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254)

* * *

신영 일행은 뜨거운 태양이 정상에 오를 무렵 영지선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서둘러라! 더 서둘러!”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반복되는 폭발음에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한계까지 영력을 사용해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도달해야 한다!”

날아가듯 달려가는 마차 안에서 상처 난 허리께를 부여잡으면서도, 신영의 형형히 핏발 선 눈동자는 오직 정면만을 응시했다.

저 굉음은 분명 교룡이 누군가와 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일 터.

혹시 백기하일까?

아니, 멀리서 뿜어져 나오는 저 빛은 백가 신수의 힘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렇다면 혹시 저렇듯 대등하게 싸우는 이가 주세화일까?

‘만약 적룡으로 탈피한 그년이 교룡의 목덜미를 물어 죽이기라도 한다면…….’

“하여 나 주세화는, 결코 네가 신영이 되게 할 수 없다!”

……그년이 패권을 잡으면 모든 게 다 끝장이다.

‘교룡만이 살길이다. 몸을 바꾸기 위해서도. 내가 다시 신영으로 추대받기 위해서도. 주가가 육문을 누르고 환계의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도. 아직 저 교룡이 필요해!’

“제길! 서둘러라! 더 서둘러!!!”

그렇게 황급히 달린 그들이 겨우 강변에 도달했을 때였다.

파아앗!

태양조차 지워 낼 듯한 오색의 빛이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두 눈을 좁힌 신영이 안력을 돋워 빛 사이를 응시했다.

오색의 빛무리 사이로 영력을 뿜어내며 떠 있는 건 분명 교룡이었다.

‘저것은……, 저건 탈피 직전의 증상 같은데.’

헌데 그렇다기엔 뭔가가 석연찮았다.

교룡의 몸을 둘러싼 빛이 마치 누군가와 힘겨루기를 하듯 이어진 채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영력이구나. 영력이 부족한 거야!’

오랜 세월 많은 탈피를 지켜 봐왔던 신영은 저 현상에 필요한 것이 무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일대는 중강을 넘어 육문의 놈들을 막는다! 이대는 이 영기와 영단을 가지고 저분께 가거라!!!”

무사들이 둘로 갈라졌다.

* * *

“아아, 흐. 아.”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척추가 부서졌다.

척추뿐이랴. 근원까지 파괴되었다.

일부인의 몸이 진동하는 땅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흡수될 곳을 찾지 못한 영력들이 일부인의 주위에서 거세게 요동쳤다.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다 교룡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영력들은 그의 배 속을 채워 나갔다.

마치 처음 탈피를 겪었을 때처럼, 교룡의 몸이 오색의 빛에 찬란하게 휩싸였다.

그러자 확실해졌다.

이 영력이라면 가능했다.

다른 영단은 수만 개를 흡수해도 통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위해 준비된 이 영력이라면 자신을 바라던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느려. 너무 느려!’

그의 거대한 근원에 비해 일부인에게서 건너오는 영력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일부인을 죽이지 못한 탓이었다.

아예 죽여 버렸다면 모든 영력들이 빠르게 넘어왔을 텐데, 숨을 붙여 놓은 탓에 나누어진 영력들이 아직 일부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죽일 수는 없는데. …그래도 죽일까? 지금 신수가 되기 위해서.’

그 순간이었다.

“여기! 영단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교룡의 눈이 움직였다.

주가의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미 이곳까지 달려오며 온몸에 영력을 두르고 있던 무사들은 그대로 중강을 뛰어넘으며 강변 너머에 있던 백가의 무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들 사이에서 신영이 교룡을 보며 소리쳤다.

“이걸 받으십시오! 영기도 있습니다!”

영기는 주변에 있는 영력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아주 찰나였다.

교룡이 그쪽으로 몸을 틀며 입을 벌린 것은.

주가의 무사들이 그 안으로 자신들이 가져온 수많은 영단과 영기들을 상자째 던져 넣은 것은.

-……!!!!

그것들이 교룡의 몸속에서 일제히 발동했다.

쿠웅. 쿵.

산과 강, 땅 전체가 흔들렸다.

오색의 빛으로 둘러싸인 기둥이 하늘과 땅을 이으며 굳건히 섰다.

세찬 빛을 뿜어내는 기둥 안에서, 교룡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해갔다.

패였던 살점들이 차올랐다.

썩은 피와 진물을 흘리던 상처들이 재생되고, 잔뜩 꺾이고 닳아 문드러진 상태로 벗겨져 있던 비늘들이 새로 돋아났다.

마치, 정말 신수로 변태하고 있는 것 마냥.

영채의 갈라진 목 안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설마, 이대로 신수가 되는 건 아니겠지?’

아가씨께서 하시는 일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감이 생겨났다.

초조한 영채의 시선이 백기하에게로 향했다.

“아.”

백가주의 얼굴엔 조금의 불안감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는 신수로 변태 중인 교룡조차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밝게 빛나는 하늘 어딘가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곳에선 영력이 만들어 내는 계단을 밟고, 세화가 한 발 한 발 내려오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와 언덕에 발을 디딘 그녀가 일부인에게 다가가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이어 귓가에 대고 가볍게 뭔가를 속삭였다.

* * *

“……!”

마치 하늘이 그대로 자신의 위로 떨어져 내린 듯했다.

너무나 고통이 극심하니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일부인이 내장 조각이 섞인 피거품을 뱉어내며 헐떡였다.

하지만 그런 압박감도, 온몸의 뼈를 산산조각내는 듯한 아픔도.

제 몸에서 영력이 빠져나가는 상실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안 돼. 안 돼!’

혈맥 구석구석을 뚫고 그녀를 완전히 새로운 하늘로 끌어 올리던 그 영력이.

무엇보다 귀하고 간절히 바라 왔던 그 영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리 빼앗겨야 할 거라면 왜 내 손에 쥐여 주셨는가.

대체 하늘은 내게 왜 이리 잔인하신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세화에게 말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한 번도 피동적으로 살았던 적이 없었다.

항상 제 운명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누구도 나만큼 열심히 살진 못했어! 나만큼 아등바등 살아 내지 못했다고!’

일부인은 가문이 없는 밑바닥 환족 출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한 영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을 알았다.

힘이 클수록 외모가 다듬어지는 환족의 특성상, 스스로가 보기에도 자신은 어설픈 칠문의 일원들보다 훨씬 아름다웠으니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아름답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을 텐데.

늘 조금만 더 하면 바라는 곳에 손이 닿을 것 같았다.

원하는 곳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영력이 더 많아진다면. 내가 조금만 더 아름다워진다면.

그 간절한 바람 때문에 처음엔 주변의 동물들을 죽였다.

쥐똥만 한 영력이나마, 제 영력을 높일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게 되자 이후엔 낯선 이를 유혹해 죽이고 피를 빨았다.

한번 그러고 나자 다음엔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동무와 부모, 친지를 가리지 않고 몰래 죽여 영력을 훔쳐 먹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영력으로 그녀는 결국 주가 원로의 첩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여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주가 원로의 첩까지 올라왔는데 신영의 첩이 되지 못할 이유는 뭘까.

하여 그녀는 다시금 비밀스러운 살생을 시작했다.

‘그때 들키지만 않았어도!’

주가 영역의 한복판에서 그런 짓을 한 것이 문제였다. 살생이 발각된 이후 파멸은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모든 영력을 빼앗기고 근원에 큰 상처를 입은 채 추방당했다.

죽음을 면한 것은 그녀가 당시 회임 중이었기 때문이었으나, 태어난 아이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대한 영력을 지닌 채 태어날 예정이었다가 순식간에 영력을 모두 빼앗기며 조화가 어그러진 탓이었다.

흉물스러운 것.

제 몸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하지만 이미 근원이 상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짓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동아줄이라고는 이 저주스러운 것밖에 없었다.

하여 이 썩은 동아줄이나마 키워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온 나날들의 결말이 결국 이거라니.’

일부인이 비통하게 꺽꺽 울었다.

그런 괴물을 신수로 만들려 한 날 꾸짖으시는 건가?

하지만 결국 안 됐잖아. 그럼 됐잖아! 날 보고 뭘 어떻게 더 하라고.

몰랐을 때야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다 여겼지만.

‘싫어. 이 영력은 내 거야. 내가 가져야 해. 내 거야!’

이를 악문 일부인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분하지 않아?

누구지?

-힘을 빼앗기고 있잖아.

이게 누구의 목소리였지? 어디서 들어 봤더라.

-내가 도와줄까? 이 힘을 빼앗기지 않게. 그러길 원한다면 말만 해.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아찔한 고통 속에서 일부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너도 알지? 네가 원하는 그 영력, 내 것이라는 걸.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당장 이곳에서 일부인이 바라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줄 것처럼 부드러웠다.

어차피 모든 게 어그러졌다.

이렇게 된 마당에 뭘 더 따질 수 있을까.

일부인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뭐든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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