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너!"
"왜,인마!"
시건방진 레몬 머리 소년의 불음에 나는 그와 동급으로 대답해주었다.
분명 대표단에 없던 얼굴인데......유아부치고는 제법 키카 큰 아이였는데 손에 낀 너클로 보건데 격투부......에?그렇다면 저 녀석이......그 '레오' 려나?
"이,인마?너,너 계집애 주제에 건방지게!"
"사내애 주제에 더듬거리긴......흥!"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저 소년은 십중팔구 레오였다.
내 덕에 대표단에서 제외되었지만 나의 부재로 인해 최근 대표단으로 불려온 녀석.
아마도 녀석은 내가 돌아온 게 달갑지 않은 듯했다.
그나저나 미리네는 어째 풀이 죽어 보였다.나에게 사사건건 시비 걸던 녀석이 왜 저럴까 몰라?
"뭐야?네 녀석 때문에 내가 얼마나 치욕을 당한 줄이나 알아?"
"어머,웬일이니?꼬마 주제에 치욕이라는 단어를 쓰다니......너 애늙은이구나?싫다,싫어."
"뭐,뭐라고?이게......!"
레오는 나에게 강한 적의를 표했고 나는 나에게 적의를 표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굴 만큼 착한 아이가 못 되었다.
내가 비아냥거리자 얼굴을 붉히며 숨을 몰아쉬는 레오.그런 레오에게 나는 한껏 어깨를 으쓱이며 못 말리겠다는 제스처를 취해주었는데,순간......
"우풋!뭐,뭐야?"
뭔가 하얗고 너덜너덜한 것이 내 얼굴에 정통으로 직격했다.(아니?!)
바닥에 툭 떨어진 그것은 흰색의 연습용 장갑이었다.사람 얼굴에 장갑을 던져?들어는 봤지만 기분이 심히 저조해졌다.그보다 이 전개는 설마하니......?
"결투다!"
네가 기사냐!
자기가 기사라도 되는 줄 아는 레오의 같잖은 결투 신청은 내게 말도 안 되는 어린아이 장난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한쪽 발을 들어 레오가 던진 장갑을 살포시 밟아주었다.
그에 따라 레오는 마치 자신의 얼굴이 밟히기라도 한 것처럼 인상을 구겼다.
"흥!미안하지만 나는 애들이랑 놀 생각이 전혀 없거든.다른데 가서 알아봐."
나는 보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한껏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밟고 있던 장갑을 다시금 짓이겨준 뒤 발걸음을 뗐다.
지금 나는 이런 아이들 장난에 장단을 맞춰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배가 매우 고팠던 것이다.
막 곁을 지나려는데 레오가 손으로 내 어깨를 꽈악 잡아챘다.쳇,조그만 녀석이 힘은 제법이군.
툭,쳐낸다고 떨어질 손이 아니었기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고,다시 레오와 눈을 마주쳐야 했다.
"지금 네 녀석이 한 행동은 나에 대한 모독이야!그걸 알고나 하는 행동이냐,지니 크로웰?"
"너는 기사가 아니잖아.게다가 나도 기사가 아니지.고로 네가 하는 행동은 숙녀에 대한 무례일 뿐이야!"
나는 귀찮아서 짜증이 잔뜩 치밀어 올랐다.배가 고프단 말이다,이 꼬맹아!
"너한테는 귀찮은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야!그런 번지르르한 말로 빠져나가려 하지 말란 말이다!"
"그래,귀찮아 죽을 것 같아!그러니까 알면 그만 귀찮게 하란 말이야!"
"이,이게......!"
건틀릿이 착용된 레오의 오른손이 번쩍하고 허공을 가르고 순식간에 눈앞까지 날아왔지만 그 손은 라이에게 막히고 말았다.
레오는 눈 깜짝할 새에 어디선가 튀어나와 자신의 손을 칭칭 휘감고 있는 라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광경에 나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발끈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마스터,어떻게 할까요?]
"글쎄......"
"이,이게 뭐야?"
놀란 레오가 라이를 떼어내려고 악을 썼지만 괴력을 자랑하는 켄타에게도 지지 않던 라이가 저런 꼬맹이의 힘에 떨어질 리가 없었다.
순간,나는 레오를 떼어낼 깔끔하기 그지없는 방법을 떠올렸다.
"레오?레오 맞지?나와 꼭 싸우고 싶다면 라이를 손목에서 떼어보도록 해!설마 내 애완 뱀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나와 싸우겠다고 덤비지는 않겠지?"
[죽여 버릴까요,마스터?]
[아니,절대!상처내지도 말고 아프게 하지도 마.적당히 상대만 해주라고.]
갑자기 사람 얼굴에 주먹을 휘두른 건 꽤나 화가 나는 일이지만 죽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레오에게 힐끔 눈길을 준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잠깐!야!이봐!"
레오가 울상을 지으며 부르든 말든 나는 식당으로 내려갔다.아아,애들은 정말 귀찮아.
오랜만에 보는 고급 식단에 나는 황홀하기만 했다.
라이가 없어 조금 허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식사하는 데는 조용한 것이 더 좋으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잘 익은 송아지 스테이크를 아침식사로 선택한 나는 만족스러운 손길로 음식을 썰었다.
아침으로 스테이크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나는 실로 오랜만에 고급 식단을 맞이했고 그것을 한껏 즐길 자격이 있었다.
먹기 좋게 쓸어진 스테이크를 막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마스터!]
"지니 크로웰!"
쳇,스테이크에서 입과 눈을 떼어 고개를 드니 그 자리에는 기사단장 토넬이 디넬 선생과 함께 레오를 대동한 채 서 있었다.
토넬의 입가에는 왠지 모를 미소가 지어져 있었는데 보는 이에게 불안감을 물신 안겨주는 야비한 미소였다.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토넬?
"무슨 일이시죠,토넬 경?"
"식사 중에 미안하지만 너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어서 말이다."
음흉한 미소로 보건대 뭔가 시꺼먼 꿍꿍이를 꾸미는 것이 분명했다.토넬,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다.
"지금은 식사중이니 나중에 말씀하시죠.항상 느끼는 거지만......토넬 경은 정말 무례하시네요."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당장 얘기를 나누고 싶군!"
한 대 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콧김을 내뿜는 토넬,내가 매우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뭐,피차일반이지만!
"뭐 좋아요.조금이라도 교양 있는 제가 타협해드리죠."
나는 말해보라는 뜻으로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고 디넬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레오에게 들었다.네가 레오와의 결투를 거부했다고?그것도 매우 치욕적인 방법으로?"
"아아,그 이야긴가요?솔직히 저는 제가 왜 레오 군과 결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저는 그와 결투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요.게다가 전 단지 힘없는 숙녀일 뿐인걸요."
그러고 보니 토넬,디넬......이것들 닮았잖아!생김새도 그렇고.게다가 토넬?디넬?이름까지 비슷한걸.이 녀석들 성이 뭐였더라?
[마스터어,이 녀석 팔모가지 그냥 분질러버리면 안 될까요?]
[안돼,그만 풀어주고 이리 와.]
문득 그들의 연관성에 대해 추리하는데 라이가 징징거렸다.
나는 서둘러 라이를 불러들였다.레오의 손목에 매달려 온몸을 배배 꼬던 라이가 잽싸게 내게로 돌아왔다.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레오는 실종됐던 너를 대신해 샤란에서 이곳까지 왔다.너를 대신해 대표단으로서 윈칸 축제에 출전하기 위해!"
"얼추 들었죠.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죠?"
"내 말은......너와 레오가 결투를 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다.대표단 출전 권리를 놓고.레오는 네 녀석 대신 출전할 권리가 있고 나에게는 대표단에 물의를 준 너에게 출전 권리를 빼앗을 권리가 있으
니 말이다.그러니 너희 둘은 결투를 해야 해!그리고 승자에게 출전권을 넘기겠다!"
나는 그제야 토넬이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이해할 수 있었다.결국 결투를 해라 이건가?나한테 망신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나셨군!
내가 지난 15일을 허투로 보낸 게 아니란 사실을 알려줄까도 했지만 토넬이 원하는 대로 놀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원하지 않는 결투는 귀찮을 뿐이었다.
"그냥 레오 군을 출전시키시죠?저는 대표단 자리에 욕심이 없습니다."
"호오,이것 보라지!역시 정령사들은 중요한 순간에 꼬리를 말고 도망간단 말이야?겁나는 모양이지,크로웰 양?"
토넬의 도발에 나의 짜증은 그야말로 극에 달했다.화가 나 내 목소리는 커질 대로 커졌다.
"저는 대회에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지.겁이 난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게다가 저의 출전 여부는 우리 왕국의 왕이신 디켈 3세께서 정하실 일이라 사료됩니다!한낱 기사단장인
당신이 아니라요!"
"하,한낱?"
"그래요,한낱!한마디만 더하죠!더 이상 저를 귀찮게 한다면 전하께 상소를 올리겠어요!당신의 몰지각하고 무례한 행동들과 드리케 학생 간에는 금지된 결투를 종용한 오늘의 일에 대해서요!아하,
한 가지 더 있군요.왕궁에 말이 없다는 이유로 한센 경과 필로 경에게 말을 지급하지 않은 왕실 모독에 해당하는 죄목을 낱낱이 전하겠습니다!"(헐..급작스레 똑똑해진 우리의 쥔공..)
바득바득 소리친 내 덕에 그야말로 식당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한 가지 분명히 알아둬야 할 거다,토넬!나는 네 녀석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이를 부드득 가는 나를 바라보는 토넬의 표정은 멍하기 그지 없었다.
왕이 나를 비교적 신경 쓴다는 사실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데 토넬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그런 내 상소를 왕이 허투루 넘길 리가 없었다.
흥분해서 벌떡 일어나 있던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쓸데없이 소리를 질렀더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잠깐!넌 나와 결투를 해야 해!"
저게 정말?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해진 토넬을 밀치고 앞으로 나선 것은 레오였다.밥 좀 먹자,밥 좀!
"방금 말하지 않았니?나는 싸우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드리케 학생간의 싸움은 금지되어 있어!"
"하지만 넌 나와 약속했잖아.그 뱀이 내 손에서 떨어지면 나와 결투하겠다고!"
아?으아악!이런 젠장.나는 속으로 후회의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라이는 자의로 떨어진 것이니 그 약속과는 상관없어!"
"아니!넌 '뱀이 떨어지면' 이라고만 했어!그러니 넌 나와 겨뤄야 해!"
저놈이 나랑 원수졌나?순전히 나의 실수였기 때문에 라이를 구박할 수도 없었다.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난 싸워야겠어!내 명예를 위해서라도."
나는 느꼈다.내가 된통 잘못 건드렸다는 사실을.
또한 나를 향한 분노로 지글거리는 저 꼬마의 눈을 보건대 반쯤 죽도록 당하기 전에는 물러설 녀석이 아니라는 사실도.
"좋아,결투의 승패는 한쪽이 졌다고 시인하거나 무기를 떨어뜨리면 결정되는 거지?"
"그래,이제야 할 마음이 들었나?자,무기를 들어라,지니 크로웰.결투다!"
"하아,결투?여기서?"
레오의 의욕 넘치는 말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넓다고는 하지만 식당 안.
응?주위를 둘러보는 내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느 샌가 몰려들어 있던 사람들이 테이블이며 의자들을 순식간에 치웠다.
텅 빈 식당 한가운데,남은 건 내 테이블뿐이었지만 그 마저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구석으로 치워졌다.
아무리 불구경 다음이 싸움구경이라지만 정말 너무들 하는군.
"자,이제 걸릴 것은 없어.어서 무기를 들어!"
잠시 주위에 몰려든 이들을 훑어보았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대표단 녀석들이라든가 기사들과 어느 샌가 살아난 토넬과 디넬,그 외에 일반 손님인 듯한 성인 몇몇.
이럴 때 이리토 선생이 있다면 이 결투를 말려줄 텐데,아쉽게도 이리토 선생은 보이지 않았고 지금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이 싸움을 말려줄 것 같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였지만 누구도 말릴 기미도 없었기에 결국 나는 걸음을 옮겨 식당 한편에 준비되어 있던 물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투명한 유리 주전자였는데 그 크기가 제법 컸다.주전자 안에서 물이 찰랑이는 것이 보였다.
아아,이렇게 써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깨끗한 물이군.
식수이니 레오 녀석에겐 잘된 일이었다.내가 투명한 물 주전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데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레오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야?무기를 들란 말이다,지니 크로웰!"
"바보같이 시끄럽게 굴지 말아줄래?나는 정령사야.고로 내 무기는 정령이지.하지만 정령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는 없으니 이 물을 내 무기로 삼겠어."
나는 물 주전자를 레오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에 레오는 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이죽거렸다.내 딴에는 신경써준 것인데 말이다.
"흥!그런 무기는 네 패배를 앞당길 뿐이야.무기를 바꾸든가 미리 항복준비를 해야 할 걸."
"쓸데없는 걱정 고맙구나,격투반의 레오!그럼 감사의 뜻으로 내 진짜 무기를 보여주지.물의 정령이여,내 눈앞에 솟아올라라.운디네!"
챠르르릉
사실 머릿속으로도 충분히 운디네를 소환할 수 있었지만 굳이 소환주문을 외운 것은 순전히 쇼맨십이었다.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들고 있던 주전자의 물이 쑤욱 솟아올랐다.
그 물은 일렁이며 뭉치더니 투명한 인어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건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운디네는 주변에 물이 없을 때는 허공에서,물이 있을 때는 그 물을 매개로 나타났는데 매개가 되는 물이 있을 때 마나의 소모량이 훨씬 적었다.
성인 인어가 아닌 어린 아기 인어라고는 하지만 물로 이루어진 투명한 인어가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은 꽤나 진귀한 광경이었고,역시나 주변에서 크고 작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저게 뭐지?"
"운디네다!"
주변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꽤나 아니꼬웠는지 레오가 기합소리와 함께 대뜸 덤벼들었다.
"이야아아!"
자신의 건틀릿을 번쩍 치켜들고 뛰어오는 레오와 그런 레오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사람들의 시선.
그들은 보나마나 화려하기 그지없는 치고 박는 경기를 기대하겠지만,난 게으른 사람이라서 말이다.
"운디네,언 워터 브리딩!"
순간,내 손에 들린 주전자의 물이 쉬리릭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쏜살같이 날아가 나에게 달려오는 레오의 얼굴을 빼곡히 휘감았다.
레오의 얼굴을 중심으로 동그란 물 덩이가 생겨났다.
"이......"
콰르륵
자신에게 날아오는 물 덩이에 뭔가 외치려던 레오였지만 그말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언 워터 브리딩.
수중에서 호흡하게 해주는 마법인 워터 브리딩의 반대 판이랄까?음,엄밀히 말하면 워터 브리딩의 개량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레오는 자신의 얼굴을 감싼 물 덩어리를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떨어질 물도 아니거니와 숨만 더 찰 뿐이었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여해준 샤벨 용병단에게 다시 한 번 묵념.
"으앗!"
"저,저게 뭐야?"
"우왁!열라 비열해!"
윽!비열하다고 한 녀석,그 얼굴 똑똑히 기억해두겠다!
사실 저 기술이 비열하다면 비열하고 비겁하다면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저 기술은 가장 간단하며 확실한 공격 기술이다.
호흡을 하는 생물인 이상 저 기술을 쉽사리 이겨낼 순 없었다.
언브리딩은 내 최고의 적이었던 샤벨도 이기게 해준 최강의 기술이기도 했다.물론 그때는 한 가지 기술이 더 추가됐었지만.
콰앙!
자신의 얼굴을 감싼 물을 어찌하지 못한 레오가 애꿎은 바닥에 머리를 들이박았다.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저 기술을 극복하려면 시전자인 나를 제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
용병단의 대부분도 몰라 당했던 부분을 레오가 알아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제법인데.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운디네,워터 컴프렉션!"
컴프렉션(compression),압축하다 정도일까?
나는 나를 향해 돌진해오는 레오를 피해낸 후 컴프렉션을 시전했다.
레오가 용병단의 순둥이들보단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양이다.
언브리딩의 가장 빠른 파괴방법이 시전자인 나를 제압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다니 말이다.
다행히도 언브리딩 덕분에 레오의 공격속도는 매우 느렸다.그 탓에 나는 여유 있게 컴프렉션을 외칠 수 있었다.
얼굴 주변에 물이 차 있는 언브리딩 상태에서 컴프렉션은 치명적이다.왜?압축되기 시작한 물이 코와 입,귀로 사정없이 역류해 흘러들어갈 테니까!
레오의 얼굴 주변으로 공기거품이 뿜어졌다.
콰르르륵
"자,항복은 네가 해야 할 것 같지 않니,레오?지금은 입과 코로 물이 들어가지만 압축률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귀로 물이 들어갈 테고,그렇게 되면......보다 빨리 뇌에 물이 들어차겠지?결국 종례에는
'꼬르륵' 이란다.후훗."
"크루룩!"
나는 샤벨과 같은 수를 쓰게 만든 레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고,그랬기에 그에게 충고했다.
"어서 항복하는 게 어때?"
"아르르륵!"
같은 드리케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그런 그가 자랑스러울 정도였기에 그에게 항복을 종용했다.환한 웃음과 함께.
헌데 순간 그런 내 어깨를 누군가 거칠게 잡아끌었다.
"아얏!이게 무슨 짓이죠,토넬 경?당신은 무례하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한 사람이군요!결투 중에 함부로 끼어들다니 말이에요!"
"그만둬!결투는 중지다!저러다 레오가 죽겠어!"
나는 토넬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고 있네!귀찮아 죽겠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결투를 시키려던 게 누구더라?
나는 한껏 짜증스러운 손길로 토넬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아뇨!이건 엄연한 결투예요!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기 전에는 결코 끝나지 않아요.분명 싫다는 저와의 결투를 원한 건 레오니까요."
"그래도 그렇지,이건 너무 일방적이야!어서 그만둬!"
"싫어요!내게 명령하지 말아요!"
"저런 상태에서 어떻게 졌다고 말하냐?"
아아,나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토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레오는 물속에 갇힌 꼴이어서 입을 열어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말이다.하지만 꼭 말로 패배를 시인하라는 법은 없지.
나는 토넬을 밀쳐내고 레오에게 다가갔다.
내가 레오를 죽이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안달이 난 토넬이 내 뒤를 바싹 쫓아왔다.
"레오,항복한다는 뜻으로 그 건틀릿을 벗어!그건 그냥 장갑을 벗듯 아주 쉬운 일일 거야.그렇지?"
"쿠롸그르르롸!"
악에 받친 레오가 뭐라고 소리치자 물방울 안에서는 더욱 짙은 물거품이 뿜어졌다.
그것 보라지?아직 멀쩡하잖아.이 기술을 용병단을 대상으로 무수히 치렀다고.이 상태로 1분 정도는 내버려둬도 안 죽는단 말이야.대체 날 뭘로 보고!
힐끔
안달하는 토넬을 째려보았다.
"레오!건틀릿을 벗어라!어서!"
아아 무슨 놈의 결투가 이렇게 엉망인지,어느새 끼어든 디넬이 레오에게 건틀릿을 벗으라고 외쳤다.
조금 더 버틸 것 같던 레오는 끝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건틀릿을 벗었다.
"운디네,모든 마법을 해지한다.물은 다시 주전자에 채워줘."
[네,주인님.]
물은 빠른 속도로 다시 주전자 속으로 회수되었고 자신을 억압하던 물이 사라지자마자 레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오의 식도까지 들어찼던 물은 몽땅 회수되었으니 회복은 빠를 터였다.주전자 안에 있던 물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다시 회수 됐으니 말이다.
그 증거로 레오의 머리에는 물방울 하나 묻지 않았다.물에 잠겼던 머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 아닌가?
나는 새삼 운디네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했다.또한 레오에 대해서도.그래도 대표단이라 이건가?
샤벨보다는 한참 못하지만 애치고는 제법 이었다.
"콜록!커륵,커헉,허억!"
연신 헛기침을 뱉는 레오와 그런 레오를 부축하는 디넬과 토넬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봐,이봐,나도 싸웠거든?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이젠 날 귀찮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익!두고 보자,지니 크로......"
호되게 당했음에도 레오는 오히려 나를 향해 전의를 불태웠다.이런 안 되지,안 돼!
"레오,한마디만 할게.한 번만 더 날 성가시게 하면......그땐 온몸의 피가 역류해서 몸의 온갖 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게 어떤 느낌인지,그렇게 되면 죽는지 사는지,몸소 실감하게 해줄께.알았지?"
나는 복수심을 불태우는 레오의 눈앞에 다시 한 번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어주었다.
방금 전 그의 머리를 감싼 것보다 열 배는 큰,레오의 몸을 몽땅 휘감고도 남을 정도로 큰 물방울을 일말의 기척도 없이 순식간에 만들어낸 것이다.
이건 경고였다.
너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으니 자중하라는.
물론 죽인다는 협박은 순전히 뻥이었지만 나를 좀 내버려뒀으면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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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움..1권에 이어 2권을 타이핑 하게 된 klogesu30 입니다!
열심히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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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인기는
투명한 구슬 안에 비친 것은 드리케 아카데미의 학장인 라일 후작이었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느긋한 모양새로 말을 이었다.
[흐음,지니 크로웰 양의 사망 소식에 전하께서도 매우 침통해하셨네.나 또한 그러했고 말일세.하지만 오보였다니 천만다행이군.그 레오라는 아이는 예비생 정도로 처리하도록 하고.]
"예,알겠습니다.제 불찰로 전하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이지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단 이번 일은 내가 전하께 따로 말씀드리지.자네는 그쪽 대표단 인솔에 온힘을 기울여주게.자네의 오보에 대한 처벌은......될 수 있는 한 가볍게 처리해보지.]
"가,감사합니다!"
토넬 단장이 통신 구슬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수고하게나.아참!지니 크로웰 양에 대한 사항은 다녀와서 빠짐없이 보고하도록.전하께서 유심히 보고 게신다네.]
"예,옛!라일 하르트 후작님!명심하겠습니다."
구슬 안에 비치던 후작의 모습이 이내 핏 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토넬은 그제야 머리를 들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는 새삼 학장이며 국왕,누구 할 것 없이 지니 크로웰에 대해 지극한 호감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장과 국왕의 그런 반응을 도통 납득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오늘 아침의 그 사건으로 그는 지니 크로웰이 결코 평범한 10세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녀가 10년,아니 5년만 지나도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부터라도 그녀와 친분을 쌓아둬야 하지 않을까,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토넬이었다.
"지니,지니!우리 오늘 워프한데.워프!알고 있어?"
이루제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응?아아,그래?"
워프라......분명 기초마법시간에 배웠었는데?텔레포트가 장소에 상관없이 가능하다면 워프는 정해진 장소에서만 되는 것이던가?아아,기억났다.
텔레포트는 그때그때 좌표를 설정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지만 마나와 정신력 소모가 극심해 소수만 이동 가능하고,워프는 미리 그려진 워프마법진에서 워프마법진으로 이동이 되
는 대신 마나와 정신력 소모가 비교적 적으며 다수의 이동이 가능하다,였나?
일단 종합반인 관계로 나는 마법과 연금술 외에도 경제학,경영학,행정학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자의가 아닌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지만.
"그래!나 워프마법진을 보는 건 처음이야.마법진 수업은 마법반 아이들이나 하는 거잖아."
"그렇지.그런데 그렇게 마법에 흥미가 있으면 마법반에 들어가지 그랬어?"
그러고 보니 나는 정령반 주제에 마법진을 그려봤지,아니 정령진인가?소환진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마법진이려나?흐음......
"하지만 나는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걸."
"그래?괜한 질문을 했네.미안해,이루제."
"아니야!난 연금술도 좋아하는걸."
"그래?그나마 다행이네."
집합시간이 되어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왠지 전보다 더 나를 피하는 아이들과 그럼에도 나와 함께 있어주는 이루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와 이루제 쪽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뭐지,저것들은?
내 시선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가오는 청소년부인 듯한 무리에게 집중되었다.
유아부 남자아이들이 녹색과 검정이 교차된 색의 교복이라면 청소년부 남자아이들은 푸른색과 검정색이 교차된 푸른색 계열의 교복이었기에 나는 한눈에 그들이 청소년부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나한테 오는 건가?
"지니 크로웰,맞지?"
내 예상이 맞았는지 나와 이루제 앞에 멈춰선 16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아는 체를 했다.
난 청소년부에 아는 녀석이 하나도 없는데?대체 누구지?
나는 꽤나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루제는 그 호기심 넘치는 눈을 똘망똘망 빛낼 뿐이었다.
"맞는데,누구시죠?"
"아아,내 소개가 늦었군.내 이름은 브라이트 케니얀.마법반이고 보시다시피 청소년부다."
"흐응......"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뭔가 내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길 바라는 브라이트 케니얀.
흡사 '들었지?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하는 포스를 뿜어낸다.뭐지,이 소년의 넘치는 자신감은?
내가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자 브라이트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뭐,뭐야?케니얀이라고 케니얀!케니얀을 몰라?"
모르는데,그게 뭐지?초콜릿 만드는 가문인가?그건 이루제로도 충분한데.
내가 영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곁에 있던 이루제가 귓속말을 해왔다.
"지니,케니얀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마법사 가문이잖아!마법사 혈통으로 작위를 받은."
"아하!그 마법사 가문?"
이루제의 설명에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더라.수업시간에 배웠었지,참.귀족기보 과목에서 였던가?우리 학교도 참 쓸데없는 과목이 넘친다니까.
"그래,그 케니얀!이제 알겠어?"
"그런데 그 대단한 케니얀 선배께서 저한테 무슨 볼일이시죠?저는 마법반도 아닌데요."
자신의 대단함을 알아준 것에 반색하는 브라이트 케니얀.
마법부 아이들이라면 모를까,나는 영 감흥이 없는걸.차라리 정령사 가문이라면 몰라.아,그런 가문은 없으려나?
"흠흠,그러니까......아까 그,그걸 봤는데 말이야......"
"그거요?"
"그......격투반 아이와의 결투 말이다."
"아!그것 말씀이시군요.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죠?"
'도대체 이 사람이 왜 나를 찾아왔을까?' 에 대한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에게 브라이트 케니얀은 말을 잇질 못했다.
시비 걸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대체 뭐지?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돌연 뒤로 돌아 친구로 보이는 청소년부 아이들과 쑥덕거렸다.한가하니까 기다려는 준다만,대체 뭘 하려는 거지?
궁금증이 극에 달했을 무렵,마침내 브라이트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지,지니!"
"네?"
브라이트 케니얀은 양손으로 내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일단 청소년부라 그런지 손아귀 힘이 제법 셌지만 엄살을 부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살짝 눈썹을 찡그릴 뿐이었다.
"나,나와......나......나,나,나......"
'나나나' 를 늘어놓는 브라이트 케니얀에게서 어쩐지 잊어버릴 뻔했던 개구리 왕자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개구리 왕자와 달리 브라이트 케니얀은 꽤나 곱상한 미소년인데 말이다.
연갈색의 머리카락과 보랏빛 눈동자가 제법 지적인 미소년......응?잠깐!
"서,선배?"
왠지 모를 오싹함에 나는 말을 더듬어야 했다.설마 그러고 보니 이 모양새는......!
"나,나와 사귀어다오!지니 크로웰!"
젠장,별 어린 것이 다......
하여튼,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라요.(자뻑증..)
나는 나의 이 넘치는 인기에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째서 전생의 17년 동안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는지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젠장,그래도 그때 보통은 됐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뭐가 문제였지?지랄 맞은 성격?작달막한 키?넘치는 볼살이 문제였나?
"지,지니!어때?나와 사귀면 앞으로 네 드리케 생활은 내가 책임질게!"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내 모습이 자신의 고백에 대해 고민하는 걸로 보였던 것일까?
브라이트 케니얀이 다급히 말했다.나는 그런 케니얀을 빤히 바라보았다.
청소년 특유의 여드름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피부라든가 지적인 외모,신비스러운 보랏빛 눈동자,그린 듯 선명한 눈매.츄으읍,그놈 참 잘생겼네.
케니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나는 문득 이거 제법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그래!공주님처럼 떠받들어줄게.너를 최고로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원하는 건 뭐든지......"
최고로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만 뿅 가기 일보직전이었다.하지만 이성을 잃을 뻔한 나를 다독여준 이가 있었으니......
"브라이트 케니얀!거기서 뭐하는 거죠?부장이 됐으면 아이들을 인솔해야 될 것 아닙니까!마법부만 아직 다 모이질 않았어요!"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말소리를 뚫고 선명히 들려오는 이리토 선생의 질책 어린 음성.
왠지 그 목소리는 나에게도 질책이 되어 들려왔다.이런,이런!나도 주책이야 정말.어려도 10살은 더 어린 것을......아니지,지금 내 나이가 10살이니까......그래도 6살은 많겠군,쳇.
"아아......죄송해요,케니얀 선배.아무래도 우리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걸요."
"그,그런......"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말했고 케니얀은 그런 나와 자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눈길을 보내는 이리토 선생을 번갈아보더니 끝내 눈물을 글썽이다가 입술을 앙다물며 되돌아갔다.
아아,귀여웠는데.
불과 몇 시간 전에 귀여운 소년의 순정을 무참히 짓밟고 아쉬움을 삼키며 행복해하던(?)나는 지금 지독한 울렁거림에 고통을 호소해야 했다.
"우으으."
"히히,워프가 몸에 안 맞는 사람들은 지독한 울렁거림에 어지럼증을 느낀다더니,지니가 그런 타입이었구나?"
그랬다.엘란의 수도 네이칼과 발렌의 중간 마을 르말리로 가기 위해 우리 대표단 일행은 워프를 거쳤고 나는 그 와중에 내가 워프가 맞지 않는 괴상한 체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다시는 워프 따위 타고 싶지 않아.배 안에서 자동차로 3시간 동안 8자로 드라이브를 한 듯한 이 끔찍한 기분이라니!
[괜찮으십니까,마스터?]
[안 괜찮아.]
본래라면 이루제가 곁에 있었기에 라이는 어디론가 도망가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워프를 해야 했기에 라이는 이루제의 눈을 피해 내 허리께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루제는 라이라는 엉뚱하고 소란스러운 녀석을 대신해 더한 엉뚱함과 소란스러움을 안겨주었다.나와 라이가 동시에 부담스러워하는 상대이기도 하고.
"죽을 것 같아."
"그런데 내일 한 번 더 워프를 해야 하잖아.괜찮겠어,지니?"
"아니,전혀 괜찮지 않아!샤벨 용병단을 고용하든가 해서 혼자 가는 게 낫겠다!이런 기분을 또 느껴야 한다니 정말이지 끔찍해."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정말 가능하다면 혼자 마차를 타고 네이칼에 가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었다.
이런 느낌을 한 번 더 맛보아야 하다니......그야말로 악몽이군.
짝짝
"자자,모두 방은 배정받았나요?그렇다면 각자 방으로 가서 짐을 푼 후,자유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외출 시에는 기사 분을 대동하는 것 잊지 마시구요."
가벼운 손뼉으로 시선을 모은 이리토 선생의 말에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 또한 배정된 방을 찾아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아직도 독방을 써야 했는데 그 이유는 나와 같이 방을 쓰고 싶어 하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3인실이라도 줄라치면 아이들이 그야말로 온몸을 자지러지게 떨며 강한 두려움을 표했다.
이루제는 연금술 발표 준비를 위해 연금술반 선배와 한 방을 써야 했기에 결국 나는 독방이었다.아아,외로운 이 신세.
결국 내게 배정된 방은 당연히 1인실이었는데,역시나 고급 여관답게 깨끗하고 호화로운 내관을 자랑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푹신한 침대였고.
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짐 가방을 적당히 버려두고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아,좋다.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만 빼면."
방금 말린 듯 뽀송뽀송한 침대보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는데 문득 라이가 불렀다.
[마스터!여기서도 납니다.]
"응?뭐가?"
[정령석의 냄새가요!]
라이의 말에 나는 당장에 침대에서 일어나 라이를 움켜쥐었다.
"뭐?어디서?언제부터?"
[아까 워프로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요.하지만 마법사의 탑이라 마나석 같은 것이 많기도 해서 잘못 느꼈나 했지만 지금은 확실합니다.아주,정말 아주 미약하지만 이 근처에서도 정령석의 냄새가
납니다,마스터.]
라이의 말에 나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아돌을 발견할때 읽은 고서에 의해 알게 된 4대 원소 외에 다른 정령들을 소환 할 수 있는 미지의 정령석이 내내 신경 쓰였지만 찾을 길이 없어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매우 운이 좋은 모양이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우선 토넬을 찾아갔다.
역시 예상대로 1층 로비에서 이상한 책을 읽고 있는 토넬을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다가갔다.
"토넬 경!"
"응?무슨 일이실까나?"
오늘의 책 제목은 '티 나지 않게 아부하는 1898가지 방법'.저런 걸 대체 어디서 사오는 거야?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토넬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떨렸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눈빛이었다.토넬에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외출하려구요.한센 씨와 필로 씨를 불러주세요."
"아아,물론입죠!괜찮으시다면 한센과 필로보다는 다른 녀석들은 어떻습니까?혈통 좋은 녀석으로 새로 배정해......"
어울리지 않게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말하는 토넬.혈통?무슨 말 고르나......도통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다.왠지 나에게 잘 보이려는 모양인 듯했다.
"한센과 필로!"
넌 이미 찍혔어!(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