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게 큰 이 동굴은 여러 개의 작은 동굴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마치 대장간처럼 꾸며진 곳에서는 드워프 하나가 연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깡!
까앙!
까깡!
작은 동굴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망치질 소리가 연신 넓은 동굴 안까지 퍼졌고,한시도 그치는 법이 없었다.
"후우......"
한참을 그렇게 두드리고 다듬던 드워프가 이내 만들던 검을 들어올려 혹여 흠이 있나 꼼꼼히 살피는데,망치질 소리가 멈추자마자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늘씬한 키와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에 고양이 같은 눈매가 인상적인 인간 여성.
그녀는 아주 따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 했어?"
늘어진 목소리.
바로 모든 소란의 근원이 되었던 지니 크로웰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드워프가 가려 보이지 않던 뱀 하나가 열심히 바닥을 기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꽤나 반가운지 있지도 않은 꼬리를 흔들며 반겼는데 시꺼먼 몸체에 잘려나간 꼬리가 볼썽사나웠다.
구워먹다 만 듯한 모습이랄까?
그것도 꼬리만 한 입 베어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뱀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드워프가 안 되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아무래도 다시 만들어야 될 것 같아.마음에 안들어!"
"에에?또 만들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이건 못써!혼이 안 들어갔잖아!"
탱그르르
여태껏 열심히 담금질한 검을 내던진 드워프가 어울리지 않게 볼을 부풀리며 마치 투정이라도 부리듯 칭얼거렸다.
그런 드워프를 보는 지니의 지금 표정을 읽어보자면 '혼은 개뿔이!'정도 되시겠다.
"그러든가......그럼 밥은?"
"밥?안 먹어!다시 만들거야!"
지니는 드워프를 한심스레 내려다보며 물었다.
"밥 먹고 해야지"하루에 한 마리는 먹어야 된다며?벌서 사흘 째 굶지 않았어?"
"몰라!안 먹어!"
할아버지 얼굴을 한 드워프가 젊은 지니에게 투정부리는 꼴이라니......
썩 볼 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잠자코 있던 지니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에휴,잡아다 주면 먹을 거지?뭐 먹을래?"
"음......그럼,오우거."
"그건 멀리 가야 되는데?트롤이나 오크 먹으면 안돼?"
"그럼,안 먹어."
바로 표정을 굳히며 말하는 드워프는 어느새 다음 재료를 챙겨들고 있었다.
"알았어.다녀올 테니까 레어 잘 보고 있어.알았지?"
"응,얼른 갔다 와.나 배고파."
"다녀올게!또 불 안나게 조심하고!"
신신당부를 한 지니는 운다인을 소환해 그 등에 올라탔다.
운다인은 빠르게 공중을 가르며 동굴 밖으로 향했고 그런 지니의 뒷모습을 뱀 한마리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터,저도 데려가요.]
지니의 행방불명 15일 째.
정잭 행방불명 됐다는 지니 크로웰은 자기 덕분에 사방에 난리가 났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드워프의 탈을 뒤집어쓴 드래곤의 보모가 되어있었다.
업그레이드 라이
어린 드래곤 마기코스의 동굴은 굉장히 크고 넓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백화점 십여 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랄까?
원래는 텔레포트로만 드나들 수 있는 폐쇠된 동굴이었는데 텔레포트는 죽어도 싫다는 내 말에 마기가 마지못해 출구를 뚫어주었다.
통로는 까마득한 절벽 한가운데 나 있어서 사람이 찾아올 수 없는 위치였기에 굳이 마법을 걸어 놓지 않았다.
밑에는 강물이 흐르고 출구가 있는 절벽의 맞은편에는 또 다른 절벽이 마주하는 형상이었다.
내가 언젠가 빠져죽을 뻔했던 그런 절벽이었다.
사실 마기가 결계마법을 쓸 줄 몰라서 그런 것도 있다.
마기는 어린 정도를 넘어서 약간 저능아 드래곤 같았다.
드래곤 특유의 육체적 능력이나 마나를 지배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으면서 그 마나를 조종할 머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마법은 텔레포트와 아공간 소환,폴리모프,메테오.
이것들은 몽땅 마기의 부모가 쥐어 패가며 가르쳤다고 한다.
그마저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아예 달달 외웠다고 하는 걸 보면 바보 같기도 하고,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내가 보름 동안 마기와 지내면서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마기는 무언가를 직접 두드려 만들고 세공하는 그런 일에 광적으로 집착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광기의 집합체랄까?
사실 나는 마기의 그런 모습을 보면 항상 로베닌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검술에 광기를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10년을 부린 하녀의 이름도 까먹는다니......
[주인님,곧 터널을 나갑니다.]
밖과 통하는 출구는 언뜻 터널 같았는데 나는 처음 이 터널을 지날 때 내 본능이 이 터널을 강하게 거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로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막혀오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터널 안에서 죽었던 전생의 잔재일까?
아무리 그래도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는 없어 찾아낸 대책이 마나석이었다.
밝기만 하다면 터널이라도 크게 꺼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거의 한걸음 걸러 하나의 마나석이 하루 종일 터널을 밝히고 있었고 나는 그 덕에 터널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터널을 지나는 중에 마나석이 꺼진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지도 모른다.
휘우우웅
촤아악
터널의 끝이 눈에 띄고 얼핏 새하얗게 보이던 출구 밖으로 맞은 편 절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터널을 빠져나와 절벽 위로 날아올랐다.
사실 타고 나는 것은 물의 정령에게 시킬 일은 아니다.
바람의 정령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운다인은 중급정령이었고 충분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유려한 수영솜씨로 허공을 안정감 있게 날았다.
마나 소모가 조금 심하지만.
[주인님,무얼 찾을까요?]
숲의 상공으로 날아오른 운다인의 물음에 나는 마기의 주문을 떠올렸다.
"오우거."
[네,주인님.]
널따란 숲의 상공을 난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조금 멀리까지 날아왔더니 얼굴 가득 찬바람을 맞는 바람에 코끝이 시려왔다.
바람의 정령이라면 이런 것도 막아낼 텐데.
음?아니지.물의 정령이라고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시도해볼만한 일이었다.
[주인님!찾았어요.저기!]
"쿨쩍,응?어디?"
[저쪽이요.]
돌고래 모습을 한 운다인이 긴 주둥이로 숲의 한쪽을 가리켰다.
이내 숲 속을 어슬렁거리는 오우거 포착!
튼실하게 생긴 게 제법 마기의 요깃거리가 될 것 같았다.
소리 없이 움직여 오우거의 뒤로 날아간 나는 잽싸게 주문을 외웠다.
"운다인,언워터 브리딩!"
오우거가 얼핏 뒤를 돌아보며 도망가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오우거의 주위로 물이 가득 차올랐다.
나뭇잎 몇개가 물결에 말려들어 물방울 안에서 휘돌았다.
그 툭유의 힘자랑에 여념이 없는 오우거를 그대로 물방울 안에 가둬두기란 쓸데없는 마나 소비일 뿐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아돌을 불렀다.
어렸을 때는 무적 같던 언브리딩이 감당할 수 없는 물리력이 가해진다면 터져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도르!"
[뭔가?뭐?응?주인!뭐할까?"
최근 소환에 굶주려 있떤 아돌이 기다렸다는 듯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재촉했다.
"언브리딩에 라이트닝 볼트!"
[4볼트?]
"딩동댕."
아돌이 되물었다.
물이 있으니까 강도를 내려야 하지만 상대가 오우거이니 그대로 공격한다.
왜냐하면 죽여야 하니까.
치지지짓
찌리릭
물방울 안에서 지랄발광을 하던 오우거는 라이트닝 볼트와 물방울이 만나는 순간 힘을 잃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이내 축 늘어졌다.
컴프렉션을 썯 되겠지만 마기 녀석이 물먹은 고기는 맛이 없다고 징징거려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돌을 사용하면 적당한 찜고기가 되니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지난 9년동안 해온 수련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이 빠른 기술의 발현이다.
1초라도 더 빠르게 공격내지는 방어하는 것.
정령마법 중에 가장 발현속도가 빠른 정령은 당연 바람의 정령이다.
주위 있는 모든 물질이 온통 자기 전문이니 그럴 수 밖에.
두 번째는 땅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다.
허나 땅의 정령은 바다 한가운데나 땅이 없는 곳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물의 정령은 능력을 발휘할 대 장소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지만 기술을 쓰기에 앞서 공기 중에서 물을 뽑아내거나 물을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뭐,공격력은 알아주지만 발현속도가 가장 느린 불의 정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물의 정령마법이 조금 느린 감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타개할 방법은 오로지 수련,수련,수련!
그리고 아돌로 하여금 복잡한 물의 정령과의 연합공격을 익히게 하는 것!
1볼트부터 6볼트까지의 강도가 있으며,물의 정령과 연합공격을 할 경우 1볼트씩 내린다.
하지만 상대가 사람이 아닐 때는 적당히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상대가 오우거인 지금 같은 경우는 물이 함께해도 강도를 내리지 않고 그대로 공격해야 했다.
"언브리딩 해제."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들은 아직 강한 전기력을 띠고 있기에 나는 근처로 다가가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다가 전기가 모두 빠지면 옮겨갈 겸,모처럼 나왔으니 조금 쉴 겸해서 나는 오우거와 약간 떨어진 숲에 내렸다.
마침 평평해 보이는 바위가 있었기에 그 위에 적당히 앉아 운다인을 돌려보냈다.
"운다인,돌아가."
[네,주인님.다음에 또......]
운다인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고,아돌은 내가 보기에도 저 녀석 긴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몸 주위로 연신 파지직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넌......조금 놀다 와도 돼."
쉬이익
아돌은 허락이 떨이지기 무섭게 휘익 하고 몸을 날리더니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혼자 쏘다니다가 돌아오거나 그전에 내게 역소환 될 터였다.
나는 아돌을 얼마 만에 불렀는지 슬쩍 헤아려보았다.
채 삼일도 안된 것 같기는 했지만 하루 한 번 소환을 외치는 아돌에게는 그마저도 길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틀 연속 부르면 징징대는 페인 녀석과는 확연히 달랐다.
바스락
"크르르."
"크릉."
생각에 빠져 있는데 문득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꼐 늑대 몇마리가 나타났다.
마기의 레어 근처에는 중소형 몬스터가 많았는데 간혹 늑대무리 같은 것도 있었다.
조금 더 멀리 가면 보이는 사슴이나 토끼같은 자잘한 동물들을 먹이 삼아 사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사나운 몬스터들과 부대끼는 녀석들이다 보니 여타의 늑대들에 비해 조금 더 사납고 난폭하며 영리했다.
물론 덩치도 컸다.
일으켜 세우면 나보다 커 보이는 늑대가 비일비재했다.
"......니들 왜 시비야?"
"크앙!"
그 중 보스로 보이는 녀석이 나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어느새 바위 근처로 모여든 7마리의 늑대들이 사납게 나를 위협했다.
위협이 안 되어 문제지만.
"이 똥개들이?아도올!"
나는 바위에서 벌떡 일어서며 아돌을 불렀다.
늦는다 싶으면 운디네나 페인을 불러도 될 것이고 제때 오면 이왕 소환해서 놀리고 있는 녀석이니 써먹어도 젛을 것이다.
"크르르르!"
"크와아앙!"
"크라앙!"
내가 큰소리를 내며 일어나자 늑대들이 위협을 느꼈는지 연신 으르렁 거렸다.
마침 저 멀리 아돌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빨리도 오는구나.
그나저나 이것들이 가만있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어?
몽땅 구워버릴......
"응?"
나는 그제야 내가 앉아있던 바위 주변으로 굴러다니는 털뭉치와 뼛조각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으러렁거리는 늑대들 중 두마리가 입에 작은 짐승을 물고 있다는 것도 알아보았다.
[주인!불렀나?뭐할까?죄다 튀길까?]
"음......"
보아하니 내가 쉬던 바위는 녀석들의 집회장소 쯤 되는 것 같았다.
내 잘못인가 싶어 물러나려 했지만 늑대 녀석들은 이미 나를 적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크르왕!"
"카르르르!"
연신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하고 훑던 나는 유난히 털에 윤기가 흐르는 녀석을 발견했다.
입에 짐승을 물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평소 털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털이 뽀송뽀송했고 멋진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이의 굽다만 껍질에 비하면 굉장히 복스러워 보였다.
마침 잘 됐네.
"후훗,아돌.돌아가."
[으엑?주인 내가 할......]
말 많은 아돌을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운다인을 소환했다.
마침 오우거도 식었을 테니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아돌로 공격해도 되지만,그랬다가는 저 탐스러운 털이 상할 것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동물은 모피가 생명인데 말이다.
"운다인!"
[네,주인님]
"언워터 브리딩."
운다인은 내가 가리키는 늑대를 정확히 잡아냈다.
주변이 있던 늑대들은 동료 늑대가 물방울에 싸여 꼬르륵거리는 모양을 보더니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나와 보스 늑대의 눈이 마주쳤다.
늑대가 알리는 없지만 나는 싱긋 웃어주었다.
그런 내 눈빛에는 '맞고 갈래 그냥 갈래?'라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고 내 눈빛을 이해했는지 보스 늑대는 금세 꼬리를 말고 달아났다.
"깨앵!"
"깨깽!"
"끼잉,낑!"
보스가 사라지자 남은 녀석들도 금세 보스를 따라 사라졌다.
일이 일단락되자 나는 남은 한 마리의 늑대,언브리딩 안에서 반쯤 죽어 있을 늑대를 돌아보았다.
물방울 안에는 두마리의 동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늑대였고 다른 한 마리는 늑대가 물고 있던 짐승이었다.
그것은 사람 머리만한 다갈색 여우였다.
목 언저리에 핏물이 흐르는 모양이 한 번에 물어 죽인 것 같았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오오,좋아,좋아.운다인,이것들을 오우거와 함께 가져가자."
마기에게 줄 튼실한 오우거 찜과 라이에게 줄 늑대 한마리와 새끼 여우 한 마리.
꽤나 만족스러운 사냥 결과물이었다.
레어로 돌아오 나는 한창 오우거를 뜯어 먹는 마기를 살며시 외면하고 라이와 마주앉았다.
마기가 몬스터를 통째로 뜯어먹는 모습이야 이미 몇 차례 보기는 했지만 영 상쾌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나는 라이에게 한껏 웃어보이며 말했다.
"라이!기쁜 소식이야.너의 다음 몸체를 잡아왔단다."
[오옷!정말이십니까,마스터?그렇지 않아도 뱀에는 진절머리가 나던 차였는데!]
"흐흠......자,기대하시라~"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며 가리고 있던 두 마리의 동물을 내보였다.
늑대와 여우.
나로서는 둘다 마음에 들었기에 라이로 하여금 둘 중 좋은 것으로 고르게 할 셈이었다.
마침 내가 잡아온 동물들이 라이는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뱀으로서는 힘든 방방 뛰기를 보여주었다.
이야,라이가 저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는걸.
[꺄앙~마스터,알라븅.]
휙!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른 나이가 나에게 안아달라는 듯 날아왔지만 나는 슬쩍 피했다.
휘익 콰직
[켁!마,마스터어......]
"미안,내가 옷이 몇 벌 없잖니."
그리고 너랑 박으면 마이 아파.
레어 바닥에 정통으로 박치기한 라이의 머리는 반쯤 바닥에 박혀있었다.
하지만 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미를 쭉 빼낸 라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늑대와 여우의 시체로 다가갔다.
[우왕!행복해요,마스터~그런데 이거 둘 다 제 건가요?]
"응,마음에 들어?뭐로 할래?"
뭐로 하겠냐는 내 물음에 라이가 몸을 굳히더니 말이 없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라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하나 만요?]
"그럼 둘 다 할래?"
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되물었는데 라이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둘 다 할래요,마스터!]
"......둘 다?그러면 섞여서 나오는 거 아냐?"
[아니에요,마스터!일단 제 몸이 되면 제가 원하는 걸로 얼마든지 골라서 변신할 수 있어요.마스터의 마나가 필요하겠지만요.아,섞는 것도 가능해요.]
헛!그런 숨은 기능이?
"뭐?난 몰랐는데?네가 안 가르쳐줬잖아!"
[안 물어보셨잖아요?]
이런 씨앙......
라이의 전매 특허중 하나로서 뭔가 내가 모르는 사항은 '안 물어보셨잖아요?'로 일관하는 녀석,두고보자.
"그럼 뱀은?마나만 있으면 다시 뱀도 될 수 있어?"
[......]
라이는 슬쩍 내 시선을 피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된다는 뜻이리리라......
이 녀석이?
"그러면 늑대랑 여우로 있다가 다시 뱀으로 변신하면 지금처럼 까맣게 탄 모습이야?"
[......넵]
자기는 껍질 필요 없다며 얼른 다음 몸체를 달라고 재촉하더니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그럼 지금 다시 껍질을 만들면?"
[......]
라이 녀석은 이번에는 아예 늑대의 배 밑으로 머리를 박고 들어가버렸다.
된다는 뜻이다.
대답하기 싫은 것은 못 들은 척 하는 녀석이니.
"너 왜 여태까지 껍질 필요 없다고 개겼어?응?나는 어차피 다음 몸이 생기면 없어지는 건 줄 알고 마나도 아깝고 해서 놔 뒀더니!"
나는 억지로 늑대 배 밑에서 라이를 끄집어냈다.
안나오겠다고 발악을 했지만 그래봤자 주인님 손 안이지!
결국 라이를 끄집어낸 나는 라이의 목을 부여잡았다.
녀석은 무슨 생각인지 눈물 같은 것을 줄줄이 뽑아냈다.
똑똑떨이지는 투명한 액체.
녀석에게 눈물이 나올 리는 없었고,지금 내 마나가 빠져나가는 걸 보니 이 녀석 잔머리 쓰고 있었다.
[......마스터,제발......]
"뭐가 제발이야?그러면 진작 새 껍질을 만들어달라고 해야지!왜 숨겨!앙!"
[흐어엉,마스터가......물방울......꺼이꺼이]
저번에도 그렇고 녀석은 물방울 타령에 들어가면 울기 시작한다.
무슨 놈의 물방울?
"......물방울?그게 대체 뭐야?"
[꺼이,꺼......응?마스터,혹시 잊어셨어요?]
"뭔데?"
[얼마 전에 저한테 다음 무늬로......물방울......]
라이의 말에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라이의 다음 무늬?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기억 안 나.언젠데 그게?"
[9년 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