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손에 잡힐 듯한 가는 목이 바깥으로 휘어졌다.
그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아.’
마치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은 아찔한 쾌감.
데일 듯 뜨거운 열기가 그와 그녀를 동시에 휘감고 있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제 아래 누워 있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을수록, 마치 모래 산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 갈급함은 더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너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답 없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이미 몸은 빈틈없이 밀착해 있는데도. 귀 끝까지 찢어진 채 입을 벌린 허기와 욕망이 그의 몸을 난폭하게 휘둘렀다.
“아……흑! 아, 아아……!”
그 신음이 그의 감각을 더욱 극렬하게 끌어올렸다.
그의 머릿속을 완전히 태워 버리고 아무것도 더 참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흐읏. 큭!”
“읏. ……하앗!”
일순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들의 몸이 동시에 경련하며 굳어졌다.
등줄기가 빠듯하게 당겨 왔고 척추를 타고 올라가 머리를 진동시키는 자극은 끔찍할 정도로 강렬했다.
손끝이 떨릴 정도로, 고문에 가까울 정도의 쾌감.
그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여인뿐이다.
“하아…… 하아.”
작은 입술 사이에서 데워진 호흡이 그에게 와 닿았다.
빠른 고동 소리가 가슴을 타고 이어졌다.
둘이었으나 하나로 이어진 심장 소리가 조금 전의 희락만큼이나 그를 만족스럽게 했다.
이 심장 고동처럼 저 숨도 하나가 되면 좋으련만.
“괜찮, 아요. 다 괜찮아요.”
꺼내 놓지 않은 그의 그런 마음들을 전부 읽고 있는 것처럼, 그녀가 붉어진 그의 귓가에 열기 어린 입술을 눌렀다.
“다 잘될 거예요.”
그가 꽉 잠겨진 목을 열어 물었다. 제가 듣기에도 흉할 정도로 갈라지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엇이?”
“모든 게.”
세화의 손이 뜨거운 열기를 품은 그의 맨 등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혹시 부모님께서 혼인식을 반대하시면 배 속에 이미 아이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때요?”
깜짝 놀란 그가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런 일을 거짓으로 말씀드렸다가 더 반대하시게 되면 어떡해?”
“뭐. 또 알아요? 우리 아이가 미리 효도하겠다고 정말 빨리 찾아와 줄지. 아니어도 혼인식을 한 다음에, 그런 큰일에 거짓말했다고 잠깐 혼나죠, 뭐.”
거칠게 뛰는 심장을 하고도 세화가 맑게 웃었다.
“당신이 더 중요해.”
다시금 작은 손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당신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 그 누구를 실망시키게 되는 한이 있어도 혼인식을 먼저 치를 거라고. 모두의 앞에서 당신과 나, 서로에게 속하는 모습을 보일 거라고.
“…….”
참 이상하지. 그녀는 이리도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데, 듣고 있는 그는 눈가가 뜨끈히 달아올랐다.
그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당황한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 향해졌으나 거부의 말은 없었다.
그것을 변명 삼으며 힘겨운 숨을 흘리는 입술을 다시 제 것으로 삼켜 버렸다.
뜨거운 열기가 다시 한곳으로 몰렸다.
그녀의 몸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충만하면서도 허기진 긴 밤이 그의 주위에 아득하게 놓여 있었다.
* * *
나흘이 못 되어 손님들이 찾아왔다.
조용하던 저택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대문을 들어서는 손님들의 얼굴엔 황급히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세화야!”
“아가씨!!”
애타는 목소리에 입술을 꾹 문 세화가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아버지! 어머니! 얘들아!”
“맙소사. 세화야!”
주명윤이 팔을 벌리며 그런 여식을 번쩍 안아 들었다.
생사도 모르는 채 헤어져 있다가 한 달여 만에 만나는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이리 와 보거라. 얼굴 좀 보자.”
딸의 얼굴을 연신 쓸어내리며 무사함을 확인하는 이들과 눈가가 붉어진 채 고개를 주억이는 세화까지.
모두가 무탈한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얼싸안고 있는 이들을 응시하던 최장명이 저들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물러났다.
대문 밖으로 나와서는 시선이 문득 어딘가로 흘렀다.
조금 망설이던 최장명의 발걸음이 시선이 가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신영의 저택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그도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담장밖에 남지 않은 그 저택에 도착했을 때 백가 무사의 차림을 하고 있는 그를 누구도 막아서지 않았다.
방해하는 이가 없는 상태에서 그는 거무스름하게 변한 문을 밀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신영의 불로 모든 게 태워졌다 했던가.
내부는 이미 남은 전각 하나 없이 너른 공터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
침잠한 그의 시선 안쪽으로,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던 어떤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 어머니의 초상화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정말 내 어머니였을까?’
어머니의 모습은 그 종이 속 그림을 보았었던 것이 다였기에 완벽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나 만약 맞다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이후 세화의 두 오라비에게 자신들이 지나왔던 곳에 대해 물어보니 그곳은 부인들의 전각이라 했다.
‘신영의 팔부인들 거처 중 하나였다니.’
그건 만약 그분이 정말 제 어머니가 맞다 해도, 이미 몸 뺏기가 시행되었다는 증명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남아 있는 전각이 없었기에 제가 그날 지나쳤던 그 건물의 잔해를 찾는 데는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다.
그 장소에서 그는 잠시 서성였다.
정말 어머니였을까.
어머니와의 추억은 가진 것이 전혀 없었기에 만난다 한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가라앉는 듯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것을. 조금 더 그 얼굴을 자세히 기억에 새겨 둘 것을. 그런 후회가 들었다.
아버지가 모르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면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얼굴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망설이던 최장명이 품 안에서 백가에서부터 꺾어 온 탐스러운 꽃 한 송이 하나를 꺼내어 내려놓았다.
“편히…….”
하지만 그는 결국 뒷말을 삼켰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팔부인들 중 하나였다면 제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소멸한 것일 텐데.
그런 어머니의 몸을 빼앗은 적의 명복을 빌어 주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말을 완성하지 않고 일어선 최장명은 왔을 때처럼 다시 조금 망설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그 자리를 비웠다.
* * *
“……그래서 주가 영토는 오랫동안 교룡의 힘에 잠식되어 있던 곳이다 보니 땅 자체가 사기에 깊이 노출되어 있었어요. 정화가 이루어지던 시점에 신영의 불에 타고 있던 저택 역시 원혼들이 그대로 녹아 있어 그걸 먼저 정리해야 했고요.”
“그럼 여기서 사기를 정화하고 있었던 것이냐? 깨어나긴 얼마 전에 깨어났던 거고?”
“예. 많이 염려하셨을 텐데 직접 가 보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다.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다. 이리 돌아와 주었으니 다 되었어.”
“한데 아버지. 백가주가 소식을 알리러 먼저 백가에 돌아갔을 때 혹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응? 무얼 말하는 거냐?”
“……아뇨. 죄인들이 모두 그곳으로 끌려간 터이니 뭔가 다른 일은 없었나 염려가 되어 한 번 여쭤봤어요.”
사실 그건 주명윤도 세화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긴 했다.
그 사내가 지금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혹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들 말이었다.
“……다른 일은 없었다만.”
주명윤의 시선이 며칠 전 백기하와 혼례식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때를 떠올리며 잠시 허공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