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러 들어온 남편 (64)화 (54/75)

64화

“미친년이네, 이거.”

남후가 명함을 들고 한참을 낄낄거렸다.

간만에 만난 참신한 미친년이라 한동안 남후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우리 희우, 끄윽! 끄윽! 난자를, 크크큭…… 갖고 싶다? 왜?”

남후는 숨이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건 알 필요 없잖아. 당신은 그냥 나한테 필요한 걸 주고, 당신이 원하는 그 여자 데리고 가면 돼.”

“그걸 여기 가서 해라?”

“응.”

“뒷일은?”

“벌써 이야기 끝났어. 협조해 줄 거야.”

“협조하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알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예전의 순한 얼굴은 어디에 버렸는지 잔뜩 건들거리던 남후가 말을 멈춘 채 수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커다란 눈 정 중앙에 기이하게 자리 잡은 검은 동공이 탁하게 번들댔다.

“이러면 내가 돈이 더 필요해질 것 같은데.”

“당신도 손해 볼 것 없는 일이잖아.”

“아니지. 위험 부담이 늘어나는 일이지. 우리 희우 몸에 손을 대는 건데. 그건 내가 좀 께름칙해서. 우리 희우 몸에 상처 내기 싫거든.”

남후가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마름모꼴로 세운 후 다른 손가락으로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렸다.

“난 우리 희우 데리고 일본으로 갈 거야. 거기 이미 희우랑 살 집 마련했어.”

“그래? 잘됐네.”

“그러니까 협조 좀 더해 주지? 내키지 않으면 네가 직접 희우 데리고 가서 난자 뜯어내든가.”

남후가 피식피식 웃으며 한 말에 수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저가 하려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키기엔 늦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현태가 원하는 건 그 빌어먹을 집구석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일 뿐이야. 독고희우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거야.

“얼마를 원해?”

“흐음……. 글쎄. 간단하게 여기 동그라미 하나만 더 붙일까?”

“뭐? 이런, 미친! 나한테 그런 돈이 어디 있어?”

“그래? 그러면 하는 수 없지. 그동안의 우리 정다운 대화를 기현태, 그 새끼한테 보내는 수밖에.”

남후가 녹음 중이라는 글자가 뜬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싱글벙글 웃었다.

* * *

“맛있어?”

숨도 쉬지 않고 쌀국수를 흡입하는 희우를 보며 현태가 물었다.

희우는 맛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면발을 후루룩 빨아올렸다.

현태는 원래 음식을 급하게 먹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희우는 현태가 평소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유형의 사람들과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희우를 향한 맹목적인 이 감정이 현태는 낯설고 의아했다.

처음엔 그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들이었다. 그저 환심을 사기 위해서 내키지 않은 장소에 가서 음식을 먹었고,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봤다.

희우는 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 적도 없었다. 오히려 저를 밀어내지 못해서 안달이었지.

“맛이 없어요?”

먹지 않고 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현태를 보며 희우가 물었다.

혹시 떡볶이 때처럼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인데 억지로 저 때문에 먹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아니. 맛있어.”

현태는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고 벌써 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운 희우는 포만감을 느끼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시원한 물을 마셨다.

“키스 다음 단계를 가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풉!”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희우가 마시던 물을 뿜었다.

“헉! 미안해요. 음식엔 안 들어갔어요. 바로 앞에만! 그러게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면 어떡해요?”

사레 때문인지, 기함할 만한 질문 때문인지 얼굴이 벌게진 희우가 황해하면서 행주를 들고 와 테이블을 닦았다.

“나한테는 급한 일이라.”

현태가 씨익 웃으며 한 말에 희우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딴 곳으로 고개를 급하게 돌렸다.

“방법을 알면 좀 알려주지.”

“아니, 그게 수학 공식도 아니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희우는 살다 살다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그럼 독고희우 씨도 모르는 그 단계를 나한테 강요한 건가?”

“강요라니요. 그게 아니라…….”

당황해하며 손까지 젓는 희우를 본 현태의 입술 한쪽이 보기 좋게 올라갔다.

그제야 현태가 장난한 거라는 걸 눈치챈 희우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분이 좋아진 현태는 다시 쌀국수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샤워까지 끝냈지만 현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저 유리문만 통과하면 원하는 게 있는데 그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게 서울에서 창원까지 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하아!”

자는지 벌써 불이 꺼져 깜깜한 희우의 방을 바라보며 현태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잠이 안 오긴 희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현태 방 쪽으로 돌아눕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꼭 운동장 전력 질주를 한 사람처럼 숨이 차기도 했다.

키스를 잘하긴 하더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몸도 좋던데……. 야, 야, 정신 차려. 벌써 이렇게 넘어가면 어쩌자는 거야.

뭐 어때. 법적으론 벌써 부부인데. 네가 그랬잖아. 껍질뿐인 사이라고. 절대 기현태를 좋아할 리 없다고.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잖아? 그럼 싫어?

희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신없는 질문에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러다가 정말 날밤을 새울 것 같았다.

희우는 의식적으로 벽 쪽을 향해 돌아누운 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숨을 천천히 쉬면 금방 잠이 든다고 했어.”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희우는 명상을 하듯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다른 생각을 떨쳐 버리려 숨 쉬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그때였다.

쿠당탕탕!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희우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바닥에 떨어진 스탠드를 줍던 현태가 뒤를 돌아 문간에 서 있는 희우를 발견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세워 놓았던 스탠드를 팔로 쳐서 넘어간 것이었다.

“이게 넘어가서.”

“안 다쳤어요?”

희우가 성큼성큼 다가와 현태의 손을 살폈다.

“전구가 깨진 건 아니네요. 다행이다.”

“네가 먼저 만진 거야.”

“예?”

희우가 얼빵한 얼굴로 잡고 있던 현태의 손을 얼른 놓았다. 아니, 놓으려고 했다.

현태가 움켜쥔 희우의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댔다.

손바닥에 닿은 그의 입술은 열에 달뜬 사람처럼 뜨거웠다.

촉, 촉.

손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서 나는 소리에 희우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은 이제 희우의 손목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현태 씨.”

현태가 고개를 들고 희우를 가만히 응시했다.

넘어진 스탠드에서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현태의 표정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까만 그림자 안에서 더 까맣게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만 보일 뿐이었다.

“독고희우.”

현태의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예쁘게 느껴졌다.

희우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어두운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심장이 튀어 나갈 것처럼 요동을 쳤지만 반대로 온몸은 무거운 물을 머금은 솜처럼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의 입술이 향한 곳은 희우의 목덜미였다.

숨을 크게 들이켠 후 다시 내쉬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희우는 한참 동안 그대로 얼어붙은 채로 있었다.

그의 입술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제 현태는 희우의 귓불을 지분거리다 천천히 그가 집착해 마지않는 희우의 입술을 담뿍 머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따뜻한 숨결에 미치도록 달았다.

몰아붙이는 거친 숨결이 버거운 희우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현태는 끈질기게 따라붙어 다시 앗아갔다.

“하아…… 하아…….”

희우가 숨을 몰아쉬었다.

붉게 달아오른 볼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녹아내릴 듯 부드러웠다.

이미 눈에 보이는 곳엔 모두 입을 맞춘 현태가 희우를 붉게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곳에 키스할 거야.”

희우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할딱대는 희우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현태가 망설임 없이 희우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겨 냈다.

현태는 집요했다.

지칠 대로 지친 희우를 어르고 달래가며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거듭 안았다.

“나 진짜 너무 졸려요.”

“알아. 금방 끝내.”

“아까도 그 말 했잖아요.”

“이번엔 진짜야.”

“이 사람이 진짜!”

하지만 그 뒤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현태가 예쁘게 칭얼대는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희우의 나신을 현태는 남김없이 맛보았고, 자신의 품 안에서 바르작대는 작은 몸뚱이를 한 시도 제 몸에서 떼 놓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현태는 이상하게 더 갈증이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희우를 재우지 못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독고희우는 철저히 자신의 소유였다.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고, 그 어떤 순간도 나누어 줄 수 없는 완벽한 자신만의 것.

현태는 새근새근 들려오는 숨소리에 지독한 만족감을 느끼며 희우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잠이 깬 새벽에도 끊임없이 부드러운 살에 자신의 체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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