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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 들어온 남편 (75)화 (65/75)

75화

등산을 갔던 기 회장이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옷을 미처 갈아입지 못해 아래위로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기 회장은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무척 비싼 브랜드의 등산복이었지만 현란한 보색 대비 앞에서는 그 빛을 잃었다.

“희우가 골라준 옷이다. 멋지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현태와 눈이 마주치자 기 회장이 자랑스러운 듯 위아래 옷을 차례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희우 취향이네요.”

“희우하고 내가 패션 쪽으론 좀 통하는 것 같긴 하다.”

“네. 확실히요.”

현태는 말을 아꼈다.

고쳐지지 않을 거라면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게 나았다. 그나마 희우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옷차림은 점점 더 묘해졌다.

지금 보니 희우의 진심 어린 코디가 더해진 까닭이었다.

본인이 만족스럽다는 데 뭐.

그리고 저런 색을 입고 있어야 다른 사람 눈에 잘 띌 것 같기도 했다.

희우가 생각이 깊은 것이었구나.

전혀 의도치 않았던 희우의 속 깊은 생각까지 창조해 내며 현태는 또다시 감탄했다.

“독고희우 산모 보호자 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급하게 현태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태는 감전당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간호사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진통을 겪고 있는 건 희우였는데 왜 다리에 힘이 자꾸 풀리는지 현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만실에 들어간 현태는 제일 먼저 희우를 찾았다.

분만 준비를 끝낸 희우는 긴장되는지 다른 때보다 호흡이 무척 빨랐다.

“내가 옆에 있을게.”

“응.”

“고맙고, 미안해.”

진심이었다.

저와 진짜 결혼해 준 것도, 힘들게 아이를 가진 것도, 이렇게 혼자 고통을 겪게 해서 고맙고 미안했다.

“으으으으읍.”

잠시 잠잠하던 진통이 다시 시작되고 희우의 얼굴은 고통으로 얼룩졌다.

제 손을 꽈악 움켜쥔 희우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현태는 힘들어하는 희우를 보며 애가 닳았다.

희우가 반대했어도 끝까지 수술 하지고 할 걸 뼛속까지 후회가 됐다.

차라리 제가 아파줄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대신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우의 호흡이 다시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진통.

“으으으읍!”

희우의 어깨가 둥글게 말리듯 올라오고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끝이 나고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아기 머리 나옵니다!”

현태는 희우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입을 맞췄다.

부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산모님, 한 번 더 힘주세요!”

“으으으으윽.”

희우의 진통이 다시 시작되고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응애애애!”

희우는 지친 숨을 헐떡이면서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용을 썼던지 입술이 피가 다 맺힐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진통

두 번째로 같은 고통을 감내하는 희우를 보며 쌍둥이라고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스스로가 한없이 미워졌다.

“애애애애앵!”

드디어 두 번째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지친 희우가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현태는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 희우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희우는 웃고 있었다.

“나 해냈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래. 해냈어.”

희우의 눈에서 또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는 현태의 입가에도 안도의 미소가 걸렸다.

“가위 잘 잡으시고요. 탯줄 잘라주세요.”

두 개의 탯줄을 차례차례 잘라내자 빨간 아기들이 간호사들에 의해 빠르게 옆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응애애애애애!”

“응애애!”

두 개의 다른 울음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아들과 딸.

현태와 희우의 아이들이었다.

현태는 빽빽 울어대는 아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울컥 치미는 감정에 화들짝 놀랐다.

“희우야, 너무 수고했어.”

지친 아내는 핏기가 없이 파리했지만 그래도 예뻤다.

잠시 후 간호사들에 의해 어느 정도 닦인 아이들이 차례차례 희우와 현태의 품속에 안겼다.

“너무 작아.”

생각보다 너무 작은 아기들의 모습에 현태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너무 예뻐요.”

“그런가?”

현태는 진심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제 품에 안겨온 아기가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빽빽 울어대느라 얼굴은 빨겠고, 꼭 감은 눈은 퉁퉁 부어 마카롱을 박아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코도 어찌나 낮은지 울 때마다 조그만 코가 움찔움찔 움직였다.

작은 코에 콧구멍 두 개가 온전히 박혀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 아들도 보여줘요.”

희우가 현태의 품에 안긴 아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현태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희우의 품에 안겨줬다. 그리고 희우가 안고 있던 딸아이를 현태가 안았다.

여전히 못생겼군.

하지만 현태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아들을 보고서도 희우는 예쁘다며 눈물을 글썽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신기하기는 하네.

현태는 똑같이 못생긴 주제에 자꾸만 자신의 눈길을 뺏어가는 작은 생명체를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온전히 저에게 속한 생명이었다.

꼬물대는 아이들이 다시 간호사들에 품으로 옮겨지고 마무리가 된 희우는 병실로 옮겨졌다.

2.8kg, 2.9kg의 작은 아기들이었지만 신생아실의 어떤 아기들보다 우렁차게 울었다.

기 회장은 병실로 옮겨진 희우를 만나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경주에서 숙모님이 급하게 올라오고 계시는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신 희우가 안타깝고 가여웠다.

하지만 희우는 누구보다 씩씩했고, 어려운 일들을 보란 듯이 이겨냈다.

기 회장에게 희우는 자랑스러운 손주 며느리이지, 새로 생긴 손녀였다.

그것도 저에게 복을 가마니째 가져다준 귀한 손녀.

“몸은 괜찮은 게냐?”

기 회장이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물었다.

퉁퉁 부은 얼굴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네. 저 완전 괜찮아요.”

희우의 대답에 기 회장은 크게 안심하며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쌍둥이를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희우는 손가락도 퉁퉁 부어있었다.

잠시 희우의 손을 주물러 주던 기 회장은 입원실 문이 열리고 등장한 쌍둥이들의 모습에 영혼을 빼앗긴 듯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났다.

애벌레처럼 하얀 천으로 돌돌 말린 채 동그란 얼굴만 빠끔히 내놓은 아이들은 쥐콩 만했다.

고개를 조금씩 꼬물꼬물 움직이며 작은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폈다 하는 모습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지, 요놈들이 증조할아버지~ 하는 소리는 들어 봐야지.

잘하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중학교는 무리려나?

자꾸만 덩치를 키워가는 욕심에 기 회장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욕심내지 말자.

이 정도도 충분히 과하다.

지금은 그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기회장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동안 쌍둥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시간은 흘러 쌍둥이들의 돌잔치 날 아침이 밝았다.

희우는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늘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현태는 희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아내에게 집착했다.

사람 쓰는 걸 꺼리던 희우도 쌍둥이를 키우느라 지쳐 어쩔 수 없이 도우미를 들였고, 다행스럽게도 쌍둥이들을 정말 친자식처럼 잘 돌봐 주었다.

낮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뽈뽈대며 집 안을 돌아다니고, 기어 다니는 쌍둥이들은 밤이 되면 지쳐 곯아떨어졌고, 아침이 될 때까지 깨지 않았다.

그나마 희우가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돌잔치 날이라 마음이 바빠 희우는 다른 날보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등 뒤에서 허리를 안고 잡아당기는 현태 때문에 속절없이 다시 침대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제 일어나야 해요.”

희우가 제 배를 감싸듯 안고 있는 현태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지금 몇 시지?”

“여섯 시 반 정도 됐어요.”

희우는 몸을 일으키려 다시 힘을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오늘 돌잔치라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일찍 온다고 하셨어요.”

“몇 시에?”

여덟 시쯤에 온다고 했지만 차마 말은 못 했다.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며 현태가 덤벼들 게 눈에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 일곱 시?”

거짓말을 해서인지 저절로 말이 더듬어졌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희우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현태가 희우를 침대에 돌려 눕히고 빠르게 위에서 내려다봤다.

“도우미 아주머니 오신다니까요!”

“일곱 시라며.”

“그러니까요. 미리 씻고 준비를.”

“시간은 충분해.”

현태의 커다란 손이 희우가 입고 있는 티셔츠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제 옷을 벗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희우가 걸친 것을 벗겨냈다.

뭐든지 자꾸 하면 느는 법.

현태는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버린 희우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빛나.”

“이마가요?”

“아니, 독고희우 자체가. 내 삶에서.”

이렇게 예쁜 말을 하니 어쩔 수 없지.

희우는 하는 수 없이 현태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현태는 희우의 이마와 볼에 차례차례 입을 맞춘 후 둥글게 휜 예쁜 입술을 허겁지겁 머금고 오랫동안 음미했다.

매일 맛보아도 절대 질리지 않을 천상의 맛이었다.

침대 아래로 현태의 잠옷이 차례차례 떨어지고, 환하게 밝은 침실에는 어느덧 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와 부드러운 살이 맞물리는 소리,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 고백만 가득했다.

참으로 완벽한 아침이었다.

<굴러 들어온 남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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