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히폴로테스님!”
“어디 계십니까!”
푹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횃불을 든 카코스와
데몰레온이 새까맣게 넘실거리는 강물을 비추며 저를 부르고
있었다.
“이쪽이 맞는 거야?”
“물살이 이리로 내려가고 있으니까. 동굴에서 떨어지셨다면
분명 이쪽으로 흘러가셨을 거다.”
“젠장! 그런데 왜 안 보이는 거냐고!”
데몰레온이 신경질을 내며 발을 구르든 말든, 히폴로테스는
홀로 자신을 발견한 제논과 눈을 맞추었다. 그가 들고 있던
횃불이 강물에 비쳤으나. 물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히폴로테스님. 여기 계셨습니까.”
“……어떻게 찾았어?’’
“ 예?”
제논은 텅 비어 버린 붉은 눈동자를 보며 잠시 할 말을
찾았으나 건넬 말이 없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으니까.
“이렇게 넓고 깊은데. 어떻게 나를 찾았냐고.”
홀딱 젖은 그의 목소리 끝이 떨려 온다. 물론 한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리숙한 몸짓으로 머리를 긁적이던 제논은 정중한
태도로 그에게 손을 뻗었다.
“강물이 찹니다. 물살도 점점 세지고 있습니다.”
“나는 못 찾겠어.”
“아무리 불러도, 계속 헤맸는데도 못 찾겠어. 어디로 갔는지.”
무덤덤한 말투에 제논은 히폴로테스를 살피며 입술만
달싹였다.
“너는 알아? 날 찾은 것처럼 찾을 수 있겠어?”
“……히폴로테스님.”
“그럼 좀 찾아주라.”
그가 찾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역시
제논은 대답하지 못했다. 못하겠다는 말이 나올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히폴로테스는 급히 말을 이었다.
“제발 찾아줘.”
그 어느 때보다 갈망하는 눈이었다. 죽음을. 황위를, 그리고
삶보다. 어쩌면 그가 손에 넣은 모든 것보다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제논이 할 수 있는 건 소리 없이 절망하는 것
정도였다.
떠밀려져 허공을 부유하던 그 순간, 무어라도 잡히길 원하며
손을 뻗었다. 물론. 살고 싶어 한 행위는 아니었다.
그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사방에서 지옥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진동하던 그날. 죽겠다며 돌탑에서 뛰어내릴 때는 언제고.
들이닥친 두려움에 무너져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었지.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게 허망하게 느껴지던 그 찰나의 순간, 그는 달려와
주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얼굴을 해서는 들고 있던
칼조차 내버린 채로. 그리 달려와 손목을 움켜쥐었었어.
허나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고심하고 또 고심하다가 슬쩍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그 누구도 저를 잡아 주지 않았으니까.
무언가 자신의 등과 어깨를 진득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에즈라는 눈을 감고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려 노력했다. 서늘한
바람에 머리칼이 엉망으로 나부끼고. 팔다리는 힘없이 팔랑인다.
더 이상 뭘 어떻게 반항한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즈라는 공중을 날며 웃었다. 그러다가 드높은 하늘을 보고는
저릿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우습지 않은가. 배신당하고.
기만당했으며. 마음은 짓밟히고, 목숨을 담보로 이용당했다.
그런 이를 미워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응당 원망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미움을 갉아먹은 모양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만 가득하니까. 받았던 아픔보다,
그가 주었던 행복이 더 깊게 자리 잡아서.
마음만은 평온했다. 곧 밀려올 괴로운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양심을 내다 버렸기 때문일 테지.
이렇게 죽음으로라도 죄를 씻고 싶었다. 죽어서 구천을 떠돌게
되거나, 지옥에 떨어져 고통의 파도에 영원히 휩쓸리기를 바랐다.
흐른 눈물이 귓가로 넘어간 찰나. 에즈라의 온몸은 강물 속으로
깊게 침잠했다. 물속에서 풀어진 머리칼은 시야를 방해하며 얽어
들었고, 입과 코로 쓰디쓴 물이 흘러 들어와 숨통을 틀어막는다.
에즈라는 차디찬 강물 속에서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엄청난 괴로움에 진저리 치며 몸을 꼬고 살아
보겠다고 위를 향해 손을 마구 휘저었지만 그럴수록 수면에서
더욱 멀어지기만 했다.
죽겠다며, 죽고 싶다며 빌어 오던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코앞에
닥쳐온 죽음은 두려움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내밀었다.
버거운 감정에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 몸부림칠 수밖에 없도록.
‘히폴로테스.’
그래서 그를 가슴속에 적고 또 새겼다. 질끈 감은 검은 시야
안에서는 그의 웃는 얼굴을 그려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에즈라는 몸에 힘을 뺀 채로 더욱 깊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그때처럼 나를 붙잡아 주세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미련을 가득 품은 채 되새겼다.
‘아주 먼 곳에서라도 괜찮으니.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귀동냥으로라도 훔쳐 들으며 살고 싶어.’
그것은 마지막 생각이 되었다. 물로 가득 찬 숨통 탓에 그의
이름조차도 소리 내어 불러 보지 못한 채, 그녀는 죽음에 닿았다.
한편. 높다란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 아래. 마치 누군가가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장정 넷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끄집어내기 위한 도구들을 지닌 채였다.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자 수염이 몽글몽글한 남자는 앞에 서
있는 다른 이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재촉했다.
“야! 늦었잖아. 뭐 해. ‘빨리 들어가지 않고.”
“알겠으니까 그만 좀 닦달해요. 지금은 유속이 그리 빠르지
않으니 아직 괜찮다고요.”
보기 좋게 마른 체구의 남자는 짧은 머리칼을 위아래로 몇 번
쓸어 넘기다가 주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능숙한 자세였다.
첨벙 소리를 내며 물살을 탄 남자는 빨라지는 유속에도 흔들림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숨을 크게 들이켠 후 깊게 잠수하자 남아 있던 이들은
모두 경직된 표정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하기는 했으나. 가녀린 여자에게는 위험한 상황이
분명했으니까.
혹여라도 여자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받기로 한 금화가
공중분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숨 또한 위태로워진다.
시프나드를 떠올린 대장격인 남자는 우락부락한 체구임에도
몸을 움츠리며 조금 떨었다.
“올라온다! 수면 바로 아래에 있어!’,
“밧줄. 밧줄은 어딨어 !”
점점 뚜렷해지는 음영에 챙겨 온 밧줄을 강물 위로 던지자
푸학. 소리를 내며 남자가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냈다. 여자를
찾느라 모두가 숨을 들이켠 채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그는
침착하게 밧줄을 잡아 옆구리에 낀 여자의 허리에 둘렀다.
“뭐 하고 있는 겁니까! 밧줄을 당기지 않고.”
급박한 상황에 손은 더욱 엉켰고, 그들은 한참을
허둥지둥하다가 함께 밧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물살이
아까보다 거세져 힘은 두 배로 들었지만 그들은 두 사람을 뭍으로
옮기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이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젠장할. 몸이 너무 차가운데.
이봐요!”
그러는 동안 남자는 에즈라를 깨우려 싸늘하게 식은 뺨을
두드렸으나 축 늘어진 여체는 마치 시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푸르죽죽한 입술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밀랍 인형처럼 허옇게
질려 있으니 정말 죽은 건가 싶다가도 그는 고개를 털어 냈다.
미약한 희망을 버릴 수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여자를 더욱 꽉
안았다.
“어어, 다 됐다! 됐어.”
기진맥진한 이들이 돌바닥에 널브러지든 말든 그는 에즈라를
먼저 뭍으로 올린 후 자신도 강물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머리를
털기 무섭게 얼빠진 남자들은 우르르 몰려와 정신을 잃은
에즈라의 곁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저기…… 대장. 아무리 봐도 죽은 꼴이잖아.”
“그럼 우리 어떻게 되는 건가? 응? 아니. 예상보다 훨씬 빨리
구했는데 왜 이 모양인 거야!”
“풀 네가 구했잖아. 대답 좀 해 봐!”
쌍둥이로 보이는 두 남자가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서로를 와락
껴안으며 과장스럽게 울먹였다. 한심한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보던 폴은 대강 꺼지라는 듯 손을 내저은 후. 에즈라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냐. 아직 안 죽었어.”
금방이라도 끊길 듯 미미하지만 분명 심장이 뛰고 있었다. 만약
폐부에 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면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것은
위험하다. 그는 곧 에즈라의 가슴팍 가운데를 손바닥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온 힘을 다해, 체중을 실어서.
“폴, 너 미쳤어? 그러다가 이 여자, 뼈 부러지겠다!”
“쉿! 조용히 해. 시간이 얼마 없어. 곧 히폴로테슨가 뭔가 하는
놈이 올지도 모른다고.”
폴이 일갈하자 모두는 합죽이가 되어 입을 헙. 다물었다.
가슴팍을 마구 짓누르다가 여자의 코를 막은 채 입에 숨을 길게
불어 넣는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지 확인까지 하는 일련의
행위를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갔고. 그럴수록 여자의
혈색이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것도 같았다.
“그쪽 죽으면 안 도!!. 나도 죽을지 모른단 말이야, 젠장할!’’
“콜록! 캑!”
몇 번이나 그것을 반복하던 그때, 에즈라의 입에서 왈칵 물이
쏟아져 나왔다. 흐릿한 눈망울이 보일 듯 말 듯 하자 남자는
두터운 손으로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다행히도 더 이상 정신을
이어 갈 체력은 없는 듯 에즈라는 반항 없이 조용해졌다.
“살아난 거야? 폴?”
“그래. 미약하지만 아까보다는 숨결이 트였어. 물도 뱉어 냈고.
여기 보느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잖아.”
“역시! 역시 너는 대단해!”
“칭찬도 아부도 고마운데 그럴 때 아니다. 대장, 어서
옮겨야겠어. 시간이 너무 지체됐잖아.”
굳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대장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엄중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래야겠어. 다들 어서 짐 챙겨!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뜨자.”
에즈라는 그들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에 센 남자의 등에
짐처럼 업혔다. 딱딱하고 낯선 타인의 온기를 느끼던 에즈라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축 늘어진 채 파도처럼 덮쳐 오는
수마에 몸을 싣을 뿐이었다.
에즈라가 눈을 뜨게 된 건.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누군가의 온기
때문이었다. 따끈하고. 조금은 들큼하게 느껴지는 향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어리광 부리는 아이처럼 몸이 노곤해 눈을 뜨고
싶지 않았으나 문득.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번쩍 눈을 떴다.
“일어났어?”
얼마나 오래도록 잔 것인지 시야가 흐리멍덩하고 뿌옇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 후에야 앞이 선명해지자 에즈라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는 남자를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어디 또 아픈 곳은 없어? 다행히도 부러진 곳은 없지만
말이야. 며칠을 꼬박 잠들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누구세요?”
추하게 느껴질 만큼 꽉 잠긴 목소리였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에
목을 감싸고 캑캑거리자 남자는 급히 물잔을 가져와 입에 대
주었다.
대 주기는 했으나. 그는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찡그린 미간과 잔뜩 좁힌 눈살. 그가 내비치고 있는
감정은 두말할 것 없이 짙은 혼란이었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던 그가 물잔을 입에서 떼지 않자
물줄기가 주르륵 턱을 타고 흘러 덮고 있던 이불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남자는 손을 물리며 민망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여긴 어디예요? 다, 당신은 누구죠?”
“나를 잊은 모양이야. 에즈라.”
“제 이름이 에즈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