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1화. 사라진 아이들(1) (117/121)

외전 11화. 사라진 아이들(1)

“존이 없어요.”

이안은 고개를 들어, 아내를 바라보았다. 금발 머리를 묶어 올렸고, 하늘하늘 얇은 슬립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그가 미치광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차치하고서 사태를 차분하게 파악해야 했다. 매들린의 창백한 두 뺨과 유령에 쫓기는 것처럼 허망한 눈동자를 보건대 농담은 분명 아니었다. 아니, 그녀는 애초에 그런 실없는 농을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존이, 내 아들이 없어졌다.’ 

단순하게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이안이 찻잔을 다소 성급하게 내려놓았다. 

“같이 가봅시다.”

* * *

아이는 없었다. 

‘누구의 소행이지?’

행여 유괴라면 그런 짓을 저지른 인간의 사지를 찢어발겨도 시원찮을 지경이었다. 시야가 완전히 시뻘개지고 두뇌에 피가 몰리는 기분. 그런 이안을 진정시킨 건 매들린의 한마디였다. 

“이안, 잠깐 이거.”

그녀가 건넨 것은 종이쪽지였다. 아이가 간혹 목에 걸고 다니는 작은 수첩을 찢어 만든 거였다. 

{ 모레 안에는 돌아오겠습니다.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글동글하고 단정한 필적을 보아하니 존이 쓴 게 맞았다. 하지만 이해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존은 충동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 밑도 끝도 없는 메시지만 남기고 가출할 성정이 아니었다. 

‘아니면, 혹시 우리가 그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아주 오래전에 상처를 입었던 뼈마디 사이가 시큰거리는 기분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그림이 무너지고 그을리는 기분. 

이안이 태워 죽일 듯이 존이 남긴 쪽지를 노려보고 있는 동안, 매들린은 차츰 진정했다. 그녀가 이안의 손아귀에서 쪽지를 빼앗았다. 

“짚이는 데가 있어요. 당신, 존의 친구들에 대해서 조사는 해뒀다고 했지요?”

“…….”

그랬었지. 아무래도 거북스러운 주제라 매들린 앞에서 떠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신이 속물이라는 말에는 어떠한 겸양도 없었다. 그 야구모자를 쓴 남자아이는 사원의 아들이었다. 그저 평범한 중산층의 평범한 아이, 같은 동네라고는 하지만 동네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는 엮일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그 불청객과의 만남 이후로 존의 태도가 달라졌다. 수업 태도도 조금 미진해진 데다가 이리저리 뛰어노는 데 정신이 팔린 모습이었다. 그걸 가지고 뭐라 대놓고 혼을 낸 것은 아니었다. 그야, 이안 역시 자신이 설계해놓은 시간표가 다소 부담스럽단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주어진 것들을 잘 소화해냈던 아이였다. 그런 존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불량해졌고, 가출에까지 이르렀다면? 

“이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멈춰요.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예요.”

매들린은 쪽지를 침대 위에 던져두고 옷을 갈아입으려 서둘렀다. 

그래. 일단 존을 한시바삐 찾는 게 중요했다. 아무리 활달한 소년일지라도 어른은 아니다. 밤새 어디론가 향했어도 얼마 못 갔을 리가 분명했다. 그는 감상에서 재빨리 빠져나와, 매들린을 따랐다. 

* * *

“오 주여.”

젊은 엄마는 계속 한숨을 쉬고 눈물을 지으면서 부부를 맞이했다. 눈물범벅인 얼굴만 봐도 상황이 쉬이 짐작됐다. 

“우리 로저가 사라졌어요. 그이는 지금 셋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이 사실을 몰라요.”

“일단 부인, 혹시 로저가 쪽지를 남긴 것이 있나요?”

일말의 단서라도 될 게 있다면 찾아야 했다. 

“아뇨. 그런데….”

디킨스 부인이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가 주저하듯 무언가를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셔요. 로저랑 우리 그이랑 며칠 전에 크게 말다툼을 했지 뭔가요.”

* * *

-- 3일 전.

“바보 같은 소리 말아라. 로저.”

디킨스 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명딸 케이트의 원인 모를 호흡기 질환이 악화된 이후로 그 역시 나날이 원기를 잃어갔다. 그는 딸의 병원비를 대느라 초과근무를 자청했고 적금을 해약했다. 삶의 낙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래봤자 공놀이일 뿐이야. 그렇게 큰 무게를 둘 일은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정말 안 된 일이지. 나도 가슴 아프게 생각해. 하지만 경사스러운 행사도 아니잖니. 키키의 마음을 격려하는 데에 그렇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구나.”

그게 다였다. 디킨스 씨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포치로 나아갔고 담뱃불을 붙였다. 로저는 할 말을 잃었다. 

양키스의 간판타자인 루 게릭이 생소한 불치병을 진단받고 은퇴를 선언한 이후로 팬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뉴욕시와 양키스 구단 차원에서 마련한 ‘루게릭 감사의 날’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이별의 자리였다. 

로저는 케이트랑 같이 그 행사에 가고 싶었다. 신문 기사를 본 순간부터 그 생각뿐이었다. 좋아하는 선수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면 케이트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반응은 다소 냉랭했다. 물론 슬픈 일이고 안 되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의 은퇴식을 보는 게 대관절 케이트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되냐는 식이었다. 

로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그랬단 말이다. 자신의 병을 알리고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참된 용기의 표본이라고 말이다. 

‘아버지가 틀렸어.’

적어도 이번에는 말이다. 로저는 그리 결론을 내렸다. 그 후에는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뉴욕으로 가서, 양키스 스타디움으로 가서, 루 게릭의 야구공에 영웅의 사인을 받고 케이트에게 전해주겠다는 계획이 펼쳐졌다. 황당무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건 알았으나, 면전에서 묵살되었다는 분노와 절박함이 컸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공범이 필요했다. 아무에게나 쉽게 누설하지 않는 무거운 입을 지닌 데다가, 넉넉한 자금(?)까지 있는 공범 말이다. 그리고 로저 주위에 그런 사람은 딱 하나뿐이었다. 

* * *

“뉴욕으로 갔군.” 

이안의 결론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로저가 3일 전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겠다며 심통을 냈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분명했다.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로저는 워낙. 모험 기질이 다분한 아이라. 죄송합니다.” 

디킨스 부인은 이제 거의 넋이 나갈 지경이었고, 차마 우리 아이는 그럴 애가 아니라고 부인할 힘도 없었다. 

아들이 혼자 가출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집 아이까지 데리고 동반으로 집을 나갔다니 갈수록 일이 태산이었다. 게다가 그 다른 아이는 듣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들이지만 만나면 아주 볼기짝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만나서 볼기짝을 때리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은 눈앞 젊은 부부의 말이 맞았다. 아이들을 찾아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들을 바라보니, 무언가 기분이 묘했다. 그들은 이곳 마을 사람들이 수군덕거리는 소문의 주인공들이었다. 드라큘라 백작 같다는 남자와, 착하게 생긴 여자는 참으로 수상한 커플이었다. 아들이 그 집안 애와 어울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때도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야겠어요.”

“그러기 전에, 혹시 디킨스 부인, 그 문제의 행사가 언제 열리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그나마 목적지는 분명해서 다행이었다. 

* * *

뉴욕으로 향하는 내내, 부부는 말이 없었다. 경황이 없는 디킨스 부인을 진정시키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진이 다 빠지는 일이었다. 아이가 좀 특수한 상황이라고, 그러니까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로저라는 아이가, 부인의 아들을 유괴했다는 이야기가 될까요?”

배불뚝이 경감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매들린마저 신경질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단정 지으시면 곤란하죠. 둘이 합심해서 같이 간 것 같아요. 몸싸움한 흔적은 없었어요.”

단정하게 개켜진 데다가 밑에 베개까지 숨긴 채로 이부자리를 위장한 현장을 보면 그게 맞았다. 정문을 통해 몰래 나간 게 제일 그럴싸했다. 

“흐음. 가출이라, 어린애들의 객기일 텐데,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물론 격무로 바쁘시겠죠. 하지만, 아이들인데 가출이라고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안이 여기 없다는 거였다. 지금 뉴욕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매들린은 나름대로 신고를 하는 중이었다. 그가 지금 이 소리를 듣는다면, 그리 아름답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을 거고, 정신없는 와중에 더 큰 부담이었을 터였다.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도 최선을 다해 수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뿐인 말은 아니기를 바랐다. 한산한 주택가에 가까운 동네지만,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모르니까. 

‘뉴욕에 꼬마 둘이서라니.’

게다가 매들린에게 있어 뉴욕은 위험한 도시였다. 새로운 시장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피아들의 세력다툼도 눈에 띄게 덜해졌으나, 거대한 도시에는 여전히 온갖 범법자들이 들끓었다. 그런 위험한 곳을 아이 둘이 거닌다는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풀렸다. 

‘그동안 이안을 걱정시킨 죗값을 치르는 건가.’

하지만 그런 거라면 남자까지 그 대가를 치를 필요는 없는 거였다. 

왜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이 늘어나 곤란하다 했는지,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