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한편, 투옥된 에즈라는 서늘한 돌벽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간수들은 되도록이면 제 주변에 오지 않으려 했다.
감옥을 지켜야 하는 간수들이 저만치 물러나 있으니 독방은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간간이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나 구멍을 파고드는 발톱
소리만 날 뿐이다. 강한 척, 태연한 척했어도 곧 닥쳐올 죽음이
두려워져서일까. 에즈라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창살을
움켜잡았다.
감옥의 복도 끝자락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닌 듯해서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에즈라는 티 나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먼저 말을 건넸다.
“저…… 사형은 언제 집행되나요? 별다른 말은 없었나요?”
음성이 텅 빈 감옥 안을 울렸음에도 대답이 없다.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뗐다.
“아무도 없나요?”
있다는 걸 아는데. 여전히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완벽한
무시는 이토록 익숙한 것. 에즈라는 쓰디쓴 웃음을 흘리며
무릎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직 불꽃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 곁에 머물러 준다.
정말 뜬금없게도 무뚝뚝한 얼굴이 떠올랐다. 돌문을
아무렇지 않게 열고 무심히 다가와 주던 여자가. 팔짱을 낀 채
항상 움츠러들어 있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내려다보았지. 쯧,
혀를 차다가도 바닥이 차갑다며 은근슬쩍 걱정해 주었어.
“……마타리.”
사실 티텐으로 돌아가고 싶은지도 몰라. 내가 망가뜨린 것을
염치없게도 매일 그리워하고 있었어. 그래서 분명히 확신할 수
있다. 내 생에 행복한 순간을 꼽아 보자면…… 난 그때 분명
행복했다고.
그래, 죽음 앞에서 이렇게 그날을 떠올리고 있잖아.
그것마저도 모두 내 삶이었다. 아픔도 괴로움도, 고통과
절망뿐이어도 내 것이었어.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홀로 남아 한 가지만 기도했다. 당신이 미련을 갖고 나를
찾지 않기를. 만약 찾겠다 나선다면…… 그보다 내 죽음이 한
발짝 빠르기를.
“나를 용서해줘.”
입에 담는 것조차도 망설여졌던 마지막 애원. 이토록 힘없는
내가, 그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죄를 짓는 것밖에는
없었기에. 이 삶이 끝나기 전에 누구라도 내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해 주기를 바랐다.
부
“ 나와라.”
끝없이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꿈.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는다. 에즈라는 문득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다. 어렴풋한 인영이 불그림자에 일렁였다.
“끌어내.”
“예.”
흐린 눈을 깜빡이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는
동안 감옥 안으로 엉거주춤 들어선 간수들은 쭈뼛쭈뼛 손을
뻗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제 팔뚝을 부여잡는 게 우스웠다.
에즈라가 낮게 웃자 그들은 더욱 겁을 집어먹은 듯 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에즈라는 그저 그들을 따라 어둑한 감옥 복도를
말없이 걸었다.
“그리 겁먹지 않아도 돼요. 사실 저주할능력 따위 없어요.”
여전히 겁에 질린 이들을 흘깃거리던 에즈라가 중얼거리자
양쪽에 버티고 서 있던 간수들이 동시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적나라한 혐오가 깃든 눈길이 닿아 온다.
“거, 거짓말 마라! 마녀의 말을 믿을 것 같나.”
“거짓말 아니에요. 그리고 이렇게 꽁꽁 묶여 있는걸요. 이런
제가 할 수 있는 일 이 있을 리 없잖아요.”
에즈라는 자신을 동여맨 밧줄을 눈으로 가리키며 살풋 웃어
보였다. 그 미소를 마주한 간수들은 와락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가 미쳤나. 곧 죽을 여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괴이한 반응이 더욱 불쾌감을 주었다.
“……저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알아서 뭐 하게!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이제 죽으러 가는 건가요?”
아까와는 달리 말끝이 살짝 떨렸다. 그것을 알아챈 간수들이
입을 꾹 다물자 무거운 분위기가 모두를 짓눌렀다. 저벅저벅
앞서 걷던 기사가 지극히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조용히 해.”
옆을 지키던 이들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에즈라는 군말
없이 기사를 따라 지하 감옥의 계단을 오르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주변은 삭막한 공터였다. 그녀는 감옥이 자리한
바깥뜰에서 본궁 앞에 펼쳐진 안뜰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뜰에는 수십 명의 기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즈라가 안뜰로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다가와 그녀를 둘러쌌다.
혹여 같잖은 술수를 부릴까. 잠재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에즈라를 기사들에게 인도한 간수들은 뒤로
물러나 그녀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생각보다 더 사람 같았어.”
“그렇지?”
“응. 조금 거북할 만큼.”
곁에 서 있던 병사 역시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처연한 미소를 띠며 저주할 줄 모른다 말하는 여자는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기에.
“저기 말이야. 저 여자가 마녀가 아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기는, 그냥 그런거지.”
그래, 그냥 그런 것이다. 그래 봤자 고작 여자 하나. 이런
곳에서 누명을 쓰고 죽는 건 꽤 혼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이런
일은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간수들은 멈춰 선 채 그 자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에즈라는 푹신한 잔디를 밟다가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성문 앞으로 향하는 길의 중간
즈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보석이 달린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장인이 공들여 만든
부채를 든 귀족들. 그들 사이로 난 황제의 길 끝에는 그때와는
다른 황제가 자리한 채였다.
“폐하, 명을 받들어 죄인을 데려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귀족들은
에즈라의 등장과 동시에 대놓고 큼큼, 헛기침을 해 댔다.
그러면서도 자신과는 눈이라도 마주칠까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경멸스러웠다. 에즈라가 입꼬리를 비틀자 시프나드는 짐짓
다부진 어투로 명령했다.
“죄인을 가까이 끌고 와라.”
“예.”
숨통이 막힐 정도로 가슴팍을 죄어 오는 밧줄. 그 끝을 잡은
기사가 에즈라를 배려 없이 잡아끌었다. 마치 가축처럼 매어 그
뒤를 따르던 에즈라는 비틀거리다가 결국 길의 중간에서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
무릎이 깨진 듯 얼얼했고 바닥을 짚은 손은 모래 알갱이에
쓸려 쓰라렸다.
몸을 비척이며 제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여기저기서 꽂혀
드는 시선에는 무수한 감정들이 섞여 혼잡했다. 단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 될 수 있으면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두 번 다시 저 같은 것을 마주하지 않도록.
“너는 와스터를 멸망시키 려고 술수를 부렸다. 맞는가?”
물음에 대답할 새는 없었다.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기도 전에
아브타크의 곁을 지키고 서 있던 귀족 하나가 목청을
높였으니까.
“굳이 들어 볼 이유가 없습니다. 저, 저 마녀는 그 날
방만하게 알현실로 쳐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제 입으로 죄를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와스터를 멸망시켜 버리겠다고요.”
“맞습니다. 자신은 악랄한 마녀라며 외쳤습니다!”
“당장 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물꼬를 튼 듯 여기저기서 비겁한 외침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 분위기는 순식간에 흐트러졌고, 시프나드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에즈라는 끝끝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그렇게 빌었건만. 제발 지금만큼은 그녀가 자신에게 손을
뻗어 주기를. 나를 원한다 말한다면, 내 곁에 남기를
택한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너를 살리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할수 있는데.
“명령을 내리시지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입을 닫아라.”
시프나드는 뱀처럼 비열한 아브타크를 향해 읊조렸다. 그의
음산한 중얼거림에도 아브타크는 눈썹을 들썩이며 여유 만만한
태도를 고수했다.
“명을 내리신다면 재상인 제가 나서서 선언하겠습니다.
폐하께는 퍽 괴로울 일일 것 같으니.”
“아니. 내가 직접 하겠다.”
그 신경전을 끝으로 시프나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귀족들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시프나드를
지켜보았다. 높은 곳에서 명령 한마디면 될 것을 그는 굳이
마녀의 코앞까지 다가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추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아마 이 속삭임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애달픈 얼굴 역시 그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는 것.
“네가그보다 나를 먼저 만났더라면, 너는 나를 사랑했을까?”
간단한 물음에 아득한 예전 일을 떠올리고 말았다.
언제였는지조차 어렴풋한 어느 날, 함께 침상에 바로 누운 채,
그는 애처롭게 제 손을 꼭 감싸 쥐었었다.
‘왜 나를 사랑하지?’
히폴로테스의 물음은 조금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마치
어린것이 투정을 부리듯, 허나 확신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슴 가득 불안을 떠안은 남자에게 분명 그리 답했었다.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 대답에 기쁘게 웃던
당신이 너무 선명해. 안도하며 나를 품에 안아 주던 그 온기
또한 나를 감싼 채 떠나지 않아.
‘나도, 나도 사랑할 게 너밖에 없더라.’
상처투성이 손으로 나를 쓰다듬어 주던, 그 안온한 품에서
그제야 깨달았다. 내겐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러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내게 모든 걸 앗아
간 당신이, 내게 남아 있는 단 한 가지인걸.
“이런 물음은 의미가 없어요. 이미 그를 사랑해 버린걸요.”
뒤늦은 대답에 시프나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귓가에
속삭이던 남자는 어디 가고 차갑고 냉혹한 군주가 되어 그는
뒤를 돌아 빠르게 멀어져 갔다.
“명을 내린다.”
냉엄한 목소리는 주저함이 없었다. 꽉 쥔 주먹을 숨긴 황제는
선언했다.
“마녀를 사형에 처한다. 그 목을 잘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효수하라.”
“예!”
“사형 집행일은 사흘 후 이와 같은 시간, 같은 곳이다. 늦지
않게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이어진 명령에 주변을 지키고 서 있던 기사들은 각 맞춰
경례를 한 뒤 에즈라를 둘러쌌다. 가장 직위가 높은 이가 그녀를
험하게 일으켜 세운 뒤, 등을 떠밀었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에즈라를 한참 바라보던 시프나드는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귀족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자 시프나드는 성가심을 내비치며
물러가라 손을 내저었다.
명령을 끝으로 귀족들은 우후죽순 황성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널따란 안뜰에 홀로 남은 시프나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 자리에 았아 있기만 했다. 그런 그의 곁을 기사
하나가 남아 보좌하고 있었다.
“진짜 황제로 만들어 줬어.”
전할 수 없는 말은 허공에 하릴없이 흩어졌다. 닿지 못해
의미 또한 잃어버린 채로.
남자의 중얼거림에 곁을 지키고 있던 기사 하나는 내리뜬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이내 살짝 올린 시야에 남자의 서글픈
미소가 걸렸다.
“……너 없는 자리는 필요 없는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던 황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스쳐 지나가기 전, 거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손을 기사의 어깨에 툭 언었다.
“네가 잘 처리해 줄 거라 믿는다.”
“예,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