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4/109)

43화

탕, 그리고 와장창.

굉음들이 고요한 밤의 침묵을 깼다. 분명 이마를 노렸는데, 떨림이 너무 컸던 탓에 총알은 빗나가 창문을 깼다.

부서진 창문의 파편들이 온갖 장소로 정신없이 날아갔다. 이리아가 탄피를 빼기 위해서 노리쇠를 잡는 순간, 바닥에 닿아 있던 팔꿈치에 유리 조각들이 박혀 들었다.

“아악!”

이리아의 잇새서 새된 비명이 튀어나오며, 총을 놓치고 말았다.

안 돼! 이리아가 다급히 총을 다시 들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자객이 더 빨랐다.

그는 단번에 이리아의 손을 지르밟고선, 그녀가 놓친 소총을 들어 올렸다.

곧이어, 소름 끼치도록 갈라진 남성의 목소리가 고요해진 방 안을 울렸다.

“총을 놀랍도록 못 쏘는구나.”

다시 핏물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이리아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자객은 능숙하게 탄피를 빼낸 후, 총구를 이리아를 향해 겨누었다. 피와 어둠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던 이리아는 그가 소총을 다시 장전할 때까지 제 이마에 들이 밀어진 총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철컥. 낯설고도 익숙한 소리가 눈앞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가 방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 또한 이리아의 두 고막을 파고들었다.

“잘 봐. 총은 이렇게 쏘는 거……!”

자객의 문장이 끊겼다.

이후의 모든 건 이리아가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났다.

은빛의 장검이 빠르게 날아와 자객의 어깨를 꿰뚫었다. 자객이 놓친 총이 바닥과 닿기도 전에, 또 다른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는 그의 목덜미였다.

쿵. 둔탁한 무언가가 떨어지며 방바닥이 울렸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피가 그 무언가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리아는 갓 걸음마를 배운 아이처럼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서기 무섭게, 머리를 잃은 시신이 천천히 앞으로 기울어졌다.

시신이 땅과 부딪히며 고여 있던 핏물이 튀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시신의 모습이 상상되며 헛구역질이 절로 올라왔다.

황급히 입가를 틀어막는 이리아의 몸이 앞으로 크게 휘청였다. 덱스터가 넘어지려는 그녀를 가볍게 한쪽 팔로 휘감았다.

“이런……. 당신 괜찮아?”

먹은 게 없어 덱스터의 옷소매에 토악질하는 추태는 면했다. 하지만 그 누가 봐도 이리아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팔다리는 온갖 상처로 엉망이었고, 안색은 파리했다.

이리아의 두 눈에서부터 눈물이 폭포가 되어 콸콸 쏟아져 내렸다.

분명 그녀가 죽이려고 했던 자객이건만, 막상 목이 잘려 죽는 장면을 코앞에서 경험하니 너무나도 끔찍했다. 맨정신으로는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자객은 하나가 아니었다. 첫 번째 자객이 죽자, 창문 뒤에 숨어 있었던 다른 이들이 줄줄이 침입했다.

“기어이 일을 치르는구나, 카즈웰…….”

덱스터의 턱이 분노로 불끈거렸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이리아를 옆구리에 매단 채 자객을 차례차례 죽여 나갔다.

총이 발사되는 소리와 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지독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이리아의 코를 찔렀다.

어둠을 바라보는 그녀의 머릿속이 수십 번 번쩍였다. 두 발이 피로 젖어 축축해질수록, 번쩍이는 빈도수도 늘었다. 머릿속이 번쩍일 때마다 뇌세포가 무리 지어 죽어 가는 느낌이었다.

탕. 거친 총성이 들려오며, 총알이 이리아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총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덱스터는 팔로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

총알이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은 이미 익숙했다. 덱스터는 신음성조차 내지 않았다.

이리아를 향해 총을 쐈던 자객은 덱스터의 칼에 맞아 눈 깜빡할 사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홀로 남은 마지막 자객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자, 덱스터는 그의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우드득. 기괴하게 뒤틀리는 그림자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이리아의 눈과 귀에 들어왔다.

목이 부러진 자객의 몸이 방바닥과 부딪히며, 피가 그녀의 온 얼굴에 튀었다.

“흐, 흐으…….”

이리아의 잇새서 떨리는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서서히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덱스터의 팔에 매달려 있던 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축 처졌다. 그가 황급히 돌아본 이리아는 반쯤 혼절한 상태로 작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자객을 죽일 때는 아무 변화도 없던 덱스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리아는 점점 더 아득해지는 세상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외침을 들었다.

“당신 왜 그래? 정신 차려!”

덱스터가 서늘한 이리아의 목덜미를 애타게 문질렀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떠나간 이리아의 의식이 돌아올 리 없었다.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 봐, 응……?”

마지막으로 빛이 번쩍이며, 이리아 아델리어는 끝내 완벽하게 정신을 잃어버렸다.

***

잠에 빠진 이리아의 온 세상은 고요했다. 저택에 온 이후 언제나 악몽만을 꿔 온 그녀였기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꿈이 오히려 반가웠다.

이리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 속에서 아주 긴 시간 오도카니 서 있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의 죽음을 봤다. 심지어 인간에게 총구를 들이대기도 했다.

분명 엄청나게 자책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정신상태는 멀쩡했다.

‘혹시 나도 이미 죽어서 그런 걸까? 지금 이곳은 사실 꿈이 아니라, 사후 세계인 거지.’

이게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리아가 제 볼을 꼬집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볼을 꼬집기 무섭게 어두운 세상 위로 서서히 실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얇은 금 사이로 빛이 아른거렸다. 왜인지 빛이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이리아는 실금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 나갔다.

그렇게 빛에 도착한 그녀가 손을 뻗는 순간, 어둠이 와장창 깨지며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죽은 게 아니구나. 꿈이 맞았어.

오랜 시간 물을 마시지 않은 탓에, 숨소리까지도 갈라져 흘러나왔다. 의자에 앉아 선잠을 자고 있던 덱스터는 단번에 그녀의 가냘픈 신음성을 들었다.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덱스터는 황급히 이리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눈은 잘 보여? 머리는, 머리는 안 다쳤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도 힘들다. 이리아는 고개를 움직이는 것 대신 살짝 미소 지었다.

제 침실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이리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누워 있는 곳은 덱스터의 침실, 그의 침대 위였다.

이리아에게 침대를 넘겨준 덱스터는 한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한 듯했다. 그러잖아도 깊은 그의 눈매가 더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덱스터가 몸을 일으키는 이리아의 등을 잡아 주었다.

이리아가 움직일 때마다 팔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 줄들이 흔들렸다. 인제 보니 옆구리와 발목에 붕대도 감겨 있었다.

온몸이 엉망이라는 사실 정도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이리아가 따끔거리는 왼쪽 눈꺼풀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덱스터는 그녀의 턱 아래 물이 든 유리잔을 대 주었다.

“저, 어……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었나요?”

“5일.”

“농담하지 마세요. 겨우 다섯 시간을…….”

“나도 농담이면 좋겠어.”

바로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덱스터의 표정에는 장난기 하나 없었다.

정말로 5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이리아의 표정도 더불어 굳어 버렸다.

첫 자객을 보낸 날로부터 5일이나 지났다. 카즈웰은 곧 다시 자객을 보내거나 덱스터에게 이리아의 정체를 알릴 거다. 그녀의 목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까.

더는 이 저택에서 덱스터와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이제는 비센티움 도심을 돌아다니다 루 아휜에게 들키는 것보다, 루퀼렘과 비센티움의 전쟁이 더 큰 일이었다.

‘단지 나의 죽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야…….’

일평생 자유를 갈망했던 만큼, 자유로워지지 않을 바에는 흔쾌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죽음 이후의 전쟁이다.

우선, 덱스터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이리아의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했다. 덱스터와 함께 있으면 카즈웰이 그에게 그녀의 정체를 귀띔해 주는 순간, 덱스터의 손에 곧바로 목이 베어질 수 있었다.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이리아의 잇새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가 기운이 다 빠져 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있잖아요…… 저택 밖 도시를 구경해 보고 싶어요.”

“아직 몸도 성치 못하잖아. 기운도 없을 텐데 밖을 어떻게 나가.”

“그래도 기분 전환 겸, 나가면 안 될까요?”

절대로 안 된다는 대답이 그의 두 눈동자에 쓰여 있었다. 이리아는 그가 고개를 내젓기 전에 뒤늦게 한 문장을 속삭였다.

“이곳에선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하워드 공…….”

이후 한참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던 덱스터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리아는 도심에 나가 덱스터로부터 도망칠 생각이었다. 루 아휜은 분명 비센티움 국경을 넘었을 테니, 덱스터에게서 벗어나자마자 루 아휜에게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 명에게서 달아나면, 또 다른 한 명에게 잡힌다. 하지만 이젠 비센티움 도심을 돌아다니다가 루 아휜에게 들켜도 좋았다. 그에게 잡혀 루퀼렘 성으로 돌아가도 좋았다.

두 나라의 전쟁을 일으킬 바에는, 차라리 루퀼렘 성안에서 자유를 고대하며 평화롭게 목숨을 끊겠어.

‘결국, 완벽한 자유는 죽어서나 가질 수 있게 되겠구나…….’

이리아는 덱스터가 나간 후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만일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반드시 두 날개를 가진 새로 태어나리라.

저택에 온 이후로, 이리아는 처음으로 온통 새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원래 새신부가 될 여인은 하얀 치마를 입지 않지만, 저택에는 이 옷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신구가 달려 있었다.

이리아의 몸은 이제 치렁치렁하게 매달린 장신구의 무게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허약해진 상태였다. 약해진 그녀를 배려하여, 하녀들이 일부러 장신구 없이 가벼운 옷을 고른 것이다.

날씨는 우중충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온 하늘에 먹구름이 껴 있었다.

“절대로 무리하지 마.”

“네.”

“날씨가 좋지 못하군. 부디 비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덱스터가 말을 하며 케이프 앞을 여며 주었다. 이리아는 그가 이마에 입을 맞출 때도 피하지 않았다.

아마 이 남자는 꿈에도 모를 거다, 내가 오늘 그를 떠나리라는 사실을.

가출 계획에 결혼은 없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