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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8/109)

7화

만일 이리아가 군인이었다면 아주 크게 혼쭐이 났을 테지만, 다행히 그녀는 간호사였다. 덱스터 하워드는 이리아를 따로 부르지 않았고, 군인들도 그녀의 고함 소동을 가벼이 웃으며 넘겼다.

부대에서 이리아의 고함 소동을 계속 들먹이는 사람은 딱 한 명, 콘라드 메이필드뿐이었다.

이리아는 콘라드의 넘치는 장난기가 종종 원망스러웠다. 그는 이후에도 이리아를 만날 때마다 그녀를 ‘장군감’, 아니면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이라 불렀다.

보통은 이리아도 웃으며 장단을 맞추어 주었지만, 문제는 그가 덱스터 하워드 앞에서도 호칭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 큰일을 하실 분!”

마치 지금처럼.

이리아는 이번에도 콘라드와 함께 있는 덱스터 하워드를 보자마자 한숨을 삼켰다.

조그마한 부대 내에서 그를 피하고자 무한정 노력하는데, 왜 이리 덱스터 하워드를 자주 맞닥뜨리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참 다양한 이유로 사사건건 만나는구나. 이리아는 새빨간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당겨 시야를 최대한 가린 후, 콘라드에게로 다가갔다. 콘라드는 막 담배를 태우고 왔는지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무슨 일이세요?”

“뭐, 딱히 특별한 일이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니야. 네가 평생 안 만져 봤을 법한 물건 하나 가져왔지.”

“그게 뭔데요……?”

콘라드가 씨익 웃으며 등 뒤에서 소총을 꺼냈다.

이리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커다란 소총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주춤 물러났다.

“볼트액션 소총(*bolt-action rifle: 다섯 개의 총탄이 들어가는 소총, 노리쇠를 젖혀 수동으로 장전하는 방식)은 처음 보지? 군대에서만 쓰는 총이야, 씨시. 가르쳐 줄 테니 한 번 쏴 봐.”

머무르는 장소가 군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아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소총을 본 적이 없었다. 마물을 무찌르는 군인들은 총보다 검을 선호해 소총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리아는 얼떨결에 콘라드가 던진 소총을 받아 들었다. 손에 감겨 오는 총구의 느낌이 서늘했다.

여신을 모시는 루퀼렘 사람들은 헛된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다. 일평생 완벽한 루퀼렘의 마법사로 살아온 이리아는 그녀의 신앙 때문이라도 총을 잡을 수 없었다.

콘라드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오자, 이리아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안 돼요. 저는 사…… 살면서 칼과 총은 잡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도 배워.”

덱스터 하워드의 목소리였다.

이리아가 반사적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덱스터 하워드는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일렀다.

“잊었나? 이곳은 군부대야. 언젠가 총을 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어.”

이리아는 그의 말에 반박할 용기도, 힘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죽을상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총대를 잡아 들고 말았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여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총을 든 이리아의 자세는 당연히 엉성했다. 그녀는 탄피를 어디로 넣는지, 노리쇠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쯧, 뒤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며 커다란 손이 이리아의 손 위에 겹쳐졌다.

이리아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녀의 손을 잡은 이는 콘라드 메이필드였다.

콘라드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이리아의 양 뺨이 창피함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당연히 덱스터 하워드가 가르쳐 줄 거라 생각한 건지. 그녀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여기 툭 튀어나온 부분 보이지? 이게 노리쇠야. 이걸 이렇게 당겨서 장전해.”

다섯 발의 탄환은 이미 들어가 있었다. 콘라드가 노리쇠를 당기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총이 장전되었다.

콘라드는 여전히 이리아와 손을 겹친 채로 총구를 숲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냥 쏴.”

탕, 하는 괴성이 울리며 이리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총탄이 나가자마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두 눈을 꽉 감았다.

생명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총을 쏘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숨이 벅차올랐다.

볼트액션 소총은 다른 총들과 달리 총탄을 발사한 후에 노리쇠를 한 번 더 당겨 탄피를 빼내야 했다. 이리아는 능숙하게 탄피를 빼내는 콘라드를 보며 말을 잃었다.

그가 네 발의 탄환이 남은 소총을 이리아의 양손에 다시 쥐여 주었다.

“어때, 간단하지? 이제 혼자서 해 봐, 장군님.”

이리아의 시선은 저절로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덱스터 하워드로 향했다.

그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한 녹빛 눈동자를 보고선 한쪽 눈썹을 샐쭉거리다가, 묵묵히 앞을 향해 턱짓했다.

빨리 쏘라는 뜻이었다.

이리아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총을 들어 올렸다. 혼자서 들어 올린 소총은 생각보다 더 무겁고, 단단했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촉이었다.

그녀는 두 남자가 지켜보는 아래서 또 한 번 총을 쐈다. 콘라드는 총이 격발되는 순간 박수와 감탄을 내보였지만, 이리아는 작은 미소조차도 지을 수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졌다. 여신을 섬기는 루퀼렘 사람으로서, 크나큰 죄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총의 격발 소리를 들은 부대원들은 이리아가 사격을 배웠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대부분 어렸을 적부터 총과 칼을 잡아 온 비센티움 사람들은 이리아에게 축하의 손뼉을 쳐 주기도 하고, 너무 늦게 배웠다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물론, 이리아는 그 어느 반응에도 웃어 줄 수 없었다.

루퀼렘의 대마법사인 이리아 아델리어에게 총을 잡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수치였다. 그녀는 퍽퍽한 고구마를 씹으며 총을 배운 일을 후회했다.

아무리 덱스터 하워드의 명령이었다고 해도, 총만은 잡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 오늘은 씨시가 한 번 사냥에 가 볼까? 어때?”

“네……? 제, 제가요?”

“총 쏘는 법도 배웠잖아? 배운 건 바로 써먹어 봐야지!”

역시, 총만은 잡지 말았어야 했다.

이리아는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간호사들을 응시했다.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저……저는 채식주의자예요! 그, 그런 제가 왜 사냥을…….”

“평생 풀만 먹고 산다는 게 사냥을 안 한다는 뜻은 아니잖아, 씨시. 비센티움 사람이라면 사냥 정도는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지!”

이리아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군인과 간호사들은 막무가내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그녀를 밀어붙였다. 뼛속까지 비센티움 제국민인 그들의 머릿속에는 총칼을 잡는 순간부터 ‘사냥꾼’이 된다는 인식이 단단하게 뿌리박혀 있었다.

이리아는 두 손에 망설임 없이 총을 쥐여 주는 줄리에타를 보며, 끝끝내 완벽하게 말을 잃고 말았다.

새삼 이 자리에서 루퀼렘 사람은 오로지 그녀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와닿았다. 그녀의 양손에 들린 소총이 루퀼렘과 비센티움 국민성의 차이였다.

같은 장소에 있고 같은 일을 하지만, 홀로 다른 세상에 뚝 떨어진 듯한 괴리감이 이리아를 뒤덮었다. 이리아가 불안 가득한 눈빛을 하며 제자리서 움직이지 않자, 한 간호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못 잡을까 그래요? 여기에 널리고 널린 게 산토끼예요, 씨시. 다섯 살짜리 아이도 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그런 게 아닌데…….”

“잔말 말고 후딱 다녀오거라, 씨시 힐데어! 자꾸 빼니까 꼭 루퀼렘 사람 같잖아!”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이리아는 평생토록 성안에 갇혀 살았기에, 루퀼렘 왕국과 비센티움 제국이 ‘어느 정도’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만 들었지, 서로의 민족을 혐오한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비센티움 제국이 루퀼렘 왕국민뿐만 아니라, 마법 자체를 싫어한다는 사실 또한 뒤늦게 알았다.

루퀼렘 사람 같다는 말이 비센티움에서는 큰 조롱이구나. 이리아는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대마법사를 힐난하는 루퀼렘 사람들이 상상되었다.

‘내가 비센티움에서 총을 잡고, 살생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말들을 할까?’

이리아는 결국, 숲에 들어가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원망스럽게도, 간호사의 말대로 숲에는 막 겨울잠에서 깬 산토끼들이 많았다. 잡을 동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핑계도 못 쓰게 되어 버린 셈이다.

이리아는 총을 든 그녀를 보고 후다닥 도망친 한 토끼를 마지못해 겨냥했다.

멀리 보이는 토끼의 꽁무니 위로 가늠쇠를 맞추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차마 노리쇠까지는 당기지는 못했다.

[아, 안 돼. 못 쏘겠어…….]

이리아의 두 팔과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젖어, 닦아도 닦아도 축축했다.

이리아는 총을 내리고선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숲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가면 그녀는 비난의 대상이 될 터였다. 어쩌면 루퀼렘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산짐승을 살생할 수는 없었다. 여신과 대마법사의 이름을 걸고, 살생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난 이미 대마법사로서 총을 잡는 큰 죄를 저질러 버렸어…….’

이도 저도 못 하는 이리아는, 이대로 숲 깊은 곳에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발걸음이 새까만 숲의 끝을 향해 천천히 내디뎌지는 순간, 등 뒤에서 탕!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아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토…… 토끼가 왜…….]

방금까지 열심히 도망치던 토끼가 죽어 쓰러져 있었다.

이리아가 딸꾹질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입을 틀어막고선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혼의 숲은 고요했다. 이리아를 제외한 사람의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누가 총을 쏜 건지 살피기 위해, 이리아는 머뭇거리면서도 죽은 토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출처 모르는 탄환은 토끼의 급소를 정확히 꿰뚫은 상태였다. 누가 쏜 건지는 몰라도, 상당한 명사수라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이리아는 턱 끝에 아롱아롱 매달린 눈물을 훔쳐 내며 토끼를 쏜 이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는 사람은 없었다. 숲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이리아가 그녀의 발치에 죽어 있는 토끼를 눈물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미……미, 미안해…….]

그녀가 죽은 토끼를 살며시 집어 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토끼 사체는 끔찍했다. 도무지 손에 들린 토끼를 볼 수 없던 이리아는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이리아는 자신이 잡지 않은 토끼를 들고서 부대로 복귀했다. 눈물범벅인 얼굴을 본 부대원들은 그녀가 마음이 참 여리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리아는 생각했다.

마음이 여린 것이 아니라, 뉘우칠 수 없는 죄를 저질러 슬픈 것이라고.

이리아는 라이터를 처음 발견한 그날 밤처럼, 이날 밤에도 침대에 코를 박고선 서럽게 흐느꼈다.

다음 날 아침 얼굴이 부어 군인들에게 놀림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비센티움은 완벽한 루퀼렘인 그녀에게 너무나도 힘겨운 장소였다.

이리아는 지쳐 잠이 들면서, 또 한 번 루 아휜이 나타나 그녀를 달래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루 아휜은 기나긴 잠이 끝날 때까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사람들은 다시는 이리아에게 사냥을 시키지 않았다. 몇몇 군인들이 ‘씨시 힐데어는 루퀼렘의 평화주의자 같다.’라고 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루퀼렘 사람으로 의심하지는 않는 듯했다.

이리아는 총을 잡고 나서, 아주 조금 루퀼렘 성이 그리워졌다. 그곳은 외롭고 갑갑한 장소였지만, 적어도 사냥같이 끔찍한 일을 강요하진 않았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거지만.’

7년 동안이나 계획한 가출을 먼지로 만들 수는 없지.

이리아는 잠시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은 가위를 소독했다.

간호사의 일상은 바빴기에 평소 같았다면 소독을 재빨리 끝내고선 다음 업무에 착수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리아는 일부러, 최대한 느리게 가위를 닦은 후 막사를 나왔다.

그녀는 덱스터 하워드의 어깨를 치료한 실밥을 제거하러 가는 길이었다.

가출 계획에 결혼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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