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3/254)

* * *

“흉물스런 새끼. 너 같은 건 대체 왜 태어난 걸까?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한시도 더 숨쉬지 못하게 목을 졸라 버렸어야 했는데.”

“꺼져! 징그러워. 다가오지 마. 내 몸에 닿지 마.”

“넌 이제부터 내 아들이야. 엄마라고 불러 봐.”

“넌 할 수 있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어.”

“저놈 보여? 저놈부터 시작하자. 여기 보이지? 이 푸른 혈관. 저놈을 잡아서 여기, 목덜미를 끊어 놓는 거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피를 전부 마셔. 그런 방법을 쓰면 너도 영력을 가질 수 있어.”

“꼭 신수가 되는 거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알겠어?”

무심코 새어 나오려던 어떤 호칭이 도로 입안으로 삼켜졌다.

재생되지 않은 상처에서 오는 통증 때문이었다.

눈을 감은 교룡이 몸을 뒤틀었다.

터져 버린 안구를 재생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으나 조금도 소용이 없었다.

‘조금만 더 힘을 모았으면. 몇 년만 더 있었다면 충분히 신수가 될 수 있었는데.’

이 긴 세월을 버텨 왔는데!

이제 고작 몇 년이면 되는데, 어째서 지금 나타난 것이냐! 어째서!

마지막 힘을 조금 더 빠르게 모으고자 결계를 세웠건만 그의 보주는 너무 멀리 있었다.

그 때문에 채 보주에게 넘어가지 못한 반동이 교룡에게까지 닿았다.

비늘의 사이사이가 갈라지고 뽑혀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교룡이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태생적으로 신수가 될 수 없는 몸을 억지로 용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역린이나 보주 같은 신물들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린은 필요 없었으나 보주는 필요했다.

용이 된 이후부터는 다른 이들을 죽여 영력을 섭취할 경우 생으로 사지를 잘리는 듯한 고통이 그에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보주만이 이 고통을 대신할 수 있었다.

하여 그는 제가 가장 증오하던 여자에게 영생을 미끼로 인위적으로 보주의 역할을 떠넘겼다.

그녀가 자신을 이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그녀 역시 똑같이 이 연옥으로 떨어질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교룡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허겁지겁 보주의 역할을 받아들였던 여자는 이젠 죽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었다.

보주와 용은 완전하고 단단한 결속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교룡은 지금껏 그녀가 어디로 달아난다 해도 쉬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하늘로 솟기라도 한 것처럼 위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완벽히 사라져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주가의 영지에서 벗어나, 신수의 결계 안에.

‘처음부터 어디도 가지 못하도록 사지를 잘라 밀실에 집어넣는 게 나았을 텐데.’

보주의 저주를 나눠 받도록 저주의 희생양을 더 늘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영력을 갖춘 몸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 긴 세월 동안 고작 일곱을 더 들였을 정도니.

그때 또다시 불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커헉.

끔찍한 격통에 그가 몸을 뒤틀었다.

그럼에도 교룡은 결계를 거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적룡의 영단까지 삼킨 적이 그 거대한 힘을 완전히 제 것으로 흡수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으니까.

하여 이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결계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영력과 생명력을 흡수하려 이를 악물었다.

한데 그때였다.

-!

고통이 그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보주의 기척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까워지고 있다. 가까워졌다.

길게 찢어진 입이 그릉거리며 잔학한 웃음을 토해 냈다.

“꼭 신수가 되는 거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알겠어?”

-그래. 신수가 되어야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래. 이미 일은 벌어진 것.

왜 하필, 지금. 왜 이때 나타난 거냐 원망한들 무슨 소용일까.

터져 버린 눈알에 다시금 통증이 들어찼다.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나.

‘그건 안 되지. 절대로 그럴 순 없어.’

그년만 위대한 신수가 되도록 결코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만들고, 반드시 내가 있는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리겠다.

너 또한 왜 하필 이때, 내게 그런 거냐며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 주마.

너만은. 주세화, 네년만은!

힉힉 소리를 내며 웃은 교룡이 핏발선 한쪽 눈을 희번덕거렸다.

진한 사기를 담은 영력이 고통이 사라진 몸 위로 솟구쳐 올랐다.

* * *

백석저의 만화원처럼 석양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세화는 불에 타는 듯 끓어오르는 그 하늘의 종점을 무릎을 끌어안은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무사들의 막사가 모두 내려다보이면서도 굵은 나무 기둥에 제 모습은 가릴 수 있는 언덕 위였다.

그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보다 먼저 단단한 팔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어.”

며칠씩 쉬지 않고 말을 탄 후였다.

그뿐만일까. 흙먼지가 가득한 강변에 손수 그녀가 사용할 막사까지 세워 준 남자였건만, 그런 백기하의 의복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리 늘 향기로울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재상에게 보낼 서신을 쓴다는 것 아니었어요? 벌써 다 쓴 거예요?”

“응. 이미 다 썼지.”

“무사들의 배치를 다시 짜겠다고 하더니 그것도요?”

“응. 그것도 이미 다 했고.”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 동안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제발 살려 줘. 생긴 게 조금 반반하다고, 주가의 저택에 끌려가 강제로 겁간당해야 했던 게 내 죄야? 그렇게 생겨난 아이를 억지로 낳아야 했던 게 내 죄야? 그게 왜 다 내 탓이야!”

“그 아이가 교룡이 되며, 난 그저 핏줄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보주까지 되어야 했어! 그게 왜 다 내 죄야. 왜 그 벌을 다 내가 받아야 하냐고!”

일부인의 그 애원이 뭐라고.

교룡에게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원하는 대로 적룡의 영력을 나눠주어 그녀가 쉽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줄까 고민하는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껏 수많은 신영의 무사들을 직접 죽여 놓고, 가장 핵심 인물인 일부인에게 동정심을 가진다는 게 말이 되나?

어설픈 동정심을 발휘하다 또 내 편이 다치기라도 하면? 죽기라도 한다면? 그 후회를 감당할 수 있겠어?

하지만 그런 제 모습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일부인이 긴 시간 산 채로 긴 시간 썩어 가더라도 내버려 두겠다는 그 결정에 자꾸 망설임이 들었다.

아마도.

‘아마도……,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겠지.’

지하 밀실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할 당시. 제발 누군가 이 고통을 멈춰 줬으면. 제발 잠시라도 좋으니 날 풀어줬으면. 그리 애원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았던 그녀는 여전히 단단한 팔이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친 그녀가 울적했던 얼굴을 서둘러 지워 냈다.

입꼬리를 부드럽게 휘고는 그의 어깨에 눕듯이 머리를 기대던 순간이었다.

“괜찮아. 그렇게 해도.”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흘러들었다.

“괜찮다니. 뭐가요? 여기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어도 된다고요?”

“아니. 저 일부인에게 교룡의 저주를 한계까지 삼키게 하는 거, 하지 않아도 된다고.”

“…….”

그녀가 몸을 돌려 자신을 안고 있는 이를 바라봤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웃고 있었다.

“뭐예요.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너무 잔인해 보이기라도 한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어?”

그가 그녀의 어깨를 돌려 다시 제 품에 등을 기대게 한 채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난 무엇이든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

“일부인을 결계 옆에 데려다 세우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돼. 하지만 만약 그대 마음에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니 자신을 질책하거나 해야 하는 일을 못 하고 있다 다그치지 말라는 말이야.”

“……하지만 내가 우유부단하게 움직인 일로 누군가 다치면 어떡하죠? 만약 이 결정이 내게 소중한 이를 위험하게 한다면요.”

“그럴 리 없어.”

“왜요?”

그가 품 안 깊숙이 넣은 세화의 귀 옆에 제 턱을 기대며 속삭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들을 우리는 조금의 방심도 없이 반드시 지켜 낼 거잖아.”

“…….”

“그러니 괜찮아. 할 수 있어. 반드시 지켜 낼 거고, 지킬 수 있고, 모든 걸 바로잡을 거야. 그 와중에 그대가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하는 것쯤이야 당연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

“그러니 무얼 망설이고 있건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 그저 본래 그렇게 되려 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돼.”

침묵으로 응대하던 세화가 피식 웃었다.

“당신이랑 대화하면 무슨 고민이 이렇게 다 허망하게 사라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가 좋지?”

그 대답에 세화의 얼굴도 완연히 편안해졌다.

맑게 웃은 그녀가 제 뒤에 앉은 이를 머리로 꾹꾹 밀었다.

“일을 다 한 거면 가서 식사부터 해요. 당신이라고 지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응. 그래야지. 한데 하나 더 알아봐야 할 일이 있어서 식사는 조금 나중에 하려고.”

“뭘 알아봐야 하는데요? 뭔가 문제가 생겼어요?”

그 순간 그의 팔이 그녀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러면서도 품 안에 든 것이 깨어질까 걱정이라도 되는 듯 몹시도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주세화.”

나직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네?”

“세화.”

“왜요. 뭔데요.”

다시 한번 웃으며 그녀가 머리를 기대던 순간이었다.

“그대의 보주. 내게 보여 줘.”

“!”

“지금, 여기서 보고 싶어. 그래 줄 수 있어?”

“……갑자기 그건 왜요?”

“그냥. 아까 보주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그대의 보주도 보고 싶어져서.”

“…….”

“보여 줘.”

“놓고 왔어요.”

“어디에?”

“백석저에요.”

“거짓말.”

“내가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당신에게 못 보여 줄 게 뭐가 있다고.”

“그럼 아까 그 여자가 있는 곳에서 했던 말은, 누구의 보주에 대해 말한 거야?”

“아까? 보주요?”

“……잠깐의 탈선만으로도 보주에 사기가 깃들었으니…….”

‘아!’

어쩐지 그때 잠시 침묵한다 했더니 그 때문이었나.

왜 그렇게 부주의하게 말을 꺼냈을까. 그림자가 깃든 보주를 본 순간부터 절대 그에게 이것을 보여 주지 않을 거라 했었는데.

그녀가 무언가 변명을 꺼내 놓으려 했으나 잠시의 망설임을 읽은 백기하는 속지 않았다.

“보여 줘. 내게.”

“그게…….”

“내게도 보여 줄 수 없는 거야?”

“아니에요. 정말 놓고 와서, 백석저에 두고 와서 그래요. 전에 당신도 봤던 그 하얀 구슬 같은, 그냥 그거예요.”

마른침을 삼킨 그녀가 어떻게 더 변명해야 할까. 무슨 말로 이 자리를 무마해야 할까 고민할 때였다.

“어……?”

“정말 보여 주지 않을 거야?”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저게, 뭐죠?”

“뭐?”

그들은 언덕 위에 앉아 있었고, 저 멀리엔 교룡의 검은 결계가 세워져 있었다.

한데 그 결계에서부터 마치 안개 같은 흐린 무언가가 새어 나와서는 점점 범위를 넓히고 있었다.

그녀와 백기하가 동시에 일어섰다.

그리고.

“!!”

그 순간 그들을 발견한 듯, 화살처럼 뻗어 온 검은 안개가 그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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