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세화는 그 난장에도 불구하고 일부인의 상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세화에게로 교룡은 눈이 돌아간 것처럼 달려들었다.
검은 몸체가 그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단번에 세화의 사각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검은 가닥들이 솟구쳤다.
콰쾅!
사기가 응집된 가닥들이 땅과 대기를 가르며 짓쳐들어왔다.
냉정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응시한 세화가 백옥 같은 손을 대각선으로 그었다.
콰앙―!!
그녀의 코앞에서 터져 나간 풍압이 주변을 쓸어 내며 퍼져나갔다.
세화의 어깨 위로도 힘껏 끌어 올려진 힘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솟아올랐다.
환하게 밝은 영력의 빛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의 폭풍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세찬 바람이 교룡의 사기를 부수며 불어닥쳤다.
콰콰콰콰쾅!
허공을 뒤덮은 빛의 화살이 장대비처럼 내리꽂히며 교룡의 몸을 파고들었다.
-──!!
그런데도 그는 아픈 줄도 몰랐다.
신수가 되는 기분을 맛보았다가 박탈당한 일은 교룡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통과 억울함으로 거대한 몸체가 몸부림쳤다.
이대로 영력의 단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이 아직 맛보지 못했던 절망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분노가 교룡을 움직였다.
그와 정반대로 일부인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했다.
복부를 찢어 놓은 상처가 단번에 회복되었다.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의 파동은 그녀를 온몸으로 감격하게 했다.
쿵-!
결국, 조금 전 교룡의 몸을 감싸듯 오색 빛의 기둥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이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세화가 시선을 돌렸다.
아수라장이 된 강변의 전투 사이에서, 최장명은 그녀만을 응시한 채 멈춰 서 있었다.
“가.”
파아앗!
그 한마디에 사내의 몸이 오색 빛을 두른 거대한 매로 변화했다.
“지금이라고 신호를 보내.”
“끼이────!!”
대기를 찢어 내는 듯한 울음이 매의 날카로운 부리 사이로 터져 나왔다.
온 힘을 끌어 올린 매가 어느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 빛의 흔적 아래에서, 세차게 몸부림치며 교룡이 악을 쓰듯 비명을 올렸다.
더 빨리 저년을 잡아 죽였어야 했는데!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저년부터 잡아 죽였어야 했는데!!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애를 써 보아도 이미 끊어진 영력의 흐름은 다시는 제 쪽으로 흘러오지 않았다.
저 보주가 신수로 거듭나고 있는 이상 이미 그에겐 어떠한 기회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주가, 신수가 된다니. 자신이 아니라 저 여자가?
“너 같은 건 신수가 되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모르겠어? 벌레 같은 새끼. 그저 세상의 오물로 던져질 새끼.”
신수가 되는 것만이 쓸모의 증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저를 몰아세우던 그 여자가, 결국 신수로 거듭난다고?
내가 신수가 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돌아 버릴 것 같은데 저 여자가 신수가 돼?
어떻게 그걸 용납할 수 있나!
그런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천만다행으로, 아직 보주와의 연결이 완벽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거친 숨을 뿜으며 희번덕대는 교룡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살기를 불태웠다.
온 힘을 다해 제 검은 힘을 폭발시켰다.
콰앙―!!
주가의 영지 전체를 덮었던 새까만 결계가 온 사방의 색을 빼앗으며 강변을 뒤덮었다.
“허억! 큭!”
“이게, 무슨……!”
꺽꺽대며 제 목과 가슴을 부여잡은 이들이 삽시간에 흙바닥 위로 쓰러져 갔다.
순식간에 생명력을 빼앗긴 얼굴들이 꺼멓게 죽었다.
많은 힘을 소진한 무사들의 생명력이 제일 먼저 흡수됐고, 남은 이들 역시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강한 압력을 버티지 못한 그들이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것과 동시에 멀리, 주가의 저택에서, 다섯 명의 여인들이 동시에 죽었다.
저주를 나눠 받는 보조의 역할을 해 왔던 이부인과 삼부인, 사부인, 육부인과 팔부인이었다.
교룡이 제 중심 보주인 일부인과의 연결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나머지의 연결을 끊어 버린 것이다.
지금껏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그녀들은 교룡이 제힘을 거둬감과 동시에 끈이 잘린 인형처럼 영혼이 소멸하며 숨이 멎었다.
그 반동이 일부인에게 즉각 나타났다.
“!!”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순간 경련한 일부인이 온몸을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언제 신령스러운 빛을 내었냐는 듯 질척한 검은 사기에 뒤덮인 일부인이 땅으로 처박힌 채 경련했다.
모든 근육과 혈관이 가닥가닥 찢어지는 듯했다.
다른 보주들의 도움 없이 온전히 저주를 홀로 뒤집어써야 하는 까닭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오장육부를 산 채로 긁어내는 듯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고통으로 신음하던 그녀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꺽꺽 숨을 들이켜는 목구멍을 쥐어짜 세화를 향해 요청했다.
도, 도와줘.
극심한 고통에 말은 채 소리가 되지 못했으나 전달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흙바닥을 손으로 긁어 대는 그 절박한 몸짓에 그녀가 느끼는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제발.
제발 도와줘.
조금만 더, 영력을 받으면 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주세화가 조금만 더 자신을 도와준다면-!
그 간절한 손끝이 세화의 붉은 예복에 닿으려던 찰나, 세화가 제 발을 한 걸음 뒤로 물렸다.
“내가 왜?”
뭐?
“왜 나보고 도와달라 하지?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나, 날…….”
일부인이 필사적으로 입술을 열었다.
“날, 도와준다며-. 내가 불쌍했던 것 아니야? 죽을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도와줬잖아?”
핏방울 하나 튀지 않은 붉은 신이 일부인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영력을 넣어 줬잖아. 교룡에게서 벗어날 뻔했잖아.”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내 상태가 안 보여? 다시금 저 교룡의 저주를 덮어쓰고 있잖아.”
“그건 네가 감수해야지. 성공할 때까지 도와줄 거라곤 안 했잖아.”
‘!!’
세화가 활짝 핀 꽃처럼 흐드러지게 웃었다.
“이제 하기 싫어졌으니 네 목숨은 네가 알아서 챙겨.”
“너!!”
눈가를 일그러뜨린 일부인이 악문 잇새로 피를 흘리며 손을 뻗었다.
제 발목을 붙잡으려는 그녀를 세화가 밀쳐냈다.
“!!”
저주의 여파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몸이 엉망이 된 언덕을 굴러 젖은 흙바닥에 처박혔다.
“아흑. 헉.”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분노로 진저리쳤으나 곧 온몸을 덮는 끔찍한 고통이 다시 찾아오자 말은커녕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일부인이 다시금 내장 섞인 핏물을 토하며 고통에 신음했다.
새하얗게 질린 손끝이 손톱이 빠질 듯 제 살과 땅을 긁어 댔다.
이 고통을 줄여 줄 수만 있다면 누가 뭘 시켜도 따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화는 흙바닥 위에서 경련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일부인이 신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머지 보주들과의 연결을 끊어 냈지만.
그 일부인과의 연결이 온전하지 않은 탓에, 교룡 역시 이 저주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살들이 마구 찢어지고 썩어 가는 고통 속에서, 검은 용이 경련하며 소리쳤다.
-그 바람이 그토록 잘못된 건가?! 네가 뭔데! 네까짓 게 대체 뭔데 나를 심판하려 해. 네가 뭔데!!
그 목소리는 거의 광기 어린 듯 들리기까지 했다.
영력을 사용할수록 용의 몸이 더 빨리 무너져 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무얼 했기에! 대체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너 같은 것을 보내 하늘조차 나를 막아서려 해!
형형한 새빨간 눈 안에서 혈관이 터지기 직전처럼 부풀어 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괴로움으로 당장 두 쪽으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그저 완벽한 용이 되겠다는, 그 정도 바람이 그렇게 잘못된 거였다고?
그럴 리 없잖아. 그럴 리가 없다!
더 환장할 것 같은 것은 저 보주를 발견하고부터 혼을 어딘가로 옮기려 해도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혼을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것이라도 좋은데.
하찮은 미물이라도, 조금 뒤면 꺾어질 나뭇가지라도 상관없는데.
이 강변에 이리 많은 생명체가 있음에도 도무지 저 보주의 혼이 꺼내지지가 않았다.
그런 교룡을 응시하며 세화가 대답했다.
“그 바람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지.”
신수가 되겠다는 바람 자체가 뭐가 그리 큰 잘못일까.
“하지만 네 존재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잘못됐어.”
제 바람을 위해선 어떤 짓이든 개의치 않겠다 마음먹은 순간부터 환계의 모든 질서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몸 바꾸기를 시행해 주지 않았다면 신영이 저리 오래도록 세상의 조화를 거스르는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일부인을 보주로 삼지 않았다면. 저주의 반동을 다른 이들이 받아 내게 하지 않았다면.
이 오랜 시간 이어진 참담하고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긴 시간 이어진 몸 뺏기는 주가 혈족들의 사고방식마저 망가뜨렸다.
자신들은 특별하고,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는. 그들 이외의 가문과 일족들을 거침없이 짓밟을 수 있는.
신영의 저택에서부터 이어진 그 멸시와 모멸의 사상들이 주가 전체로까지 퍼져 나갔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해 벌레처럼 가치 없게 살아온 주제에.
‘이렇게 보잘것없는 이들이었나.’
그런 주제에 세상을 이 꼴로 만들었다.
그 실체를 이리 면면이 꿰뚫고 나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이제 너희 같은 것들과는 작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넌 여기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
모든 것을 끝낼 시간이었다.
땅 위에 팽개쳤던 나뭇가지를 다시 집어 든 세화의 몸 위로 짙은 살기가, 또 그것을 가려내는 오색의 영력이 치솟았다.
똑같이 힘을 끌어 올린 교룡이 제게로 쏟아질 그녀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세화의 한 수는 교룡을 향하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가볍게 움직였다.
그것이 신호였다.
오색의 빛으로 완성된 완벽한 밀실의 감옥이 일부인의 몸을 덮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행동이었기에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없었다.
보주의 몸을 덮은 밀실의 결계. 끊어진 연결.
그리고 일부인과 단절돼 갈 곳을 잃은 저주.
-……!!!!!!
의도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대비조차 할 수 없었다.
온몸을 가닥가닥 찢어 내는 듯한 거센 저주가 그 순간 다시 교룡의 거대한 몸체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