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해가 저물어 갈 무렵, 황성 밖은 난리가 났다. 드디어 황성에서
마녀의 처형을 결정한 것이다. 벽보가 이곳저곳에 붙자 사람들은
몰려들어서 마녀의 처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백성들은 붙여 놓은 벽보로 몰려들어 손가락질을 하고 소리를
높였다. 대충 요약하자면 마녀의 죄를 확인했고,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는 말이었다. 방법은 먼저 목을 치고 삼 일 동안
효수한 뒤. 사체를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적혀 있었다.
“대체 누가 이리 정한 것인가. 잔혹하기 짝이 없군!”
“잔혹? 자네 잔혹이라 했나? 흥! 마녀 주제에 이 정도면
황제께서 자비를 베푼 것이지. 그 마녀가 제국에 끼친 폐가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렇다면 마녀가 부렸다는 술수가 정확히 무엇이지?”
우글우글 모여든 사람들 중, 망토를 뒤집어쓴 젊은이가 나직이
물어 오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함을 긁적이던
이들은 무어라 똑 부러진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마녀가 술수를 부리는 걸 본 적도 없으며, 정확히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손꼽기도 그랬다.
그들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껄끄러운 존재를 향한화풀이일 뿐이라는 걸.
“뭐. 뭐 그것이 손에 꼽을 수 있는 문제인가. 워낙에
광범위하니! 어쨌든 우리 삶은 더없이 황폐해졌다고.”
“ 맞아!”
거나하게 술에 취한 남자가 버럭 소리치자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급히 동조했다. 진득한 감정을 떼 내려는 듯 어딘가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젊은이에게 면박을 주려 그를 찾았을 때, 이미 젊은이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뭐야. 벌써 가 버린 건가? 젊은 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헛소리를 하고 말이야. 쫏……!”
그런 결말로 치달은 소문은 수도를 넘어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곧 제국 전체가 들썩였고, 부득불 마녀의
처형을 보겠다며 멀리서 짐을 꾸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슬럼가 깊은 곳에 숨죽이고 있던
히폴로테스는 이를 악문 채로 저벅저벅 골목을 누볐다. 검은
머리칼과 선명한 녹색 눈동자. 어울리지 않는 표독스러운
미소까지.
에즈라가 아닌, 마녀의 얼굴을 그려 놓은 벽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치미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커다란 목조 건물로
들어선 히폴로테스는 떼어 가져온 벽보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다른 병사들이 머무는 건물로 발길을 돌리려던 히폴로테스의
앞을 카코스가 가로막았다. 초조함을 지우지 못한 카코스는
히폴로테스를 간절하게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말미를 주지 않습니다. 시프나드는 아무래도 저희와
뜻을 같이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시잖습니까.
아브타크는 이미 슬럼의 움직임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저희보다
앞서 움직일 것입니다.”
“끝까지 가 보지 않고서는 모르지.”
“이대로 계획을 감행하신다면 정말로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히폴로테스 님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저는
그저……:’
“알아. 네가 하려는 말이 뭔지 잘 알겠어.”
안다는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카코스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착잡한 심정을 내보였다. 그는 기어코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에즈라, 그 여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최대한 지켜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는
것밖에는 없었다. 카코스가 다시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라
말하려던 찰나. 그는 히폴로테스를 똑바로 마주 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카코스, 내가 에즈라를 위해 죽는다면 그건 희생이
아니야.”
“……희생이 아니면, 제물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를 알면서 모르는 척 물었다. 투정 아닌 투정에 히폴로테스는
선뜻 경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야 마지막 용기일뿐이지.”
이리 말하면서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지금의 나는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에즈라를 지키지 못할까 보느 끝내 너를 구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를까 보느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너를 세상에 남겨
두고 홀로 떠나야 할까 보느
이토록 이기적이고 약해 빠진 내게 남아 있는 건 그나마
용기뿐이어서 용기를 낼 거다.
그 한마디에 카코스는 당혹감을 숨기려 부산스럽게 굴었다.
그러다가 그는 곧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다. 아아, 생각해 보니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날의 남자를 닮았다.
티텐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 날. 자신이 만들어 낸 행운이라며
즐거이 웃어 보이던…… 그 자신만만한 나의 주군과.
카코스를 뒤로한 히폴로테스는 자신이 머무는 건물을
빠져나와 독립군이 모여 지내는 근거지로 들어갔다. 그가 기별
없이 찾아오자 무기를 손질하거나 에즈라가 그려진 벽보를 보며
잡담하던 그들은 한껏 긴장한 얼굴로 히폴로테스를 향해 예를
갖춰 보였다.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히폴로테스는 입을 떴!다.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너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눈앞의 적을 베면 된다. 너횐 자랑스러운 티텐의
독립군이니까.”
그는 한결같이 말했다. 자신의 목숨을 가장 우위에 두고 소중히
여기라고. 병사들은 불타오르는 혈기를 내리누르며 눈을 빛냈다.
“우리가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 그길로 곧장 진격해.”
“예!”
승기가 확실치 않은 싸움이다. 벅차고 힘든 싸움이 될 터였다.
허나 끝내 한 사람도 이탈하는 자가 없었다. 겁을 먹었으면서.
미래를 걱정하면서, 삶과 죽음을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신이 품은 사명과 소망. 살아남겠다는 다짐과 믿음. 그리고
누군가를 지켜 내겠다는 굳센 결으1. 갖가지 이유를 품은 채
그들은 닥친 일들을 회피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내 목표는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티텐을. 와스터를.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목적은 에즈라, 그녀였다.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거야.
히폴로테스는 들고 있던 검을 들어 보이며 매끄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수려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던 이들은 곧 하나, 둘,
자신의 무기를 들어 보이며 어설프게나마 함께 웃었다.
“마지막으로……약속을 지켜줘.”
누군가의 진심은 이성을 날리고 가슴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사람을 숭고하게 만드는 것은 늘 찰나의 감정이다. 그날, 그곳에
모인 이들은 그것을 경험했다.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내일 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그렇게 삼
일이 흘러. 마녀의 처형을 단 하루 앞둔 날 밤. 수도 중심에 위치한
아브타크의 성은 마치 태풍의 눈 속에 휩싸인 듯 고요했다.
곧 들이닥칠 마지막 무대를 즐기는 관객마냥 그는
태연자약했다. 어둠 속에 숨어 팔짱을 낀 채로 창밖을 응시하던
아브타크는 뒤에 선 살수에게 말을 건넸다.
“멍청하기 그지없어. 언제부터 그리 사리 분별이 흐려진 거지?
고작 굴러먹던 해적 따까리들로 내 사병들을 이길 수 있다 생각한
건가?”
살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브타크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어딘가 광기 서린.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서늘한 공기 사이로
공명했다.
그는 쉬이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즐겁기
그지없잖은가. 모든 일상이 무료해져만 가던 찰나, 제 잔혹성에
또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 뚝 떨어졌으니.
“웃기다니까! 웃겨! 멍청한 게 너무 웃겨! 그렇지 않나?
하하……!”
가슴을 쥐어짜듯 웃음을 토해 내던 아브타크는 한순간 웃음을
뚝 그쳤다. 무표정한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각상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나는 이렇게 허무한가.
아무리 자신에게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손에
얻었는데 왜 남는 것은 무료함뿐일까. 분명히 가졌는데. 마음껏
쥔 것을 휘두르는데도 어딘가 모자라다. 마치 구멍 뚫린 찻잔처럼
담아도 내려다보면 담겨 있지가 않아. 가져도 가진 것 같지 않은
허망함만 맴돌았다.
그는 들고 있던 금잔을 기울여 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물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내일이 마녀의 사형 집행일입니다. 슬럼 골목을 들쑤시고
다니던 병사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내일 계획을 감행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참알기 쉽단 말이야.”
살수는 복종의 의미로 고개만 숙여 보였다.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아브타크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네놈은 어떻게 생각하지?”
“ 예?”
“그놈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도박이나 다름없는 계획이라 생각합니다.”
“도박? 그건 어쩌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그가 또다시 킥킥거렸다. 금잔을 손에서 놓았다. 툭,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금잔에서 피처럼 붉은 포도주가 졸졸 흘러나와
양탄자를 적신다.
“거슬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칼잡이라는 놈이 전략에는 허술해서 어디 쓰겠나. 됐다.
미천한 출신이니 그럴 수 있지.”
“어찌할까요. 명을 내려 주십시오.”
자존심을 긁어내리는 말에도 그는 충성을 내보였다. 굳건한
믿음이 묻어나는 것이 퍽 기꺼웠다. 내버리는 게 아까울
만큼이나.
“얼마 전 이미 황성 병력 안에 살수들을 심어 두었다. 말이 잘
통하는 기사 단장 하나가 있어서 말이야.”
아브타크는 주제에 제1기사 단장이라는 놈을 떠올리다 짧게
조소했다. 고작 금화 몇 푼에 발발 기며 사병을 숨겨 주던 한심한
모습이란. 저열한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리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때때로 내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서.
“너는 남은 이들을 이끌고 황성 앞에서 놈을 막아라. 혹여라도
비집고 들어온다 해도 이미 덫에 걸린 것과 다름없으니 살살 하고
놓아줘도 돼.”
“비집고들어갈 일, 없을것입니다.”
아브타크는 단호한 대답을 내놓는 살수를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놈은 히폴로테스가 어떤 사내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리 입에 발린 말을 지껄일 수 있는 거겠지.
어쨌든. 자신과는 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장기말은 쓰다
내버리면 그만일 뿐. 그래 봤자 조금 아깝고, 덜 아까운 것의
차이인것이다.
“기대하지.”
그건 곧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기대가 되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놈을 짓밟을 수 있을지. 그놈을 망가뜨리고
나면…… 커져만 가는 가슴속의 구멍 또한 메울 수 있을지.
궁금했으니까.
[마녀의 사형일이 밝았다.]
[마녀의 죽음이 코앞이다.]
어린것들이 골목을 누비며 그리 외쳐 대는 통에 동요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격앙된 표정으로 성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점점 불어나는 사람들 탓에 성문을 향해 늘어진 줄은 엄청났다.
성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떠나지 못하고 뒤꿈치를
들어 보이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봐, 거긴 좀 보이긴 하는가?”
“아니. 전혀 보이지 않네. 온통 검은 머리통들뿐이니. 원.”
그런 풀 죽은 대화들이 오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걸음을 돌리는
이들도 늘어났다. 어차피 사형 장면은 보지 못할 테고, 끝나면
목을 효수한다 했으니 뒤를 기약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뿔뿔이 흩어지자 성문을 지키려 버티고 섰던 병사들도 한시름
놓았다.
그럼에도 아직 물러가지 않은 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을 막아 내며 엄한 경고를 내뱉으면 사람들은
찔끔하면서 뒷걸음질 쳤다가도 다시금 슬쩍 앞으로 되돌아온다.
“위험하니 모두 뒤로 물러나라! 곧 있으면 머리가 효수될 테니
기다리도록 해!’’
호위병들이 창을 휘두르자 사람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거나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착실히 명령에 따랐다. 그렇게 황성
밖 상황이 정리되어 갈즈음이었다.
“저기, 저게 뭔가?”
“ 응?”
위병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전차가 굴러가는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철컥거리는 쇠붙이 소리를 파악한 위병들은
목석처럼 굳었다.
“바. 바. 반란군……?”
“그럴 리가!’’
“우선 진정해라.”
한 위병이 쓰고 있던 투구를 부여잡은 채 중얼거렸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위병들은 딛고 선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한둘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성문 앞으로 질주하자 수도 거리는 금세
소란이 일었다.
“저게 다 뭐야!”
“반란이다! 반란군이야!”
“마녀를 구하러 온 반란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