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쉬!기뻐?"
"예?예에,기뻐요!정말......고마워요,지니 씨!"
"아악!에쉬 네놈이?"
[끄앙!마스터,얼레리꼴레리~]
에쉬가 와락 나를 껴안았다.
곁에 있던 게일이 경악했고 나도 당황했다.
키가 제법 컸기 때문에 얼결에 에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는데 복부에 주먹을 한 방 먹여줄까 하다가 기분이 좋은 관계로 그냥 넘겨주기로 했다.
"정말 기뻐?"
"물론 기쁘고 말......으앗!죄송해요,지니 씨!"
퍼뜩 정신을 차린 에쉬가 뜨거운 것이라도 만진 듯 화들짝 놀라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는데 그 심심한 얼굴이 잘나 보일 정도로 환한 웃음이었다.
내가 못 간다고 했어면 어쩔 뻔했어?
"나도 널 도울 수 있어서 기뻐,에쉬!그러니까 이제 말 놔."
"응?아,그,그래도......될까요?"
"그리고 '요'자 한 번 붙일 때마다 1실버다."
"에,에엑?"
마음 같아서는 1골드로 하고 싶지만 봐준다.
그리고 내가 안 받을 것 같지?후훗.
에헤야,디야.
나는 지금 저 멀리 도망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다.
입으로는 정체불명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잠은 안 오는데 정신은 흐리멍덩했다.
지금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야.
"지,지니?갑판으로 올라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는게 어때?"
"에헤야,응?그럴까?마침 머리도 아프니까 올라가보지 뭐."
"그래요.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 괜찮아질 거......"
"1실버."
에쉬가 건넨 1실버를 챙겨놓은 나는 에쉬의 옷깃에 매달려 갑판 위로 올라갔다.
벌써 배를 탄 지 사흘이나 지나가는데도 익숙해지기는 커녕 여태까지 토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사실 토할까 봐 먹는 음식의 양을 최소화한 탓도 있고 내가 탄 배가 고급 유람선이라 흔들림이 적은 덕도 있었다.
그래도 멀미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갑판 위로 올라와 적당히 의자 하나를 잡고 앉았다.
시원하다는 바닷바람을 한껏 들이마셔 봤지만 멀미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지니,그럼 여기 있어.나는 가서 채드를 데려올게."
"그래.아,채드는 다른 데 데려다 놔줘.내 옆으로 데려오면 나 토할 거야."
"아,알았어."
멀미로 고생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제일 심했지만 채드도 만만치 않았다.
녀석은 몇 차례 게워내서 나보다는 속이 시원하겠지만.
[마스터도 그냥 토해요.]
"......그럴 순 없어.이 지니님의 품위가 있지......"
아,마스터,마스터.저기 옆으로 이거랑 똑같은 배가 지나가요.]
응?
라이가 앞발로 가리키는 쪽에는 정말 내가 탄 배와 똑같은 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배와는 반대로 페리농으로 향하는 것 같았는데 돌아가는 배인 모양이다.
문득 반대편 배의 난간에서 한창 멀미를 호소하는 두 명의 사내를 발견했다.
"아,저기 난간에 매달린 남자들 좀 봐,라이."
[응?토하는 모양이죠?에잉,흉하네요.마스터,그냥 마스터는 토하지 마세요.]
그게 마음대로 되냐?
나는 저 멀리 반대편 배의 난간에 매달린 두 명의 사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멀어서 머리색만 겨우 보였지만 매우 익숙한 푸른 머리와 금발.
흡사 제라스 오라버니와 동생 데니카를 떠올리게 했다.
"......닮았네."
[누구요?저 토쟁이들?]
"야!토쟁이라고 하지 마.네가 멀미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가족과 닮은 두 명의 남자가 토쟁이 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럼 뭐라 그래요?]
".....구토유발자?"
[그게......뭐임?]
"미안,지금 내 정신이 제 정신이 아니잖니.헛소리 좀 해봤어."
저 멀리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배를 보며 왠지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밀려오는 졸음에 얼른 눈을 감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멀미로 잠을 설쳤기에 잘 수 있을 때 자둬야 했다.
"끼아악!"
"헉!쓰읍......"
적당히 불어오는 미풍에 기분 좋게 단잠을 청하고 있는 내 귀로 소음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자의와는 상관 없이 몸을 일으켜야 했다.
뭐야?뭐야?
순간 배를 탈 때 선원이 들려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엘란의 페리농 항구와 헤이케의 베이키스 항구를 이어주는 토론트 해에는 간혹 크라켄이 출몰한다는 이야기!
설마 크라켄이?
서둘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크라켄의 '키읔'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요,마스터?뭘 찾으세요?]
"쳇,크라켄이 아니잖아."
뭐 굳이 내가 크라켄이 나타나길 바란 건 아니지만 나를 깨운 비명소리가 단신히 난간에 기댄 한 소녀의 것이라는 점에 다소 실망했다.
"흐아앙.내,내 브로치가!"
보아 하니 꼬마 하나가 브로치를 바다에 빠뜨린 모양이다.
고작 그것 때문에 비명을 질러?
목청이 아깝다.
소녀가 난간 밖으로 몸을 과도하게 내밀자 선원 한 명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봐,꼬마야.난간에 기대면 안 돼!"
"하,하지만 저기 바다에 제 브로치가 떨어졌어요!어머니가 주신 건데......"
지저분한 회색 머리를 한 소녀는 에이니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열넷?열다섯?
아마도 평민 같았는데 그렇다 보니 소녀에 대한 선원의 대우는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다.
"아아,미안하지만 바다에 떨어진 이상 포기해야 한단다.어머니께 또 사달라고 하렴."
"아,안돼요.브로치,브로치를 찾아야 해요.찾아주세요.흐이잉."
이 배가 고급 유람선이기는 하지만 손님이 모두 부유한 자들은 아니다.
헤이케로 향하는 배가 이것뿐이기에 비싼 값을 지불하고 배의 말석에라도 타는 평민들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방을 잡았다.
난 침대애호가라서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거라.바다에 빠진 브로치를 무슨 수로 다시 건지겠니?"
"흐,흐에엥.안 돼요!찾아줘요!우리 엄마가,엄마가 주신 거란 말이에요!흐아앙!"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애들 우는 소리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소녀는 빽빽 울어댔다.
야야,그 나이에 그렇게 울어대면 어떡하니?
나는 귀를 막았고 눈을 찡그리며 내 방이 있는 밑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피해서 말이다.
헌데 한 남자가 울고 있는 아이와 선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아이가 울음을 그쳤고 나는 귀에서 손을 떼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 좀 자자!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해요.제 아이가 무슨 실수라도......?"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 같았는데 아이를 달래며 선원에게 용서를 구했다.
주위에 귀족들이 잔뜩 깔렸는데 자칫 그들의 신경을 거슬렸다가는 백번이면 백번 다 평민들 손해이기 때문에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잘못이라기보다는 아이가 난간에 과도하게 기대는 바람에 조금 위험했습니다.듣자 하니 브로치를 바다에 떨어뜨렸다더군요."
"브로치를요?정말이니,릴?"
"후,훌쩍,죄송해요,아버지.흐잉,어머니가 주신 브로치가......어머니한테도 바다를 보여드리려고 했는데,그만 떨어뜨려버렸어요."
브로치 하나에 과하게 놀라는 아버지도 의외였고 못 알아들을 말을 내뱉은 소녀도 의외였다.
브로치?어머니?
어머니에게 바다......아하,그건가?
"이런......괜찮다,괜찮아.진정해라,릴.육지에 닿는 대로 비슷한 것으로 사주마."
"그렇지만 그건 어머니가 주신 거잖아요?어머니의 유품인데......그 안에는 어머니 머리카락이 들어 있단 말이에요!다른 건 싫어요!흐아아앙."
역시......
나는 잠시 우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데리고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소녀가 매달렸던 난간으로 다가갔다.
에이,정말 가뜩이나 속도 안 좋은데.
[왜요,마스터?토하게요?그거 흉하던데......]
"닥쳐!운디네."
주위가 바다니 금방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운디네는 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응?얘가 왜 안나오지?
[부르셨어요,주인님?]
난간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뽀르르 바다에서부터 날아오는 운디네가 보였다.
아하,물이 있으니까 저기서 나오는군.
"잘 왔어,운디네.저쪽 바다에서 물건을 찾아줬으면 하는데,어렵니?"
[아뇨,주인님.그런 일은 쉬워요.무엇을 찾을까요?]
"별거 아니고,브로치라고 하던데......조금 전에 떨어뜨렸지만 배가 움직이고 있으니 저쯤까지 찾아봐줘.찾아서 내게 가져올래?"
[브로치가 뭐에요?]
아차,운디네가 브로치가 뭔지 알 리가 있나?
나는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만 한 장식품이야.내가 했던 귀고리나 목걸이......그런 건 알지,운디네?그런 것과 비슷해."
[네,주인님!알 것 같아요.다녀올게요.]
"다녀오렴."
[쳇,오지 말고 사라져!마스터는 내 거야!크흥.]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운디네에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원래 있던 의자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헌데 그런 내 앞을 가로막은 선원 한 명,아니 선원보다는 조금 높아 보이는 차림새였는데 갑판장쯤 되지 않을까 싶다.
"뭐죠?"
"아,실례합니다.혹시 방금 그것......물의 정령 아닙니까?"
뭐야,운디네를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네?
대부분의 사람은 운디네를 처음 보면 유령이나 요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런데요?"
"잘 됐네요!정령사세요?"
"......물의 하급정령사에요.무슨 일이시죠?"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나 지금 속 안 좋거든?
비켜줄래?
내 나이에 중급정령사라고 하면 정령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은 한눈에 수상하게 여긴다.
보통의 중급정령사는 빨라야 20대 중반이니 말이다.
그 외에도 중급 물의 정령사에 20세가량,금발 여성,딱 최근 떠도는 지니 크로웰의 신상명세가 아닌가?
나는 에쉬 일행에게 나를 하급 물의 정령사라고 해뒀다.
에이니를 구했을 때 중급 물의 정령 운다인을 쓰긴 했지만 에쉬네가 그걸 알아봤을 리도 없었다.
게다가 내 나이 때에는 하급 정도면 충분히 뛰어난 것이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난 비싸요.남의 부탁 들어줄 생각도 없고요.그러니 비켜줄래요?"
"잠시만요!잠시면 됩니다.베이키스의 영주님과 관련된 일이어서 보수도 있을 겁니다."
에이 정말......나는 앞을 가로막는 선원이 매우 귀찮았다.
고로 무시했다.
선원을 지나 원래 있던 의자로 돌아와 앉았지만 선원은 계속 나를 따라왔다.
[라이,쟤 좀 치워라.]
"크르르르,크왕!크아앙!"
"아,아앗!제 얘기 좀......"
안 들려,몰라,귀찮아.
눈을 감은 나는 잠을 청했다.
안 들려,안 들려......
난 지금 멀미로 충분히 고생 중이란 말이야.
[크흥!마스터,그 인간 갔어요.포기했나 봐요.]
[그래?]
살짝 실눈을 떠 흘깃 주위를 둘러본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운디네가 브로치를 찾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자고 있어야겠다.
하암,조금이라도......
[주인님!]
"히끅!"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운디네가 돌아왔다.
빨리도 갔다 왔네.
사람 머리만 한 물방울을 끌고 온 운디네.
그 속에는 운디네가 브로치랍시고 찾아온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여기요,주인님.비슷한 건 다 찾아왔어요.]
비슷한 크기를 가진 십여 개의 물건들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동전도 있었고 조개도 있었다.
심지어 웬 커다란 비늘까지.
"으음,어디 보자.아,이거다."
물건들을 헤집자 아마도 소녀가 떨어뜨린 것이라고 예상되는 브로치가 보였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여자의 옆모습이 그려진 흔한 디자인의 브로치였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의 브로치가 대개 그렇듯 이중으로 열리는 형식이었고 그 안에는 소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의 그림 한 장과 적은 양의 회색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이게 확실하네.
동전과 브로치를 챙긴 내가 다른 잡동사니를 버리려는데 운디네가 그중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을 집어 들더니 내게 내밀었다.
[주인님,이건 버리지 마세요.이거 굉장히 좋은 거에요.]
"그게 뭔데?"
동전만 한 크기의 무지갯빛 물고기 비늘.
크기로 보건대 굉장히 큰 물고기의 것 같았다.
[인어의 비늘이에요.왜 저처럼 생긴 분들 있잖아요.]
"인어의 비늘?이게?"
[네,인어의 비늘은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댔어요.인간들이 가지고 있으면 배 멀미를 막아준대요.인어들이 아무리 강한 태풍 속에도 멀미를 하지 않는 건 이 비늘의 힘이랬어요.]
아,정말?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아까부터 멀미가 가셨다.
이 비늘을 손에 쥐었을 때쯤부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인어가 멀미하면 그건 인어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저 그거 먹어도 돼요,마스터?]
[안 돼,꺼져.]
감히 내 멀미약을 넘보다니.
죽어볼 테냐,라이?
나는 인어가 실재한다는 사실보다는 멀미가 사라진 것이 더욱 놀라웠다.
인어야 직접 보기는 어렵지만 실재한다는 설도 많기는 했다.
"호오,좋은데?그럼 운디네,이거 위프 울렁증에는 효과 없니?"
[그건 물의 일렁임에 대해서만 효능을 발휘한댔으니까......없지 않을까요?]
"그래?그럼 이거 더 찾아올 수 있니?"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이것도 운이 좋아서 가져온 거에요,주인님.본래 인어들은 자신의 비늘을 굉장히 아낀다고 들었거든요.]
쳇,좀 팔아보려고 했더니.
나는 일단 인어의 비늘이라는 것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게일에게 목걸이로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게일은 손재주가 좋아서 곧잘 작은 물건들을 만들어 냈다.
"그래?아무튼 고마워,운디네!잘 쓸게.아,조금 놀다 갈래?"
[네!주인님 곁에 있을래요.]
"그래,그럼."
멀미가 가셨기에 나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고 운디네를 어깨에 얹고 배 구경에 나섰다.
구경하는 김에 배부터 채울 심산으로 식당을 찾아갔는데 방금 전 앙앙거리고 울던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눈 앞에 케이크 한 조각을 놓고도 그것을 먹지 않고 마치 시위하는 모양새로 자신의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아버지,브로치......"
"릴!그만 하거라!안 된다는 것 너도 알잖니?"
"히,히잉.이런 거 필요 없어요.브로치 찾아줘요!"
나는 그 소녀가 또 울기 전에 서둘러 다가갔다.
에잇,나중에 선원 편으로 보내려고 했더니 마주칠 건 뭐람?
"실례합니다.말씀 중이신 브로치가 이거 아닌가요?"
"응?아,그거 제 거에요!우리 엄마 브로치에요!"
"아,아니?그걸 어떻게 가지고 계십니까?"
역시나 뻔한 질문이 되돌아왔고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아아,낚시하는데 걸렸더라고요."
[......마스터 거짓말은 가끔 어색해요.]
쳇,평소엔 괜찮은 거짓말도 한다,뭐!
미리 생각해뒀다면 모를까 갑자기 지어내려니 영 시원치 않은 핑계가 튀어나왔지만 브로치를 받아든 소녀는 마냥 기뻐하느라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고마워요,언니!이거 정말 소중한 거거든요!"
"그래?잘 보관하렴."
"저,정말 감사합니다.이 아이가 워낙 부주의해서......"
또 잊어버리면 나는 책임 안 져.
생 깔 거야.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이 꼬맹이가 내 소매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좀 놔줄래?소매 늘어나.
"고마워요!정말 고마워요.언니,아,제 이름은 데릴사이에요.혹시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데릴사위?"
"데릴사이!"
"아아,그래.하지만 부를 일은 없을 테니 마음 푹 놓고 있으렴."
데릴사윈지 데릴사인지 네 이름 따위 관심 없단다.
나는 별이 들어찬 반짝이는 눈의 소녀를 피해 식당을 나섰다.
뒤에서 연신 소녀와 그 아버지의 감사인사가 들려왔지만 괜스레 뒤가 간지러웠을 뿐이었다.
에잇,배고픈데.
앞으로 10분 정도면 배가 항구에 정박한다는 방송이 들려왔고,마침 점점 가까워지는 베이키스 항구를 구경하던 나는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봣자 옷가지 몇 개뿐이었지만.
정당히 챙긴 짐을 라이에게 메어주고 밖으로 나오니 게일과 에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짐을 챙기는 모양......입죠."
아직도 말을 놓는 것이 어색한지 에쉬가 말을 더듬거렸고 나는 웃어버렸다.
"푸훗,뭐가 그렇게 어색해?게일은 이제 능숙하게 하는데 말이야."
"에쉬 이 녀석,우리한테 말 놓을 때도 한 달이나 걸린 녀석이야.저 무조건 존대하는 버릇 고치기가 쉽지 않을걸."
"미안해.존댓말이 입에 붙어서 말이야."
하긴 엘란의 제2황자는 평소 성의 시녀나 시종들에게도 존대를 쓰는 괴짜로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래도 그 덕에 일반 백성들에게 열성적인 지지를 받으니 괴짜 소리 들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아참,지니 네가 부탁했던 목걸이 다 됐어."
"왠 목걸이야?게일 네가 만든 거야?"
게일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인어의 비늘로 만든 목걸이를 내밀었다.
에쉬가 그 목걸이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목걸이를 얼른 받아 들었다.
내 거야,눈독 들이지 말라고!
짙은 갈색 가죽끈에 구슬 몇 개와 함께 비늘이 잘 꿰여 있어서 예쁘장한 모양이 되었다.
"와아!고마워,게일!마음에 쏙 들어."
"그,그래?그럼 보답으로 뽀,뽀,뽀뽀라도......"
"그야 어렵지 않지.자,눈 감아봐."
"정말?"
냉큼 눈을 감는 게일과 그와는 반대로 점점 커지는 에쉬의 눈.
놀란 에쉬가 나를 말리려는 듯 다가왔다.
"지니 씨!그게 무......"
"쉿!"
[응?]
에쉬를 진정시킨 나는 에쉬로 하여금 라이를 들어 올리게 했다.
에쉬나 라이나 얼떨떨한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데 나는 씨익 웃으며 아직도 눈을 꼬옥 감은 게일의 뺨에 라이의 주둥이를 가져다댔다.
그러자 무언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게일이 휙 얼굴을 옆으로 돌렸고 그 덕에 라이와 정통으로 입을 맞춰야 했다.
제딴에는 나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끄아악!]
"응?웬 털이......흐아아악!아악!"
가만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것을.
시꺼먼 흑심에 벌 받은 거야,게일.
내가 뽀뽀해줄 리가 없잖아?
여하튼 우리 일행은 하나같이 놀리는 재미가 있는 녀석들이다.
"지,지니 씨......"
"응?왜?에쉬도 뽀뽀해줘?내가 '씨'는 빼랬잖아.후훗."
"흐악!"
[끄아앙!]
에쉬에게도 라이를 들이밀자 놀란 라이와 에쉬가 서로를 피해 뒷걸음쳤다.
귀여운 것들,내가 요즘 이 맛에 산다니까.
라이와 닿을 때마다 몸서리치는 에쉬와 게일 덕에 나는 배에서 내리는 동안에도 연신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배에서 내려 베이키스를 밟은 순간 식어버렸다.
무장한 여러 명의 사내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인장이 새겨진 갑옷 차림으로 보건대 치안대가 아닌 영주의 사병 같았다.
설마 정체가 탄로 난 건가?
그렇게 조심했는데?
"......뭐죠?"
"영주님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부디 함꼐 가주시죠."
"왜 나를 찾는 거죠?"
"저희는 모릅니다.다만 영주님의 명에 따를 뿐이니까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데 사병들의 곁으로 며칠 전 배에서 나를 귀찮게 했던 선원이 보였다.
저자가 데려온 건가?
대체 왜?
내가 지니 크로웰이라는 걸 알아보고?
사병들은 순식간에 나를 포위했다.
배에서 내리던 승객들은 물론이고 항구를 걷던 일반인들까지 구경거리가 생긴 듯 주위로 몰려들었다.
"크르......크와왕!왕!왈왈왈!"
"대체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우리 일행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뭡니까,당신들?지니를 데려갈 거면 우리도 데려가요!"
"네놈들,뭐야?"
놀란 라이가 진짜 멍멍이 같이 짖었고 에쉬와 게일 그리고 체드가 나서서 그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상대는 무장한 사병들이었고 여긴 그들의 나라였다.
우린 외국인이었고.
반항해봤자 한계가 있었고 나는 해를 입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순순히 사병들의 손에 잡혔다.
실제로 나를 잡는 사병의 손은 단단하긴 했어도 거칠지는 않았다.
"하아,다들 진정해.나 조용히 따라갈래.라이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이봐요,이 개는 데려가도 되죠?"
[전 늑대에요,마스터!]
"예?아아,그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