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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5화. 이후 노팅엄 가족(1) (111/121)

외전 5화. 이후 노팅엄 가족(1)

“어-마!”

“음. 어머니라고 똑바로 말해야지.” 

이안의 교육 방식은 가끔 너무 엄격한 데가 있지 않나, 매들린은 생각했다. 어린 존은 수화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입술 모양도 익혀야 했으며, 발음도 정확해야 했다. 몸가짐도, 행색도 단정해야 하는 건 물론이요, 스포츠도 잘해야 했고. 아니, 고작 어린아이가 스포츠라면 흙장난이면 족하지 않은가 생각했지만, 이안은 꽤 열성적이었다. 

물론 그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엄한 걸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아들이 행여 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험한 꼴을 당할까 봐 안달인 거다. 

하지만 매들린은 그가 조금은 더 느긋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름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유년기를 충분히 누려도 나쁠 게 없었다. 

검은 머리에 초록색 눈을 한 존은 이안의 어린 시절과 비슷했다. 다만 볼이 좀 더 발그레한 것과 눈이 약간 더 처진 것이, 외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매들린은 누굴 닮았더라도 상관없이 예쁜 아이였지만, 이안은 그 말을 들으면 더욱더 의기양양해져 어깨를 쭉 펴고 살며시 미소짓는 것이었다. 

그 일련의 행동에서 일종의 자부심이 느껴진다는 게 참 아이 같고 웃겼다. 이러나저러나, 존이 누구를 닮았건 간에 그는 사랑스러운 두 사람의 자식이었다. 

“어머니.”

작지만 분명한 소리로 말하는 존을 보며 그제야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안이었다. 매들린이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속삭였다. 

“엄마란 호칭도 좋은데요.”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범절은 지켜야 하오.”

“신사는 만들어지는 거라더니 정말이었네요.”

“…만들어진다기보다는 그런 척하고 사는 거겠지.”

두 사람이 대화하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어린 존이 고개를 내저었다. 심심한 아이는 다른 장난거리를 찾아 헤맸다. 가정교사와의 수업은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배우는 건 재밌었지만 그래도 할 게 너무 많았다.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는 작은 머리로 그리 생각했다. 집 앞마당으로 나가 나뭇등걸 밑을 기웃거리다가 그마저도 질린 나머지 종종걸음으로 집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작게 가꾼 장미정원이 있었다. 

늦가을인지라 장미도 다 지고 황량한 감이 있었다. 몇 달만 지나면 다시 아름다운 꽃잎이 필 걸 생각하니 벌써 기대가 되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마른 가지들 사이로 보였다. 

‘뭐지. 떠돌이 들개거나, 설마, 설마, 침입자!’

어린 존의 몸이 퍼뜩 굳었다. 아버지인 이안은 제게 언제고 경고하곤 했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득실거린다고. 그만큼 강해져서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나 역시 최선을 다해서 너와 엄마를 지킬 거다.’ 아버지는 그리 덧붙였지만, 어린 존의 작은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불쑥,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자 정체가 명확해졌다. 소년이었다. 저와 또래의 남자아이, 키는 좀 더 홀쭉하고 야구모자를 쓴 아이였다. 

“야.”

그 아이가 저를 부르고 있음은 명백했다. ‘그런데…. 나는 쟤를 모르는데.’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까, 아이가 하는 말을 읽을 수 없었다. 존이 우물우물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소년이 살짝 짜증이 난 듯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입술을 삐죽이며 존 옆에 바투 다가왔다. 

딱딱하게 긴장한 존을 놔두고, 소년이 허리를 숙였다. 그 아이는 존의 발치 밑에 떨어진 공을 주웠다. 

“네 집에 몰래 들어와서 미안.”

‘아. 아.’

공놀이를 하다가 무언가가 넘어와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근데 담이 꽤 높을 텐데.’ 의아함을 느낀 존이 손가락을 들어 벽돌로 된 높다란 담을 가리키자, 소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 원래 나무 잘 타.”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일단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어린 존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하자, 소년이 야구 모자챙을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어른들에겐 말하지 말아줘.”

존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개구지게 한 번 웃은 소년은, 담을 날쌔게 타고 올라가 그대로 사라졌다. 마치 거짓말 같은 한때였다. 

* * *

조나단 애거시 노팅엄은 거창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걸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지 않은가. 하지만 날쌘돌이처럼 높은 담을 넘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어디 사는 아이일까?’ 

2층의 침대에 누워 눈을 깜빡이고 있노라면, 문가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물론 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로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존은 듣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말을 읽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말해지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려줬다. 표정으로, 곁눈질로. 존은 제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손님들이 이따금 던지는 시선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물론 홀츠먼이나 이사벨, 라이오넬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바라볼 때면, 그런 취약함은 없었다. 늘 웃는 상이지만 단호한 사람이었다. 떼를 쓰거나 버릇없게 굴기 싫었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곱다고 사용인이 하는 이야기를 ‘읽기도’ 했다. 때로 사람들은 존이 듣지만 못하지, 눈치 채는 건 아주 잘한다는 걸 몰랐다. 

‘확실히 우리 어머니는 아름다워.’

달의 여신 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는 이상한 표정을 잠시 짓고는 웃어넘겼다. 존경하지만 무서운 아버지도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운 손이 존의 작은 손등을 쥐었다. 매들린이 제 아들의 손바닥에 글씨를 적었다. 

‘존, 아직 안 자니? 내일 많이 졸릴 것 같은데.’

괜찮다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지만, 계속해서 감겨오는 눈꺼풀이 너무도 무거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담장을 넘어 들어온 친구 말이다. 그 아이는 어디서 온 아이일까. 그 작은 공은 무슨 공일까. 이상한 바느질 같은 게 되어있었다….

- 쪽.

매들린은 아들에게 굿나잇 키스를 남겨줬다. 문가에 그림자가 또 하나 거대하게 드리워진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참 좋은가 봐. 

어린 존은 눈을 감았다. 

* * *

“안녕?”

매들린은 눈을 깜빡이며 벨을 누른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나름 단정한 옷을 주워입었지만, 장난꾸러기임이 틀림없는 소년이었다. 물론 어리다고 해서 얕보면 안 된다. 하지만 쭈뼛거리는 태도나 뒷짐 진 손이, 무언가 무척 껄끄러워하는 게 티가 나 웃음이 나왔다. 

매들린은 모르는 바지만, 아이의 이름은 로저였다. 걸어서 30분 거리, 제방을 넘어 나오는 마을 어귀에 사는 집안 4남매의 장남이었고. 

부자 동네는 시시하다고 괜히 어깨에 힘주고 슬렁슬렁 들어온 건 좋았으나, 막상 정문으로 벨을 누르고, 여자가 나타나자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되었다. 

‘저분이 어제 그 애송이의 엄마라고?’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잘 뜯어보면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눈가가 쳐져서 반짝반짝 빛나는 게 그랬다. 그러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부자 동네의 가장 예쁜 집에 사는 부부가 영국에서 왔는데, 완전히 미녀와 야수의 현실판이라고 말이다.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네.’ 

세상에서 봤던 사람들 가운데 저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어린 마음에 로저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일이에요?”

매들린이 재차 물어보자, 로저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저, 저… 죄송합니다, 부인”

* * *

“음, 그래도 그렇게 높은 담장을 홀로 올라가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매들린이 레몬주스를 따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야구공이 이쪽으로 넘어와서.”

야구공을 주워서 돌아가려는 때에, 담장의 조형물을 발로 깨버렸단다. 일단 그 높은 담장을 올라간 것도 신기하지만, 아이가 어딜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도 되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죠?”

“네. 부인.”

매들린이 방긋방긋 웃을 때마다 아이의 볼은 새빨갛게 익었다. 그때,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

존이, 잔뜩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앗.”

로저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매들린은 눈이 초롱초롱한 아들을 보며 속으로 크게 웃었다. 

“조니. 로저랑 아는 사이니?”

“네….”

개미가 기어 나오는 것처럼 작은 소리지만 분명히 들렸다. 

“어, 말했다.”

로저는 저도 모르게 놀라워하는 소리가 나오고 만 것에 안절부절못했다. 

오호라. 매들린은 쭈뼛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무언가를 직감했다. 통성명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구면이로구나. 존으로서는 또래 친구와 이토록 가까이 있어 본 일은 처음일 터였다.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매들린의 의견과, 아직은 가정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안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이런 낯선 손님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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