로 오른쪽에 있는 골목을 쭉 가시면 맞은 편에 잡화점이 하나 있거든요.거기서 조금이지만 책을 파는 것 같던데......그냥 서점을 알려 드릴까요?"
잡화점?
잡화점에서 책도 파나?
하긴 오크힘줄도 파는 곳인데 뭘 안 팔겠어.
하지만 나는 신간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멀더라도 서점에 가고 싶었다.
"네,서점은 어딘데요?"
"가게를 나가셔서 왼쪽으로 두 골목 올라가시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시다가 일곱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시면 유턴 구역이 나와요.거기서 돌지 마시고 그냥 담을 넘으시면 다른 길이 나오거든요.거기서 오른쪽으로 가시다가 스물아홉번째 골목을 지나면 오른쪽......"
"잠깐,잡화점은 어디라고요?"
"아,잡화점은 가게 옆에 오른쪽에 있는 골목으로 나가시면 바로 있어요."
잡화점이나 가야겠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사탕가게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서점은 유턴 어쩌고 할 때 포기했다.
골목을 나가니 사탕가게 점원의 말대로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잡화점이 보였다.
아주 오래된 잡화점 같았는데 간판이 어찌나 낡았는지 그냥 썩은 나무판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간에 신자도 찾아보기 힘들겠군.
[......이렇게 늙은 가게 처음 봐요,마스터.]
"'늙은'이 아니라 '낡은'이라고 하는 거야."
끼이이익
무슨 공포영화의 전주곡처럼 문 여는 소리가 길고 소름끼쳤다.
기름칠 하는 게 그렇게 힘드나?
어찌어찌 내기키 않는 걸음으로 잡화점에 들어서자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는지 어두운 잡화점 안에서 얼굴만 둥둥 떠 있는 듯한 할머니가 흰자위가 유난히 많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주인인가?
손님을 이렇게 노려보는 건 뭐하자는 플레이지?
나가라는 건가?
장사 안 한다는 무언의 표시?
"......뭘 찾아?"
[끼아악!할멈 귀신이다!]
"아,책을 좀......"
내가 잠시 나가야 할지 고민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멈은 내게 그 목소리도 전혀 안 상냥하게 물어왔다.
정말 귀신 같은 걸.
"책?책이라면 여기 있지.읽어 보겠나?복사본뿐이지만 쓸 만 할 거라우."
나가야겠다.
잘못하다가는 저 할머니한테 잡아먹힐지도 몰라.
전직 마녀가 틀림없어.
마녀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나는 왠지 모를 오싹함에 뒷걸음칠을 쳤다.
뭐라고 핑계를 대고 나간다?
아,그래.
"저,저는 고대어로 된 책을 찾고 있는데 여긴 없는 것 같네요.실례지만 이만 나가......"
"고대어로 된 책도 있지.열 권쯤 있어.들어와 봐."
젠장,룬어로 할 걸 그랬나?
주인 할머니가 두려웠지만 나는 힘껏 태연을 가장하며 할머니가 가리키는 책장으로 걸어갔다.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지는 거야.
태연하게 책을 한 번 훑어보고 나가는 거야.
태연하게......
[끼악!끼악!끼아아악.]
[씨끄라!그리고 넌 끼악이 아니라 끄악이잖아.]
[엄머!왜 이러세요,마스터?저는 무성이에요!저는 남녀평등 주의라고요!]
[......그냥 남자해라,잉.네가 여자면 내가 싫어.]
라이가 그 큰 덩치를 숨길 셈인지 내 뒤에 꼭 붙어왔다.
그때 검은 옷 덕에 얼굴만 동동 떠 있는 할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흐아아,얼굴이 떠다녀.
"호오,그 누렁이 귀엽구만."
"네?가,감사합니다."
"고놈 실하네.열 그릇은 나오겠어!요효효효."
[끼아악!끄악!끄악!끼악!]
주인 할멈은 정말 마녀같이 웃어댔고 라이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러댔다.
성 정체성이 모호한지 나까지 혼란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말이다.
그런데 정말 열 그릇 나오려나?
얼마만큼이 한 그릇이지?
슬쩍 라이를 눈대중해보는데 할멈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자네,그 귀고리랑 반지 뭐로 만든 건가?좋아 보이는데?내게 팔터?견적 낼까?"
"아,아뇨.이건 절대 안 되는데요."
할멈은 눈이 좋았다.
한눈에 내 귀고리와 반지가 같은 재질이라는 것을 알아보더니 대뜸 견적을 내잔다.
그건 절대 아니 되옵니다.
나는 최근에야 '인어의 눈물 이종 세트'가 주는 대단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끼었을 때와 끼지 않았을 때 물의 상급정령 엔다이론을 소환 할 수 있는 대기시간만 해도 두 배로 늘어났따.
그렇다는 말은 사용할 수 있는 기술도 두 배라는 소린데 과연 안나 씨의 말처럼 고대의 정령사들이 눈을 뒤집고 찾아다녔을 만한 물건이었다.
이건 레어야,레어.
"쳇,그래?그럼 책이나 하나 이상 골라보이."
......하나 이상?이 할머니 강적인걸.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할머니가 가리키는 부근을 보았다.
이런 곳에 있는 고대어 책이래 봤자 뭐 대단한 거 있겠냐는 생각을 하면서.
적당히 책의 제목들을 해석했다.
{영웅 192명 모음집}{개테의 시집}{어른왕자의 자서전}{화장실 가기 전에 해야 할 49가지}{위기의 정령사}
익히 읽어본 책들 사이로 처음 보는 책이 있었다.
위기의 정령사?
정령에 관한 책은 연애소설 하나 안 빼고 읽었는데?
이건 뭐지?
나는 낯선 제목을 가진 책을 꺼내들었다.
지은이는 누구지?
아무리 책 표지를 살펴봐도 지은이의 이름이 없었다.
책을 펼치려는데 길고 얇은,뾰족한 손톱을 가진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손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의 오싹함이라니......
"왜,왜요?"
"1실버."
"......네?"
"구경하는 데 1실버야."
문득 에쉬가 존댓말 쓸 때마다 1실버씩 빼앗았던 게 떠올랐다.
나보다 세잖아,이 할머니?
나는 마침 주머니에서 놀고 있는 1실버를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아쉬운 내가 져줘야지 어쩌겠는가.
책을 펴들었는데 막상 두께에 비해 글이 써져 있는 부분은 채 반도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복사본이라고 했던가?
복사본이 다 그렇지 뭐.
자는 적당히 중간을 펼쳐 첫줄을 읽어보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썩어 문드러진 살아 있는 시체뿐이었다.
살아 있되 죽은 자들보다 못한 처지의 그들은 지독한 괴로움에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으며 그들에게 죽음은 축복일 것만 같았다.
그들이 겨우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시체조다 온전치 못했으며 한 줌 썩은 물이 되어야 했다.
이게 뭐야?공포 소설?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다시 서너 장을 넘겨 중간 부분을 읽었다.
저주의 정령.
그것은 내 이름을 세르게노 마르쵸라는 일곱글자를 걸고 맹세하는데 여태껏 등장했던 그 어느 정령보다도 악독하고 끔찍한 존재였다.
그 정령의 등장은 흡사 세상에 재앙이 내린 것과 다름 없었고,그것은 감히 정령이라 부르기에도 두렵고 어두운 존재였다.
나를 포함한 정상급 정령사 다섯은 그 정령을 어둠의 정령으로 분류하길 망설이지 않았고 남은 것은 어둠의 정령을 봉인하는 일이었다.
맙소사,이게 여기에 있었단 말이야?
나는 경악했다.
그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어둠의 정령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고서가 헤이케의 외딴......은 아니지만 고작 잡화점에 처박혀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왕궁도서관을 이 잡듯 뒤져도 없던 것이 하필 여기에?
역시 내가 운발이 좀 산다니까.
후훗,이거 잘하면 '그 내용'이 있을지도?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생각할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둠의 정령 소환자가 돌연 죽어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평소 저주를 내려 죽였던 이들처럼 썩은 물이 되어 사라졌다.
어둠의 정령과 계약한 자의 말로였다.
계약자의 죽음으로 어둠의 정령이 사라졌지만 우린 안심할 수 없었다.
제2의 어둠의 정령이 나올 것이 염려되었다.
우린 기존의 정령진을 개조해서 가장 많이 소환되는 4대 원소 정령과 비 원소 정령들만을 전문적으로 소환해 낼 수 있는 정령진 개발에 돌입했다.
일기도 아니고 거의 수필 형식의 책이었다.
그때,그때 메모를 남기는 형식으로 책을 엮어놨는데 정식으로 출간한 것이 아니라 왕궁도서관에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내용을 찾아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이들이 만들어낸 비원소 정령들의 정확한 종류,더 나아가서 그 정령들의 정령진이 있는 곳!
우린 총 25개의 정령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안정적인 계급과 서열을 가진 4대 원소 정령들의 정령진 16개와 달리 비 원소 정령들의 정령진 9개는 매우 불안전 했다.
정령이 곧장 나와 주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가 의도한 정령과 다른 정령이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았다.
자칫 또다시 어둠의 정령을 불러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린 결국 9개의 비 원소 정령진을 나눠서 책임지기로 했다.
각기 자신이 가장 많이 기여한 정령진을 가져갔다.
전기의 정령진과 얼음의 정령진을 가져간 아르도는 정령진을 소환 정령석으로 만들어 자신의 고향땅에 묻겠다고 했다.
바로 이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무 기쁜 나머지 겉으로 소리르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내용이 이 책에 숨어 있었다.
정령진들의 행방!
그래,기억 나.
호덴에서 아돌의 정령석을 구입했을 때 함께 샀던 책에 분명 적혀 있던 이름이다.
아르도.응?
난 아도르인 줄 알고 아돌에게 똑같이 아도르라고 이름 지어줬는데.
괜찮아,괜찮아.
어차피 아돌은 모르니까.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음 줄을 읽었다.
리자마엘은 식물의 정령진과 동물의 정령진을 아르도와 마찬가지로 정령석으로 만들어 전부터 알던 어느 정글 부족에게 맡긴다고 했다.
그리고 소랑 베무림,그는 단 하나의 정령진을 가져갔는데 우리가 만들어낸 정령진 중 유일하게 정신계 정령인 환상의 정령을 가져갔다.
사실 내 것이지만 녀석에게 빼앗겨버렸다.
이름 그대로 환상을 만들어내는 정령.
사실 정신계 정령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지만 상대에게 환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신계 정령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도,너무 아깝다.
소랑 녀석보다는 내가 더 많이 연구에 기여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녀석은 정령진을 정령석으로 만들지 않고......
여기서 이 장은 끝이었다.
정글 마을에 맡긴 데다가 식물과 동물의 정령이라면 타잔과 치타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찾아서 계약한 정령들은 총 넷.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다섯.
그리고 그중 하나는 환상의 정령이라는 정신계 정령.
여기까지의 내용으로 보건대 다음 장에는 분명 환상의 정령의 정령진에 대한 행방이 적혀 있을 터였다.
더 나아가서는 다른 네 정령진의 행방까지!
두근두근
심장이 이중,삼중으로 사정없이 떨렸다.
어찌나 떨리던지 손목 안쪽에서 맥박 뛰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여기서부터는 원본을 참고하시오.-베낀 이.
다음 장에는 내가 바라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장이 한 줄 적혀 있었다.
눈에 힘을 주고 글씨 하나하나를 새기듯 다시 읽어봤지만 그런다고 한 번 해석한 내용이 바뀌지는 않았다.
베끼려면 끝까지 베껴야 할 것 아니야!
뭐 이런 개똥같은 경우가 다 있어?
절로 콧김이 뿜어져 나왔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악에 받쳤다고 해야 할까?
감당 못할 분노에 나는 끝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안 돼!젠장,아아악!"
[왜요,마스터?]
혹시 몰라 책장을 넘겨봤지만 원본을 참고하라는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문장 뒤로는 잉크 한 방울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책 원본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원본을 참고해?
이 망할 베낀 이 같으니라고!
하필 제일 중요한 순간에 끊을 게 뭐란 말인가!
"자네,왜 그러나?책이 마음에 안 드나?"
문득 책에 빠져 잠시 할멈의 존재를 잊고 있던 나는 할멈에게 책을 들이밀며 물었다.
자기가 파는 물건이니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이 책!이 책의 원본,어디 있어요?할머니는 알죠?"
"으응?그 책?고대어 책이라면 모두 바텡 할아범이 팔고 간게지.나는 읽지도 못하는데 뭐라더라......여하튼 고대어 책이라고 비싸게 팔 수 있다고 사라고 하는 걸 마지못해 사줬어."
"바텡?뭐하는 할아버지죠?책의 출처는 알 수 없어요?"
"출처야 뻔하지.그 할아범이 왕궁도서관 서기였거든.지금이야 그냥 노망난 할아범이지만 정신이 멀쩡할 때는 심심하면 왕궁에 있는 책을 베껴다 서점이나 내게 팔았지.비싼 책들을 곧잘 베껴왔거든."
책을 팔고 간 노인이 왕궁도서관의 서기였다고?
이곳 헤이드리케 왕궁의 왕궁도서관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좌절했다.
하필 왕궁도서관일 건 또 뭐란 말인가!
내가 정체라도 밝히지 않는 이상 들어가볼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이었다.
헤이케의 귀족이나 왕족이 아니면 출입이 안 될 것이 분명했다.
"하필이면 왕궁도서관?그렇다면 원본을 볼 방법은 없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왜 못봐요,마스터?그냥 몰래 들어가서 보면 되잖아요.아니면 제가 들어가서 물어올까요?]
문득 라이의 말에 귀가 솔깃했지만 그뿐이었다.
라이 녀석에게 맡겼다가는 일을 그르칠지도 몰랐고,물어온다 함은 결국 절도 아닌가?
나는 뒷내용을 보기만 해도 만족이라고!
가지고 싶은 환상의 정령.
죽도록 가지고 싶어 정신계 정령!
한 장,아니 한 줄만 더 적혀 있었어도 환상의 정령진에 대한 행방을 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자 절로 억울한 마음이 일어 몸을 떨어야 했다.
바텡인지 뭔지 하는 할아범도 너무 한 것 아닌가?
일부러 여기서 끊은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이보게,젊은 처자.내가 좋은 걸 파는데 한 번 볼텨?"
할멈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휭 하니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마지못해 따라 들어가 보니 할멈이 서랍 깊숙한 곳을 뒤져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두루마리 여러 개를 거내는 것이 보였다.
잠시 두루마리들을 뒤적거리던 할멈은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어 활짝 펴보더니 그 정체모를 종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받으라는 듯 종이를 흔들었는데 먼지가 따라 놀았다.
"푸,푸헷치!할머니,먼지......"
"아,거참.일단 이거나 받으이."
"이게 뭔데요?건물 단면도?아니,지도 같은데?"
두루마리의 정체는 지도였다.
두루마리로 보관해야 했을 만큼 커다란 지도.
산이나 길의 지형을 그린 것이 아니라 뭔가 큼직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나 도시를 그린 것 같았다.
잠깐,마을?
별 생각 없이 지도를 훑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건물들도 보통 건물들이 아니었고 건물들의 이름이나 전체적인 배치가 여느 것이 아니었다.
이건 마을이 아니잖아!맙소사,이건......!
"살텨?90골드 밖에 안 혀.구매자의 신상을 비밀엄수해주는 옵션추가는 10골드.같이 사면 놀라운 가격 99골드99실버99쿠퍼에 주지."
"잠깐요.이,이,이,이거?이런 게 어떻게 여기에?"
"그거?비밀이여.아무튼 살텨,말텨?지금 사면 아까 그 고대어 책은 사은품이여.쿠폰도 특별히 두 장 줄게."
이게 뭐야?
나는 내눈을 의심했다.
이 가게 대체 뭐야?
무슨 잡화점이 왕궁지도를 홈쇼핑 하듯 팔아?
내가 찾던 고서까진 이해해주겠지만 왕궁지도를 매매하다 걸리면 최하 사형이라고!
그리고 그 놀라운 가격은 대체 뭐얏?
"맙소사!이런 건 사는 것도 불법이지만 그 가격은 대체 뭐에요?너무 비싸잖아요!"
"잉?왕궁지도가 고작 100골드도 안 되는데 뭐가 비싸?"
"비싸죠!고작 지도 하나에 100골드?10골덴?말도 안 돼.일반 서민들의 한 달 수입이 1골드인 걸 생각해보세요!"
"에잉!100골드가 아냐.90골드 대라고!정확히 99골드99실버99쿠퍼!"
고작 1쿠퍼 차이잖아?!
10골드가 1골덴.
거의 100골드니까 10골덴!
그리고 1골덴이 내 전생과 비교할 때 천만 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걸 감안하면 이 헤이드리케의 왕궁지도가 이곳에서 1억의 가치를 지닌다는 소리다.
"비,비싸아!"
"그래서 사은품이랑 쿠폰 주잖어.돈 좀 있게 생겨서 빼는겨?그렇게 부담되면 옵션 빼고 지도만 사든가.90골드."
나는 잠시 이 할멈이 말하는 옵션이 뭐였는지를 떠올려야 했다.
뭐라더라......비밀엄수?
그러니까 내가 이걸 사면 내 신상을 비밀에 부쳐주는 가격이란 건가?
헌데 그거야 당연히 공짜로 해줘야 되는 거 아냐?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구매자의 신상은 당연히 보호해줘야지,왜 돈을 받아!
나는 따지길 주저하지 않았다.
위대한 소비자의 권한으로.
"할머니!고객의 신상보호는 기본으로 해줘야죠!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이잉?그래서 지금 따지는 겨?쯔쯧,이래서 요즘 젊은 것들은......좋아,마지막 하나니까 떨이로 신상보호 포함해서 95골드에 주지.대신 쿠폰은 안 줘."
맙소사,이게 떨이면 이 할머니가 팔아먹은 왕궁지도가 전에도 있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그 쿠폰이라는 건 대체 뭐야?
"......그 쿠폰이라는 게 뭔데요?있으면 좋아요?"
"다섯 장 모으면 무료배송이여."
"......겨우?"
"뭘 더 바라?이 늙은이가 직접 배달해주는데.그리고 미젤란까지만 배달해."
10골덴 사는데 쿠폰 두 장이면......5골덴에 쿠폰 한 장이란 말이야?
그리고 기껏 5장 모아도 고작 무료배송?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할머니의 서비스도 그랬다.
그리고 왕궁지도라니.
목숨 걸고 사야 하는 물건이 아닌가?
하지만 안 살수야 없지.
"90골드에 왕궁지도랑 고서 포함,옵션으로 신상보호 확실히 해주시면 살게요.구폰은 필요 없어요."
"으으응.좋아,그럼 대신에 그 누렁이 잡을 때 나도 한 그릇 줄텨?"
"오홋,물론이죠.두 그릇 드릴게요."
[마,마스터.무슨 그런 살 떨리는 말씀을?]
계약 성립.
나는 다소 얼떨결에 헤이드리케의 왕궁지도를 손에 쥐었다.
이 지도의 용도는 과연 무엇일까요?크크큭.
어두운 밤을 틈타 내가 몰래 숨어든 곳은 헤이드리케의 화려한 왕궁.
경비가 제법 삼엄했지만 공중으로 날아드는데 제깟 것들이 무슨 수로 나를 발견하겠는가.
내가 드래곤 레어도 털어봤는데 왕궁쯤이야 우스웠다.
아니,정정하겠따.
드래곤 레어는 턴 것이 아니라 조금 많은 양의 보석을 선물 받았을 뿐이었고 지금 이 왕궁에도 무언가를 훔치러 온 것이 아니라 다만 책을 좀 빌려 볼까 해서 왔을 뿐이다.
[주인님,저 건물에 내리면 되나요?]
[그래.창가에 내려줘,운다인.]
운다인에게 투명화를 걸고,나는 검은 옷을 입고 라이도 검게 만드는 것으로 준비는 끝이었다.
검은 뱀으로 변한 라이는 눈은 물론이고 입속까지 까맣게 변해서 지금 내 손목에 느껴지는 감각만 아니라면 없다고 해도 될 만큼 어둠과 잘 동화되어 있었다.
창가 앞의 좁은 발코니에 내린 나는 운다인을 돌려보내고 잠시 주변 기척을 살폈다.
[아무도 없어요,마스터.건물 안에도요.]
[응,그런 것 같아.라이,이 창문 녹일 수 있어?]
[녹여요?먹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먹어 없애라고.]
족히 내 키도 넘어서는 커다란 창문에 달라붙은 라이가 흡사 거머리라도 되는 듯 유리를 먹어 없앴다.
내가 보기에는 유리가 흐물흐물 녹아 라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라이는 곧 죽어도 먹는 거지 녹이는 건 아니란다.
그게 그거지!
어쨌든 창문이 큰 만큼 유리를 빼낸 자리에는 내가 통과할 정도의 공간이 충분히 나왔고,나는 허리를 숙여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음,보호마법은 없어요,마스터.]
[오케이.]
내 예상대로 창문을 통해 들어선 곳 바로 밑에는 책장이 있었따.
문제는 조금 많이 밑에 있다는 것일까?
어찌어찌 유리를 흡수하고 돌만 남은 창틀을 붙잡고 몸을 밑으로 내렸다.
책장 위를 밟을 셈이었지만 생각보다 책장이 밑에 있는지 발 밑이 허전했다.
발밑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감각이 굉장히 싫었기에 어깨에 힘을 줘 몸을 더 밑으로 내렸다.
이내 어깨 힘으로 내 몸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책장 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이고,어깨야.
괜스레 철봉 매달리기를 한 기분이다.
그냥 뛰어내려도 되겠지만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죽여야 할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마스터,저 마나석 먹어도 돼요?굉장히 고급......]
[안 돼.먹으면 너 죽고 나 살자다.]
[쳇!]
왕궁에 있는 마나석이 고급인 거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왕궁인 만큼 마나석에 보호마법이 걸려 있어서 빼내는 순간 비상벨이 울리지 않을까 싶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금세 사다리가 걸린 책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 내가 올라선 책장의 바로 옆 책장이라 사다리를 타고 손쉽게 바닥에 내려섰다.
생각보다 가뿐하게 도서관에 침입한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어서 책을 찾아서 뒷내용을 읽고 말겠다는 작은 소망이 부풀었다.ㅏ
고서를 모아놓은 책장을 찾아 도서관 안을 헤매기 시작했다.
얼마 헤매지 않아 많은 책장들 사이에서 고서란을 찾아냈다.
내가 있던 드리케 아카데미의 책 배열 방식과 거의 흡사했기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거......일이 너무 잘 풀리니까 불안한 걸.
[라이,망 잘 봐야 해.누가 오면 바로 얘기해줘야 한다.]
[네,마스터!걱정 마세요.]
다시 한차례 주변을 경계한 나는 책장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책의 제목이 위기의 정령사.
그러니까 그 첫 글자가 'ㅇ'로 시작하는 책장으로 다가갔따.
위,위,위......
으음, 왕궁도서관이라 그런지 책의 종류도 많았다.
'위'로 시작하는 책만 해도 한두 권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러 책들의 제목을 훑기를 몇 분,내가 원하는 책이 금세 나와 주지 않자 나는 짜증이 일었다.
게다가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더욱 신경이 곤두섰고 말이다.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텐......아,찾았다!"
[마스터,쉿!]
[그,그래.쉿!]
젠장,애완 뱀한테 주의를 들을 줄이야.
책을 발견한 기쁨에 순간 흥분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책을 조심스레 꺼내들고 그 자리에서 펴들었다.
[보여요?]
[......아니,아도르!]
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누런 종이 위에 흐릿하게 글이 남아 있는 고서를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라이트 대용으로 아돌을 불렀다.
[주인!이게 대체 얼마만인가?얼굴 까먹을 뻔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