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독고 샘 남편이 오늘 운전해 주기로 하셨다면서요?”
“와~ 그런데 준환 샘은 독고 샘 결혼한 거 알고 계셨어요?”
“아니요,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어요. 미영 샘은요?”
“저도요. 여기 모두 오늘 처음 알았을걸요?”
약속 장소에 미리 나온 동료 교사들이 아침에 새로 접한 따끈따끈한 소식을 얼떨떨한 심정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들 앞으로 까만 외제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평소에 차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준환은 자신들 앞에 선 차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알고 있던 걸 자랑하듯 말했다.
“우와, 이 차 한 대에 삼억도 넘는 거 아세요?”
하지만 그들은 호응은커녕 눈만 커다랗게 뜬 채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준환이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막 차에서 내린 희우를 발견했다.
“우왓! 이거 독고 샘 차예요?”
준환이 놀란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내 차는 아니고, 남편 차.”
희우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누가 들어도 어색한 웃음소리를 하하, 냈다.
이럴까 봐 현태를 데려오지 않으려 했던 건데.
“반갑습니다.”
어느새 차에서 내린 현태가 희우의 동료 교사들에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대박.”
“헐.”
“오 마이 갓.”
현태를 본 동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감탄사를 뱉었다. 차를 봤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에 희우는 어쩐지 쥐구멍으로 숨고만 싶었다.
“독고 샘! 남편 완전 잘생겼잖아요!”
그중 특히 속에 있는 말을 가감 없이 잘 뱉는 우정이 희우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반갑습니다. 저 독고희우 샘이랑 같은 학년인 왕우정이라고 해요.”
우정은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을 뽐내며 현태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녀를 선두로 해서 차례차례 인사를 끝낸 동료 교사들이 이젠 희우를 경외감에 찬 시선으로 바라봤다.
“우리 출발해야 하지 않아요?”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려 희우가 시간을 확인하는 척하며 물었다.
그제야 오늘 모인 목적을 떠올린 사람들이 후다닥 두 팀으로 흩어졌다.
“와, 차 진짜 좋다.”
뒷좌석에 앉은 우정의 감탄하는 말에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러운 눈빛으로 희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어쩐지. 독고 샘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다고 했어요.”
“에엥? 미영 샘은 맨날 독고 샘 옷 못 입는다고 대놓고 뭐라 했잖아요.”
“그거야, 좋은 몸매를 이상한 옷으로 덮으니까 그랬지. 솔직히 희우 샘이 빠지는 얼굴도 아니잖아.”
“하긴. 신은 공평해요. 독고 샘에게 모든 걸 허락하셨지만 옷 입는 센스는 안 주셨으니. 그나마 좀 위로가 되네요.”
뒷좌석에 앉아 대 놓고 자신의 패션 센스를 디스하는 동료 교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희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헐. 내 옷이 어디가 어때서?”
“솔직히 희우 샘, 체크 블라우스에 체크 바지, 꽃무늬 치마에 왕 꽃무늬 티셔츠는 아니잖아요.”
“왜? 다 깔 맞춤한 건데.”
희우가 고개까지 뒤로 돌리며 열변을 토했다.
“그뿐은 아니었지. 핑크 청바지에 진 핑크 티셔츠도 있었어.”
“아, 맞다. 그건 좀 충격이었지.”
“왜? 애들이 그날 얼마나 예쁘다고 칭찬 많이 했는데.”
“네. 그런 걸로 쳐요.”
우정과 미영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에 희우가 거품을 물며 대응했다.
세 사람의 대화를 듣는 현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적어도 저 두 사람이 희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가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 * *
결혼식장은 하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와~ 손님 진짜 많다.”
“이슬 샘이 넷째라고 했나? 어쨌든 그렇고 친인척도 많아서 식구들만 모아도 예식장 꽉 찰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더니 정말 그러네. 손님이 이렇게 많은 결혼식장은 또 처음이네요.”
뒤늦게 도착한 동료들도 북적이는 결혼식장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래서는 결혼식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신부 얼굴은 보고 와야겠죠?”
우정이 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신부 대기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희우는 이슬의 결혼식을 보며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삭막했던 자신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친구도, 직장 동료도 부를 틈 없이 급박하게 진행됐던 결혼식.
설렘보다는 막막함과 비장함이 짙었던 묘한 결혼식.
당연히 신부 대기실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일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입장하고, 조용히 퇴장해서 그대로 집에 돌아온 결혼식이었다.
“무슨 생각해?”
현태가 아까부터 말이 없는 희우를 보며 물었다.
사실 현태도 이렇게 북적대는 결혼식은 처음이라 살짝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우리 결혼식과는 많이 다르네, 이런 생각?”
“그렇긴 하지.”
“좋네요. 사람 냄새나고.”
어쩐지 쓸쓸한 말투라 현태는 괜히 심장이 덜컥댔다.
왜지?
희우가 지나가듯 한 말에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동시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별말도 아닌데 이상했다.
“우리도 다시 할까?”
현태가 스스로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물었다.
희우는 걷던 걸 멈추고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진심이에요?”
“네가 원하면?”
희우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대답도 하지 않고 보여준 미소 한 자락에 빠르게 식었던 체온이 제 자리로 허겁지겁 되돌아 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와! 이슬 샘! 너무 예쁘다!”
신부 대기실로 들어간 일행들이 호들갑을 떨며 신부 옆으로 호다닥 달려갔다. 그렇지 않아도 청순한 이슬의 미모는 웨딩드레스를 입어 폭발하는 중이었다.
“선생님! 너무 멀었죠! 어떡해요. 진짜 피곤하시죠.”
이슬은 평소 사서 걱정하는 성격답게 동학년 교사들을 보자마자 걱정부터 태산처럼 늘어놓았다.
“백번 피곤해도 와야지. 우리 이슬 샘 결혼식인데.”
“맞아요. 축하해요! 유부녀 된 거!”
“축하할 일 맞는 거죠?”
“지금 그게 신부 앞에서 할 말이에요?”
누가 꺼내는지도 모르는 말들이 앞뒤 순서 없이 튀어나오고, 뭐가 즐거운지 말하는 내내 그들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현태는 동료 사이에 끼어서 환하게 미소 짓는 희우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신부를 바라보았다.
결혼식 날 희우는 어땠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아…….”
근본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현태의 목을 죄어왔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 하는 날, 현태는 신부를 내버려 둔 채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4년 만에 나타나서 했던 말이 고작 아이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희우가 왜 그렇게 저를 보며 펄떡 뛰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아참, 희우 샘 남편분이랑 같이 왔잖아. 저기 서 있는 남자분 보여?”
우정의 호들갑에 희우의 얼굴이 괜히 붉어졌다. 마치 공부 잘하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친구가 대신 여기저기 자랑해 주는 기분이랄까.
“어머? 저기 서 계신 잘생긴 분이요?”
이슬이 현태를 발견하고 물었다. 현태는 이슬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묵례한 후 그들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현태가 점잖게 꺼낸 말에 이슬이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다시 왁자하게 시작된 그들의 수다 속에서 현태는 살짝 피로감을 느꼈지만 어쩐지 여기 따라온 게 잘한 일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려갈 때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동료들과 쉴 틈 없이 떠들던 희우는 서울로 올라갈 때는 얼마 안 가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고개가 옆으로 꺾여서 자는 희우가 불편해 보였다.
뒷좌석을 슬쩍 살피니 두 사람은 휴대폰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수석 의자를 조금만 뒤로 젖혀도 될까요?”
현태의 낮고 굵은 목소리에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독고 샘 주무시나 봐요.”
우정이 속살거리자 현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와, 살벌하게 잘생겼네.’
우정이 속으로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지이이이잉.
희우가 깰까 봐 천천히 등받이를 내리는 현태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현태는 동학년에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깃거리를 투척한 지도 모르고 앞을 응시하며 운전하는 데 집중했다. 여전히 희우의 숨소리가 제일 듣기 좋았다.
* * *
정신없이 자던 희우는 문득 든 기시감에 눈을 번쩍 뜨고 좌우를 살폈다.
여기가 어디지?
몇 초간 차 안을 둘러보던 희우는 운전석에 앉아 눈을 감은 채 기대어 앉아 있는 현태를 보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결혼식에 같이 가다니.
진짜 부부라도 된 듯해 희우는 기분이 이상했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뿌옇게 뚫고 들어와 현태의 옆얼굴을 비췄다.
그렇지 않아도 오뚝한 현태의 콧날이 가로등 빛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 때문에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진짜 코 높네.”
희우는 현태를 유심히 살핀 후 천천히 그의 콧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손끝에 닿은 그의 서늘한 콧방울이 어쩐지 신기해 몇 번 톡톡 두드렸다.
잠이 푹 들었는지 눈도 깜짝하지 않아서 희우는 좀 더 대담해지기로 했다.
희우의 손가락이 그의 또렷한 인중을 지나 단단하게 다물린 윗입술에 닿았다. 얇지도 두툼하지도 않은 그의 입술은 그린 듯 선이 선명했다.
신이 이 남자를 만들 때 가장 공들여 만든 부분이 입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쁜 입술이었다.
“입술도 예쁘고.”
저보다 코도, 입술도 더 예뻐 어쩐지 심술이 났다. 동시에 그를 보자마자 턱이 빠질 듯 놀라던 동료 교사들의 표정도 떠올랐다.
“쳇!”
그대로 손을 거두어 가려던 찰나 현태가 눈을 뜨고 희우의 손을 움켜쥐며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속 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