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224/254)

입술이 깃털처럼 가볍게 그녀의 피부 위로 내려앉았다.

녹을 듯 달콤한 숨소리를 제 귓가에 담으며 백기하는 곡선이 아름다운 그녀의 턱과 목께를 제 입술로 더듬었다.

열락보다 다정이 더 짙게 담긴 움직임에 세화가 가볍게 웃었다. 그의 어깨에 제 이마를 비볐다.

작은 새 같이 친근한 그 모습을 남자는 음영 져 짙어진 시선으로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 같기도 했고 힘껏 끌어 내려져 바닥 깊은 곳으로 처박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슴 안쪽에서 솟아나는 해일 같은 애정을 저 자신도 도무지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더없이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다.

잎새를 흔드는 살랑바람 앞에서도 지켜 주고 싶었고, 제 발로 땅을 밟지 않아도 되도록 안아 주고 싶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모든 일을 그가 대신해 주고, 마냥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곁에서 언제까지고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것에 익숙해져서.

‘내가 곁에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그러면 얼마나.

얼마나.

“…….”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당신.”

가라앉은 그의 속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하얀 손이 그의 볼에 닿아 왔다.

“계속 조금 이상해요. 아버지께 무슨 말을 듣기라도 했어요? 화가 많이 나셨어요? ……걱정하셨을 텐데 내가 바로 찾아뵙지 못해서.”

“그건 그대 탓이 아니잖아. 그대는 여기서 더 급하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그래서 내가 홀로 먼저 다녀오기로 했던 거고.”

고개를 저은 그가 조금 웃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혼을 내시기는커녕 장인어른께선 어서 혼인식을 치르라 하셨다니까.”

“그럼 어머니께 무슨 말을 들었어요?”

“아니.”

“아니면 오빠들이에요? 범인만 딱 말해요.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그 누가 나타난대도 절대 꺾이지 않을 결심을 내보이는 반짝이는 시선을 그가 또 가만히 응시했다.

화가 난 듯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과 굳건한 제 의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작은 손이 동그랗게 말리며 주먹이 되는 모습까지도.

그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대가 해결해 줄 거야?”

“말만 해요.”

그의 목을 끌어당긴 그녀가 굳어 있는 그의 눈가에 제 붉은 입술을 찍었다.

“아무 걱정 하지 말고요. 나도.”

단단한 그의 미간에, 코끝에, 턱 끝에 입술을 누른 그녀가 덧붙였다.

“나도 당신을 위해선 못할 일이 없다고 했잖아요.”

“나를, 위해서?”

“그래요. 그러니 누가 뭐라고 혼인식을 반대했든 염려 말아요. 백가 전체가 반대하며 들고일어나도 내가 당신 납치해서 강행할 테니까.”

“백가는 반대 안 해.”

“좋아요. 백가는 아니고. 그럼 대체 누구예요? 아버지는 아니셨다는 말, 정말이죠?”

“……장인어른도 반대 안 하셔.”

“백가랑 아버지는 아니고. 어머니는 이미 당신을 사위라고 부르시니 당연히 아닐 테고. 오라버니들밖에 없군요, 그럼.”

“아니야. 형님들은 만나지도 못했어. 그냥 이건.”

“이건?”

“이건…….”

“아직도 나한테 말 안 해 줄 거-, 흡!”

제 바보 같은 속내 중 어떤 것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그가 그저 허겁지겁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달고 부드러운 붉은 입술이 제 것에 잡히는 순간 백기하의 울대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체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체온이 서로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몸이 녹아내릴 듯 온기가 차올랐다.

영원히 닿아 있고 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그러면서도 좋을수록, 따뜻해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지독한 갈증과 허기가 몰려들었다.

그의 혀가 조금 벌려진 붉은 입술 사이를 성급히 헤치고 들어갔다.

달콤한 타액을 마시며 미끈한 점막을 더듬었다.

말보다 빠른 숨이 둘의 입술 사이에서 뭉쳐 들었다.

순식간에 머리가 달아올랐다.

“……흐읏.”

희미하게 헐떡이는 작은 몸의 존재가 팔 안에서 생생했다.

바짝 달아오르기 시작한 열기가 묵직하게 배 속에 고였다.

“하아……. 흣!”

그녀의 것이라면 가쁜 호흡의 한 부분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가 붉은 입술을 세차게 빨아들였다.

작은 입안을 제 혀로 샅샅이 핥고 그 안을 유영하며,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애써 내리눌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를 정자 바닥에 눕힌 뒤였다.

“미안해. 바닥이 찬데.”

깜짝 놀라 제 겉옷을 벗어 까는 남자를 세화가 가만히 바라봤다.

음영 진 채 흔들리는 그의 두 눈동자 안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숨기고 있지만 채 다 감춰지지 않는 어떤 조급함. 자괴감. 외로움까지.

“백기하.”

당황하는 그의 어깨를 그녀의 손길이 가만히 두드렸다.

“당신, 혹시 그 밤 기억나요?”

“그, 밤?”

“이곳에서 당신이 내게 금을 연주해 주었던 그 밤이요.”

붉어진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미소에 그의 몸이 멈춰 섰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까.

그대에게 그리 가까이 닿아 본 첫날이었는데.

별이 가득 쏟아져 내릴 것 같던 밤하늘. 그 사이에서 빛나던 은빛 달.

만개한 연꽃들과 부드러운 금의 소리.

그의 가슴에 닿아 있던 그녀의 체온.

그는 그것을 마치 어제인 양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나 그때 너무 좋았어요.”

“뭐가?”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요.”

“…….”

“당신은 백가의 영지에 있고, 나는 주가의 영지에 있으니, 언제 보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백가로 가는 일에 차출되긴 했지만 변수는 어디에도 있는 거고. 혹 그 백가행마저 어그러지고 나면 당신을 한참 동안 못 볼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당신이 맨몸으로 달려왔죠, 내게.”

“…….”

“불사도 아닌 상태이면서. 신영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모든 호위를 뒤에 두고 홀로. 나를 만나러.”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던 손을 들어 올린 그녀가 그의 볼을 더듬었다.

“그때 결심했었어요. 내 일이 끝나면. 이 복수가 모두 끝나는 날이 온다면. 난 그때부턴 당신을 위해 살 거라고.”

“……그대.”

“언젠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정말로 오게 되면.”

떨리는 그의 눈가를 매만지며 세화가 다시금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때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거라고. 내게 모든 것을 내어 준 당신에게. 나 또한 내 영력, 내가 가진 모든 것, 호흡의 한 자락까지 모두 줄 거라고. 전부 당신에게 줄 거라고.”

“…….”

침묵하는 그를 세화가 당겨 안았다.

무어라 뒷말을 덧붙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저 그의 써늘한 귓바퀴에 입을 맞췄다.

못내 소중한 것을 끌어안은 것처럼 그녀가 팔에 힘을 주고 속삭였다.

“당신은 내 거야.”

“…….”

“나도 그렇고.”

“…….”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제 속을 이미 다 읽어 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불안도. 결코 내보이고 싶지 않은, 날아가게 하고 싶으면서 잡아두고 싶은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이 마음도.

떨리는 그의 시선이 가만히 눈앞에 놓인 그녀의 흑색 머리카락을 응시했다.

“사랑해요.”

이 짧은 한마디의 말이 어쩌면 이렇게도 번번이 그의 심장을 괴롭히는 것인지.

“…….”

달콤한 목소리.

그를 살아 있게 하는 목소리. 그 무엇보다 소중한 여인. 내 아내.

어쩐지 코끝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목구멍이 딱딱하게 조여들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왜 자꾸 불안해질까. 더 초조해질까.

그건 필시 제 앞에 있는 여인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정자의 기둥 사이를 통과하는 하얀 달빛이 그녀의 위로 쏟아지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미소짓는 그녀는 달빛보다 신비로웠다.

연꽃과도 같은 그녀의 체향이 그의 가슴 속 가장 뜨거운 것들을 건드렸다.

전력으로 그를 안아 주는 상대가 이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바랐던 단 하나, 유일한 상대가 기적처럼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삼켜 낸 그가 흐트러진 그녀의 옷을 마저 벗겼다.

빨리 맨살을 맞대고 싶었다.

그만이 볼 수 있는 그녀의 몸을 만지고, 몸 안쪽 심장의 박동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도 그와 같은지. 함께 있을 때 이리 호흡이 빨라지는지. 이렇게 심장이 먼저 느끼도록 못내 좋은지.

그녀도 똑같이 손을 움직여, 겹겹이 입은 서로의 의복이 성급히 바닥으로 쏟아졌다.

위압적인 근육의 형태가 명확한 그의 몸보다 먼저, 설산처럼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달빛 아래에서 새하얗게 드러났다.

예복 사이에 가려져 있던 쇄골의 형태와 얇은 어깨. 하얗고 봉긋한 둔덕까지. 그의 시선 앞에 무엇 하나 숨겨지지 못한 채로.

그의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드러난 맨살 위에 쪼듯이 입술을 누른 남자가 성급히 그 투명한 둔덕을 삼켰다. 끝을 물고 세차게 빨아당겼다.

“……흣!”

나직이 신음을 낸 그녀가 허리를 트는 작은 움직임마저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닿아 있는 입술로 나직이 전달되는 심장의 고동이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아무도 입술을 대 본 적 없을, 이 심장과 가장 가까운 언덕을 제 입에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드러운 피부 위를 그의 입술이 정신없이 오갔다. 한 군데도 제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도록 세게 빨아들이며 배회하다가 오목한 배 아래까지 내려갔다.

꽃향기인지 그녀의 체향인지 분간할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아찔할 만큼 진해졌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엉망으로 무너졌다. 더 가까이. 이보다 더 가까이 닿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 위를 마구잡이로 더듬으며 결박하던 손이 그녀의 안쪽을 매만졌다.

“!”

애처로울 정도로 가는 허리가 튀어 올랐다.

“읏…… 흣.”

달콤하고 달아서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녀의 입가를 흐르는 호흡의 한 자락까지 아쉬운 그가 정신없이 작은 입술을 빨아 마셨다. 아무도 확인한 적 없을 그 젖은 안쪽의 점막을 제 혀로 낱낱이 확인했다.

그의 손과 시선 아래, 입술 아래. 어떤 곳도 가리지 못한 작은 몸이 다시금 허리를 틀었다.

제게서 떨어지려는 그 몸짓에 위협적으로 목을 울린 그가 가는 몸을 온 힘을 다해 제 가슴 안쪽에 바짝 붙였다.

길고 하얀 다리를 움켜쥐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도록 단번에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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