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파티 준비
예배당을 꾸미는 일만 할 게 아니었다. 작은 모임이었으나 매들린은 안주인으로서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사실 초대장을 작성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애초에 주위와 별로 교류가 없었기에 누구를 초대해야 할지 도무지 결정할 수 없었던 탓이다.
지역 인사 편람을 펼쳐들고 지도와 전화번호부를 참고하면서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교구 사제, 농부들, 잡화점 주인들…, 사진가, 타이피스트, 의사, 변호사 등등.
하나같이 노팅엄 저택과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었다. 당연했다. 이안 노팅엄은 사업적인 관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았으니까.
“흠….”
그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초대에 응할지, 아니면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심사를 품고 올지, 아예 거절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예 신문에 광고를 내는 건 어떨까.’
사실 저주받은 집으로 유명한 노팅엄 저택에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찾아올 것 같진 않았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호사가들이면 모를까.
그런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자신과 이곳 사람들의 몫인 건 맞았지만 말이다.
‘이번 기회에 분위기를 바꾸면 좋을 텐데….’
매들린으로서도 이것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저택의 오명을 조금이나마 벗을 수 있다면, 또 그래서 백작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내가 너무 주책맞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그이의 보모도 아닌데. 매들린은 당대 최신의 심리학을 몰랐으나 남편이 치유가 필요하단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단 것도.
그녀는 자신의 무지 속에서 그나마 가장 최선의 방식을 찾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말고 천천히… 천천히 변화한다면.’
언젠가는 남자도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비참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밝고 아름다운 것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가 딱히 걱정된다거나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매들린은 내면의 목소리에 힘껏 항변했다. 그래도 명색이 배우자가 행복해지길 원하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정이었다. 딱 그 정도였다.
그녀의 작은 발상으로 인해 이안 노팅엄이 좀 더 행복해진다면 나쁠 건 없었다.
* * *
그 후로 며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매들린은 할 수 있는 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정성껏 초대장을 적어 보냈고, 빈 예배당을 영화관처럼 꾸몄다. 포스터도 붙였다.
여건상 유성영화를 상영할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필름을 차입하고, 소규모 악단을 초빙해 배경음악을 연주하도록 할 예정이었다.
자. 얼추 다 준비했다. 이제 영화 상영이 끝난 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과를 준비하면 됐다.
아래층 요리사들과 함께 메뉴를 짰다. 예산은 넉넉했다.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노팅엄 저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세바스천은 툴툴거리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으나 매들린의 분부에 따라 움직였다. 정원사인 벤 호머는 매들린의 선택에 찬사를 보냈다. 풋맨인 찰스는 들뜸과 걱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여성 사용인들은 거의 매들린에게 동조했다.
“사실 이 저택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어요.”
릴리벳이 수줍게 고백했다.
“도시에 있는 친구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읽으면 어찌나 우울했던지요. 여기는 솔직히 말해서, 울적한 분위기가… 아니, 볼거리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작이 있었다. 아무런 내색도 없는 채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할 뿐인 백작이 말이다.
매들린에게야 그가 미운 존재였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둘러싸고 온갖 소문이며 가십이 횡행하고 있었고 그럴 만했다.
그는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였으며, 전쟁영웅이었고, 부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를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한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으며, 괴팍한 데다가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 그의 성정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돌면서 부풀려져 갔다.
이곳 인근의 땅을 몇만 에이커씩 사가면서까지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단 이야기, 아름다운 아내가 키우는 장미정원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한다는 이야기, 비오는 날 들판에서 누군가를 부르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 등등.
매들린은 이런 관심이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다고 봤다. 어찌 됐건 이안 노팅엄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
이안 자신도 깨달아야 할 사실이었다.
매들린의 계획에 대한 반응이 제각기 달랐으나 이안 노팅엄의 반응은 뭐라 규정하기 어려웠다. 철저한 무관심으로 위장한 배려.
배려와 이안 노팅엄은 역사상 가장 거리가 먼 조합일 터였다. 그러나 그는 매들린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의식하지 않을 만한 거리를 두고.
매들린이 구입한 천도 헌팅트로피에 둘렀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앞치마까지 입은 그녀는 저택의 고고한 안주인이라기보다는 하녀 같아 보였다.
뒤에서 세바스천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녀를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풋. 이안은 제 입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웃음소리에 스스로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행복은 그의 손에 거의 잡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그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위험했다. 그는 얼굴을 바꾸고 예의 그 딱딱한 외피를 뒤집어썼다.
매들린이 일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기 직전이었다. 그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의 끝자락이 있었다. 매들린은 한참 그림자가 스르륵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다가 자리를 떴다.
* * *
상영회 전날 흑백 영상 릴과 함께 영상기사와 그의 조수들이 저택을 방문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해줄 사람들도 도착했다. 그들을 대접하느라 노팅엄 저택에는 오래간만에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백작은 서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매들린에게 위임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불평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과도한 자극에 남편을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전부 잠자리에 들었을 때, 매들린은 떨림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 무리한 일을 벌이지 않았는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대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남편을 너무 혹사시키고 귀찮게 군 건 아닐까, 초대장을 보낸 사람들이 한 사람도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악단과 기술자들까지 불렀는데, 영화가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등등.
결국, 잠옷드레스 위에 숄을 두른 채로,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무언가 확신이 필요했다.
서재의 문틈 사이로 옅은 불빛이 스며 나오는 것을 확인한 매들린이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들어오시오.”
남자의 동굴 같은 목소리에, 어쩐지 안심이 되어 살풋 미소가 지어졌다.
매들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안락의자에 앉아 서류철을 눈 가까이 대고 읽는 백작이 보였다.
“아직도 일하는 중이에요?”
“…이것도 휴식의 한 방편이오.”
그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빈정거림은 없었다. 매들린이 그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남자가 살짝 몸을 뒤트는 것이 보였으나, 매들린은 오늘따라 그를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떨려요.”
“…….”
“내일 사람들을 처음으로 초대하는 거잖아요. 뭐라도 잘못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요.”
남자가 무심히, 그러나 확신 어린 말투로 대답했다. 허나, 그는 매들린을 부러 쳐다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다과회를 연 다음에 다 같이 영화를 볼 거예요. 당신도 참석할 거죠?”
“…….”
“싫다면 괜찮아요. 이해해요.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가 서류를 접은 뒤 협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뒀다.
“누가 되지 않게 할 테니까.”
“누라니.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냥 즐기면 돼요.”
매들린이 씨익 웃었다. 남자가 이런 식으로 자신 없는 소리를 할 때면 괜히 수정해 주고픈 심사가 일었다.
“영화를 본 지 오래됐죠?”
“딱 한 번. 파리 박람회에서.”
어린 시절이었지. 열차가 관객 속으로 돌진하듯 질주해오는 것을 봤어. 놀라운 광경이었어. 남자가 뜨문뜨문 그 시절을 회상하듯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남자가 제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같았다. 한때 전도유망한 젊은이로서 이곳저곳을 여행했을 남자를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랑 꼭 같이 봐요. 재밌을 거예요.”
매들린은 남자의 어깨를 살짝 그러쥐었다. 그녀는 남자의 귓바퀴가 화르륵 익은 것을 보지 못한 채로 자리를 떠났다.
어쩐지 단단한 어깨를 쥐었던 손바닥이 뜨겁게만 느껴져 쥐었다 폈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