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254)

* * *

매는 제 모든 영력을 사용해 빠르게 날았다.

한 줄기 빛처럼 뻗어간 매의 아래로.

일행들과 함께 굉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황급히 말을 달리던 최덕문이 잠시 고개를 들었으나 그뿐이었다.

“끼이──!!!”

주인의 명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매의 날개깃 주변으로 생명마저 뜨겁게 태워 버릴 거대한 힘이 뿜어져 나갔다.

오색의 빛에 휩싸인 매는 정말로 빛이 되었다.

그 빛이 망가진 영지선을 따라 인계로 가는 문이 있는 초소 벽을 넘었다.

하얗게 타오르는 문을 날아온 속도 그대로 통과하여, 가르침을 받은 목적지를 향해 튕기듯 쏘아져 나갔다.

“끼이이이이익―!”

매의 울음소리가 인계의 산천을 진동시키며 울려 퍼졌다.

“네 나라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필요하다면 주마.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인계에 관심조차 둘 수 없도록. 어때? 하겠나?”

어떻게 신호를 보낼 거라는지.

어떻게 그 신호를 곧장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지.

“당연히 할 것입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기다리고 있던 성익권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 오색의 힘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저것이 신호구나!’

“지금 쏟아 넣어라!”

성익권의 명령에, 혈호의 주변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가져온 것을 수레째 밀어 넣었다.

덜컹거리며 굴러간 수레가 거대한 피 웅덩이로 빠져들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수십 구의 짐승 사체들도 함께 모습을 감췄다.

세화가 지시했던 두 번째 일이었다.

치이익!

사체들이 담기자 시붉은 핏물이 마치 물처럼 끓어올랐다.

그것을 노려보던 성익권이 다시금 큰 소리로 명령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서둘러라! 어서 수레들을 모두 집어넣어!”

그의 지휘 아래 사체를 싣고 온 수레들이 계속해서 혈호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 사체들의 시독을 흡수하며, 혈호 가장 밑바닥에 잠겨 있던 교룡의 비늘이 새까만 음기를 흘렸다.

* * *

흐으,

흐아아아!

산 채로 눈알이 뽑히거나 장기가 모두 끄집어내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일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교룡이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콰앙! 쾅!

그 몸부림에 땅이 부서지고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다.

커다란 몸이 꿈틀거리며, 피거품을 물었다.

-어, 어째서?!

모든 힘을 다 거두었다.

조금이나마 저주의 영향을 줄일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했으니까.

헌데 그럼에도 그의 몸을 조각내는 끔찍한 고통은 조금도 희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고통의 강도가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뭐가 수습이 되지 않은 것인지.

그의 몸에는 조금의 기별도 가지 않는, 처참할 정도로 가느다란 음기들이 계속 흘러 들어오며 저주의 강도만 가중시켰다.

그의 그런 의문을 미리 짐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세화가 두 눈을 휘어 그런 교룡을 내려다보았다.

“많이 고통스러운가?”

커억. 검은 피를 토해낸 교룡이 간신히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러기에 일을 벌이고 나면 늘 청소를 잘 해 두었어야지. 혈호나, 그 안에 넣어 신체로 사용했던 네 몸의 조각 같은 것들을 그리 그냥 내버려 두고 가면 쓰나.”

붉은 입술이 열리고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내가 잘 사용해 주기로 했지. 이렇듯 네게 고통을 줄 목적으로.”

-너, 너!!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영력을 끌어올려 조금이나마 재생속도를 높이려던 방법 또한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전부터 전혀 먹히지 않았다.

배 속에 뭔가가 들어 있었다.

아까 먹은 영단과 영기들 속에 이상한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지금에야 깨달았다.

그의 영력을 막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영력을 사용했다가는 그대로 폭발하도록 이미 한계치까지 부풀어 버린. 그런 것이 제 배 속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인가? 이제 소식이 올 때쯤 되었을 텐데?”

세화의 고개가 옆으로 조금 기울었다.

“예전에 신영의 등극식에 참가할 때 신영이 글쎄 내 혼사 선물을 챙겨주려 하더라고. 그때 일이 좀 있어 직접 받진 못했는데 내게 뭘 주려했나 궁금해 가져와보니 아니 글쎄 많은 영력이 뒤섞이면 폭발하는 그런 무서운 영기지 뭐야.”

세화의 조소 어린 시선이 교룡의 몸을 훑었다.

“난 필요없으니 혹 누구라도 만지다 사고나 냈으면 해서 봉인을 풀고 내가 묵었던 전각 주변에 던져 놓고 왔었는데. 참 이상하지. 아까 네가 먹어 치운 영단과 영기들 사이에 그게 들어 있는 것 같더라고.”

-……!!

“뭐. 먹인 건 신영이잖아. 그러니 내 탓은 아니야. 그렇지?”

믿을 수 없는 말이었으나 거짓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안력을 돋궈 몇 번이나 확인해도, 명징한 시선과 얼굴 가득 번져 있는 조소는 그저 떠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제가 말한 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저토록 악랄한 년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헌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세화가 긴 손가락으로 제 팔을 툭툭 치며 덧붙였다.

“내 영력이 너희들의 뭔가를 고정시켜 버리는 것 같아 이 일부인으로 실험을 해 보았거든. 결과는 네가 아는 대로일 테고.”

-아, 아는 대로라니.

“왜 모르는 척을 할까. 아까부터 일부인은 계속 네 눈이 닿는 곳에 있었는데. 주변에 환족들이 이리 많으니 할 수만 있었다면 이 보주의 혼을 어디에든 담아 네가 탈환해 갔겠지. 내 손안에 계속 놔둘 것이 아니라.”

-…….

“그런데 계속 지켜봐도 못 하더라고. 소리를 지르고 날 공격하면서도 이 보주 하나를 데리고 가지 못했어.”

세화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솟았다.

“모두가 뭔가 고정됐지. 그런 너도 내 영력에 담겼다 꺼내졌는데. 그럼 너는 뭐가 고정됐을까.”

-……!

“너도 분명 뭔가 고정됐을 거거든. 그렇지?”

세화의 말에 교룡의 몸이 굳어졌다.

그래. 그 오색의 영력.

제게로 흘러든 힘의 크기에 취해, 그 오색의 영력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잠시 잊었다.

저 어린것은 뭐가 고정되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교룡은 곧장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들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 지금 사용하는 몸에 고정됐다.

몸 바꾸기를 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그것이 영혼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

교룡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잘게 진동하는 그 사이로 매캐한 저주의 연기가 흩어졌다.

황급히 주위에 있는 아무에게나 보주의 역할을 강제로 심으려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일부인의 영혼을 꺼내려 했을 때처럼, 전혀 통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불가능했다.

혀를 깨물어 잘라 버리고 싶거나 온몸을 갈기갈기 난도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저주가, ……이 몸에 고정됐다.

이 저주가.

지금 순간에도 계속해서 커져만 가는 이 저주가. 그리하여 거대한 용의 신체를 한 줌 핏물로 만들 듯 썩어 가게 하는 이 저주가.

이 몸에 고정되어 버렸다.

이전처럼 영력으로 몸을 치유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랬다간 주세화가 집어넣었다는 영기가 폭발하며, 이미 많은 양의 영력을 삼킨 다른 영기들까지 터뜨려 버릴 테니까.

더 이상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

이게 말이 되는가?

그가 얼마만큼 오래 살아왔는데.

저런 어린 년 수만 명이 나고 죽을 정도로 긴 세월을 살아와, 이제 신수가 되기까지 고작 몇 년 앞두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저런 어린것에게 당해 막다른 곳에 몰린다는 이 상황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이 ……지독한 것!

세상에 다시 없을 사악한 계집!!

차라리 저년이 용으로 변해 단숨에 자신의 목을 물어뜯기라도 했으면.

영력 대 영력으로 겨뤄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면 차라리 운명에 수긍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이 어리고 독한 것은 그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방대한 영력을 가지고, 단숨에 그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은 채, 오로지 그가 제가 한 일의 대가를 온전히 치르고 죽기를 바랐다.

원망이 결코 자신을 피해 갈 수 없도록.

산 채로 미쳐 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 거듭된 구렁텅이에 눈앞이 아찔할 정도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왔는데.

그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홀로 살아남아 주가의 신영조차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살아왔건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듯한 무력감과 절망감이 극심한 고통과 뒤섞여 그의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날 죽이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가 새빨간 눈을 희번덕대며 세화를 응시했다.

-내가 만들어 낸 사기가 환계 전체를 덮칠 거다. 그건 오직 너밖에 정화할 수 없겠지!!

힉힉, 악기(惡氣)인지 웃음인지 모를 새까만 연기가 연신 독기를 품고 흘러나왔다.

-넌 아니라고 했지만, 살아날 수 있다 했지만, 정말 그럴까? 그 정화의 힘 속에서 네가 자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세화의 무감각한 눈이 그런 교룡을 가만히 응시했다.

대답 없는 세화의 모습이 희망이기라도 한 것처럼 교룡이 황급히 덧붙였다.

-널 아끼는 이들이 많지. 네가 아끼는 이들 또한 많고. 네가 그들을 두고 홀로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 반편이는! 백가의 반편이와 연정을 나누지 않았나? 그놈을 두고 갈 수 있겠어?

저주의 영향으로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속삭였다.

-아니지? 그래. 그럴 필요 없지. 굳이 네가 홀로 잊힐 필요 없잖아. 그러니 날 놓아 다오.

비굴하더라도 상관없다.

모멸적이어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지금 이 자리만 벗어나면 된다.

‘그래. 찾아보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이렇게 끝날 리가 없어. 사료를 뒤져 보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수모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신수가 되어 보니 알겠지. 자연의 조화는 엄격하여 내가 아무리 이런 꼴이라 하여도 날 죽이면 너 역시 사기에 물드는 걸 피할 수 없을 거란 걸.

어떻게든 살아남아 최후에 저년의 목을 딸 수만 있다면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도 한 수 물러서는 게 어떠하냐. 날 놓아준다면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사기가 정화될 때까지 잠들어 있겠다. 몇백 년 몇천 년이 걸리더라도, 결코 그전에는 나타나지 않겠다.

낮고 갈라진 교룡의 간사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너도 널 아끼는 이들과 계속해서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어떠냐. 그러니 날 이대로 놓아다오.

“유언은 그게 단가?”

세화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교룡의 목소리를 잘라냈다.

“너 따위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었군.”

―!!!

검처럼 나뭇가지가 들어 올려졌다.

그러자 어둠 사이로 마치 밤을 걷어 내고 새벽의 햇살을 비추듯 밝은 빛들이 수없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얼핏 태양 같았으나, 자세히 보면 빽빽하게 빛이 나는 화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무슨 이유로건.”

그녀의 손이 앞을 향해 뻗었다.

“너 같은 것을 결코 후대에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화살이 일제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주세화──!!!!!!

더 이상 영력을 사용할 수 없고 저주의 고통조차 물리칠 수 없는 교룡의 몸이 엉망으로 찢어졌다.

끔찍한 비명이 거센 영력의 폭풍을 찢으며 터져 나왔다.

-지금 날 죽이면──!

검은 사기를 깨뜨리고 몸을 온통 부수는 화살들 사이에서 교룡이 끝까지 그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너도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너도 네가 사랑하는 이들과 절대 함께할 수 없어!!!

교룡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 정도의 빛줄기가 쏟아지는 그 사이에서 세화가 움직였다.

휘익!

펄럭이는 붉은 예복이 까마득한 수의 화살 사이를 가로질렀다.

얇은 나뭇가지 위를 덮은 오색의 영력이 세차게 힘을 뿜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영력은 마치 거대한 칼처럼 변화했다.

그것이 교룡의 비늘 사이를 파고들었다.

“끈질긴 것. 그만 죽어라.”

-이 사특한 계집──!!!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이게 끝인가?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내 무덤이 여기라 이것인가.

그 오랜 시간을 버티어 낸 내 마지막이 고작 이런 것이라고?

-기어코 날 죽이겠다니! 너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작열하는 사기와 사취. 끔찍하게 오염된 피가 망가진 교룡의 비늘 사이로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무슨 위협을 던지건. 무슨 저주를 퍼붓건. 방법이 없었다. 이건 무슨 수로건 방법이 없다.

이 어린것이 그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도 달아날 수가 없었다.

……이게 정말로 끝이구나.

악문 잇새 사이로 이빨이 온통 부서져 내렸다.

내 삶이, 여기서 정말로 이렇게 비참하게 막을 내리는구나.

하지만.

교룡의 눈이 살기로 팽창했다.

-그래. 기어코 여기서 내가 죽어야만 한다면.

교룡이 남은 발톱을 제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쩍, 쩌적.

그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발톱으로 제 혀를 뽑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조금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검은 피가 대지 위로 쏟아져 내리는 데도 그의 번뜩이는 눈동자는 오직 세화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결코 네년의 손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촤악!

긴 혀가 뽑혀 나오자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끝까지 살기로 형형하던 새빨간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오고 선명하던 동공이 탁하게 물들던 순간이었다.

그가 스스로 제 목을 잘랐다.

스겅!

강처럼 거대한 교룡의 목이 마치 종이가 잘리듯 어긋났다.

그 선이 교룡이 제 비늘 사이에 꽂아 숨겨 두었던 역린도 함께 부쉈다.

끝까지 두 눈을 감지 않은 새빨간 동공이 세화를 노려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거대한 교룡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목이 없는 교룡의 몸이 경련했다.

콰앙!!!!!

세화가 서둘러 주변 무사들을 향해 결계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교룡의 몸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모든 걸 부패시키는 새까만 사기가 온 세상을 뒤덮으며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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