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9/71)

"저 안에는 우리 부족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 있어.숲을 닮은 초록빛 보석이지."

"대대로 전해오는 보물?그런 걸 제게 왜 보여주시려는 거죠?"

"그게 말이야,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인데 저 보석 안에는 어떤 정령이 봉인되어 있다나 봐.저 보석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아주 오래전,까마득한 과거에 누군가 저 보석을 어느 부족에게 맡겼대.그런데 저 보석을 얻은 다음 부터 그 부족은 부족 간의 분쟁이나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고 이상하게 그 부족이 가는 곳에는 먹을 것이 넘치고 곡물이 잘 자랐다는 거야."

"......흐음?"

나는 아넬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굴 안의 기운의 정체를 유추해보았다.

묘한 느낌,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페인이나 아돌 때의 선명한 느낌과는 달리 분명치 않은 모호한 기운이었다.

너무도 익숙해서 무엇인지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미묘한 기운.

"그 이유는 그 보석에 봉인된 정령 때문이었대.그 정령이 자연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거야.이내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보석을 두고 많은 부족들이 유례없는 커다란 전쟁을 벌였지.저 보석을 차지하기 위해서.그리고 그 전쟁의 승리자는 우리 부족이었어.그게 벌써 쳔여 년 전 이야기야."

"......자연을 풍요롭게 하는 정령?"

"그래,숲에서 살아가는 우리 부족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이지.문제는 저 보석에 봉인되었다는 정령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야.샤먼들이 용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대.그렇다고 외부에서 마법사를 불러오자니 그건 싫었던 거지.그래서 결국 저 보석은 쳔 년을 저 동굴 속에 방치되어 있는거야. 기름도 비가 오지 않거나 하면 보석을 안치해놓은 동굴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하고는 해.천년이 지났어도 사람들은 저 보석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거지.언젠가 저 보석이 우리부족을 지켜줄 거라고."

흐음,나는 동굴 쪽으로 다가섰다.

분멍 선명해졌지만 그럼에도 무었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기운.

"......언니는 저한테 저 정령서그이 정령을 불러달라고 하고 싶은 거죠?"

"그래,지니는 정령사잖아.너라면 할 수 있지 않니,지니?네가 그 정령을 불러준다면 나의 공도 있으니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에이니를 멸시하지는 못할 거야.부탁해,지니."

"좋아요.일단 들어가 보죠.정령의 정체를 알아보는 게 우선이니까."

몸을 숙여 깃털과 뼛조각이 달린 줄을 걷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생한 기운.

아직 동굴 밖에 서있던 라이가 연신 귀를 쫑긋거리며 정령석의 정체를 파악하나 싶더니 도통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숲의기운이 너무 강해서 모르겠어요,마스터.]

슬쩍 눈을 감고 느껴지는 기운의 색을 찾았다.

짙푸른 녹색,얼핏 그려지는 싱그러운 풀 향!

꿈틀거리는 생명력!

"이건......숲의 기운에 가려진 게 아니라 동화된 거야."

[동화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항상 라이가 먼저 맞추고는 했지만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건 분명......

"그래!기운이 숲에 동화된 걸 보니 이건 아마도 숲의 정령일 거야."

[음,그건 아닐걸요.숲의 정령은 자연계 정령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정령인걸요.인간의 실력으로는 숲의 정령석을 만들진 못합니다,마스터.]

라이의 말에 나도 생각을 바꿨다.

그러고 보니 숲의 정령이라면 자연계 정령중에서는 정령왕급의 정령이기 때문이다.

일단 숲의정령이라면 숲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권능을 발현한다.

흙과 물,불,바람,이 모든 속성을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령인 것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일반 4대 정령들과 달리 자연계정령은 소환하고 다루기가 족히 몇십배는 까다롭다.

그 점이야 운다인과 아돌에게 들어가는 마나의 차이만 봐도 분명했다.

더군다나 숲의 정령이라면 아돌이나 페인처럼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된 정령과는 차원이 다른 정령인 것이다.

"쳇,좋다 말았네."

[하지만 숲의 정령의 휘하인 것 같기는 하네요.]

라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두운 동굴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라이도 슬그머니 동굴 안으로 들어왔는데 어두운 동굴 안에서 라이의 몸은 미약한 황금색으로 빛났다.

썩 환하지는 않지만 주위 지형이 보일 정도는 되었다.

이것 또한 골드 드래곤 하트가 라이에게 안겨준 능력 중 하나였는데 역시 비싼 게 제 값을 하는구나 싶었다..

"지니!괜찮니?나도 들어갈까?"

동굴 안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동굴 밖에서 아넬 언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언니가 동굴 입구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이 보였다.

"아뇨!괜찮아요.그보다 언니는 가서 에이니를 데려와 주세요!"

"에이니를?"

"네!어서요!"

"아,알았어!"

아직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아넬 언니가 따라온다면 새로운 정령과의 계약은 어려운 터였다.

그렇기 때무에 나는 적당히 언니를 보내버렸다.

오는 데 15분 정도 걸렸으니 언니가 갔다 오면 30분 정도 걸리겠지?

그 안에 일을 끝내야 겠다.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어둡고 좁아졌다.

나의 천적 중 하나인 동굴 안이기 때문인지 점차 몸이 움츠러들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동굴공포증인가?

아니지,어둡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니 어둠 공포증?

이것도 아니고......폐쇠 공포증인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전생의 잔재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는 건 확실했다.

터널 안에서 죽은 트라우마는 강렬했으니 말이다.

[마스터?]

"응?"

[정령석이......하나가 아니에요!]

"무슨......?"

라이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서도 나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운에 집중했다.

정령석과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라이의 말을 듣고 난 후라서일까?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두개의 비슷한 기운이 하나로 겹쳐져 있다는 사실을.

얼핏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기운.

둘 다 하나같이 생명력이 넘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쪽은 잘 정제된 차분한 기운이었고 다른 한쪽은 보다 활기가 넘쳤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미묘한 차이였다.

[그쵸?두 가지죠,마스터?]

라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발을 바쁘게 움직여 좁은 동굴 안을 뛰기 시작했다.

라이도 덩달아 뛰어왔다.

타타탁

세 걸음,네 걸음,연달아 뛰자니 정령석의 기운이 더욱 선명하게 피부에 와닿았다.

주변에 가득 들어찬 생명력이 한껏 넘실거렸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이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초록색으로 빛나는 원석을 발견했다.

찾았다!정령......

"엑!"

마침내 정령석을 코 앞에 둔 나는 깜짝 놀랐다.

비슷한 모양과 비슷한 색을 가진 두 개의 정령석과 그 한가운데를 뚫고 나 있는 구멍!

그 구멍을 통과한 두꺼운 장식실.

맙소사!

[......정령석 목걸이네요.]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정령석을 들어 그 구멍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정령석의 중심에 깨알같이 새겨진 동그란 정령진의 일부가 구멍을 뚫으면서 생긴 균열 때문에 일부가 파손된 것을 발견했다.

그나마 이것은 나았다.

다른 정령석은 구멍이 완전히 정령진의 반을 꿰뚫어서 반원만이 남아 있었다.

정령석에서 정령진이 파손되면 이건 정령석이 아니잖아!

"이,이게 뭐야?어떤 무식한 깜둥이가 내 정령석에 이딴 짓을?"

두 개의 정령석을 발견했다는 기쁨은 그 정령석들이 하나의 목걸이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분노로 화했다.

감히 어떤 놈이 내 물건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댄 거야?

이렇게 해놓으면 쓸 수가 없잖아!

잔뜩 화가 난 나는 동굴 벽에 발길질을 하려다가 가까스로 동작을 멈췄다.

오랫동안 라이를 때려봐서 아는데 이런 단단한 돌을 쳐봤자 내 손해지,암.그렇고 말고.

[마,마스터!왜 그러세요?]

"......이것 봐.정령석 한 가운데 구멍이 뚫렸어! 정령진도 파손됐고,그것도 두개 다!"

[고치면 되죠.]

구멍 뚫린 정령석에 분노하던 나는 라이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분노로 떨던 몸을 멈췄다.

"......그런 것도 할 수 있냐?"

[물론이죠!녹슨 자물쇠 고치는 거나 이걸 고치는 거나 비슷한 원리인 걸요.정령석이 기억하고 있는 원래의 형상으로 재구성 시키면 됩니다.]

장하다,우리 라이.

내가 말했었니?

뱀탕보다는 보신탕이 나을 것 같다고.

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라이의 앞으로 목걸이로 변한 두 개의 정령석을 내밀었다.

"자,고쳐."

[넵,아~]

라이가 한껏 입을 벌렸다.

입 안에 넣어달라는 뜻이다.

낡은 목걸이의 줄을 뜯어낸 나는 정령석 두 개를 라이 입 안에 집어 넣었다.

라이가 날름 입을 다물더니 정령석을 꿀꺽 삼켰다.

페인과 계약하기 위해 매일같이 얼음의 정령석의 내구력을 회복시킬 때도 봤던 광경이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물론 그때는 뱀이었다.

당연히 그때보다야 지금이 나았다.

또한 굳이 먹지 않고도 고칠 수야 있겠지만 이 편이 마나도 덜 들고 빨랐다.

그래서 나와 라이는 이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마나가 넘치는 지금에 와서도.

예전 같으면 내 마나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의 라이에게는 내 몸속에 있는 마나의 족히 천 배나 되는 양의 마나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라이가 정령석을 뱉어내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잠시 황금빛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리던 라이가 이내 바닥에 두 개위 정령석을 뱉어냈다.

정령석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자니 우선 중앙에 있던 손톱만한 구멍이 없어졌고 그 외에 크고 작은 상쳐나 흠집도 사라져서 마치 새것 같았다.

하나는 진한 초록빛이었고 하나는 옅은 초록색을 띠고 있는 두 개의 정령석.

나는 손에 들린 두 개의 정령석을 보며 무엇을 먼저 불러볼까,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따라 기특해 보이는 라이에게 두 개의 정령석을 내밀며 물었다.

"우후훗,라이,어느 것이 더 쓸만해 보여?"

[음,글쎄요?어차피 둘 다 계약하실 거죠,마스터?]

나중에 에이니에게도 계약하게 해줄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은 내가 계약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정령석이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엔 더더욱 그랬다.

"응!"

[그럼 둘 다 한 번에 부르세요.]

"아하,그럼 되는구나!"

[푸히힛.마스터도 참~은근히 소심하시다니까요.]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는 라이를 보며 한 대 때려줄까,하다가ㅓ 오늘은 기특한 짓도 했으니 적당히 넘겨줬다.

지금은 두 개의 정령과 계약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넬 언니가 오기 전에 거사를 끝내야 했다.

아넬 언니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내가 미리 계약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닳는다고 해도 다시 내구력을 올려주면 될 일이었다.

정령석 두 개를 땅 위에 내려둔 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돌이나 페인과의 계약으로 짐작하건대 이 녀석들도 자칫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은 괜찬 짓이었는지 두 개의 정령은 마나가 주입되자 마치 지진이라도 만난 듯 미약하게 부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뚝 멈추었다.

두 개의 정령석에서 스르륵 빠져나오는 두 개의 크고 작은 빛덩어리.

진한 초록빛 정령석에서 나온 큰 빛과 옅은 초록빛 정령석에서 나온 작은 빛이 서로 뒤엉키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중 커다란 빛 덩어리는 나뭇잎 같은 날개를 가진 작은 요정으로 화했다.

풀어 내린 진초록색 생머리와 꽃잎 드레스 차림의 요정.

얼핏 바람의 하급정령 실프와 닮았지만 그보다는 선명하고 침착한 느낌이었다.

실프가 꼬마 요정이라면 이 요정은 성인 요정일까?

작고 작은 입을 움직여 요정이 입을 열었다.

[저를......부르신......분인가요?]

"그래,내가 너를 불렀어.너는 무슨 정령이니?"

[저는 식물의 정령.들풀부터 초목,고목,신목까지 살아 숨 쉬는 모든 식물들에게 깃들어 사는 식물의 정령입니다.]

식물의 정령이라.

아넬 언니가 원하던 그것이었다.

잠깐,그렇다면 이쪽은?

나는 식물의 정령과 달리 여전히 빛 덩어리 모습을 하고 있던 정령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정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갔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려는데 라이가 나를 불렀다.

[마스터,이게 왜 이래요?]

내가 찾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령은 라이의 주변을 빙빙 돌며 간혹 라이에게 몸통 박치기 같은 것을 시도 하고 있었다.

저게 뭐하는 짓이래?

"얘,너는 무슨 정령이니?"

내가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았는지 연신 라이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도하던 정령이 내 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기 같은 목소리.

[저는......동물의 정령이에요.]

동물의 정령?그렇게 있어?

나는 잠시 내가알고 있떤 정령들의 정보를 뒤적여보았다.

하지만 동물의 정령이라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정령이었다.

"동물의 정령?너는 무얼 할 수 있지?"

[저는 동물을 조종할 수 있고요,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동물에게 말을 걸 수도 있어요.동물의 몸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이 동물은 그게 안돼요.]

동물의 정령은 마치 아기같이 옹알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쓸 만하겠는데?동물을 조종한다고?

어쨌든 라이에게 몸통 박치기를 하는 이유는 알았다.

라이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라이가 전과 달리 이 두 정령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지 못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너 이번에는 끝까지 정령들의 정체를 몰랐네?왜 그런 거야?"

[동물의 정령이라면 저와는 정반대 속성이에요,마스터.식물의 정령도요.그래서 잘 몰라요.저는 무생물체를 다루는 게 전문인걸요.]

"흐음,그래?그렇구나."

라이라고 정령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 정령들이랑 계약하려면 또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책에도 없던 정령들이라 뭐라고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무의 정령이나 숲의 정령이라면 아는 데 말이다.

식물의 정령이라면 나무의 정령보다는 상위고 숲의 정령보다는 하위인 것 같았다.

[저와 계약하시겠어요?]

[계약하실레요?]

두 정령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물어왔다.

"물론이지.그러기 위해 소환한 걸."

[좋습니다.당신은 제 주인으로 모시기에 한 점 모자람이 없으신 분,당신을 성의를 다해 모시겠습니다.그러니 제게 이름을......]

[좋아요.주인님으로 삼아드릴게요.이름을 지어주세요.]

항상 이 부분이 난관이다.

정령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부분.

그나마 페인 때는 미리 준비를 해둬서 손 쉽게 끝냈지만 이번에는 갑작스레 계약하는 터라 준비해둔 이름도 없었다.

식물의 정령과 동물의 정령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뭐지?

"으끄응."

[마스터!식순이 동순이 어때요?네?식돌이 동돌이는?네?마스터?]

마기한테 5서클 마법식을 가르칠 때도 이만큼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라이의 제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 정령인데 내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란 이름을 모두 짜내는데 문득 동물의 정령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이 떠올랐다.

동물을 조종한다,그리고 동물과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지?

"동물의 정령!네 이름을 정했다."

[무엇인가요?]

"너는 동물의 정령이니까 타잔,아니 치타가 낫겠다!그리고 식물의 정령,네가 타잔."

나는 내가 생각해낸 이름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원래 동물과 의사소통을 한다면 타잔이지만 치타 쪽이 동물이니 바꿔주었다.

게다가 타잔과 치타는 영원한 콤비 아니겠는가?

그러니 둘이 함께 지어줘야지.

암,그렇고말고!

물론 꼭 귀찮아서 이렇게 지은 건 아니다.

[좋습니다.제 이름은 타잔,주인님의 성함은?]

[좋아요.제 이름은 치타,주인님의 이름은?]

"내 이름은 지니 크로웰!"

오오,예쁜 것들!

이름 타박 안 하는 건 너희들이 처음이구나.

나는 한껏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스터?식순이......동순이는?]

"버려!"

라이는 애들을 싫어해

타잔과 치타를 역소환한 나는 동굴 바닥에 덩그러니 남은 두개의 정령석을 집어들었다.

"흐음,이걸 어쩐다?"

이로써 내가 발견한 정령석은 총 네 개다.

아돌의 정령석은 아돌이 소환되면서 제 풀에 부서졌고 페인의 정령석은 보존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일부로 파기했다.

이 세계에 얼음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하니 말이다.

나는 본래 좋은 것은 나누기보다는 나만 취하는 성격이다.

[왜요?파기하실 것 아닌가요,마스터?]

라이의 말대로 파기하면 될 일이지만 이번 정령석들은 내 생명의 은인인 아넬 언니가 연관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 딸인 에이니의 앞날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보니 쉽사리 처치하기가 곤란했다.

짧은 고민,잠시 두개의 정령석을 번갈아 쳐다본 나는 둘 중 동물의 정령석을 라이의 입 안으로 던져 넣었고,라이는 기다렸다는 듯 정령석을 꿀꺽 삼켰다.

"이것만 주자고.언니가 바라는 숲의 풍요는 식물의 정령석으로 충분할 테니까."

[어차피 줘도 못 쓸 물건인데......정령석은 정령사만의 전유물이라고요.차라리 흡수하는 게 어떻습니까,마스터?]

"정령술사가 될 수 있다는 에이니가 있잖아."

아넬 언니를 닮아 서늘하고 아름다운 은발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예쁘다기보다는 귀여운 소녀.

아넬 언니와 켄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정령사도 아니고 정령술사가 될 정도로 뛰어난 친화력을 가진 아이.

미래에 내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는......

아예 지금 싹을 밟아버릴까?

[에이,그 꼬맹이가 정말 정령술사라도 되나요?그리고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정령술사는 정령석을 사용할 수 없어요.그들은 마나가 아닌 정신력을 키우니까요.]

"정령사로 만들면 되지."

가볍게 대답한 나는 몸을 돌렸다.

볼일을 다 봤으니 동굴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라이가 따라오지 않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마,마스터 설마!]

"설마 뭐?"

라이가 따라올 생각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부릅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꼬맹이를 제자로 삼을 생각은......아니시죠?]

"제자?그것도 괜찮겠네.싹을 밟아버릴까 했는데......이왕이면 싹을 잘 길러볼까?"

라이의 물음에 나는 좋은 생각이다 싶어 손뼉까지 쳤다.

하지만 정작 운을 뗀 라이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엑!절대 안 돼요,마스터!저는 결사반대입니다!]

"......왜?"

[전 애들이 싫단 말이에요.]

고작 그딴 이유냐?

정령 주제에 까다롭기는

"나도 애들은 싫어.하지만 뛰어난 정령사를 키워보고 싶기도 한 걸."

[하지만 그 아이는 안 될걸요,마스터.눈치 못 채신 것 같은데 그 아이는 이미 단전에 조금이지만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라이의 말에 나는 흠칫 몸을 굳혔다.

단전에 마나를 모아?

그건 검사의 수련 방법인데......

그러고 보니 이미 쌍검술을 배우고 있다고 했던가?

아니.그보다 라이 녀석,그런 걸 어떻게 아는거야?

"뭐?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야 보이니까요.]

"그런 말 안 했잖아!"

[안 물어보셨잖아요.게다가 보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마스터의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제 능력도 향상디는 것이라구요.마스터가 상급정령과 계약했을 때쯤인가?그때쯤부터 보이더라고요.]

사람의 몸에 쌓인 마나의 양과 위치가 보인다?

마법사의 마나스캔이나 소드마스터쯤 되는 고강한 실력의 검사들이 직접 몸을 만져 마나를 흩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이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이건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의 마나를 숨기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만 손도 대지 않고 상대의 마나량을 알 수 있다니......

나로 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엇다.

"그럼......그 아인 절대 정령사가 될 수 없는 거야?"

[절대까지는 아니지만 힘들 겁니다. 본래 정령사라면 명치에 마나를 모으는 것이 정석이니까요.애초에 사람의 배꼽 아래에 위치한 단전과 배꼽과 가슴 사이의 명치는 그 위치부터가 명백히 다르다고요.]

"끄래?가능하긴 하다는 거지?"

[그,그야 그렇겠지만,이미 단전에 마나 홀이 만들어져 있잖습니까?인간의 몸에 마나 홀이 두 개나 있을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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