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5/71)

그게 얼마 전이냐? 이 만년 묵은 구렁아!

"9년 전의 사소한 대화까지 어떻게 기억해?"

[그,그럼......그동안의 제 마음고생은!]

"헛고생이지 뭐."

나로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라이에게는 뭔가 중대한 대화가 오고갔던 모양이다.

9년전이라고 하면......

기억나는 거야 많지만 라이의 다음 무늬라?

전혀 기억에 없었다.

[커헉!마스터 그러......아니,그럼 제 다음 무늬는 뭔가요?"

"음?그냥 다시 백사 해."

나의 성의 없는 대답에 라이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흐,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꺼이꺼이.]

나는 연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라이를 보며 드디어 녀석에게 치매가 왔나,하고 생각하는데 식사를 마친 마기가 다가왔다.

"무슨 얘기해?라이,왜 울어?"

"응?몰라."

"근데......이게 뭐야,지니?다이아 같은데?"

마기가 바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바닥을 내려다보니 그 자리에는 반짝이는 보석 같은 것이 점점이 바닥에 붙어있었다.

순간 그 보석 조각의 정체를 깨달은 나는 절로 눈가를 씰룩거렸다.

[꺼이꺼이,꺼이~]

이 바보 뱀이 우는 척한답시고 다이아를 가지고 장난을 쳐?

그것도 감히 주인님 마나로 말이지.

"마기,솥 좀 만들어줘.난 쥐 잡아올게."

[끼악!마,마스터!잠깐!마스터!]

라이를 휙 내던진 나는 쥐를 잡으러 가기 위해 운다인을 소환했다.

"덤으로 도롱뇽도 잡아올게."

[쿨럭!쿨럭!마스터어어~]

이참에 오단변신 정령을 만들어봐야겠다.

라이를 위해 쥐와 도롱뇽을 찾아 산을 헤매길 두어 시간 쯤 지났을까?

산의 외곽까지 왔지만 막상 이 드넓은 숲에서 쥐를 찾기랑 쉽지 않았다.

모래밭에서 지렁이 찾기랄까?

노롱뇽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고 나는 슬슬 진이 빠져갔다.

그만 포기하고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 때쯤 비로소 쥐를 발견했다.

그것도 주먹만한 왕쥐!

포기하기 직전에 찾아 헤매던 사냥감과 마주했기에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저 쥐를 보고 까무러칠 라이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우후후,헉!"

뭔가가 눈앞을 휘이익 가르고 쏜살같이 날아가더니 쥐가 있던 자리로 날아갔다.

제법 묵직해보이는 새였는데 그 새는 일순 급강하하더니 순식간에 내 쥐를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가,감히 내 눈앞에서 내 사냥감을 채가다니......

뭐 저런 잡새가 다 있어?

"운다인,언워터 브리딩!"

언브리딩이 여러모로 유용한 마법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역시 공중전으로 무리였다보다.

운다인의 언브리딩은 새의 꼬리깃에도 닿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할쏘냐?

"한번 더!"

"다시 한 번!"

"다시!"

"으아악!"

세 번을 더 언브리딩을 시전했지만 번번이 허탕,애꿎은 허공에 아까운 마나만 버린 꼴이었다.

쥐를 채간 이름 모를 새는 마치 나를 놀리듯 여기저기 나무 위를 옮겨다니며 때때로 깃털 정리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특대 언워트 브리딩!"

취아아앙

여태껏 펼친 것과는 급수가 다른 언브리딩이 펼쳐졌다.

더불어 마나도 일반 언브리딩의 열 배는 족히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엄청난 크기에 결국 여유 부리던 잡새도 잡히고 말았으니,그다지 마나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특대 언브리딩의 크기가 얼마 만하냐면 족히 마기도 잡아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기한테는 안 먹히겠지만.

결국 그것에 잡히고 만 새는 물방울 안에서 한 점 점이 되어 허우적거리나 싶더니 얼마 못가 추욱 늘어졌다.

언브리딩의 크리를 줄여 새만 남기고 눈앞에 가져와 보니 맹금류였다.

"운다인,돌아가자!"

왠지 운이 좋은 것 같다.

아까도 그렇고,한번 잡으면 족족 두마리씩 낚으니 말이다.

원하던 도롱뇽은 못 잡았지만.

괜찮지 뭐!

사실 추워서 더는 못 돌아다니겠다.

레어러 돌아오니 마기는 내 마음에 쏙 들 만큼 커다란 솥단지를 만들어놓았다.

내 허리보다 높은 솥단지는 뭐로 만들었는지 보기보다 가벼웠다.

게다가 솥단지 입구에는 무늬 까지 파여 있어써 솥단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해 보였다.

내가 한창 솥단지를 살피는데 문득 레어 한쪽에 던져놓은 새와 쥐의 시체로 라이가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뭘 하려나 싶어 잠자코 주시하니 라이 녀석이 쥐를 날름 삼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호오,쥐 같은 건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어그르그루가?]

"얼씨구?네놈이 언제부터 입으로 말을 했다고 그러실까,라이?"

라이는 자신이 입에 쥐를 물고 있어 말을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지 놈이 언제부터 입으로 말을 했다고?

나는 라이의 입을 억지로 벌려 쥐를 꺼냈다.

그리고는 라이가 또 건드리지 못하도록 쥐를 솥닩 안으로 던져넣었다.

[마스터,제바알~]

"지니,솥단지는 어디에 쓰려고?그 쥐는 뭐야?"

쥐가 꽤나 싫었는지 온몸을 배배 꼬는 라이를 비실비실 웃으며 바라보는데 마기가 물어왔다.

"후훗,라이의 몸을 만들거야!마기 너도 구경할래?"

"라이의 몸?"

주름 가득한 드워프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는 마기.

후훗,걸려들었구나!

"그래,여기에 여러가지 보석이나 금속을 넣고 끓인 다음에 거기에 저 동물들의 시체를 넣으면 그게 라이의 다음 몸이 될 거야.구경하고 싶지?응?"

"응!나도 구경할래!얼른하자!얼른!"

"그러러면 보석이 쪼~금 필요한데......마기가 줄래?"

"그래!"

나는 마기에게 빌려줄래,라고 묻지 않았다.

분명 줄래,라고 물었다.

그럼에도 마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내 등을 떠밀며 보석 방으로 들어섰다.

문 하나를 지나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보석들의 산,으흐흐.

사실 방이라기보다는 동굴이라는 표현이 맞는 곳으로 엄청난 높이와 넓이를 자랑했다.

그런 방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동굴 벽을 매우며 쌓여있는 보석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여러 종류가 들어갈수록 좋아.신기한 보석 있으면 좀 가져와 봐,마기!"

"응!엄마가 준 거 가져올게!"

"그래,그래.어서 가져와."

보석더미로 등산을 떠나는 마기에게 나는 한껏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보석들을 파헤쳐서 그중에서도 유난히 크고 튼실한 것들을 찾아 솥단지 안에 넣었다.

그새 따라 들어온 라이도 보석찾는 데 동참했다.

하여간 제 몸 하나는 잘 챙기는 녀석이다.

[마스터,이것두요!]

처음 보는 오묘한 색의 보석들을 입 안 가득 물어온 라이.

기특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물어온 보석들을 남김없이 솥단지 안에 털어넣었다.

"그래,많이 물어 와.못 먹어 본 걸로."

[네,마스터.그런데요,음......저기요,보석 많이 물어오면 쥐는 빼주세요.네?마스터어~이잉~]

"......봐서."

라이는 뱀 주제에 새로운 기술인지 나에게 윙크를 선보였다.

윙크하는 뱀으로 서커스단을 차려도 굶어 죽진 않을 것 같았다.

라이의 애교에 내가 그나마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녀석은 신이 나서 보석들 속으로 머리를 박았다.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보석 줍기에 집중했다.

보석이 솥단지에 떨어지는 이 경쾌한 소리!

탱그르르

"퐁당퐁당 돈을 던져라~마기 몰래 금을 던져라~으흐흠."

"지니,여기 신기한 보......으아악!"

언제 거기까지 올라갔는지 보석 산의 정상에서 나타난 마기가 한껏 손을 흔들며 내려오다가 그만 주르륵 보석더미 위로 미끄러졌다.

"앗,마기!"

[보석을 타고 달리는 기분~상쾌도 하다~]

순간 보석더미를 미끄러져오는 마기가 정말 썰매를 타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 상쾌하겠......앗!이게 아닌데.

"라이,너도 미끄러져 볼래?"

[엥?마스터도 부르셨잖아요?]

쾅!

내가 잠시 라이에게 시선을 준 사이 마기는 동굴 벽과 충돌했는지 벽 앞에 팔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꽤나 요란했던 소리와는 달리 마기는 단번에 벌떡 일어나서는 그 와중에도 꼭 안고 있던 보석들을 가지고 내게 뛰어왔다.

"헤헤!지니,여기......이거 좋은 거랬어."

"마기,안 아파?"

"왜 아파?"

[저런 거 별로 안 아파요,마스터.]

그러,너 드래곤이었지 참.

최강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보스 몹.

폴리모프 했다고는 하지만 원래 특출한 그 유전자가 어디 가겠니?

라이야 원래 단단하고 말이야.

"그래,안 아프면 됐고.자,보석 여기에 넣어."

"응!이거 우리 엄마가 엄청 귀한 거랬어.엄마도 두 개밖에 없는 거랬다!"

마기가 개중 황금빛 투명한 보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비싸기야 하겠지만 혹시 나중에 들켜서 해코지당하는 거 아냐?

가령 브레스라든가,브레스라든가,브레스라든가......

나는 순간 밀려드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이거......나한테 주면 엄마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마기?"

"아니,괜찮아!엄마가 나 줬으니까 내 거야!난 필요하면 엄마거 또 달라고 하면 돼."

"호오,그래?마기는 좋은 어머니를 뒀구나.후훗."

"응!지니네 엄마는 안 좋아?"

문득 솥단지 안을 가득 채운 보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마기가 물었다.

엄마?어떤 엄마?

"지니 크로웰의 엄마?"

"응!지니의 엄마!"

"음,좋긴 한데......잘 모르겠네?"

"왜?지니 엄마잖아.인간들은 가족애가 엄청 끈적끈적하다던데?"

끈적끈적이라......

저걸 지적해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틀리진 않았으니 내버려둬도 상관 없으려나?

"보통 그렇긴 한데 난 엄마 아빠를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왜?싫어해?그 인간들이 지니를 막 괴롭혀?"

문득 서로 다른 두 쌍의 부모가 떠올랐다.

전혀 다른 얼굴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나를 보살펴 준 네 명의 엄마 아빠.

"아니,너무 잘해줘서 못 보겠어.내가 그 엄마 아빠한테 사랑 받는다고 느끼면 굉장히 미안해지거든."

전생의 엄마 아빠한테 말이다.

하지만 그걸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딱히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내 머릿속이랄까,마치 누군가가 강하게 '안돼'라고 외치는 것처럼 나는 내가 전생을 기억하고 환생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적당히 돌려 말하는 건 상관 없었지만 진지하게 말할라치면 절로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이유는 정확치 않지만.

아마도 그건 신의 봉인 같은 것이 아닐까?

우연히 죽었으니 새 삶을 줬지만,신의 실수라든가 누군가의 실수로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게 되었고,그 점을 발설하지 못하게 하려는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의 봉인.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은연중에 내 전생이나 환생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피한다는 것이다.

"누구한테?형제한테?나도 형이 있어!그런데 형은 나를 싫어해."

"아니,나도 오빠 한와 동생 둘이 있지만......그들은 뭐랄까,마치 환상 같아.내가 손대거나 다가가면 사라질 것 같아.원래 나는 왜동딸이었거든.그래서 형제나 자매는 낯설어."

"응?무슨 소리야?동생이 생겨서 외동딸이 아니게 됐다는 거야,지니?"

"으음......그런 거지!그보다 자!이거 들어줘. 나 무거워 죽겠어,마기."

웬지 감정적이 될 것 같아서 나는 핑계 김에 솥단지를 마기에게 넘겨 주었다.

마침 보석을 가득 채웠더니 무겁기도 했고 말이다.

마기는 자신의 몸집만한 솥단지를 머리 위로 가뿐히 받쳐 들었다.

"응!내가 들게 지니,나 힘세!"

[흥!마스터,저도 몸만 바뀌면 얼마든지 들 수 있어요!]

또다시 보석을 한 가득 물어온 라이가 솥 안으로 기어들어가며 말했다.

라이는 만 살이나 먹은 녀석이 질투심이 심해서 자기 눈앞에서 다른 녀석이 칭찬받는 꼴을 못 본다.

"마기!라이 들어갔을 때 얼른 끓이자."

"끓여?"

"응!팔팔 끓여서 라이를 녹여버리자."

[잠깐!마스터,그 전에 쥐는 빼주......]

끓이라는 말에 잔뜩 신이 난 마기가 한들음에 보석 방을 나섰고 얼핏 라이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사라졌다.

마기를 돌본 지 어느 덧 20일.

아니 납치된 지 20일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다지 납치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면 정작 나를 납치해온 마기가 어린 탓인지 약간 모자라는데다가(?) 평소 드워프로 폴리모프하기를 즐기고 하는 짓도 드워프와별반 다를 것 없는 괴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명색에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할 줄 아는 마법도 고작 네개.

하지만 그 네 개의 마법 하나하낙 엄청난 것들이라서 아주 바보는 아닌 것 같았다.

"흐음......"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책의 제목은 '안녕!드래곤.'.

드래곤에 대한 깊고 진지한 내용을 담은 심오한 책이다.

고대어로 되어 있었지만 나름 받아온 교육이 있느지라 책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난 20일 동안 나는 마기의 뒤치다꺼리를 하거나 가끔 마기의 보석 방이나 무기창고 등을 기웃거릴 때를 빼고는 모든 시간을 서고에서 보냈다.

마기의 부모가 만들어줬다는 서고에는 하나같이 오래되고 귀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가장 최근 것이 천 년 전의 책이었을 정도로 고서들로 가득했다.

그 중 고대어로 딘 것도 극히 일부였고,대부분은 고대어보다 더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해석이 불가능한 책들이었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고대어로 된 책을 모두 읽었는데 약 200권 정도였다.

속독을 사용하기도 시원찮은 내용을 적당히 흘려보내면서 읽었더니 벌써 이렇게 되었다.

지금 덮은 책이 마지막 읽을거리였는데 이것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더 잉상 읽을 책이 없는 상황.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독후감이라도 써야 할까?

나는 남은 열흘을 뭘 하고 보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망갈까도 생각했지만 이 책에 의하면 드래곤과 나눈 약속은 마족과 영혼을 걸고 나누는 계약과 동급이라고 한다.

증인도 없이 입으로만 나눴다고 해도 드래곤과의 약속을 어기면 그 영혼은 윤회의 바퀴에서 빠져 영원히 사라지게 된단다.

한마디로 환생하지 못하는,영혼의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남치 20일 째인 오늘,나는 주체 못할 따분함에 죽을 것만 같았다.

정작 놀아주기로 했던 마기는 나보다 라이를 더 필요로 했고,나는 마나만 공급하면 될 일이었다.

같이 놀자고 해도 되겠지만 그랬다가 괜히 잡혀서 쇳물이나 끓이고 있지 않으면 다행일 터였다.

그도 아니면 운디네와 함께 달군 검을 식힐 수돗가가 될지도 모른다.

가장 끔찍했던 건 고작 두어 시간 동안 수 백 번에 달하는 망치질을 했던 일이다.

그 땐 내가 미쳤지.

"쳇!아아,심심해!"

들고 있던 책을 휙 내던졌다

그야말로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콰르르르

'안녕!드래곤'은 멀리도 날아가서 내가 적당히 쌓아놓은 책더미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 바람에 와르르 무너지는 책들을 돌아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족히 몇 백권은 될 저 책들을 언제 또 쌓는단 말인가?

정령을 불러도 되겠지만 운디네는 왠지 어린아이를 부려먹는 것 같아서 못하겠고,운다인도 그런 데 쓰기는 아깝다.

아돌이나 페인은 괜히 책이나 안 망가뜨리면 다행이고,엔다이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편히 부려먹을 수 있는 라이는 지금 마낙 빠져나가는 걸 보건데 항창 마기의 손에 잡혀 있는 듯 했다.

결국 어기적어기적 책들을 주워 제잘에 꽂아넣으면 이걸 다하면 또 뭘 하고 시간을 보내야 할까,고민하는데 문뜩 정리하던 책 더미 사이에서 나는 이 따분함을 달래줄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마법이 제일 쉬웠어요!   상(上)

                       ┛

초보 마법교사들을 위한 책이었던가?

자주 쓰이는 마법수식과 그것들을 가르치는 내용의 책,고대어로 되어 있었는데 마법에 꽤나 문외한 나도 이해하기 쉬워서 빠져들었었다.

마침 나의 직업도 선생이다.

그리고 마법에 재능이 있는 건 분명한데 할 줄 아는 마법은 한 손에 꼽는 내돌리기 아까운 학생도 있다.

그 선생이 정령부 선생이고 학생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썩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심심해 죽을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마법이 제일 쉬웠어요!'상,중,하 세권을 찾아 서고를 나섰다.

마기가 있을 곳이야 뻔했고 나는 금세 역시나 망치질 중인 마기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갑온 상의로 보이는 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까깡!

까앙!

"마기!"

[마스터~]

마기 옆에 누워 있던 라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달려왔다.

북슬북슬한 털과 족히 송아지만한 덩치,늑대로 변신 중인 라이였는데 가끔 여우로도 변신하고는 했다.

하마도 그 두마리 빼고는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새도 있었지만 변신만 할 뿐 날진 못했다.

녀석은 겉모습만 베낄 뿐이었기에 비행을 바라는 건 무리였나 보다.

그리고 기껏 뱀의 껍질도 다시 만들어줬는데 뱀으로는 변신하지 않았다.

쥐도 그랬다.

그냥 검은 쥐는 죽어도 싫다고 징징대기에 귀엽게 줄무늬 쥐로 바꿔줬더니 갑자기 까무러치기도 했다.

줄무늬를 세로보다는 가로로 할 걸 그랬나?

"지니,왜?"

쓰다듬어달라고 배를 뒤집는 여석을 적당히 만져준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하는 마기에게 다가갔다.

깡!

까앙!

"마기!너 말이야 더 훌륭한 무기나 갑옷을 만들고 싶지 않니?"

마기의 망치질 소리가 멈췄다.

그러더니 슬쩍 나를 올려다 보았다.

볼을 부풀리며 조금 불만스레 대답했는데 드워프의 얼굴에 그 표정이 도통 어울리지 않아 심기가 불편해질 정도였다.

"당연하지.그러니까 이렇게 연습하고 있잖아."

"으흠,그렇지?그런데 마기 너 보통 훌륭한 무구가 왜 훌륭한 무구인지 알아?"

마기가 한껏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응!보다 날카롭고 아름답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무구!"

"맞았어!그럼 그 특별한 능력은 뭘까?"

"으음,에고 소드 같은 것!무기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거!"

나는 문득 마기가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혼을 불어 넣네 어쩌네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그런 얕은 뜻이 있었구나,마기!

"혼?그럼 마기 너 그 혼을 어떻게 넣는 건 줄은 알아?"

"응!정성을 다해서 두드리면 혼이 들어간댔어!"

"......어디서?"

"책!"

틀린 소리는 아니다만 약간 다르지 않을까?

"음......그것도 좋지만 더 빠르게 혼을 불어 넣는 방법이 뭔 줄 알아?"

"음?음......많이많이 정성을 다해 두드리는 거?"

이런 바보가?

드래곤 망신을 네가 다 시키는구나.

어디 가서 너 드래곤이라고 말하지 마렴.

"아니야!마법을 쓰는 거야. 마법을 쓰면 완성한 무기에 마법을 사용해서 인격을 넣을 수도 있고,무기가 망가져도 알아서 회복되거나,장신구라면 주인에게 크기를 맞추는 기능을 부여 할 수도 있어."

"......엄마도 그런 말했었는데."

"그,그러니까 마법을 배워볼래,마기?"

"아니,싫어."

깡!

까깡!

고개를 내저은 마기는 금세 시선을 돌려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이 녀석이 고집 하나는 세다니까?

"마기......마법 배우자,응?내가 가르쳐줄게!내가 이래뵈도 선생이다?"

"안 배워!"

들고 있던 '마법이 제일 쉬웠어요!"를 내밀며 말했지만 마기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걸.

하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지.후훗.

"마기......나한테 마법을 배우면 라이의 다음 몸은 네가 원하는 걸로 만 넣어줄게."

"......저,정말?"

마기가 조금 솔깃한 듯 나를 돌아보았다.

이번에 라이의 몸체를 새로 만들면서 마기는 제가 먹다만 오우거를 함꼐 섞으려고 했는데 라이가 당장 졸도할 듯 발작하기도 했고,솥도 작아서 못 넣게 했더니 조금 삐져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 방법이 먹히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마기가 솥만 만들면 내가 라이는 대줄게."

"......드워프도 넣어도 돼?"

"그러엄.이왕 넣는 것 트롤도 넣고 다 넣어."

[마,마스터!그런 끔찍한 말씀은......]

라이가 가뜩이나 큰 눈을 부릅 뜨며 솥뚜껑만한 앞발로 만류했지만 나는 깡그리 무시했다.

모처럼 주인님꼐서 제대로 된 드래곤 좀 만들어보겠다는데 응원은 못할 망정 만류를 해?

"다?열마리 넣어도 돼?"

나는 5단 변신정령을 만들기 위해 네마리의 동물을 추가하면서 들었던 마나를 떠올렸다.

거의 모든 마나가 소모됐지 아마?

처음 뱀 하나 했을 때는 마나가 필요 없었는데 새로 추가 시키려니 그건 쉽지 않았다.

나름 마나 양에 자신 있는 나에게도 버거웠던 것이다.

"열마리?조금 많지 않을까?한 다섯......아니다.이렇게 하자.마기.네가 1클레스 마스터하면 한마리넣고,2클래스 마스터 하면 한 마리 더 넣고,그렇게 해서 10클래스를 마스터하면 열마리 들어갈 것 아냐."

[마스터,제 의견은?]

필요 없어.

"응?10클래스 마스터하려면 오래 걸리지 않을까?"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서 내가 죽기 전에 끝내야지."

"응?지니 죽어?언제?"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니?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50년을 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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