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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녀는 살고 싶다 (101)화 (101/111)

그 공녀는 살고 싶다

101화

‘나를 따라 죽길 잘했다고.’

리온은 왜 나를 따라 죽었을까?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와 함께 죽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말 참 안 듣더니, 이런 말만 잘 듣지.

불편한 마음에 괜히 리온을 탓해 봤지만 속이 나아지진 않았다.

‘유타스로 휴가를 갔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던가.’

‘만약에 경이 죽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떡할래.’

‘저는 바로 제 심장을 찔렀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국은 내 생각대로였다.

이놈은 나를 위해서 두 번씩이나 자신의 목숨을 내놨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뻔뻔하고 못돼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바로 심장을 찌를 수 있는 리온과는 달라.’

나는 내가 두 번째 삶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리온이 죽었다는 말 하나 때문에 독을 마신 게 아니다.

‘내가 죽음을 선택한 수많은 이유 중, 리온의 죽음이 껴 있었던 것뿐이지.’

……나는 그 전부터 계속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폭발까지 2, 3분 정도가 남은 폭발물이나 다름없었으며, 리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독을 마신 것은 갑자기 폭발물의 붉은 선을 잘라 폭발을 앞당겨 버린 행위와 같았다.

리온은 나를 자신의 전부로 삼았고, 나는 그를 내 일부로 여겼다.

‘하지만 그럼 계산이 안 맞잖아.’

저쪽은 나한테 자신의 전부와 목숨을 걸 수 있는데, 내 쪽은 나의 일부와 약간의 호의만을 제공할 수 있다.

음, 나의 일부라고 하면…… 내 수명의 반 정도는 넘겨줄 수 있겠지.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마음의 무게가 다른 이 관계가, 원만하게 오래 유지될 수 있나?’

내가 버리고 도망친 지난 삶처럼, 좋지 않은 끝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멍청해진 나는 평소였으면 쉽게 무시하고 말았을 불길한 기운이 침투하는 것을 허락했고, 그 불안함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리온이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네가 내 한심한 뜻을 들어준 게 고맙고 미안해서.”

“……그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뭐랄까, 굉장히 무서운 걸 본 사람 얼굴이거든요.”

내가 지금 겁을 먹었나?

뜯어 본 적도 없던 손톱을 물어뜯고 싶어진 걸 보면 겁을 먹은 게 맞는 것 같긴 했다.

“네가 원하는 만큼을 내가 내어 줄 수 없을까 봐, 나는 그게 무서워.”

내가 어렵게 속마음을 털어놓자 내 말을 들은 리온이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난 또 뭐라고.”

“뭐?”

이 자식이…… 사람이 고민하면서 꺼낸 말을 듣고 웃어?

어렵게 꺼낸 말인데 고작 그거였냐는 식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왜 웃냐고 따지며 멱살을 잡으려던 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처럼 아가씨가 나무 아래 앉아 있던 날, 제가 말했잖아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너무 겁먹지 말라고. 아가씨가 변했으니까 다른 것도 차차 변할 거라고.”

기나긴 시간 속에서 두 번씩이나 좋지 않은 끝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온의 푸른 눈동자가 언제나처럼 맑게 빛났다. 그리고 그 눈에는 오직 나만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가까이 앉아 있었던가? 어느새 바짝 옆으로 다가온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겁먹지 마세요. 우리의 미래도 변할 테니까요. 그것도 아주 좋은 쪽으로.”

귓가에 나긋하게 속삭이는 것이 괜히 간지러워서 나는 손을 들어 리온의 얼굴을 밀어냈다.

“좀 떨어져서 말해.”

“……황태자 전하랑은 귓속말 자주 하셨으면서.”

“그놈은 너처럼 끈적이지 않았거든.”

지금도 봐라. 방금 전에 밀어낸 얼굴이, 다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한쪽 귀를 손으로 가리자 그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달라붙어 손등에 입을 맞춰 댔다.

손등으로 입술을 두 대 얻어맞은 뒤에야 리온은 내 손을 놓았고, 나는 집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게요?”

“어.”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가 대놓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어디서 불쌍한 척이야.

작위적인 표정이었으나 그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신경 쓰여서,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려던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 마음속을 맴돈 한 마디를 끝인사처럼 덧붙였다.

“있잖아. 나는 너처럼 내 전부는 아니더라도 내 수명의 절반 정도는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혹시 나중에 죽게 생기면 신이랑 거래를 잘해 봐.”

혹시 아나, 내 수명의 반절을 뜯어가서 그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할지.

방전 직전에 도움을 줄 보조배터리가 되어 주겠다, 이거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리온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설마 지금…… 그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당연히 별거지. 수명 반절을 떼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리온은 나한테 전부를 바쳤다.

그러니…….

“네가 한 행동에 비하면 부족하긴 하지.”

수명의 절반이라는 나의 최선은, 그의 최선과 비교하면 별거 아닌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다급하게 내 손가락 끝을 붙잡은 그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다급한 손길과는 달리, 리온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가끔 보면 아가씨는 아가씨가 주는 사랑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내가?”

“네. 카인 공자님을 위해 저주의 방향을 틀었을 때도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셨으니까요.”

음, 그랬지.

내 쪽에서 카인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았으니까.

저주 방향 한 번 틀어 준 걸로는 못 때울 정도였다.

“수명의 절반을 주는 것도, 저주의 방향을 트는 것도.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못하는 건데…… 아가씨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네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은 그가 말을 이었다.

“왜 아가씨는 자꾸 아가씨 마음의 가치를 깎으세요.”

자꾸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마음에 안 좋다는 리온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알았어, 알았다고. 앞으로는 가치를 조금 더 높게 매길게.”

“당연히 그러셔야죠.”

리온이 만족스럽게 웃었고, 그 미소를 본 내가 마음 편히 등을 돌렸다.

우습게도 그의 말에, 나는 존재도 모른 채 내 속에 쌓여 있던 짐을 덜어 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리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나중에 생각나면 그때 하지 뭐.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까.

……이런 생각은 사망 플래그나 다름없긴 하다만, 기억이 안 나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떠오르길 바랄 뿐이다.

*

“아이고, 소공작님 오셨습니까?”

마탑에 도착한 나를 본 마탑주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마탑은 정말, 연구비만 지원해 주면 신이 나서 생글생글 웃는 순박한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전생에선 나랑 카인이 더럽게 써먹어서 그렇지, 내 생각보다는 괜찮은 집단이었다.

돈을 지원하니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한 기억만이 가득했다.

‘솔직히…… 마탑보다는 황실 마법단이 훨씬 음습하지 않나.’

이제 와서 지적하기에는 그쪽이 이미지 메이킹을 너무 잘해 놨다.

“받으십쇼!”

“이게 뭐야?”

나는 순순히 마탑주가 내민 마도구 하나를 받아 들었다.

“지난번에 시험 제작한 연락용 마도구를 수정했습니다! 메이 님이 부쉈다고 하셨지요? 이번엔 쉽게 부서지지 않게 만들어 봤습니다.”

아, 그때 그거.

시몬에서 정보원 역할을 수행하던 메이가 로펨에게 붙잡히면서 박살낸 그 도구였다. 디자인이 많이 변해서 바로 못 알아봤다.

나는 전보다 작고 가벼워진 연락용 마도구를 요리조리 살폈다.

“먹통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그래? 괜찮네.”

그녀는 나를 가장 안쪽 방으로 안내했는데, 마탑주뿐만 아니라 카인과 레반까지 달려들어서 열정적으로 브리핑을 시작하는 바람에,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지역마다 마력을 활용한 탑을 세우는 거지. 그럼 통신이 훨씬 안정될 거라는 결론이…….”

카인의 설명이 끝나자, 마탑주는 일반인들에게도 연락용 마도구를 판매하면 돈이 꽤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돈에는 관심 없이 연구만 하던 인간이 돈맛을 보더니 180도 변했다.

음, 너도나도 이 연락 도구를 쓰면 제국민의 통신이 마탑의 기술과 리베르트의 자금에 달려 있는 거네.

이걸 황실이 홀랑 낚아채 가면 배가 꽤 아플 것 같아서 나는 바로 지원을 결정했다. 뒤에서 몰래 말이다.

‘그나저나 이거…… 마정석이 꽤 많이 필요하겠는데?’

후작가가 마정석 건으로 거하게 폭탄을 날리고 사라진 뒤라 상황이 좋지 않다.

후작가는 제국에서 마정석을 제일 많이 생산하던 곳이었는데, 꽤 많은 양의 마정석을 사람의 영혼으로 만들었으니까.

덕분에 제국 안에서 도는 마정석량이 줄었다.

리베르트 할당된 양으로도 부족하고, 뒤에서 몰래 거래를 한다 해도 양이 충분하지는 않을 텐데.

생각에 잠긴 채 마탑을 떠나던 그때, 괜찮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냐고.’

일부 마정석을 사람의 영혼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칼바도스가 그렇게 말했던가.

나는 마정석을 만드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레이몬드가 제출한 보고서에도 그 내용이 있었고, 전생에서 내가 훔친 후작가의 연구에도 그 내용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죄 없는 사람. 마정석.

칼바도스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고, 내가 읽었던 보고서와 연구 자료의 내용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다 정착했다.

마차에 오른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시즈에게 짧게 지시했다.

“시즈. 북부 영지의 사형수 명단이랑 세부 사항을 좀 알아와. 처형은 뒤로 미루라고 하고.”

잠시 동안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즈는, 질문 대신 알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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