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마법석……?”
가게에 모인 사람들은 주인의 말을 귀신만큼이나 잘 훔쳐 들었다.
그들은 마법석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일제히 이리아를 쳐다보았다.
“이건 보석이 아니라 마법석이네요, 아가씨. 이걸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어, 그…….”
가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게 주인의 어투도 변했다.
아주 짧은 순간, 이리아의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녀는 당황한 낌새가 역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루퀼렘 성에 있었을 때는 그녀의 옆에 언제나 기사단과 선생들이 함께했었다. 이리아에게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들이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없다.
이리아는 혼자가 되기를 택했고, 지금부터 문제는 그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이리아는 은근슬쩍 마법석을 다시 가져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얼버무려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강하게 지배했다.
“어, 어느 상인이 분명 보석이라고 하면서 제게 팔았는데, 아……아니었나 봐요.”
“요즘 마법석 사기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조심해야 해요, 아가씨. 제가 봐서 망정이지, 다른 가게의 주인장들이 봤다면 아가씨를 분명 정찰병에게 신고했을 겁니다.”
“그, 그런가요…….”
왜 마법석 하나로 정찰병에게 신고까지 하는 거지? 이리아는 어리둥절했고, 동시에 비센티움이 참 무시무시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비센티움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아주 조금 깨져 버렸다. 하지만 기대가 깨진 것은 둘째치고, 문제는 돈이었다.
양껏 챙겨 온 마법석들을 팔 수 없다. 마법석들을 팔 수 없으면 돈이 안 생긴다.
돈으로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비센티움에서, 이리아는 한순간에 완벽한 빈털터리가 되었다.
가게 주인은 어두운 이리아의 표정을 보고 살짝 웃으며 은화 한 닢을 내밀었다. 그의 눈에 이리아는 갓 세상에 나온, 무척이나 어린 비센티움의 아가씨였다.
“다음부턴 상인과 거래할 때 두 번, 세 번 살펴보고 사세요. 이건 위로의 의미로 주는 은화입니다.”
“가, 감사해요.”
소득은 딸랑 은화 한 닢.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리아는 그나마 벌었던 은화 한 닢마저도 틸다가 마실 물을 사 탕진하고 말았다.
방대했던 7년의 계획이 단 몇 시간 만에 무참히 깨져 버렸다. 이리아는 거리를 거닐며 바깥세상이 생각한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틸다가 콧김을 뿜으며 이리아의 어깨에 뺨을 문질렀다. 이리아는 틸다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알자마자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틸다! 너는 절대로 팔지 않을 거야!]
이리아는 하얀 조랑말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루퀼렘이 있는 쪽이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을 본 이리아의 어깨가 더더욱 축 처졌다. 자신의 선택으로 고향을 도망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쯤이면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온 성에 퍼졌겠지……?]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루퀼렘은 지금 난리가 났기에.
이리아는 쓸모없는 마법석만 두둑이 쌓인 자신의 주머니를 보고선 아주 잠시 돌아갈까 고민을 했지만, 황급히 고개를 저어 훌훌 털어 버렸다.
그 성으로는 절대 돌아가기 싫었다. 다시 갇혀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어.
이리아와 틸다는 해가 질 때까지 정체 모를 비센티움의 거리를 거닐었다. 다리가 아프고, 배는 미칠 듯이 고팠지만, 돈이 없었기에 그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리아는 비센티움의 날씨가 루퀼렘보다 따뜻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얇은 성기사의 튜닉만으로도 저녁이 꽤 버틸 만했다.
평생을 성에 갇혀 마법석만 만들어 온 이리아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센티움의 거대한 게시판에는 온갖 가게의 구인 공고문들이 붙어 있었지만, 이리아가 지원할 수 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었다.
돈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어떡하지? 아까 게시판에 백작가 하녀를 구한다는 공고문이 있던데 한번 해 볼까? 청소량 빨래 정도는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분명 못할 거야. 한 번도 해 본 적 없잖아. 잘할 자신이 없어…….’
이리아는 어두컴컴한 미래를 상상하며 무작정 걸어 나갔다.
일평생 ‘음지’라는 곳을 본 적 없는 그녀는, 자신이 지금 비센티움 도시의 음습한 뒷골목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먼저 멈춰 선 이는 조랑말 틸다였다.
틸다가 두 다리를 앞세워 주인을 지키려는 행동을 취했다.
“여, 때깔 좋은 망아지네?”
“이곳에는 이런 말 들고 오면 못쓰는데-.”
“요즘 말고기는 시세가 얼마 정도 하더라? 아, 저놈은 쪼그마해서 도려내도 별로 안 나오려나?”
남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 웃었다.
겉모습으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이리아는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에 난 거대한 흉터들을 맞닥뜨리자마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이리아의 코를 찔렀다. 평생을 인공 달 아래서 살아온 이리아는 ‘진짜’ 밤하늘 아래를 거닌 적이 없었기에, 밤눈이 몹시나 어두웠다. 그녀는 밤과 골목의 어둠 속에 묻힌 남자들이 몇 명인지도 제대로 세지 못했다.
왼쪽에서 한 남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제 보니 망아지보다 주인이 더 때깔이 좋잖아?”
어둠 속에 갇힌 이리아의 심장이 쿵쿵 날뛰었다.
이런 경험은 이리아의 상식 속에 없었다. 그녀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밤눈은 이리아보다 조랑말 틸다가 더 좋았다. 틸다가 콧김을 내뿜으며 이리아의 머리카락을 건들려는 남자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깨물었다.
“윽! 이 망할 짐승 새끼가!”
남자가 한 손에 엉성하게 쥐고 있던 단도를 휘둘렀다. 틸다의 목덜미에 희미한 선이 새겨지더니, 새하얀 털을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히이잉. 틸다가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틸다!”
이리아가 다급히 틸다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틸다의 상처는 깊지는 않았지만 넓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 부위가 썩을 수도 있는 상황.
이리아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참아 냈다. 앞으로 더 힘겨운 날들이 펼쳐질 수도 있는데, 겨우 이런 일로 울음을 터뜨리면 안 돼.
“어디, 얼굴 한번 보자.”
“아……!”
피가 쏠려 붉게 물든 이리아의 얼굴을 한 남자가 우악스럽게 잡았다. 남자는 그녀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고선 실소를 터뜨렸다.
“미친. 엄청 예쁘잖아? 이민족의 피가 조금 섞인 것 같지만 이 정도 얼굴이면 귀족가에 비싸게 팔 수 있겠어. 이년은 무조건 상등품이야.”
남자가 낄낄 웃었다. 그가 이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손짓과 행동을 하며 골목에 숨은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먼저 몇 번 따 봐야겠는데!”
이어, 골목에서 왁자지껄하고 공포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아는 남자의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좋지 못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차렸다.
그녀가 주머니 속에 가득 쌓인 마법석들을 한 아름 움켜쥐었다.
루퀼렘에서는 최상의 마법석들이었지만, 어차피 비센티움에서는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 마법이 들었으나 돌덩이는 어차피 돌덩이. 맞으면 꽤 아플 테지.
이리아가 얼굴을 움켜쥐고 있는 남자의 손을 힘껏 깨물었다.
“악-! 이년이!”
남자의 손이 놓이자마자, 이리아는 움켜쥔 마법석들을 남자를 향해서 뿌렸다. 주머니가 텅 빌 때까지 정신없이 마법석을 뿌린 이리아는 남자가 등을 돌린 사이, 틸다의 고삐를 움켜쥐고선 있는 힘껏 뛰었다.
그러나 이리아는 일평생 무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성을 사뿐사뿐 걸어 다닌 대마법사였다. 그녀의 달리기는 너무 느렸고, 다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리아가 남자의 팔을 풀기 위해 마구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끝내 눈물이 쏟아지려는 순간, 멀리서 어떤 여인의 고함이 들려왔다.
“싫다고 하잖아, 이 약쟁이들아-!!”
빡! 벽돌만 한 나무토막이 날아와 남자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남자는 바지 버클을 풀다 말고 기절하여 뒤로 털썩 쓰러졌다.
이리아는 어두운 밤눈 때문에 보이지 않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녀가 한창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탁 손목을 잡아 왔다.
“뛰어요!”
이리아는 여인이 이끄는 대로 달음박질쳤다.
여인의 반대편 손에는 틸다의 고삐가 감긴 상태였다. 다행히 틸다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둘은 비센티움의 뒷골목을 뚫고 가로등이 비추는 환한 밤거리로 나왔다. 이리아는 얼굴을 흥건하게 적신 눈물을 닦으며, 자신을 구해 준 여인과 마주했다.
스무 살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여인은 어두운 밤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건강한 살굿빛 콧잔등에는 옅은 주근깨까지 자글자글 올라 있었으니, 누가 봐도 완벽한 비센티움 제국민이었다.
푸르릉. 틸다가 코를 털며 이리아의 품에 안겨 왔다. 이리아는 틸다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자신을 구해 준 여인에게 고개를 수그렸다.
“고……고마워요.”
“천만에요. 저 골목에는 마약에 찌든 인간들이 많아요. 낮에도 사람들이 피하는 장소인데, 밤에 들어가다니. 정말로 큰일 날 뻔했죠.”
“그, 그런 곳일 줄은 몰랐어요.”
이리아는 그녀가 도망쳐온 거리를 보고 몸을 떨었다.
성밖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루 아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리아는 절대로, 다시는 비센티움의 좁은 골목에 발을 디디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갈색 머리 여인은 자신이 줄리에타 엘로이스라고 소개했다.
줄리에타가 여전히 몸을 떠는 이리아를 더 넓고 밝은 대로로 이끌었다.
이리아는 밤거리를 가로질러 다니는 비센티움의 마차들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 이곳의 마차는 천장이 있구나. 이리아가 남쪽 나라의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처음이신가 봐요? 하긴, 북쪽 변방의 도시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처, 처음이라기에는, 사실 그…….”
이리아는 밤공기 때문에 서늘해진 뒷덜미를 문지르며, 잠시 멈춘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집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갈 곳이 없어서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중이었어요.”
“그럴 수가……. 지, 집은 왜 나온 건데요?”
“절 방 안에 가둬 두고 일만 시켜서요.”
앞서가던 줄리에타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녀가 한껏 애잔한 얼굴을 하고선 이리아를 돌아보았다.
이리아가 루퀼렘 사람이라는 걸 꿈에도 모르는 줄리에타의 눈에 빨간 머리 ‘씨시’는 너무나도 작고 여렸다. 그러잖아도 툭 치면 날아갈 만큼 여린데,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딱지까지 붙으니 불쌍하기까지 했다.
정찰병에 신고를 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는 줄리에타의 콧잔등 위로 빗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녀가 코의 물방울을 닦아내기 무섭게, 까만 밤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낭패 위의 낭패였다. 이리아는 빗물에 흠뻑 젖어 가는 자신의 옷자락을 허망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옷밖에 없었다. 이게 비센티움에서 입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옷이었다.
줄리에타는 물에 젖어 더 조그마해진 이리아를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이리아는 쏟아지는 비를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선,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줄리에타가 이리아의 손목을 부드럽게 휘어잡았다.
“일단 저랑 같이 가요. 저는 도시 변두리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일개 간호사지만 밥 한 끼 정도는 대접해 줄 수 있어요.”
이리아는 틸다를 데리고선 줄리에타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출 계획에 결혼은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