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아니 꼬리라도 내놔!"
"국물이라도!"
"그래도 머리고기는 주겠지?"
"난 껍질."
조금 멀어서 라이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라이는 충분히 폭발 직전으로 보였다.
하지만 라이보다 먼저 폭발한 것은 요리연구회의 남자들이었다.
"에잇!싫다면 싫은 줄 알아!"
"젠장!모두 덤벼라!백사를 탈취하자!"
"우아아아!"
누군가 켄타에게 몸통박치기를 시도했다.하지만 켄타의 거구에 밀려 오히려 뒤로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나무의자 하나가 볼썽사납게 부서졌다.
"어이쿠,허리야.이놈이 사람 치네!모두 덤벼!"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순식간에 켄타를 덮쳐버렸다.사람들속에 켄타가 묻히는 것을 오징어 다리를 뜯으며 구경하는데 사람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한 쪽으로 던져졌다.
"으악!"
"내 허리!"
"내 다리!"
"내 머리카락!"
"껍질 좀......"
여럿을 한꺼번에 던져버린 괴력의 소유자 켄타는 기세 등등하게 라이를 붕붕 돌리며 소유권을 과시했다.
만약 근처에 있다면 라이의 '후에에엑' 하는 소리가 들리겠지.
가게가 점점 소란스러워졌다.끈질긴 집념을 보여주는 요리연구회 일동.
그들은 켄타의 손에 날아가 의자며 식탁에 충돌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의자나 식탁이 부서졌다.
오징어를 다 뜯은 나는 혹시 어디 팝콘 같은 게 없나 해서 주방을 찾아 들어갔다.
손바닥 가득 과자를 받아들고 나름 만족하며 주방에서 나온 순간 나는 다시 그대로 뒷걸음질 쳐서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응?꼬마야 뭐 더 필요하냐?"
입구 쪽에서 설거지를 하던 견습 요리사가 물었다.나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닥쳐' 라는 포즈를 취해주었다.
"쉬잇!"
나 어쩐지 아까부터 대사가 너무 없는 것 같다.나는 주방에 쳐진 커튼 밑으로 조금 부실하지만 분명 갑옷 차림을 한 사내들이 한 손에 창을 치켜들고는 여관 안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것을 숨
죽이고 바라보았다.
"......꼬마야?"
"캬악!"
나를 부르는 남자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히익!"
아 거참,이 사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구만.
나는 다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요리연구회들은 비교적 순순히 갑옷 입은 남자들을 따라 여관을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켄타는 그들이 라이를 빼앗으려고 하자 그야말로 광웅(狂熊; 미친 곰)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양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사람들을 휙휙 공중으로 날렸다.
그 주변에는 이미 성한 물건이라고는 없었다.이내 샤벨 단장이 나서서 뭐라고 제재를 가하자 켄타는 울먹이며 그들을 따라 나갔다.
여전히 한 손에는 라이를 움켜쥐고 말이다.흐음,슬쩍 주저앉은 나는......
아그작 아작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시츄에이션이지?"
제일 맛있어 보이는 과자 하나를 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자 하나를 말끔히 해치운 후,다시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그런데 밖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다시 과자를 집어 들고 주방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데......
콩
"아야!"
정확히 정수리를 강타한 주먹에 나는 눈을 꽉 감았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떴다.
무시무시한 얼굴의 샤벨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가 어떻게 들어오자마자 문제를 일으키는 거냐!앙!"
그의 눈에서 빔이 나온다고 느껴질 정도로 샤벨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하지만 본래 싸움이란 건 꼭 먼저 때린다고 좋은 게 아니다.
"흐,흐에에엥.아넬 언니이!아저씨가 막 때려.허어어엉."
그 순간 동작도 잽싸게 운디네를 소환했다.그리고는 운디네로 하여금 눈가에서 물을 흩뿌리게 하며 아넬에게 매달렸다.
꼭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강하게 부르면 소환이 가능하다.물론 정신력과 친화력이 따라줘야겠지만 말이다.
"어머,지니!"
"흐에에엥.아파 죽을 것 같아아~."
난 슬쩍 단장을 향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물론 아넬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그늘에서 말이다.분노한 아넬은 목소리를 높였다.
"단장님!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어떻게 여자애를 때리시나요?정말 실망이군요!"
아넬의 말에 단장의 표정이 단박에 하얗게 굳어버렸다.
아넬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단장의 가슴을 찔렀다.
"하,하지만 켄타가 치안대에 잡혀갔다는......"
방금 전 잡혀가던 켄타와 같은 표정을 지은 샤벨이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울상을 지었다.
이봐,이봐,그런 표정이 어울리는 것도 다 내 나이 때뿐이라니까.
축복받은 마나의 땅,넘치는 마나 덕분에 마법사들의 사랑을 받으며 유난히 뛰어난 두뇌들이 많기로 소문난 곳.
학자들을 비롯하여 풍부한 지식층을 겸비한 학자의 나라 베일란의 수도 발렌.
이곳에는 세 가지 유명한 것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최고의 마법사들이 모인 마법사의 탑이었고,두 번째는 그런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모든 결계마법의 집대성 철옹의 성벽 시그나티,
그리고 웬만한 왕국도서관과 맞먹는 거대한 규모의 공립도서관이었다.
공립도서관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거대한 지식의 보고가 누구에게나 개방된다는 점에 있었다.
천민이든 평민이든 귀족이든,지식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자유롭게 열린다는 모토를 가진 거대 공립도서관은 과연 지식의 나라 베일란다웠다.
하지만 오늘 그 공립도서관의 정문에서 출입을 제지당하는 한 소녀가 있었으니......
그 비운의 소녀 이름은 지니 크로웰이었다.
"들어갈래요!"
당장이라도 바닥을 구를 태세로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는 나를 사서장은 싸늘한 눈길로 내려보았다.
왼손 검지를 들어 안경을 치켜 올리는 사서의 그 모습은 참으로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안 됩니다!"
"이이,어째서 제 출입을 막는 거죠?"
날이 밝기 무섭게 벼르고 벼르던 도서관에 들어가 볼 요량으로 한달음에 뛰어온 나는 앞길을 막는 이 안경잡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촤륵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그녀는 자신의 소매에서 스크롤 한 장을 펴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뒤로 다가간 라이는 오늘도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어 스크롤의 내용을 그대로 내게 전해주었다.
8월의 블랙리스트 추가자 명단 및 특징
지니 크로웰(10세,여)
샤벨 용병단장의 보증으로 올 7월 22일 성에 입성
드미트리 왕립 아카데미인 드리케 아카데미 소속 학생
금발의 푸른 눈 전형적인 귀족형 소녀,품속에 백사를 품고다님
내력:룬력 983년 7월 22일,성내 여관에서 백사사건을 일으킴
기물파손 및 용병간 싸움 발단 원인 제공
7월 23일,중앙 분수대 폭파사건
돌연 중앙 분수대가 폭발,다친 이는 없지만 현재 분수대 공사 중
7월 25일,시그나티 접촉사건
시그나티의 강도를 실험하겠다는 이유로 마법난사,기사단 호출사건
7월 26일,전날 호출되었던 기사들이 괴 공격에 기절
현재 범인으로 추정되고 있음,아마도 물 공격으로 추정됨
7월 27일,백사 가택 난입사건
지니 크로웰 소유의 백사가 링센 상사에 난입 소란을 일으킴
7월 28일,백사사건으로 여관에서 다시 싸움을 벌임
싸움의 중심에는 지니 크로웰이 있었음,정확한 경황은 알 수 없음
7월 30일,오크몰이 사건
드리케 일행이 올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성 밖으로 무단이탈
오크 4마리에 쫓겨 돌아옴
현재 드리케의 마이너스의 손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음
요 주위 바람
[푸헤헷.몇 개 더 있었는데 그건 안 들켰나 봅니다.마스터!]
난 머릿속을 파라노마처럼 지나가는 라이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쳇,분수대야 압력을 더 높이면 더 높이 물이 솟지 않을까 해서 실험을 조금 했더니 터질지 누가 알았던가?
시그나티인지 뭔지 하는 성벽은 그냥 벽에 대고 정령마법 연습 좀 한 걸 가지고 기사들이 오버하며 달려와서는 소리를 꽥꽥지르더니 돌연 숙녀의 엉덩이를 마구잡이로 때리기에 조금 복수를
해준 것뿐이었다.
제일 지저분한 기술을 사용하긴 했지만.
링센 상가에는 라이가 사냥 갔다가 들킨 것뿐이었고,사실 별로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먹는 장면은 들키지 않은 것 같닫.뱀이 보석을 먹으리라는 생각은 안 했을 테니까.
그 다음엔 커크와 두꺼비 왕자가 싸우기에 라이더러 커크를 도우라고 했더니 멋대로 커크를 공격하는 바람에 사건이 쪼금 커진 것이었다.
나도 이것저것 찔리는 것이 많아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해서 일행이 조금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성 밖에 나가본다는 것이 오크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나마 그 4마리도 내가 3마리는 해치우고 힘이 딸려서 피난 온 것을,이 연약한 소녀가 3마리나 해치운 것에 대한 감사는 못해줄망정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우아하지 못한 별명을 지어주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지니 크로웰,맞습니까?"
잠시 속으로 나름 항변하고 있는데 사서장이 내 이름을 물었다.
잠시 지니 크로웰이라니 그게 누구냐 하고 시치미를 떼볼까도 했지만 왠지 본인을 부정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에......아마도?"
그녀의 눈길을 피하며 대답하는데 어느새 내 허리춤으로 돌아온 라이가 물어왔다.
[마스터,마스터.마이너스의 손은 뭡니까?마이더스의 손이 라면 아는데요.칭찬인가요,마스터?]
[닥쵸!]
[끼악!그런 심한 말씀을......흐흐흑.]
흐느끼는 라이를 당장 허리춤에서 꺼내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내 앞에 그동안의 내 소소한(?) 실수들을 꿰고 있는 사서장이 있는 만큼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해 참아야 했다.
잠시 후를 기약하며,일단 지금은......
"......역시 출입은 어렵겠습니다.아쉽겠지만 이만 돌아가......"
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사서장의 냉랭하던 얼굴이 흠칫하는 것을 발견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흑,흐윽......너무해요!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러시는 거예요?흐윽!흑!"
[운디네,더 뿌려라.더!]
[네에,주인님!]
난 그야말로 숙달된 솜씨로 운디네를 남모르게 소환해 눈가에 물 뿌리기 기술을 시전했다.이게 꽤나 쓸 만하단 말이지.
"아,아아......그게......그러니까......"
"흐앙,단지......훌쩍,책이 보고 싶을 뿐인데.흐아아앙"
나는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울기 시작했고 당황한 사서장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허둥거렸다.
"휴우,정말 안 되는데......으음."
"흐으아앙.흐으윽!흐윽!흐으.콜록!콜록!"
"아아,어쩔 수 없지.그만 울고 날 따라오렴.들여보내주마.응?그만 울어."
울다 지쳐 기침까지 해대는 내 모습에 사서장은 끝내 그 차가운 손을 들어 올리고야 말았다.
후훗,어떠냐?평생을 갈고닦은 나의 연기력이!
"네에,훌쩍......흐극......"
[수고했어,운디네.이만 돌아가렴.]
[네,주인님.]
나는 마지못해 간다는 듯 사서장의 손을 잡고 도서관 내로 들어서며 운디네를 돌려보냈다.
[마스터,어쩜 그렇게 날이 가면 갈수록 연기가 리얼해지시는지......이 라이,감격입니다.]
[오호홋.라이,네가 내 위대함을 이제야 조금 알아보는구나.]
[연기력이 느는 만큼 마나도 늘면 더 좋을 텐데요.그렇지 않습니까,마스터?]
순간 툭하고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졌다.
투각
내 손길에 의해 무자비하게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라이가 바닥에 던져졌다.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나의 분노한 발길질!
[후에엑.마스터,끼악......]
"에라,이 눈치 없는 뱀 같으니......"
순간 나는 라이가 던져진 곳이 번질번질한 대리석 위라는 사실과 여기가 도서관 내라는 사실,그리고 정숙해야만 하는 도서관 내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는 사실,내 곁에 서있던 사
서장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 분노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는 그대로 뒷걸음질 쳐 도서관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
쳇!8월 1일,도서관 백사사건이 추가되겠군!
[마스터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라이의 애절한 목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뛰어야겠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우리 집 같은 여관 '바람이 쉬어가는 곳'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일행이 보였다.
그중 아넬이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그렇게 시무룩하니,지니?"
아넬의 물음이 내 여린 가슴을 후벼 파는 것만 같구나.
"히잉......언니,언니.라이 때문에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어요."
"라이?라이가 왜?"
"라이가 도서관 안에서 갑자기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에 도망 나와 버렸어요."
은근슬쩍 라이에게 떠넘기긴 했지만 그다지 죄책감은 없다.
반은 라이의 책임이니깐 말이다.게다가 주인의 잘못은 하인의 잘못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아!반대던가?
징징거리는 나를 아넬이 토닥여주는데 문득 샤벨이 다가왔다.
샤벨에게 죄를 지은 것이 많은 나는 몸을 움츠렸다.샤벨이 내 대신에 낸 벌금이 벌써 80실버가 넘는다지?
아카데미로 청구하겠다고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생돈이 나간 셈이다.
"아넬리아,그만 짐을 싸도록!우리는 갈 길이 바쁘다."
엥?갈 길이 뭐시기?짐을 어쩌라고?화들짝 놀란 나는 아넬에게 물었다.
"에?아넬 언니,어디 가요?어디 가는데요?"
"어디긴 어디야,샤란으로 돌아가야지!다음 의뢰가 있으니 말이다."
내 물음에 답한 것은 아넬이 아니었다.시큰둥한 얼굴의 샤벨이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는데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엑!그럼 나는요?"
"흥,네 녀석이야 오늘 내일이면 일행이 도착할 테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도록!내가 문지기에게 꼬마 네 이야기를 전해두마."
"말도 안 돼!어떻게 나같이 여린 소녀를 이 생판 외지에 버려두고 간다는 거죠?"
"이미 결정된 일이다!우린 오늘 안에 떠나야 해.그리고 너 같이 여린 소녀의 뒤치다꺼리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걸 말해두지."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샤벨 용병단의 철수 소식에 당황했다.
당연히 드리케 일행이 올 때까지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조금 시무룩해진 나를 잠시 내려다보던 샤벨은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지니......"
아넬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냉정한 샤벨에게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잡기에는 그들 모두 바쁜 용병들이었다.
"지니,단장님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줘.사실 우리는 예정대도라면 운송을 완료하고 그 다음날 바로 샤란으로 떠나야 했지만 단장님이 다음 의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며 여기에
더 머무른 거란다.단장님의 마음을 이해해줘.이제 서둘러 가지 않으면 다음 의뢰를 맞출 수 없단다.이해해주렴,지니."
"히,히이잉.흐앙......"
아넬의 말을 잠자코 듣던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울고야 말았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나 하나 때문에 열흘 가까이 발렌에 함께 있어준 용병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섭섭함 같은 것이 뒤섞여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몸과 나는 분명 10세 소녀의 것이다 보니 때때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돌연 화가 나 라이를 도서관 내에서 패대기쳤던 것처럼 말이다.
"지니!"
"흐으앙.언니이......"
과거의 기억이 나를 영악한 10세 소녀로 만들어주었지만 그 뿐이었다.
27세에 다다르는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정신의 토대는 분명 여린 10세 소녀의 것이었으니까.
"어이!그 녀석 왜 우는 거야?"
"응?왜 애를 울리고 그러나?"
앙앙 울어대는 내 주위로 용병단 몇몇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내가 참 무던히도 괴롭혔는데 걱정해주는 모습이 마냥 고맙기도 했고 실험체가 없어진다는 사실이 섭섭하기도 했다.
"언니,나 잊어버리면 안 돼요!알았죠?"
각자의 짐을 간소하게 챙겨든 용병단원을 마중하던 나는 또다시 흐르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애썼다.
이런 젠장맞을 몸 같으니,시도 때도 없이 울려고 한다니까?
"그래,지니.축제 잘하고!다치지 마!언니가 멀리서 응원할게.알았지?"
"응,그럴게요.안 다칠게요.언니도 다치지 말고 꼭......다시 만나요!"
내가 그렇게 아넬과 아쉬운 작별을 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용병단 일행의 표정은 하나같이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묘했다.
아넬 언니와 달리 나에게 어지간히도 괴롭힘을 당했던 그들 이니만큼 시원하다는 표정과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그리고 백사에 대한 아련함 같은 것이 뒤섞인 것 같았다.
"언니,잘 가요!"
성 문밖으로 멀어지는 샤벨 용병단을 배웅하던 나는 끝내 언니만을 강조했지만 분명 샤벨 용병단의 안녕도 기원했다.
한 2프로 정도?그리고 언니를 배웅하는 내 뒷덜미를 꼬옥 잡고 있는 문지기는 내가 또 성 밖으로 뛰쳐나갈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고 있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문지기에게 라이를 들이댐으로써 그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샤샤샥.]
"끄아아악!"
능숙하게 문지기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라이.
어느새 라이는 정신까지 뱀에 동화된 건지 뱀 흉내를 내는 데 매우 능숙했다.내가 자주 써먹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샤벨 일행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고마움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 발렌의 성벽 시그나티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위험해 보이던 아넬이 마침내 눈물을 쏟아냈다.
"흐,흐읍......"
"이,이봐,아넬리아!너무 걱정하지 마.저 녀석이라면 멀쩡 할 거야."
"하지만 지니는 겨우 열 살짜리 꼬마라구요.혼자 얼마나 무섭겠어요!계속 우는 것 못 보셨어요?"
'빽!' 소리를 지르는 아넬.그런 아넬의 말에 용병단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아넬을 제외하고 그 열 살짜리 꼬마한테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 사실을 말해줘도 아넬은 도무지 믿지 않았기에 누구도 더 이상 아넬의 말을 정정해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샤벨이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었다.
"음,아무튼 그 꼬마 녀석은 보기보다 쓸 만하니까 너무 걱정......응?"
문득 샤벨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 선두에 내걸린 것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깃발이었다.
붉은색을 바탕으로 황금빛 새가 날아오르는 문양이 선명한 그 깃발은 분명 드리케 아카데미의 것이었다.
"단장님?"
말을 멈춘 샤벨을 아넬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아넬에게 샤벨은 산길이 굽어지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샤벨과 같은 것을 본 듯 아넬이 입술을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봐,내가 뭐랬나?걱정하지 말랬지?"
"정말 그러네요!후후,언젠가......지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꼭이요."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마냥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아넬.
그리고 그런 아넬과는 반대로 다시는 지니를 만나고 싶지 않은 샤벨 용병단의 회비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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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권이 완결 되었습니다.정말 힘들었어요.삼일간의 노가다 타이핑이란..
오타 지적 부탁드리구요. [email protected] 에게 2권 스캔본좀 보내주세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0년 2월 24일 새벽 3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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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계속.>
글비 퓨전 판타지 소설 금발의 정령사 2권
피 튀지 않는 결투
그의 이름은 록,학자의 나라라 불리는 베일란의 심장부 수도 발렌의 문지기라는 자신의 직업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다.
하지만 최근 그는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그 원인은 현재 발렌 내에서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리는 한 소녀 때문이었다.
약 열흘 전이던가?꽤 안면 있던 용병단과 함께 묻어왔던 소녀,열흘 정도 뒤면 일행이 뒤따라 올거라며 보증서기를 꺼리던 용병단장의 태도를 봤을 때,그때 눈치 챘어야 했다.
그 소녀가 자신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다줄지 말이다.
그날 밤이었다.
단잠에 빠져 있던 그는 돌연 엉덩이에 느껴진 말도 못할 강렬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고 그는 순간 보고야 말았다,그의 눈앞을 순식간에 지나가는 새하얀 무언가를.
그것은 분명 눈부시게 빛나는 백사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는 자신의 엉덩이에 검붉은 멍을 남긴 문제의 백사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켄타라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남자의 손에 들려온 그 백사는 새하얀 이빨과 붉은 혀를 날름거렸는데,그 모습이 어찌나 소름끼치는지 그는 엉덩이 한쪽이 욱신거릴 정도였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백사의 주인이라며 찾아온 소녀가 그 백사를 마구잡이로 쥐어박는 해맑은 모습에 공포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녀와의 악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그 소녀가 하루가 멀다 하고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그때마다 그는 시말서를 써야만 했다.연계책임이라는 명목 하에.
"한,둘,셋,넷,닷,엿,곱......에휴."
그는 자신이 이번 달 열흘 사이에 쓴 시말서의 수를 헤아리면서 제발 그 소녀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 소녀의 일행이 조금이라도 빨리 와주기를,한시라도 빨리 '마이너스 손'의 신병을 인수해가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문득 길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눈에 포착된 것은 저 멀리서 작게 희끗거리는 깃발이었다.
그것은 붉은 바탕에 황금빛 새가 양각된 드미트리의 국기!
그는 전형적인 발렌의 시민으로서 외국인,그중에서도 특히 드미트리인을 싫어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깃발이 10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제 거의 발렌의 성문에 다다르고 있는 드리케 아카데미 대표단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표단의 안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기사단장은 아끼던 위임패가 없어진데다가 갑옷까지 없어져서 속을 보나 겉을 보나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몰골인 디넬이라는 격투반 선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기사단장의 기분이 저조하니 기사들은 당연 몸을 사렸고 선생이라는 작자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들 앞에서도 침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 그와 가까운 격투반 아이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이며 기사들이 쉬쉬하고는 있지만 현재 대표단을 가장 침울하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행방불명된 지니 크로웰에게 있었다.
지니 크로웰의 행방이 묘연해진 그날 아침 단장은 서둘러 수색조를 짰다.
우선 마차 주위를 서둘러 수색했는데 마차가 지나온 길 뒤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잡혔다.
서둘러 쫓아가 보니 그 발길이 수풀로 이어져 있었다.지니 크로웰의 것이 분명했다.
그 흔적이 중간에 무언가를 만나 도주하는 것이 포착되었고 이내 그 도주의 원인이 오크로 추정되는 몬스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색조는 발칵 뒤집혔다.
당장에 호출된 기사단장이 눈에 불을 켜고 수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갔다.
헌데 중간에 어쩐 일인지 오크가 지니 크로웰을 쫓지 않고 다른 길로 간 것이 발견되었다.
의아하긴 했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생각한 찰나,그들은 지니 크로웰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끊긴 자리를 발견하고 그만 아연실색해버렸다.
지니 크로웰의 발길이 벼랑 끝에서 끊어진 것이었다!
그 밑을 내려다보니 강물이 어찌나 거센지 그 자리에 있는 기사들이 빠져도 도무지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기사단장은 그만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고 휘청거려야 했다.그의 갑옷이며 위임패를 찾을 생각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지니 크로웰의 사망' 이었다.
기사단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사 몇에게 지니의 사망을 알린 후 일단 지니 크로웰을 대신해 윈칸 축제에 나갈 아이를 데려오라는 명목으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기사 몇과 사망한 지니 크로웰을 뺀 대표단 일행이 먼저 발렌으로 다소 느리게 이동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본국으로 되돌아갔던 기사들이 레오라는 아이와 함께 일행에 합류했다.
왕이 친히 보낸 '갔다 와서 보자' 라는 편지와 함께.
일이 이렇다 보니 죽을상을 한 기사단장과 그 휘하 기사들,그리고 디넬 선생까지.
게다가 어른들이 쉬쉬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나 소란이 일었고 아이 하나가 보이지 않으니 머리 좋은 종합반 아이들은 물론이요,운동반 아이들이 모를 리 없었다.
지니 크로웰의 죽음을.
그동안 그녀를 핍박했던 운동반 아이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강물에 빠져 죽었다니 혹시 자살인가,하는 의혹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어 그 핍박의 주동이었던 격투반 아이 하나가 난리를 부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인자라고 말했던 것이 끝내 마음에 걸렸는지 꼬박 하루를 앙앙거리며 울어대기도 했다.
"에휴우......"
길게 한숨을 내쉬던 기사단장의 눈에 발렌의 성문 앞을 지켜선 두 명의 문지기가 보였다.
대표단 일행을 빤히 보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에 기사단장의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이제 겨우 임무의 시작이건만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그의 목은 이미 반쯤 잘려 누군가 '툭!' 쳐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상태였다.
그런 기분으로 퉁명스러울 것이 분명한 발렌의 문지기를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간단한 갑주만 걸친 행색으로 자신을 기사단장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엘란에서 보내온 허가증과 그들의 행색만 봐도 대표단 일행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적당히 검문할 테니 굳이 단장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을 터였다.
그랬기에 그는 귀찮은 일만 있으면 부르는 한센과 필로를 호명했다.
"한센!필로!"
그의 나지막한 부름에 가장 뒷줄에 있던 한센과 필로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네!부르셨습니까,단장님."
"네!부르셨습니까,단장님."
깍듯이 인사하고는 있지만 그들 또한 어딘가 기운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검집을 들어 냅다 대가리를 후려쳤겠으나 지금은 검도 없었거니와 모든 기사단원의 사기가 떨어져 있는 터라 그냥 넘어갔다.
한센과 필로에게 허가증을 건네며 기사단장은 간단한 턱짓으로 문지기를 가리켰다.가서 처리하라는 뜻이었다.
한센과 필로가 두말하지 않고 먼저 성문으로 뛰어갔고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단장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목숨은 간당간당하고 대표단 아이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고 있으니 영 살맛이 나질 않았다.
조금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연이어 들려온 단장의 실추 소문에 한센과 필로는 다른 기사들보다 배는 침울했다.
하지만 단장의 명령에 한달음에 문지기 앞으로 뛰어갔다.
물론 베일란 사람들이 드미트리인을 특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기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둘의 예상과 달리 문지기들은 냉대는커녕 오히려 미소까지 머금은 얼굴로 그들을 환대했다.
"어서 오십시오,드리케 아카데미 대표단 여러분!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하핫."
"......네?"
한센에 비해 다소 멍한 필로가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베일란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매우 유명했는데 막상 문지기에서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자 오히려 당황했던 것이다.
이 문지기가 유별난 것인가,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상부에서 이미 지시가 내려온 지 오래입니다.마법사의 탑에도 이미 연락이 되어 있을 겁니다.생각보다 빨리 와주셔서 정말이지 감사......아니,으흠,생각보다 빨리 오셨지만 편히 쉬시는 데는 무리
가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까?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정대로라면 대표단은 베일란에 입성하고 엘란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다음날 바로 워프를 이용해 베일란과 엘란의 중간 도시 르말리로 향해야 한다.
그곳에서 하루 휴식 후 다시 워프를 이용해 엘란 제국의 수도 네이칼로 이동한다.
윈칸 축제가 개최되면 그 뒤에는 제국에서 전해주는 일정표에 따르면 될 일이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짧게 상기해낸 한센이 단장으로부터 받은 허가증을 내밀자 다소 다급함이 느껴지는 손길로 문지기가 허가증을 펴들었다.
"확실하군요!하지만 잠시 확인을 해야 하니 초소로 따라와주십시오."
부담스러울 정도로 문지기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얼마나 고된 여정을 보냈으면......흐흑.)
한센으로 하여금 '설마 나에게 흑심이(?)'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상기된 미소였다.
한센이 다소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문지기를 따라 초소로 들어가자 필로는 홀로 뒷짐을 지고 서서 마법진이 새겨진 성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성문 안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앗!필로!"
자신을 부르는 반가움 섞인 앳된 목소리에 필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흩날리는 화려한 금발!
"꺄아!필로 씨,왔구나!왜 이리 늦었어요?내가 얼마나 외로웠다고.웅~뽀뽀."
필로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안겨오는 웬 작은 인영에 놀랐고,이어 그의 볼에 짧은 키스를 남기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기겁했다.
번뜩 놀란 필로가 황급히 품에서 정체 모를 인영을 떼어낸 순간,그는 보고 말았다.
화려한 금발과 뽀얀 피부,깊고 시원해서 바닷가를 떠올리게 하는 눈을 가진 소녀와 그런 소녀의 얼굴 뒤로 살짝 머리를 들고 있는 새하얀 뱀을!
"끄아아악!"
그는 무엇에 놀란 것일까?대낮에 출몰하는 지니 크로웰의 귀신에?아니면 새하얀 뱀에게?아니면 헷갈리는 현실에?
무엇이든 간에 그의 비명소리에 놀란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초소 안으로 따라 들어선 한센에게 증명서를 확인하던 문지기가 꽤나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사인해주실 서류가 한 장 있습니다."
"서류요?"
마침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집어 한센에게 내미는 문지기.
그런 문지기에게 한센이 의아함을 표했다.이게 무엇이냐는 무언의 눈길과 함께.
"지니 크로웰 양의 신상에 대한 서류입니다.신원보증서인데요,지니 크로웰 양이 입성할 당시 신분패가 없었던 관계로 샤벨 씨를 보증인으로 세웠고,샤벨 씨가 나가신 현재 지니 크로웰양의 보증인
은 당시 담당이었던 저에게 넘어왔습니다만,이렇게 일행이 와주셨으니 이제......"
"자,잠깐!그게 무슨 말이십니까?지니 크로웰?그 이름을 어떻게......?"
"어떻게라니요?현재 마이너스......아니,지니 크로웰 양은 성안 제일의 화젯거리입니다만."
문지기의 태연스러운 대답에 한센의 표정은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한센으로서는 갑작스레 거론된 지니 크로웰의 이름도 이름이지만 최고의 화젯거리라는 말이 영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겠군요.지니 크로웰 양은 십오일 전쯤 급류에 휩쓸려 사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던 한센의 귀로 문득 찢어질 듯한 남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악!"
천지를 울리는 이 목소리는......분명 필로의 것!
비명의 주인을 알아챈 한센이 다급히 초소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꽤나 익숙한 화려한 금발머리의 소녀가 인상을 찡그린 채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흐어억!"
한센 또한 저도 모르게 급히 숨을 삼켰다.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소녀는 비명에 이어 들려오는 숨넘어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한센과 눈이 마주친 소녀의 눈 안 가득 다시금 반가움이 차올랐다.
한껏 발그레하게 붉어진 얼굴로 소녀가 한센을 향해 뛰어왔다.
"한센!한센!한센!꺄아~한센!"
연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발걸음도 가볍게 뛰어오는 소녀의 모습에 한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머리를 굴려 뭔가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품으로 뛰어든 소녀가 그의 얼굴 가득 짧은 키스를 날렸다.
"웅~쮸쮸쮸쮸!"
"자,잠깐......아가씨?정말 아가씨 맞습니까?"
"으응?대체 그게 무슨 소리죠?필로도 나를 무슨 귀신 보는 듯하더니 한센도 그런 거예요?"
눈썹을 살짝 찡그리는 소녀의 모습에 한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그게 귀신 보듯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지니?살아 있었구나,지니!오~나의 지니!"
문득 저 멀리서 들려오는 지니를 향한 애절한 외침에 한센과 지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순간 한센을 향해 넘치는 애정을 숨기지 않던 지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으악!이루제!(이 대사가 나오기 전까지 기사단장이라고 오해한 1人..)
필로에 이어 한센을 발견한 나는 잔뜩 들떠 있었다.
용병단이 떠나기 무섭게 도착한 드리케 일행,이것은 그야말로 나를 위한 신의 안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이내 나를 향해 뛰어오는 이루제의 모습에 싹 날아가 버렸다.
아아,나는 왜 이다지도 저 아이가 두려운 것일까?
이루제의 핑크색 머리카락은 햇빛에 바스러질 듯했고 나풀거리는 연둣빛 드레스는 그야말로 이루제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지니이~."
이제는 지척에 다다른 이루제가 발걸음도 재빠르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왜일까?필로와 한센을 향해 샘솟던 반가움이 이루제를 위해서는 샘솟아주지 않았다.
"하,하하.반가워,이루제."
"나도!난 모두가 지니 네가 죽었다고 해도 결코 믿지 않았는걸!"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죽어?내가?왜?"
"응?그러게 말이야.지니 네가 죽긴 왜 죽겠어?그나저나......라이는?"
어쩐지 영 안 반갑더라니,이루제는 내가 아니라 아리를 바랐구나.라이에게 밀리다니 이 씁쓸함을 어이 할꼬.게다가 라이는 네가 '오,나의 지니' 를 외칠 때 바람같이 사라졌단다.
"라이라면 지금 없는걸.그보다 내가 죽었다는 건 무슨 소리야?"
"응?라이가 없다고?아아,사랑스러운 우리 라이는 어디로 가버린 거야?"
내가 언제부터 이루제의 것이고 라이가 언제부터 우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내 물음을 아주 아그작 아그작 씹는구나,이루제.
나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라이를 찾는 이루제를 외면한 채 한센에게 물었다.
"한센,이루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거죠?그건 필로나 한센이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른 것과도 관계가 있는 얘긴가요?"
"정말......지니 크로웰 양 맞습니까?"
"물론이죠!그럼 내가 가짜라도 된다는 건가요?"
나는 반가움이 가득했었지만,기다리던 이들의 묘한 반응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건 아니지만......지니 크로웰 양은 분명 보름 전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고......수색도......"
"내가 설명하지,지니 크로웰!"
잔뜩 화가 치민 목소리가 한센의 말을 끊었다.
오늘따라 어째 말이 자주 끊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나의 천적 기사단장을 비롯해 디넬 선생과 이리토 선생이 서 있었다.
모두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말이다.어이쿠야!
드리케 일생이 새로이 잡은 여관은 꽤나 호화로웠다.
내가 샤벨 일행과 묵었던 여관이 중급이라면 이 여관은 최상급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일행보다 앞서 발렌에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기에 각자의 방에서 쉬고 있을 아이들과 달리 부담스러운 인물 셋에게서 취조당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껴야 했다.
아니,하는 '듯한' 이 아니라 정말 취조였다.
"그러니까......강물에 빠진 것을 샤벨 용병단이 구해줬다는 건가?"
"네,겨우 벽에 매달려 있는 것을 샤벨 일행이 구해주었어요.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흘간 여행을 했고 이곳 발렌에서 열흘을 함께 머물렀어요."
기사단장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그도 잠시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다시 물어왔다.
"강물에는 왜 빠진 거지?"
"숲으로 들어갔다가 오크에게 쫓겼어요.도망가다 그만 강에 빠져버렸죠."
"숲에는 왜 들어갔나?"
예상대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나왔고 나는 슬쩍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숙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무례하시네요."
"마차 안에서도 해결할 수......"
"으흠!"
대답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나는 적당히 넘기려 했다.
그러자 기사단장이 따지듯 물어왔다.하지만 나는 이리토 선생의 뜨거운(?)눈길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잠자코 있으면 이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터.
나는 작은 의심의 여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마차 안에서 해결할 수도 있지만 마침 마차가 멈춰 있고 낮도 아닌 밤이었기에 밖으로 나갔습니다.아무리 제 것이라지만 구린내가 나는 마차 안에서 자기는 싫었으니까요."
해석하자면 '화장실 가려고 했다' 정도 되겠다.
가장 효과적이고 적당한 핑계 아니겠는가?
"좋습니다,지니 양.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을 하죠.지니 양이 사라진 그날 밤 대표단에는 도둑이 들었습니다.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뜬금없는 이리토 선생의 질문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그런 산중에 웬 도둑이란 말인가?
"도둑이요?산중에 무슨 도둑이 들죠?"
"흠,그날 밤 괴도둑이 들었습니다.단장님의 돈은 물론이고 아끼시는 갑옷과 칼,임명패가 사라졌죠.그리고 디넬 선생님께선 돈과 건틀릿,심지어 마차 바퀴까지 도난당했고요."
"무슨 도둑이 마차 바퀴를 훔쳐가죠?건틀릿?그것은 무기 아닌가요?그런 걸 왜......"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나의 물음에 이리토 선생이 잔뜩 굳어있던 표정을 조금 풀며 대답했다.
"지니 양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그리고 매우 실례라는 것을 알지만 그중에는 그날 밤의 도둑이 지니 양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생기지만......지니 양의 반
응으로 보건대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아......"
나는 라이가 곁에 없음에 감사했다.
혹여 라이가 곁에 있었다면 분명 '어라!마스터 그거 제가 흡수했잖아요,제가!' 라며 신나서 떠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랬다면 나도 뭔가 기억을 떠올렸을 테니 숨기려 해도 얼굴에 뭔가 알고 있다는 표정이 떠올랐을 터였다.
아무튼 내가 그날 밤 라이에게 했던 명령을 잠시 까먹은 것은 천운이었다.
"아무튼 좋습니다,지니 양.그동안 고생이 심했을 텐데 너무 피곤하게 한 게 아닌지 모르겠군요.우선 올라가서 쉬도록 하세요.또한 샤벨 용병단에 대한 사례는 차후 아카데미를 통해 하겠습니다."
"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리토 선생님.그리고......제가 샤벨 용병단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는 것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아,가능하다면 제 이번 달 용돈은 그 사례로 함께 전해주셨으면 합니
다.빚진 것이 있거든요."
"회계과에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이만 푹 쉬도록 하세요.내일은 이 도시를 떠나야 하니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이리토 선생님,디넬 선생님,그리고 제 5기사단 단장님이신 토넬 경."
꾸벅 인사를 마친 나는 방을 나섰다.
제 5기사단이라는 말에 힘을 조금 주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커,커거걱.커걱......"(처음에 목에 졸려 숨을 못 쉬는줄 알았습니다만......)
찰싹!
"풉!"
한참 단잠에 빠져 있던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부스스 일어났다.
아침 명상을 위해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일과였다.
라이는 훌륭한 자명종 역활을 해주었고 말이다.
[마스터!오늘은 푹 주무신 것 같군요.]
"으음......침대가 좋으니까 잠이 잘 오네."
흐느적거리며 침대 밑으로 내려와 몇 걸음 떼자니 나를 따라 기어오는 라이가 보였다.
[그렇습니까?저는 땅이 가까울수록 더 편한데요.]
"그래,그래.하~암 얼른 명상하고 다시 자야지."
창문을 열고 그 밑에 앉아 눈을 감자니 다시 잠이 오는 듯했다.명상을 하기 위해 감은 눈이 나를 잠의 세계로 인도했다.
[엥!마스터?일어나세요.마스터!]
"쓰읍,일어나긴 뭘 일어나!마치 내가 졸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라이."
새어나오려는 침을 가까스로 추스른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라이는 뱀 주제에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마스터......분명 조셨는데?]
"아니거든."
[맞는데......]
에잇,라이 녀석!아니라면 아닌 줄 알 것이지 쓸데없이 따지기는!
"맞을래?"
[잘못 봤나 봐요,마스터.]
"그래,그러니까 앞으로는 눈 가늘게 뜨지 마라."
[네,마스터.]
라이의 대답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흐아암.그나저나......정말 졸리다."
명상에 앞서 밀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나는 산과 산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오늘 아침 메뉴는 뭘까,라는 생각과 함께.
아침 명상을 끝내고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명상으로 인해 과도하게 상쾌해진 몸 때문인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얼마나 뒤척거렸을까?
결국 다시 몸을 일으킨 나는 바닥에 축 늘어진 라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음,오랜만에 라이에게 이 넘치는 애정을 나눠 줄까나!
"라이,이리 온."
[네?왜요,마스터?]
라이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동작도 재빠르게 침대 위로 올라왔다.
바닥을 스르륵 미끄러지듯 기어 침대 기둥을 타고 올라오는 그 동작은 영락없는 뱀의 것이었다.
나는 그런 라이를 쭈우욱 잡아끌어 무릎 위에 앉혔다.
잠자코 라이의 등이며 배를 쓰다듬어주자 라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떨고 그래,라이?"
[크흑!마스터께서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시다니......이 라이,감격입니다!]
"뭐야,라이!누가 보면 내가 매일 구박만 하는 줄 알겠다."
[......]
순간 또 다시 가늘어지는 라이의 눈동자.
나는 한 손으로 라이의 목을 잡아들었다.
"뭐야,꼬워?"
[아뇨!전혀요.전 충분히 행복합니다,마스터.]
"흐음......그럼 말고."
뭔가 불만인 듯한 라이의 목을 옥죄던 손을 풀고 다시 라이의 길쭉한 등을 쓰다듬다,문득 라이의 몸이 실제 뱀처럼 섬세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늘 색은 언뜻 보기에는 희뿌옇지만 자세히 살피면 비늘 하나하나가 맑고 투명했다.하긴 다이아몬드로 만든 것이니 오죽할까마는.
급할 때는 라이의 비늘을 하나씩......크큭,비상금이로군.
[가릉,가르르르.]
내가 다소 위험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라이가 고양이처럼 골골거리는 소리를 냈다.
딴에는 기분 좋다는 표현인 듯했다.
"라이,그 소리는 고양이가 내는 거야.너는 뱀이라고."
[하지만 기분이 좋은걸요.그럼 뱀은 뭐라고 하죠?샤르릉?]
"그냥 가르릉거려라,가르릉."
사실 내가 라이를 이래저래 많이 구박하는 건 사실이지만 나에게 라이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존재였다.
첫 번째 계약 상대이기도 했고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정령이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충실한 아이이기도 하고.뭐,간혹 엉뚱하기도 하고,꽤 얄밉기도 했지만.
[네 마스터,가르르르.]
여하튼 조금 더 애정 표현을 해주고도 싶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 쉽지 않았다.
차라리 운디네처럼 라이가 귀염성 있는 생김새였다면 조금 더 대놓고 귀여워해줬을지도.....
뭐,라이를 뱀으로 만든 건 나였지만,그 덕에 호신용으로 유용하니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라이를 주물럭거리고 있었을까?문득 라이가 말했다.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습니다,마스터.]
똑똑
라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군데?]
[여급인 것 같은데요.]
혹여 밖에 들릴까봐 속으로 물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 보니 창밖은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더니 손에 커다란 주전자를 든 여급이 들어왔다.
전에 있던 여관이었다면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을 텐데,역시 비싼 여관이라 문에 기름칠도 잘 된 모양이었다.
거울 앞으로 다가간 여급이 본래 놓여 있던 세숫대야 가득 뜨거운 물을 부었다.
보아 하니 옷도 이 여관의 유니폼인 것 같았다.이 정도면 격식 차리기로는 귀족 급이었다.
물을 가득 채운 여급이 문 앞에 서더니 말했다.
"아침식사는 1층과 2층의 식당에서 10시까지 제공되며 대표단은 떠날 짐을 꾸려 11시까지 1층 로비로 집합하시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아니요,수고하셨어요."
"그럼,실례하겠습니다."
공손히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여급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무릎 위에 있는 라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저 여급은 라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전에 같으면 여급들이 라이를 발견하고는 '꺄아악!' 하고 호들갑 떠는 모양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말이다.
전에야 라이의 몸이 검은색이라 한눈에 띄었지만 지금은 흰색으로 바뀌어 오히려 실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스터,방금 그 인간은 저를 못 본 걸까요?]
"음?하얀 침대에 하얀 잠옷이라 네가 안 보인 걸 거야."
[그렇군요.저를 발견하고 자지러지는 모양새들이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었는데요.](정령이나 주인이나......)
"라이,너는 역시 내 정령이라니까."
어쩜 이다지도 나랑 머릿속이 똑같은지,두려울 정도였다.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라이는 당연 마스터만의 것 아니겠습니까?푸헤헤헷!]
예뻐해 주고 싶기는 한데 말이지,으음......
다행히도 입을 옷은 가방 채로 마차에 놓고 갔었기에 그 가방에서 교복을 꺼내 입었다.
하얀 레이스 셔츠에 연갈색과 붉은색의 체크가 선명한 여자 교복은 몇 가지 마법이 걸린 것으로 잘 더러워지지도 않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데 탁월했다.
그리고 덤으로 리본에 붙어 있는 붉은 루비에는 추적마법이 걸려 있다고 한다.
내가 강에 빠질 적에 교복 차림이었다면 어제 같은 취조는 없었으려나?
라이가 허리춤에 단단히 감긴 것을 확인한 나는 문을 나섰다.
아침식사를 위해 2층으로 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을 나서고 몇 발자국 걷지 않아 전혀 반갑지 않은 상대를 만나야 했다.
보랏빛 머리의 소년은 나에게 '살인자!' 라며 소리쳤던 미리네였다.그 곁에 있는 레몬 색 머리의 소년은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