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254)

그것을 별당을 향해 던졌다.

화르륵!

구슬이 깨어지며 그 어떤 영력으로도 쉬이 꺼지지 않는 붉은 불꽃이 금세 기둥 사이로 번져 들었다.

“하하.”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진실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새빨간 불길이 별당을 빠르게 집어삼키는 모습에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짙은 살기가 그녀의 어두운 눈 속에 진흙처럼 번져 갔다.

얼마나 죽이고 싶었던가.

네놈들 모두를 내가 그간 얼마나-.

그녀가 별당 주변을 향해 두어 개를 더 꺼내어 던졌다.

그리고는 저택의 측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걷던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새 뛰듯 빨라져 있었다.

뛰는 동안 신영의 불이 담긴 구슬을 주위로 던지는 그녀의 시선과 호흡이 급했다.

유일하게 열어 두라 했던 측문까지 달려간 칠부인이 잘 다듬어지고 관리된 문을 넘었다.

그렇게 그녀는 저택의 바깥에 서 있었다.

정말로 저택 바깥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시선이 잔뜩 흔들렸으나 그녀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하하!”

칠부인이 목소리를 높여 웃으며 목함 안에 남아 있던 것들을 상자째로 문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그런 후 측문의 한가운데에 가져온 마지막 영기를 세웠다.

제 손조차 드나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뜨겁고 투명한 것들을 흘려 냈다.

“다 죽어라! 한 놈도 공범이 아닌 놈들이 없으니! 너희 모두 이곳에서 죽일 것이다!!”

몸이 돌아오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칠부인의 몸속에서 할 수 있는 일 하나 없이 그저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동안.

‘내 몸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면.’

이것 하나만을 얼마나 꿈꾸었던가.

그렇게 되면 가족들을 만나러 달려가야지.

한번 안아 주지도 못했건만 잘 자란 아들을 보고, 너를 사랑한다 말해 줘야지.

홀로 힘겹게 아이를 키웠을 다정한 남편을 향해, 당신이 자랑스럽다. 그동안 많이 애썼다고 말해 줘야지.

모두를 만나 행복해지는 그런 꿈을 꾸었다.

하나 막상 몸을 찾은 그녀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모두 죽어라!! 한 놈도 빠짐없이!”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을 비명처럼 토해 놓는 칠부인의 시선은 흔들리고 일렁여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야 속에서도, 저택의 높다란 담장 안쪽으로 붉은 불길이 거세게 솟아오르는 모습만은 무엇보다 선명했다.

불길이 저택을 뒤덮는 동안, 칠부인이 내도록 그곳에서 한 맺힌 울음을 토해 냈다.

* * *

연옥이란 이런 곳일까?

전투가 멈춘 강변엔 교룡이 스스로 찢고 터뜨린 살점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잘린 용의 발톱 하나가 땅 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또 살점들이, 또 이빨이.

뜨거운 유황 냄새가 코끝을 찌를 듯이 흘러넘쳤다.

새까만 흑룡의 몸에서 마치 용오름처럼 솟구쳐 퍼져 나간 것들이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짙은 사기였다.

아니, 저걸 그저 사기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단숨에 태양이 가려지고 세화가 뿜어내던 빛이 어둠 속에 파묻혔다.

그 검은 연무 속에서, 교룡의 잘린 머리 속 새빨간 눈동자는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눈꺼풀조차 감지 않았다.

목이 찢어지는 듯한 마지막 웃음이 그 어둠 사이로 퍼져 나갔다.

-그래! 해 보거라. 모든 것을 잃고 나서도 네가 그리 태연할 수 있을까?

악독한 혼은 스러지면서도 저주의 말을 퍼뜨렸다.

-너 또한 나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바람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로! 세상을 향한 제물로 쓰인 채 잊힐 것이다! 비참하게 잊힌 채 그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목소리와 웃음은 마치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지켜볼 것이다!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 벌레처럼 가치 없이 스러질 네 생을 지옥에서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절규와도 같은 끔찍한 웃음소리가 어둠을 퍼뜨리며 퍼져 나갔다.

그 목소리는 혼의 소멸과 함께 사라졌으나 그곳에 있는 모두는 계속해서 두려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검은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듯 뱀처럼 움직이며 흩어졌고, 그것에 닿는 족족 땅은 그대로 늪처럼 변하며 썩어 갔다.

나무나 풀들 역시 새까맣게 변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히, 히익!”

결계 바로 근처로 퍼지는 끔찍한 암무에 무사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저 주가 아가씨의 결계가 막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저주를 받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결계를 벗어나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가 뻔했다. 무사들이 사색이 되었다.

대체 그 누가 이런 끔찍한 사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은 그 누구도, 신수인 백가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

“……하늘이시여.”

떨리는 그들의 시선이 절망의 신음을 내뱉었을 때였다.

마르고 가녀린 여인을 둘러싼 영력이 세차게 부풀며 확대됐다.

펄럭이는 붉은 예복 사이로, 새하얀 얼굴 위 적자줏빛 동공이 세로로 갈라졌다.

“?!”

그리고 이내 무언가가 강하게 터져 나갔다.

콰앙!!!

“헉!”

“크읏!”

결계가 있음에도 사기를 날려 버릴 듯 강한 풍압이 몰아쳤다.

무사들이 얼굴을 손으로 막으며 간신히 버텨 냈다.

그렇게 새빨간 적룡이 악기로 얼룩진 하늘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위압적인 불꽃은 세상을 태울 듯 넘실거렸다.

차르르-!

하늘을 뒤덮은 것이 강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일 때마다 수만 개의 구슬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웅.

붉은 적룡이 나타나자 세상이 마치 그를 반기듯 진동했다.

“으윽!”

결계 안에 있음에도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기에 무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뜨거운 열기가 만들어 내는 아지랑이가 시야를 온통 일렁이듯 어지럽혔다.

태초의 짐승. 위대한 적룡.

누가 그 힘을 버틸 수 있을까.

‘그래. 저 적룡이라면 이 사기도 응당 꺾을 수 있을 것이다!’

더없이 장엄한 신수의 모습에 무사들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고오오―!

그리고 거대한 귀울림이 하늘을 진동시키며 대지 위로 쏟아졌다.

“!”

“허억!”

울음과 함께, 적룡이 손을 뻗었다.

시작부터 강렬한 불꽃의 폭풍이 마치 생명을 가진 듯 땅으로 흩뿌려졌다.

콰앙! 쾅!!!

땅이 흔들리고 언덕이 무너져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용을 둘러싼 불꽃들은 채찍처럼 연이어 암무를 후려쳤다.

퍼엉! 쾅!

굉음들이 이어지고 흙먼지가 비산했다.

결계 안에 있는 무사들까지 감히 일어서있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주저앉았다.

그렇게 불꽃은 암무를 몰아내긴 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흩어졌던 것들은 마치 적룡을 비웃듯 곧 불길에 들러붙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암흑처럼 세차게 타오르던 불길들을 삼키며 더욱 짙어졌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넘실거렸다.

그것들을 노려본 세화가 다시금 세차게 힘을 끌어 올렸다.

-──!!

모든 것을 잘라 낼 듯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교룡을 공격했던 수많은 빛의 화살이 빼곡히 허공을 메웠다.

그것들이 단번에 결계를 피해 지상으로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순수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화살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어두운 사기를 태우며 새빨간 불꽃이 온 허공을 쓸었다.

“!”

……하나 그뿐이었다.

거대한 힘을 지녔으나 조화를 관장하는 적룡의 속성으로는 결코 이것을 해결할 수 없을 거라 조롱이라도 하듯. 자욱했던 흙먼지가 지나간 곳으로 암무가 다시 몰려들었다.

긴 시간 오래도록 응축된 교룡의 저주만이 바람처럼 달려와 그녀의 볼을 날카롭게 쓸고 지나갈 뿐이었다.

툭, 투둑.

실금 같은 상처를 타고 핏방울이 아래로 떨어졌다.

‘역시,’

그녀가 세차게 이를 악물었다.

‘안 되는 것이었나.’

교룡의 앞에서는 다른 대안이 있는 척했으나 사실 그녀라고 다른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백기하의 말처럼 오히려 신수의 모습일 때 오히려 더 제약이 많았으니,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구분이 더욱 명확해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 암무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긴 했다.

-…….

하지만 어떻게 그 일을 그리 쉽게 결정할 수가 있을까.

그 말은 그녀가 그 빛의 폭포에 몸을 던져 모든 영력들과 하나로 융화되어야 한다는 뜻인 것을.

그 말은.

‘정말로 그 교룡의 말처럼 모든 이들에게 잊혀지고 사라진단 뜻인 것을.’

……나 혼자.

그 빛 속에서 억겁의 시간을…….

아무리 그녀라 한들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적룡의 시선이 움직였다.

결계 밖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으며, 땅 역시 계속해서 깊은 곳까지 오염되고 부패하는 중이었다.

‘결정은, 빨라야 한다.’

질끈 감았다 뜨인 적룡의 시선이, 차마 그가 있는 곳으로는 돌리지 못하던 시선이 결국엔 제가 보고 싶은 이를 향해 움직였다.

-!!

사기에 둘러싸인 그 강변에서, 백기하는 이미 눈을 깜빡이지조차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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