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말리는 엘란의 도시지만 발렌과 근접하고 유명한 항구가 있기에 상업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르말리' 하면 항구가 떠오를 만큼 항구도시로 이름이 드높았다.
곳곳에 볼거리가 넘쳤지만 나는 당장 찾는 것이 있었기에 주변의 넘치는 볼거리에 한눈을 팔 수 없었다.
[조금 더 앞입니다.앞에서 왼쪽이요,마스터.]
"왼쪽?"
라이의 꼬리가 가리키는 쪽을 따라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뒤를 정신없이 쫓아오는 한센과 필로.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기에 때로 한센과 필로가 안 보인다 싶었지만 그들은 곧 다시 나타났다.나는 이내 그들에 대한 걱정을 접어버렸다.
미아가 생긴다면 그건 나지 한센과 필로는 아닐 테니 말이다.
[여기요!스톱!바로 왼쪽입니다,마스터.]
"여기?"
[네,이 안쪽이에요.]
급히 멈춰선 나는 라이가 가리키는 상점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던헬 보석상 르말리점
아무래도 나와 던헬 보석상 사이에는 뭔가 질긴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악연일지도 모르겠지만.
잠시 인상을 구긴 나는 이내 던헬 보석상의 유리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섰다.
호덴의 던헬 보석상과는 차원이 다른 화려함.눈이 부실 정도였다.
여기저기 박힌 야광등이며 끝없이 진열된 갖가지 보석들이라니.
나름대로 화려함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익숙한 건 고급스러움이지 화려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음?꼬마야,여긴......"
벌컥
"아가씨!"
"아가씨!"
나에게 뭔가 제재를 가하려던 점원이 이내 나를 따라 들어온 한센과 필로를 보곤 입을 꾹 다물었다.
산책 나온 귀족 아가씨 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뭐,썩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센과 필로가 도움이 되기는 하는군.
"하하,귀여운 숙녀 분.뭔가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바로 태도를 바꾸는 그의 모습이 어째 토넬 단장을 떠올리게 했다.이 사람이야 서비스업이니까 당연한 거겠지?
점원을 가볍게 무시한 나는 라이에게 물었다.
[라이,찾아봐.정령석은 어디 있지?]
내 소매 사이로 머리를 살짝 내민 라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를 쭈욱 훑었다.이내 라이가 눈을 번쩍 뜨면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진열대를 가리켰다.
[저쪽이요,마스터!]
한걸음에 진열대에 다가선 나는 투명한 유리 밑에 늘어선 수많은 원석들을 훑다가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보석을 발견했다.
투명한 보석과 짙고 연한 푸른색의 보석이 조각조각 엉켜 붙은 모양이었다.
[저거지?푸른 것!]
[맞습니다.하지만 기운이 미약한 것이......저 정령석은 아무래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입니다.]
라이의 말에 나는 급히 손으로 정령석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것!이것 좀 보여주세요!"
"네,이것 말씀이시죠?"
유리장 안으로 손을 넣어 정령석을 꺼내는 점원의 동작이 왜 이리도 느리게만 느껴지는지,점원을 확 밀쳐버리고 직접 꺼내들고 싶은 욕심이 부글거렸다.
이내 정령석이 내 앞에 꺼내졌을때 나는 순간이지만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그 느낌은 정령석을 손에 쥐었을 때 더욱 확실해졌다.은은한 한기가 손이 아닌 머리로 느껴졌다.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건 분명......
[얼음의 정령이네요.]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거든.콱!]
[저,전 그냥......너무하십니다,마스터!]
징징거리는 라이를 무시한 나는 손에 들린 정령석을 요리조리 뒤집어보았다.
자세히 보니 정령석의 한가운데는 비늘 끝으로 살짝 찍은 정도로 작디작은 검은 점들이 보였다.그리고 그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원.이게 정령 소환진이겠지?
얼음이라......완벽해!운디네의 능력에 얼음,그리고 전기!그야말로 나를 위한 완벽한 삼박자가 아닌가?
"우후후훗."
나도 모르게 위험한 웃음을 흘리자 곁에 있던 한센이 놀라 말을 걸었다.
"저......아가씨,이것 사시려고요?"
순간 한센의 음성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사?아참,여긴 보석점이지.젠장,정령석 챙길 생각만 했지 돈은 생각 못했는데......
"얼마 전 호덴 마을에서 갓 입하된 물건이랍니다.호덴은 원석으로 유명하죠!이건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랍니다,손님."
호덴이라면 분명 대표단과 헤어지기 전에 거쳤던 마을이다.전기의 정령석을 구한 곳이기도 했다.
그때 아쉽게도 보석을 챙기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었다.
그렇다면 이 정령석이 바로 그때의 그 정령석이라는 건가?같은 던헬 보석상이니,좀 더 큰 가게로 물건을 옮긴 건가?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확률은 충분했다.
"으흠,멋진 보석이네요.사고 싶긴 한데......이것 얼마죠?"
내 질문에 점원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5골드 30실버입니다,손님."
"5골드......?"
"끄억!"
점원의 말에 나보다 먼저 놀란 것은 한센과 필로였다.젠장,내 돈은 아돌을 소환할 때 다 녹았는데.
나는 슬쩍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어......외상은......?"
"안 됩니다,손님."
"그럼......할부는......?"
"안 됩니다,손님."
"그럼......카드는......?"
"뭔지는 모르지만 안 됩니다,손님.저희 상점은 현금만 받습니다."
젠장,이거는 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어쩐다?
[마스터,제가 돈 만들 수 있는데요.](그래!이것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단 말이닷!)
때마침 들려온 라이의 목소리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는 마나 다 털어서 골덴 하나만 만들어도 만사 해결이 아닌가?계산하고도 돈이 남겠군.
아아,나의 라이.오늘처럼 네가 예뻐 보였던 적은 없는 것 같다.(제가 보기엔 항상 예뻤는데 말이죠 ㅠ.ㅠ)
일단 생각을 마친 나는 점원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아,저쪽 끝입니다,손님."
정말이지 접대교육 하나는 확실하게 받은 점원이라고 생각하며 구석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선 나는 서둘러 라이를 꺼냈다.
"자,라이!골덴이다,골덴!골드가 아니라.만들 수 있겠지?"
[푸헤헤헷!그 정도야 누워서 쇠 먹기죠,마스터!]
"좋아,기다려 봐.심호흡 좀 하자.마나가 거의 다 빠져나갈 테니까."
[마스터 마나의 반만 있어도 충분할 텐데요.]
라이의 말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반?전에 쿠퍼 만들 때도 마나가 왕창 빠져나가는 바람에 죽는 줄 알았는데.
"왜?전에는 구리동전 만들 때도 마나를 다 썼잖아."
[구리나 금이나 강도야 거기서 거기고,그때는 두 개였지만 지금은 한 개잖습니까.골덴 쪽의 세공이 조금 더 복잡하긴 하지만 마스터의 마나 양도 늘어서 반이면 될 것 같은데요.]
"후후후.그래?그럼,어서 해!어서!"
크크큭.그렇단 말이지.그렇다면 하루에 1골덴씩만 찍어도 앞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겠는걸.
아아,정령사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나는 나의 탁월한 선택에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마나가 빠르게 사라졌고 라이는 금세 1골덴을 뱉어냈다.아아,그 순간의 감격이라니!
하지만 나는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는 것보다 서둘러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한 손에는 당당히 1골덴을 치켜들고 말이다.한센과 필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아가씨,그......그렇게 큰돈을 대체 어디서......?"
"흐억!"
내 손에 들린 골덴을 향해 필로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그리고 기함하는 한센.
그런 한센에게 내가 생긋 웃으며 명쾌하게 답했다.
"용돈이에요!"(으음,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골드가 100만원 꼴이고 1골덴이 1000만원 꼴이죠..아마?)
일단 위험하다 싶은 필로의 손을 저지한 나는 서둘러 점원에게 골덴을 건넸다.
그런 나의 곁에서 아까워 죽겠다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한센과 필로.나도 조금 아깝긴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걸어 다니는,아니 기어 다니는 전용 은행이 있다 이거야.푸하하핫!
"대체 용돈이 얼마나 되시기에......"
"음,한 달에 1골드!"
예의 환한 미소를 짓는 나에게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한센이 되물어왔다.
"1골드가......용돈?"
"끄악!한센!우리 한 달 월급이랑 비슷......읍!"
뭔가 말하려는 필로의 입을 다급히 막는 한센.
하지만 이미 들었다네,한센과 필로의 월급은 한 달에 1골드 정도라는 것을.
적은 감이 있긴 하지만 기사들이야 보통 숙식제공이 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다가 나중에 연금도 나오고 갑옷과 칼 등 모든 것이 지급되니까.거기에 제 5기사단은 월급이 제일 적으니까 맞는
말 일지도?
쯧!한센,필로,하루라도 빨리 승진하길 바랄게.
"손님 구입하신 보석과 거스름돈 4골드 70실버입니다.포장해드릴까요?"
"아뇨,그냥 가져갈게요."
"네,감사합니다,손님."
붉은 천주머니 속에 정령석을 넣은 점원이 거스름돈과 함께 주머니를 내밀었고 정령석을 받아든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아,아가씨?"
"여관으로 돌아가요!"
"예?르말리인데 시장구경이라도 하시지 않고요?"
"일단 급한 일이 있으니까 여관으로!"
"그,그렇습니까?"
꽤나 실망한 표정의 한센과 필로.나도 구경하고는 싶지만 일단 이것이 먼저라서 말이야.
나는 서둘러 상점 밖으로 나섰다.
당장 여관으로 뛰어갈 심산이었지만 막상 나오고 나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길을 몰랐기 때문이다.
마침 따라나온 한센에게 나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물었다.
"이쪽?저쪽?"
[저쪽 아닐까요?]
"이쪽입니다,아가씨."
쯧,라이.가만있었으면 반은 갔을 것 아니니.
여관에 들어선 내게 토넬이 다가왔다.예의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띤 채 말이다.
"아이쿠.벌써 오셨습니까?더 노시지 않으시고요.괜찮으시다면 우유라도 한잔 드릴......"
"됐어요!이만 실례!"
시꺼먼 꿍꿍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토넬을 지나친 나는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갔다.한 손에는 정령석을 꼬옥 쥐고 말이다.
내 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 방 안에 들어선 나는 우선 문을 잠갔다.
"라이!이 녀석도 마나를 주입하면 되는 거야?"
나는 아돌을 소환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는 분명 아돌이 스스로 나오려고 했지만 힘이 딸려서 실패,결국 내가 마나를 뿜어냈던 기억이......
[아마도 그럴 겁니다.하지만 조심하세요,마스터.찌리 녀석이 소환됐을 때의 방전처럼 정령석으로 정령을 소환하면 그 정령의 힘이 유형화되기 십상이니까요.]
라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테이블 위에 정령석을 올린 뒤,조심스럽게 마나를 주입했다.
실같이 흘려보낸 마나가 이내 거센 물줄기를 만난 듯 제멋대로 흘러들어갔다.
일순 정령석이 하얗게 빛났다.
"익!"
나는 서둘러 몸을 뒤로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정령석을 중심으로 푸른 얼음기둥이 파사삭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솟아올랐다.
놀라 뒤로 넘어진 나의 눈에 비친 것은 사방으로 사납게 뻗친 얼음기둥 속의 테이블이었다.
젠장,조금만 늦었으면 얼음꼬챙이가 될 뻔했잖아!
순간 과거의 그날이 떠올랐다.
거센 불길 앞에 움직이지 않던 다리!끝내 바닥을 기어야 했던 그 기억.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 깨무는데 얼음 기둥 속에서 뭔가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파스슷 파슥
[나를......깨우는......자,누구......냐?]
그것은 얼음의 정령이었다.
연신 파스슥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바늘바늘 솟아오르는 얼음의 결정.
언뜻 아돌과 비슷한 형상이었지만 아돌이 전기의 집합체라면 이 녀석은 분명한 얼음의 집합체.
주저앉아 있던 나는 발끝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테이블을 감싼 얼음 기둥,아니 저 녀석을 중심으로 지독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나는 지니 크로웰!내가 너를 소환했어!그러니 나와 계약해다오."
나는 오싹한 한기 때문이 아닌 이름 모를 환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녀석과 아돌,그리고 그 중심에 운디네!완벽했다.
이 녀석만 있어준다면 그 누구도 내 앞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거절한다.]
"뭐,뭐라고?어째서?"
[아니,저런 건방진 녀석을 봤나!마스터,저런 녀석은 관두세요.]
당연히 수락하리라 생각했던 상대의 거부에 나는 인상을 구겼다.
생각지도 않았던 대답에 나는 당황했고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마나에 마음이 다급했다.이대로는 곧 역소환되어버릴 터 였다.
[그런 형편없는 실력으로......나의 주인은 결코......될 수 없다.]
"자,잠깐!지금은 마나가 반밖에 없어서 그래!이게 내 본 실력은 아니란 말이야!"
말도 안 돼!거부라니?라이도 그랬고 아돌도,운디네도 모두 나를 훌륭하다고 했단 말이야.뛰어난 정신력과 친화력의 소유자라 했다고.
[그렇다 해도......나의 주인이......되기에는......턱없이 부족......]
파스스슷
마나가 줄어들수록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얼음의 정령은 이내 마나가 전체의 10퍼센트 정도 남자 스스로 나와의 교신을 끊어버렸다.
테이블을 감싸고 있던 얼음 기둥이 바스러지며 얼음 부스러기로 변해버렸다.
"잠깐!기다......이익!"
[마스터!그런 건방진 녀석은 잊어......]
라이가 뭐라고 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다만 계약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뭐야,그 녀석?나,나를 거부하다니......"
[마,마스터!울지 마세요,마스터~.]
"히이잉.형편없다고?턱없이?이......흐윽,흐아아앙."
터져버렸다.
참지 못한 분함과 창피함에 10세 소녀의 감성은 기어코 눈물을 쏟아냈고 나는 그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테이블 위에선 예의 그 푸른 보석이 뻔뻔하고 까칠하게 빛나고 있었다.
부장이라는 직책상 마법부 아이들이 무사히 워프를 마치는 것을 지켜본 브라이트는 가장 마지막에 선생들을 비롯해 다른 부장들과 함께 르말리로 워프했다.
마법반인 그에게 워프진은 흥미로울 법도 했지만 그의 눈에는 워프진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리라.금발의 귀여운 10세 소녀에게 말이다.
르말리에 도착하고 나서 그는 우선 마법부 아이들의 외출을 금지시키고 숙제로 마법 수식을 외우라고 해두었다.
순전히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방 안에 가둬놓기 위함이었다.
크고 작은 반발이 있었지만 그가 누구던가?
드리케 최고의 마법사 가문의 장남이었다.그 능력 또한 제법이어서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희망이 드리케의 마법사인 아이들은 결국 편안한 장래를 위해 브라이트 케니얀의 명령에 굴복했고 눈물을 삼키며 방구석에서 마법수식을 외워야 했다.
그렇게 마법부 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브라이트는 서둘러 지니 크로웰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녀와 함께 항구를 걸으리라는 어림없는 꿈을 꾸며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니 크로웰이 여관에 들어오기 무섭게 기사들을 대동하고 외출했다는 소식에 좌절해야 했다.
"크윽!"
그가 쓴 한숨을 삼키며 울며 겨자 먹기로 마법부 아이들과 함께 수식 외우기에 동참했을 무렵이었다.
그의 충실한 측근인 연금술부의 쟈이맘이 지니 크로웰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소식에 그의 얼굴 가득 화색이 만연했다.물론 그와 반대로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마법부 아이들의 표정은 쥐똥이라도 씹은 듯했다.
이내 그 얼굴들은 브라이트가, '하나라도 덜 외운 녀석은 내 다음번 마법훈련 상대가 될 줄 알아!그러니 죽도록 외우라고!아,그리고 나는 바쁜 일이 생겨서 이만!' 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자 그야
말로
쥐똥을 바가지로 삼킨 것처럼 변했다.
남은 마법부 아이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브라이트는 이번에는 지니 크로웰의 방을 수소문했다.
그의 측근 쟈이맘과 같은 부이자 지니의 친구로 짐작되는 이루제에게 고급 마나용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지니의 방은 1인실인 302호!
브라이트는 쾌재를 부르며 302호로 향했다.
물론 가기 전에 여관 로비에 장식된 화병의 꽃을 한 움큼 뽑아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여관 지배인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그쯤이야 뭐!
"흐흥~."(아웅!귀여워ㅋ.ㅋ)
브라이트는 콧바람과 함께 걸음도 가볍게 302호로 한달음에 뛰어갔다.
그리고 막 3층에 올랐을 때 문득 미묘하게 마나유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4클래스 비기너인 브라이트로서는 그저 이게 뭐지 하는 느낌에 불과했다.뭐,그 정도로는 나이에 비하면 충분히 뛰어난 것이지만.
마법사는 1클래스에서 10클래스까지 존재한다.
또한 그 사이에서도 비기너와 유저,마스터,이렇게 나뉜다.
비기너가 초보라면 유저는 초보를 벗어나 제몫을 하는 정도이며 마스터는 숙련된 마법의 경지를 말한다.
실상 1클래스와 2클래스는 그 자체가 비기너로 취급되기 때문에 딱히 나뉘지 않는다.
1클래스,기초단계 중의 기초!마나를 느끼는 것과 상관없이 일단 체내에 기본적으로 쌓여 있는 마나로도 발현이 가능한 소수의 마법이 존재하며 마법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그야말로 누구나 배
우면 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2클래스,여전히 기초적인 단계.
누구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오를 수 있다.
사용 가능한 마법은 1클래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다만 조금 더 마법적 지식이 뛰어나며 이제야 마법사를 지망한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3클래스,마지막 기초 단계.재능이 없다면 피나는 노력으로 겨우 비기너가 될 수 있다.
이 단계가 되어야 공격마법을 비롯해 실용적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평생 3클래스 마스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마법사도 존재한다.물론,재능이 없는 경우다.
4클래스,기초를 겨우 벗어나 이제 마법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해도 썩 부끄럽지 않을 단계.
약간의 재능과 깨달음 없이는 불가능한 단계다.
재능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확연히 갈린다.어디 가서 지방 영주의 마법사나 용병을 해먹어도 될 정도의 단계로 크게 보자면 비기너급 마법사이다.마나를 느낄 수 있다.
5클래스,본격적으로 전문적인 마법을 배우는 단계.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자만이 다다른다.물론 깨달음은 필수 옵션이다.
이때부터 각자의 적성에 맞는 속성을 선택,그쪽으로 매진한다.
보통 한 가지 속성을 선택한다.두 가지 이상의 속성은 배우기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의 몸으로 모든 속성을 마스터하기란 불가능하다.
혹여 어디서 모든 속성을 마스터한 5클래스 마법사를 보면 그것이 이종족이거나 드래곤일 확률이 99퍼센트이니,일단 피하고 보도록!
6클래스,마의 5클래스를 넘어섰다.광범위 마법이 가능하다.
탁월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을 겸비한 경지이다.
40세 정도에 6클래스에 다다른다면 천재 소리를 들을 수 있다.이쯤 되면 어디서 데려가지 못해 안달이다.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이름을 대면 제법 알아준다.어지간한 왕국에서 자리 하나 꿰찰 수 있다.크게 보자면 유저 급 마법사이다.마나를 조종한다.
7클래스,완벽한 대마법사의 칭호를 얻을 수 있다.웬만한 왕국의 왕족이 부럽지 않다.
자연의 날씨마저 일부 움직일 수 있다.스스로 마법을 개량해 유에서 유로 변화시킬 수 있다.
현재 대륙에는 단 5명의 7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다.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우상이 따로 없다.충분히 마스터 급 마법사로 쳐준다.마나를 변화시키는 경지.
8클래스,마나를 느끼고 조종하며 변화시키는 경지를 벗어나 마나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한다.
의지만으로 마나를 조종할 수 있다.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신격화된 존재.
현재 대륙에 단 한 명의 8클래스 비기너가 존재한다.그는 엘란소속이다.자타가 공인하는 마스터 급 마법사이다.유에서 무로 변화시킨다.
9클래스,마나를 지배하다 못해 이제는 언령마법을 사용한다.
인간은 도달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경지.인간에게는 그야말로 상상 속의 경지이다.무에서 유로 변화시킨다.
10클래스,전설 속에 존재하는 드래곤의 경지.
모든 속성을 초월한다.마나에 대한 지배력조차 초월하여 마나와 순응하며 마나와 한 몸이 된다.
유에서 유로 무에서 무로,유와 무의 경계가 없어진다.신의 지배력마저 풀어낸다.운명에서 벗어난다.
죽음마저 초월하는 무한의 경지.10클래스 마법사 두 명과 10클래스 마법사 한 명이 싸운다면 그 승패는 무승부다.왜냐하면 결국 무한과 무한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브라이트는 지니의 방인 302호에 몸을 잔뜩 밀착시킨 채로 안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그런 그의 귀에 들린 것은......
"뭐야,그 녀석?나,나를!히이잉.형편없다고?턱없어?이......흐윽,흐아아앙."
이것이었다.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들은 걸 보니 수색조를 해도 되겠다.
숨죽이고 지니의 음성을 훔쳐듣던 브라이트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졌다.
잔뜩 당황한 브라이트가 방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흐와와와.아참!그러니까......내 손끝에 모인 강한 마나의 집합체여,나의 적을 향해 쏘아 져라!매직 에로우!"
쉬이익
파칵!
순간 브라이트의 손이 허공을 몇 번 쉭쉭 긋는가 싶더니 그의 손끝에서 환한 빛이 펑하고 터졌다.그와 동시에 302호의 문고리가 맥없이 부서졌다.
브라이트는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밀쳐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본래라면 소리가 나지 않을 문이지만 방금 전의 충격으로 문이 조금 내려앉은 모양이다.
브라이트는 문을 열며 생각했다.방 안에서 홀로 울고 있을 지니를 자신의 품에 보듬어 안아 주겠노라고.
그렇게 되면 지니는 분명 '아아,나이 따위는 한낱 숫자에 불과한 것을!브라이트님,부디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라며 자신의 넓은 가슴에 안기리라 여겼다.
어디까지나,근거 없는 그의 망상에 불과했지만.
"내 품에 안겨주오,지니!"
생각은 길었지만 문을 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열린 문 안의 방 한가운데에는 홀로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는 지니가 있었다.
지니는 돌연 자신의 방에 들어선 브라이트를 돌아보았다.눈물 맺힌 가련한 눈매로(브라이트의 관점에서).
여기까지는 브라이트의 상상과 거의 비슷했다.
브라이트는 이제 곧 자신의 품에 안겨올 지니를 상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두 손을 활짝 벌려 자신의 품을 열었다.
"지니!"
어째 반응이 느린 듯하자 브라이트가 재차 지니를 불렀다. '내 품에 안겨!' 정도의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쯤에서 지니가 사랑을 고백해줘야 하는데,하는 생각에 브라이트는 눈을 찔끔 떴다.
그리고 브라이트의 눈에 비친 것은 결투가 끝나고 지니가 레오에게 보였던 그 싸늘한 눈빛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 작고 아담한 지니의 입술이 천천히,아주 천천히 열렸다.
"라이,물어!"
샤아아앗!
순간 그에게 매직 에로우만큼이나 빠르게 날아드는 허옇고 길쭉한 것!
놀란 브라이트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그리고......
"으아아악!"
흩날리는 꽃잎과 함께 허공을 때리는 애달픈 비명소리여.
아아,지니.그대는 왜 지니인가요?
드미트리를 떠나면서 멀고먼 길과 까마득한 앞날에 한숨을 내쉬었던 게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나는 어느새 엘란의 수도 네이칼에 두 발을 굳건히 디디고,디디고......
"웅냐아~."
분명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있건만 어찌 이다지도 세상은 나를 힘들게 하는지.
눈앞이 일렁이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결국 나는 무거운 머리를 휘청이다가 곁에 있던 이루제에게 기대야 했다.
"지니,괜찮아?르말리 때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데?"
사실이었다.
르말리로 워프했을 때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울렁임과 어지럼증.이거 원,도저히 드리케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한 번 더 탔다간 어떤 꼴이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두 번째 워프에 대한 지독한 후유증으로 온몸을 흐느적거리며 가누지 못하는 내 앞으로 이리토 선생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어디가 아픈 건가요?"
"네헤~,아니효~.그냥 세상이 빙크르르......"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중심을 가누지 못했다.
울렁거리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이라니!난 맹세하겠어!내가 다시 워프를 타면,타면......으음......
"이런,지니 양,제게 기대세요.방까지 부축해드릴게요."
"감샤합니다아~."
아무래도 돌아갈 때 다시 타야 될 것 같으니 그 맹세는 돌아간 후에 해야겠다.
이리토 선생은 나를 환자 취급했고 나 또한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말간 수프 한 접시를 먹은 뒤 가장 조용한 방에 몸을 뉘었다.
이리토 선생은 나에게 멀미에는 잠이 최고라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나는 지독한 어지럼증에 취하고 듣는 이를 기절하게 만드는 이리토 선생의 끔찍한 자장가에 서둘러 잠들어야 했다.
찰싹!
라이가 깨우기 전까진.벌써 새벽인가?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무겁......
찰싹!
헌데 어째 갈수록 라이의 꼬리 맛이 매서워지는 것 같......
찰싹!
"야!"
[끼악!]
연거푸 내 여린 볼살에 자신의 단단한 꼬리를 내려치던 라이는 버럭 화를 내며 일어난 내게 깜짝 놀란 듯 비명을 질렀다.제발 비명소리 좀 바꾸란 말이다!
"그만 때려!그만!"
[마스터가 안 일어나시기에......전 다만 마스터를 깨우려고 열심히......흑흑!]
훌쩍이며 자신의 꼬리로 눈가를 닦는 시늉을 하는 라이.갈수록 이 녀석 사람 같아진단 말이지.조금 있으면 꼬리로 스테이크를 자르겠군!
"호오,열심히?좋아,라이.그럼 거울 만들어 봐."
[넹?]
"못 들은 척하지 말고,거울 만들어 보라고!"
[네,마스터.]
내가 눈에 불을 켜며 말하자 라이는 영 내키지 않는 듯 꾸물거리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동그랗게 말린 라이의 몸은 내 얼굴 만했는데 이내 하얗던 라이의 몸이 은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런 라이를 집어 들어 얼굴을 비쳐보았다.
울퉁불퉁한 거울이었지만 얼굴의 상태를 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지저분한 머리는 그렇다 치더라도,볼의 이것은......
"네 눈에는 내 얼굴에 생긴 빨간 세 개의 수염이 보이지 않니,라이?"
[더 매력적이십니다,마스터.]
"그래?호오,더 매력적일 리가......있냐!"
[끼아아악~.]
오른쪽 뺨에는 붉게 부어오른 얇고 긴 상처 세 개가 질서정연하게 나 있었고 그로 인해 분노한 나는 거울로 변한 라이를 냅다 허공에 던져버렸다.
갈수록 말솜씨만 느는 쇳덩어리 뱀 따위,흥!
내가 콧방귀를 뀌는데 원반이 되어 공중을 날아다니던 라이의 몸이 다시 희뿌옇게 변하는 게 보였다.더불어 마나도 빠져나갔다.
"어쭈,너 누가 마음대로 돌아가랬어?"
데구르르
다시 뱀의 형상으로 변한 라이는 바닥에 떨어지더니 이내 몇 바퀴 굴렀다.
[하지만 마스터,유리는 잘 깨진단 말이에요!그대로 있었다면 껍질을 다시 만들어야 할 테고,그랬다간......그랬다간 다음엔 땡땡이가......후덜덜덜.]
라이가 거울로 변하는 방법은 잠시 몸의 성질을 유리와 은으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그때 드는 마나는 아주 소량이다.
왜냐하면 다이아몬드를 유리로 만드는 것은 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리에서 다시 다이아몬드 뱀으로 돌아오는 데는 마나가 더 필요하다.
마나의 필요 척도는 대부분 강도와 비례하는데 단단한 것을 무르게 만드는 것은 마나 소비가 적었고,무른 것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비교적 많은 마나가 소비되었다.
거울에서 다시 다이아몬드 뱀이 되는 것은 전에 몸을 만들 때 며칠이 걸렸던 것과는 달리 잠시 성분을 변화시킨 것이라서 마나가 적게 든다.
하지만 전처럼 철에서 다이아몬드로 완전히,평생 바꾸는 것은 많은 마나가 소모된다.
한마디로 잠시 눈속임으로 변하는 것은 쉽다는 말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비늘이 다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라이는 잔뜩 몸을 사렸다.
지금도 자신의 비늘이 다칠 뻔했다는 사실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었다.
"땡땡이?거기서 땡땡이가 왜 나와?"
[크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문 라이는 저 멀리 동이 트는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뭐야,이 녀석.감히 마스터가 물으시는데 대답을 안해?
"어쭈,라이.네가 좀 컸다 이거냐?마스터가 물으시는데 대답을 안......"
[헉,허헉!이,이 소름끼치는 발걸음은 분명......이루제다!끼악!]
"자,잠깐,라이!라이이!"
요즘 조금씩 기어오르는 라이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으려 했건만 잠시 귀를 쫑긋,아니 머리를 얇게 떨며 미세한 진동을 느낀 라이는 돌연 꽁지 빠지게 도망가 버렸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광속이라 불러줄 만했다.
최근 라이의 색이 흰색으로 변한 것에 대한 의문에 가득 찬 이루제는 내 방에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라이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 외에도 이루제가 곁에 있을 때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으니 라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거의 잠을 잘 때뿐이었다.이루제냐,라이냐!그것이 문제로다.
내가 심각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보나마나 이루제겠지?아직 잠옷 차림이었지만 나는 상대가 누군지 짐작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방문을 열었다.
"이루제,이런 새벽에 웬일......"
문을 연 나는 가장 먼저 보이는 이루제의 모습에 살풋 웃음을 지었다가 그 뒤에 서 있는 이루제보다 훨씬 키가 큰 두 명의 존재를 인식하고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두 명의 소년.그중 한 명은 최근 들어 나와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썩 달갑지 않은 상대 5위인 브라이트 케니얀이었다.
그는 잠시,아주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한 손을 어색하게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아,안녕,지니?같이 새벽시장을 구경 가지......않을래?"
새벽시장이라......으음,그렇지 않아도 르말리에서 아무것도 구경하지 못하고 온 게 많이 아쉽기도 했고 어제 점심때쯤 네이칼에 도착하고 나서도 내내 잠만 자서 하루를 날린 것이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선배,코피 나요."
"브라이트님!코피가......"
"응?앗!선배,코피 나네요.히히."
10살짜리 잠옷 차림에 코피 흘리는 녀석은 좀......어째 저 녀석은 갈수록 저렇게 망가질까?
"뭐,뭣?코피?누구?나?"
그래,너......
"브라이트님,여기 손수건입니다."
곁에 서 있던 안경을 쓴 청색 머리의 소년이 잘 접힌 손수건을 브라이트에게 건넸다.
반듯한 단발머리가 어울리는 소년이었는데 언뜻 이리토 선생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아......고마워,쟈이맘."
응?쟈이맘이라면 분명 이루제와 한 방을 쓴다던 연금술부 선배라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남자란 말이야?아무리 어린애들이라고 하지만 남자랑 여자가 한 방을 써?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루제가 방실거리며 말했다.
"지니,쟈이맘 선배는 여자야."
"아아,그렇구나.여자......응?"
이루제의 말에 수긍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잠깐,이루제가 내 생각을 어떻게 안 거지?그렇게 표정에 나타나나?아니면 이루제는 혹시 독심술을......
"독심술은 안 익혔어 지니,히히."
"......정말?"
나는 의심스레 말하며 표정을 굳혔다.
연금술에 독심술이란 과목이 있던가?맹한 미아에게는 그런 능력은 없었는데.
"정말이야,나는 미아와 달리 눈치가 좀 빠를 뿐인걸."
이봐,이게 눈치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이루제에 대한 정의를 라이와 동급의 수다쟁이에서 조금 많이 위험한 수다쟁이로 바꾸는데 문득 브라이트가 다시 나를 불렀다.
"저어......지니!함께 새벽시장에 가자.물론 우리 4명이서 말이야.어때?"
네 녀석은 로리 취향 괴짜 마법사,그리고 그 옆의 쟈이맘은 남자 같은 여자.좋아,대략 인물 정리는 끝났군.
적당히 눈앞의 이들에 대한 관념을 수정한 나는 새벽시장에 갈까 말까 고민했다.가고는 싶지만 아침 명상을 해야 하는데......
"가자,지니.네이칼의 새벽시장은 유명하잖아.도시 하나가 전부 볼거리라고!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이란 말이야.가자,응?지니이~."
조금 많이 위험한 수다쟁이가 돌연 내 팔을 잡아당기며 조르자 나는 새벽시장에 갈까,하는 쪽으로 조금 마음이 기울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린다고?바깥 구경을 하고는 싶지만 보나마나 기사들을 잔뜩 대동해야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재미없는데.으음......아하.
"기사들을 물리고 간다면 좋아요."
"기사들을 물려?우리끼지만 가자는 소리야?"
내 제안에 브라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내 제안이 그렇게 놀랍나?
"네,기사들과 가면 인원도 지금의 두 배는 될 텐데......또 기사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잖아요."
"하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 말을 흐리는 브라이트.정말이지 온실속에서 자란 티를 팍팍 내는군.겁은 많아가지고.
"......선배는 겁쟁이군요.그렇다면 됐어요.저는 안 갈......"
"자,잠깐!가,간다고!기사들을 물리면 되지?"
문을 닫으려던 나는 살짝 손에 힘을 뺐다.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새벽시장이라......나름 기대되는군.
기사단장에게 말하고 오겠다며 먼저 내려간 브라이트는 10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그동안 나는 이루제의 지독한 수다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말이야.여기서 은과 구리를 섞고 그걸 끓는 마나용액에 같이 부으면 일명 에크릴 법칙에 의해서......"
똑똑
내가 연금술반 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이루제의 수다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작은 노크소리였다.
나는 반색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그러자 가장 먼저 침울한 브라이트의 얼굴이 보였다.그가 우물쭈물 말했다.
"미안,지니.토넬 단장님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펄쩍뛰셔서 그냥 왔......"
"오늘은 각자 쉬도록 하죠.그럼 실례......"
콰앙!
쳇,이런 쓸모없는 것.
나는 곧바로 문을 닫아버렸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막 몸을 돌리려는데 브라이트가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자,잠깐,지니!내 말 좀 들어봐!응?지,지니!지니!"
어찌나 처절한지 다시 문을 열어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정도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녀석은 필요 없었다.
더군다나 저 처절한 말투는......라이를 떠올리게 했다.아!그러고 보니 이름도 비슷하다.
브라이트,라이.이런!브라이트 속에 라이가......?
쾅쾅
"지니,제발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기사들 데려가면 좋은 점도 많이 있어!응?지니?"
바로 어제 내 방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왔다가 라이에게 호되게 물려서인지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않았지만 연신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불러대는데 조금 민망했다.
누가 보면 내가 아주 못된 년인 줄 알겠네.그리고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닌데 이름을 부르다니,조금 정정해줄 필요가 있겠다.
"그냥 열어줘,지니.오늘은 꼭 새벽시장을 가야 한단 말이야!"
"꼭?이루제 너도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잖아."
평소 흥미 있는 것 외에는 방관하던 이루제의 설득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이럴 애가 아닌데 말이다.
"그건 그렇지만 이미 받기로 했는걸.히히."
"뭘......받기로 해?"
"고급 마나용액 1,000밀리리터!"
"이루제에......너!"
나를 두고 거래를 하다니,이걸 그냥......고작 마나용액 따위에 나를 팔아?고급이라지만 너무하는 것 아니냐,이루제?
내가 눈에 불을 켜는 순간 이루제가 말했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순간 나도 모르게 이루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은 말이야......그것도 그거지만 내가 알아낸 건데 이곳 새벽시장은 그게 있데."
"......그거?"
"그래,그거!그게 뭐냐 하면......"
"뭐,뭐냐 하면?"
뜸을 오래도 들이는 이루제.그런 이루제를 보는 내 눈이 가늘어졌고 귀는 온통 이루제의 음성에 집중되었다.
왠지 뭔가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 나올 것 같단 말이지.
"바로 몬스터 시장."
"몬스터......시장?"
마침내 이루제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몬스터 시장?그게 뭐지?
"그래,몬스터 시장!몬스터를 불법으로 유통하는 암거래 시장이래.그 규모가 꽤 크고 엘란의 마법사들이 그 주축이라 나라에서도 적당히 쉬쉬해준다나 봐!마법사들한테는 유명하대."
"케니얀 선배도 그걸 알아?그래서 가자는 거야?"
"아니,선배는 아직 어린걸.그러니 그런 건 모를 거야."
너도 어려 이루제!드리케 녀석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이 어른인 줄 안다니까.
"하지만 같이 시장에 가기로 했다며?그러면 함께 가야 되는것 아냐?"
"중간에 버려두고 가야지."
"......마나용액은?"
"그건 함께 시장에 나가게 되면 주기로 했는걸.히힛."
못됐구나,이루제!어쩜 하는 생각이 그리도 나와 판박인지,과연 내 친구다웠다.
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발을 옮겨 아직도 시끄럽게 두들겨지는 문을 벌컥 열었다.
"지,지니?"
"크로웰 양?"
의아한 듯한 둘의 모습.나는 문을 나서며 말했다.
"제가 허락을 받아내죠!"
그깟 기사단장,내 밥이지.후훗!기다려라 몬스터 시장,지니 크로웰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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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드디어 이놈의 인기는 파트가 끝났습니다!더 열심히 쓸게요오~
앞으로의 타이핑에 대해 궁금하신 점은 [email protected]에 메일 보내주세요오~
2010년 3월 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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