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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의도치 않게(1) (71/121)

70화. 의도치 않게(1)

“마피아 전쟁인가.”

“부둣가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는데. 뉴욕이 무슨 범죄의 소굴이 되어가는 것 같아.”

중년 남자가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 근래 일어난 살인사건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언제나 그렇듯 토미건으로 다다다. 그리고 끝이 났지.”

찻잔을 갈아주면서 의도치 않게 이야기를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매들린에게 짧게 목례하고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뭐, 마피아들이야 마피아들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만. 이번에는 좀 심하지 않나. 시장은 당연히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뭉개고 있지만, 이 동네 술이 다 그쪽에서 오는데 십 년 뒤에는 떼부자가 되어서 성을 바꾸고 그럴듯하게 살지 누가 알아?” 

“그래. 알아서들, 젠장맞을, 잘 먹고 잘살라고 해. 여기도 마피아들보다 더한 놈들이 많지 않나. 주식도 그래. 투전판에 손은 많은데, 얼굴은 안 보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매들린은 식은 찻잔을 트레이에 옮겨 담았다. 소름 끼치는 이야기투성이였다. 살인은 언제나 그녀에게 무서운 주제였다. 사람을 죽이는 일. 사람을 살리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데, 죽이는 데에는 정말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은 그냥 죽는다. 가령, 계단에서 잘못 굴러떨어지기만 해도 간단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다.

그녀는 기분 나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려고 노력하면서, 다음 차를 우렸다. 타이머를 켜자 째깍. 째깍. 초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우린 차를 내자, 대화의 주제는 이제 다른 거로 옮겨가 있었다. 

“그 홀츠먼 개자식의 멱을 딸 거야. 언젠가는 총 맞을 놈이긴 해. 누구의 총일진 모르겠지만.”

“그 자식 때문에 내가 입은 손실이-.”

헉. 매들린의 숨이 멈췄다. 그녀가 가까이 있는 걸 안 두 남자가 헛기침하더니 딴청을 피웠다. 매들린은 내색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데 성공했지만, 충격은 충격이었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엄청난 부자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정재계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때는 있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의 이름이 그런 방식으로 거론되니 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이야기해줘야 하는 걸까.’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이안의 친구, 아니 동료 아닌가. 아무리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귀띔은 해줘야 할 성싶었다. 

* * *

“하하.”

이안은 억지로 웃는 시늉조차 귀찮은 사람처럼 성의 없이 웃었다. 입꼬리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였다. 시간이 꽤 되었는데도 빈틈없이 정장을 갖추어 입은 모양새가, 밤늦게까지 일을 한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반갑게 매들린을 맞이하던 그는, 막상 매들린이 홀츠먼의 이야기를 꺼내자 티 나게 시큰둥해졌다. 

“아니, 나는 나름 알려준다고 알려준 거예요.”

게다가 오늘은 평일이었다. 야간 수업을 듣고 나서는 길에 부러 그의 집에 들른 것이었다.

거기에다 뭘 기대한 건지는 몰라도, 이안이 머무는 장소는 뭔가…. 꾸며져 있었다. 

                                         

협탁 위에 크림색 맨스필드 장미 다발이 꽂혀 있었다. 매들린은 고개를 저었다. ‘신경 써준 건 고마운데, 무슨 생각을 한 거예요.’ 

“당신이 온 건 기쁘지만,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건 유쾌하지 않군.”

“뭐예요. 가만 보면 사고방식이 진짜 이상해요. 나는 나름 조언하러 온 거라구요.”

매들린이 꿍얼거렸다. 남자는 캐모마일 차를 그녀에게 건넸다. 남자의 손에 뜨거운 차가 엎질러질까 싶어 조심조심 잔을 받아든 매들린이 중얼거렸다.

“홀츠먼 씨의 특성상 그런 원한을 사는 건 놀랍지 않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파티를 열어대는데 누군가가 침입해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잖아요….”

이안은 무심히 매들린의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관없을 것 같은데.”

“네?”

“일하면서 그런 사소한 원한 사는 건 늘 있는 일이오. 매들린. 사람들은 언제나 손실에 대한 원망을 투사하길 원하지. 그런 적의가 부당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소만. 그런 원한을 감당할 깜냥도 없으면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요.”

“애초에 원한을 살 일 자체를 자제하면 안 되는 건가요?”

남자는 침묵했다. 주제 자체를 좀 번거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잘 모르는 게 많긴 하지만, 적대적 인수합병, 공매도, 로비와 담합 같은 건 알아요. 당신도 그렇고 좀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당신은 알 필요 없-.”

“내가 알 필요 없단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남자는 근사한 저녁을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그에게 부러 싸움을 걸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매들린이 이안의 한쪽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난 그냥 당신이 걱정돼요.”

“흠….”

이안이 눈을 감더니, 매들린의 손길을 느끼는 것처럼 낮은 한숨을 쉬었다. 

“영국에서는 모든 것이 정적이어서 숨이 막혔는데, 이곳에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돌아가서 머리가 어지러워요.”

“난 별 차이를 모르겠군.”

어차피 단단한 지표면 같은 건 없었다. 세상이 무너진 걸 한번 지켜봤으니, 어디에 서 있건 큰 의미는 없었다. 

“일을 좀 줄여요.”

“그럴 순 없어.”

“이상하네요. 홀츠먼이 그렇게 유능하면 그가 하게 놔두면 되잖아요.”

“그가 모든 걸 다 하게 놔둘 순 없소. 그랬다간 끝장이야.”

매들린은 남자의 어깨 위에 올려둔 손을 거뒀다. 

“괜찮을지도 몰라요. 재단을 꾸려서, 좋은 일도 하고…. 그렇게 산다면.” 

“…그렇다고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닿진 않지.” 

“천국을 기대하지 않더라도요.”

매들린의 눈썹이 팔자로 기울어졌다. 그런 선량한 골든 래트리버 같은 모습에 남자의 입꼬리가 모르게 떨렸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고려 해보겠소.”

‘그렇다고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오.’

매들린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이안의 이마 위에 작게 키스했다. 

“잘 자요. 예고도 없이 불쑥 들이닥쳐서 미안했어요.”

* * *

월시 부인답지 않다. 이건 전혀 월시 부인답지 않은, 충동적이고 무모한 행동이었다. 계획에도 없는 과소비라니? 

매들린은 아침 커피를 홀짝이며 눈앞의 번쩍이는 냉장고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번쩍이고 아름다운 진녹색의 외관. 소비자 전성시대의 상징과 같은 가전제품은, 매들린 앞에서 당당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역시 할부로 사들인 세탁기가 달달 돌아가는 중이었다. 

“냉장고도 할부로 사셨다고?”

“네에.” 

“설마 하숙생들을 더 받거나, 하숙료를 올리시는 건 아니겠지.”

“요즘 다들 할부로 사잖아요. 걱정 마요. 매들린.”

룰루랄라. 로즈가 나갈 채비를 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매들린은 조용히 GE에서 생산한 냉장고의 겉면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할부는 시간의 기술이었다. 미래의 시간을 끌어오는 금융공학. 매들린은 그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분명 낙천적인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게 밝은 미래가 진수성찬처럼 차려져 있었다. 그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어쩌면 나 역시 그 바보 중의 바보인지도 모르지.’

기껏 운 좋게 시간을 좀 벌어놓은 주제에 그 기회도 전부 놓치고, 돌고 돌아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하고. 세상에 이런 바보가 또 있나 싶었다. 

* * *

호텔에 정시에 맞추어 출근한 매들린은 자신이 지난주와 사뭇 다른 처지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서 이동이라니요.”

“그렇게 되었네. 로엔필드 양.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서류 작업을 좀 도와줘야겠어. 회계부서에서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맨 위층에서 차 따르는 ‘티 레이디’들 중 하나인 매들린이 호텔 회계부서의 타이피스트로 자리를 이동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 자체도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지만, 이 소식을 총 지배인이 직접 전해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타이피스트 경력은 없는데요.”

어. 물론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전쟁이 나기 직전에 타자기를 두드려댔던 적은 있었지만? 그건 경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매들린이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애초에 차를 따르는 자리에 지원했고, 채용할 때에도 억양 덕분에 뽑힌 거로 알고 있는데. 회계부서라니, 전혀 상관도 없는 자리지 않는가. 

자리를 옮기는 것 자체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으나 그래도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역력했다. 

“어찌 됐든 타자기를 다룰 줄만 알면 괜찮다네. 지금 당장 일손이 급해서 그런 거니 양해해 줄 수 있나?”

뭐.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만. 아침부터 이어진 찜찜한 기분이 한껏 증폭되는 기분이었다. 매들린은 풀어놓은 짐을 다시 가방에 넣어두고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회계부서가 자리한 3층으로 향하는 내내 의문이 커졌다. 

* * *

한참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대부분 자리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 몸은 상대적으로 편했다. 그러나 뭔가 찜찜한 기분이 계속해서 기름때처럼 남아있었다. 

이제 티 레이디들이 아닌 타이피스트들과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했다. 하지만 그녀를 신경 쓰이게 하는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

강의가 끝나고 삼삼오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매들린은 자신을 향해 따라붙는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렸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뒤를 돌아보았을까. 부쩍 요즘에 뒤통수에 무언가가 따라붙는 것처럼 끈적끈적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하숙집의 방을 들어서고 나서야 긴장감이 풀리면서 응어리진 한숨이 나왔다. 어깨관절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팔을 움직이자 좀 나았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도 좀처럼 잡생각들이 한 갈래로 모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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