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254)

* * *

“윽…….”

여인은 가는 손마디가 새하얘질 만큼 이불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치, 칠부인.”

손에 약병을 든 시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했다.

이 약을 칠부인의 곁으로 가져가야 했건만 사기로 뒤덮인 그녀의 몸 곁으로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허억…….”

그 사이에도 숨을 내쉴 때마다 눈앞을 아득하게 만드는 지독한 고통이 엄습했다.

칠부인이 있는 힘껏 몸을 웅크렸다.

어떻게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을까.

차라리 칼로 살을 베고 당장 여기서 목을 매는 게 더 나으리라.

하지만 이런 온몸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도 휴식은 있었다.

한참이나 그녀를 자극하던 사기가 조금씩 옅어지는가 싶더니 통증이 서서히 흐려져 갔다.

칠부인이 천천히 사지를 늘어뜨렸다.

천정을 향해 누운 그녀가 목구멍에 막혀 있던 숨들을 억지로 뱉었다 삼켰다.

“하아…….”

한참 만에야 어지러운 시야와 호흡을 바로잡고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가져…… 오거라.”

부리나케 달려온 시녀가 그 손 위에 약병을 놓고는 다가온 만큼 빠르게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일 언니는. ……아직 찾지 못했니?”

“예. 게다가 결계가 생기고 나서는 더 이상 정보를 받을 수가 없어서.”

“……그래.”

칠부인이 힘겹게 바닥을 짚으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제 몸을 감싼 사기를 두려워하며 몸을 떠는 시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가 봐.”

“예, 예! 부인. 문 앞에 있겠습니다.”

나가라는 말에 크게 기뻐한 시녀가 빠르게 방을 나섰다.

“……다른 자매들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거겠지?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그녀가 창백한 입술을 이로 짓이겼다.

영생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이딴 삶을 허락했었던 것이 그녀 인생의 가장 뼈아픈 실수였다.

가뭄이 지속되던 때에도, 칠부인은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교룡이 벌이는 일의 반동이 언제 자신을 찾아올까 두려워했었다.

그래도 일부인이 있을 때는 괜찮았다.

그녀가 가까이에 있다면 저주의 반동은 그녀에게 가장 크게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

칠부인이 창밖을 응시했다.

사기로 뭉쳐진 결계 너머 도처에서 생명력을 빼앗기는 이들의 비명과 탄식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교룡이 정말 완벽한 신수가 될 수 있을까? 이런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면서? 그럼에도 위대한 적룡이 될 수 있다고?

‘그럴 리…… 없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될 수 있을 리…… 없어.’

처음엔 그녀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일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런 희생을 반복하면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고. 예견된 몰락을 불러올 뿐이라고.

이런 고통이 끝없이, 끝없이 찾아와 그녀를 삼키고 먹어 치울 뿐이라고.

‘교룡이 저렇게 나온 이상 앞으론 더 힘들어지기만 할 거야. 결계에 갇힌 이들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죽이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더욱 지옥 같은 고통이 찾아올 테지.’

고통의 여진을 삼키며 칠부인이 눈을 감았다.

‘무서워…….’

감긴 눈꺼풀 사이로 두려움이 스며든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고 싶기도 했으나 교룡의 보주가 된 이상 그녀는 스스로 죽을 수조차 없었다.

매일매일 죽기를 간절히 바라던 일부인의 비명이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싫어. 그렇게 사는 것만은…….’

그때였다.

그녀의 축 늘어진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보였건만 버선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 마치 홀로 살아 있는 것처럼 쭉 앞으로 나섰다.

그 움직임에 칠부인이 눈을 떴다.

침상 아래로 다리를 내리려는 제 왼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낮은 한숨을 뱉어 낸 그녀가 비틀거리는 몸에 애써 힘을 줬다.

몸을 움직여 발이 가려는 곳으로 함께 이동했다.

마치 다리를 저는 것처럼. 그녀의 도움을 얻은 왼발은 미묘한 엇박자로 허겁지겁 제가 원하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이 멀진 않았다.

곁방 너머의 복도였으니.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그저 너른 정원과 저 멀리 세워진 높다란 담벼락뿐이었다.

하지만 복도 난간을 잡고 선 순간 왼발에서 낮은 통증이 느껴졌다.

크게 선명한 고통은 아니었으나 제법 신경 쓰일 만큼은 되었다.

이 왼발, 아니 제 몸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영혼이 이렇듯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은 같은 몸을 써 온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음으로.

“왜. 뭘 하고 싶은 거니.”

대답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 칠부인이 제 왼발에게 물었다.

그때 마치 환각처럼 눈앞에 어떤 풍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 옷을 입고 있던 훤칠한 키의 누군가의 모습이, 제가 있는 전각 주변에 서 있던 광경이.

키가 큰 사내는 그대로 멈춰 선 채 석상처럼 그녀를 보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 위로 드러난 놀라움과 충격을 읽어 냈을 때 처음으로 왼발이 아팠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제 기억 속 한 장면이기도 한 지금 이 기억의 상승이 왼발이 한 일이라는 걸 알아냈다.

“만나고 싶니? 그때 그 사내.”

대답이라도 하듯 새끼발가락이 저렸다.

환청처럼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장……ㅁ.’

짧은 음절을 끝으로 더 이상 소리가 이어지진 않았으나 칠부인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구나. 네가 아는 자였구나.”

그녀의 입술 위로 씁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

잠시간 침묵하다가 조용히 물었다.

“……줄까?”

제가 말해 놓고 스스로 깜짝 놀랐다.

두 눈을 한참이나 깜빡였다.

그렇지만 한 번 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몸…… 다시 네게 줄까?”

왼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답 같던 통증 역시 이번엔 없었다.

하지만 그늘이 장막처럼 내려앉아 있던 칠부인의 눈 속에는 반짝 옅은 빛이 생겨났다.

그냥 해 본 말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인계에 가뭄을 만들어 낼 때도 그렇고, 그녀도 끝을 모르는 이 고통에 지칠 대로 지쳐 가고 있지 않았던가.

이 영혼을 제 몸속에 살려 놨을 때만 해도 그저 영혼이 둘이면 조금이라도 고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였지만.

“이 몸에 돌아와도 좋은 일은 없을 텐데, 상관없어?”

칠부인의 시선이 색을 잃은 정원과 하늘을 뒤덮은 검은 사기를 응시했다.

“교룡은 땅 위로 나왔고, 밀실에 갇혔을 땐 하지 못했던 일을 마음껏 시도할 테니 너는 그저 매시간 내가 겪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뿐일 거야. 그래도 좋아? 너는 보주가 아니니 명조차 길지 않을 텐데, 그래도?”

대답처럼 다시 발가락 끄트머리가 움찔거렸다.

‘그래. 누굴 주면 되는 거잖아?’

스스로 죽을 수는 없지만 제 몸엔 여분의 혼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과 바꿔 사라져 버릴 수는 있지 않을까.

보주가 된 것은 그녀의 혼이었으나 몸에 이상이 있지 않은 이상 교룡이 알아챌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지금껏 이 생각을 못 했지.’

눈을 빛낸 칠부인이 비틀거리며 발을 내디뎠다.

어딘가로 급히 나아갔다. 왼발은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갔다.

* * *

말에서 내린 세화가 빠르게 일부인이 타고 있는 마차로 다가갔다.

하나 그 걸음은 마차 주변에 깔린 이상한 힘의 자취를 읽어 내며 멈춰 섰다.

‘……뭐지?’

백기하가 이미 일부인이 타고 있는 마차 주위로 결계를 깔아 두었었다.

하지만 그 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어떤 검은 사기가 안개처럼 흐리게 퍼져 있었다.

‘마치 지금껏 지켜보다 온 그 교룡의 결계와도 같은…….’

그것을 알아차린 세화의 눈매가 날카롭게 위로 솟았다.

‘교룡과 연결되어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언제고 빠르게 영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준비한 그녀가 마차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당신 괜찮아요?”

그 순간 선명한 악취가 세화를 덮쳤다.

“!”

최장명의 말처럼 방치된 상처가 썩어 갈 때 나는 익숙한 악취였다.

“도, 도와줘.”

세화를 발견한 일부인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손을 뻗었다.

그런 그녀의 하얀 팔 위로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검은 얼룩과 상처의 존재가 확연했다.

“당신 왜 이래요. 이게 다 뭐죠?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

고통이 오는 것처럼 눈을 감은 일부인의 눈동자가, 가려진 눈꺼풀 안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교룡의 보주라는 사실은 들키면 안 된다.

지금껏 살아 있는 생명체가 용의 보주가 된 일은 없으니 자신의 혀만 조심하면 발각될 일은 없겠지.

그럼 뭐라 말해야 하지? 뭐라 말해야 저 여자를 속이고 적룡의 영력을 얻을 수 있지?

“교룡이 나를 찾아내서 그래.”

“당신을 찾아서? 그게 이런 반응을 만들어 낸단 말이야?”

“그래. 영지선에 다 도착한 거지? 주가와 가까워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안 온다고 하지 않았니. 일부인의 눈에서 구슬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백가의 영력으로도 나를 감추지 못할 거야. 그러니 제발 적룡의 영력을 조금만이라도 나눠 줘. 내 말을 다 믿지 않아도 좋아. 언젠간 다 진실이라는 걸 알게 될 날이 올 테니.”

그녀가 세화에게 손을 뻗었다.

“제발 그때까지만이라도 나를 교룡의 눈에서 숨겨 줘. 교룡에겐 옛 용들이 가지고 있던 천리안의 능력이 있어. 천리안에서 숨을 수 있는 건 같은 용의, 신수의 영력뿐이야.”

애처롭게 세화를 붙든 일부인의 팔은 고통의 영향으로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머릿속은 바쁘기 그지없었다.

‘이런 핑계로는 부족해. 어차피 교룡과 싸우기 위해 여기 왔으니 그냥 날 인질로 교룡을 끌어내려 할지도 몰라.’

일부인이 빠르게 세화에게 덧붙였다.

“나와 교룡의 연결을 끊어 놓지 않으면 교룡은 분명 나를 통해 이곳에도 사기를 퍼뜨릴 거야. 아니면 나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거나 내 몸에 신접(神接)해 여기 있는 무사들을 몰살시키려 할 수도 있지.”

“…….”

“어떤 식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교룡이 내게 건 제약을 벗어나 사실을 모두 털어놓기 위해서도 그 영력이 필요해. 그러니 조금만이라도 나눠 줘. 아주 조금은 상관없잖아.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러니 제발 날 좀 도와줘.”

“……적룡의 영단에서 나온 힘이 있으면 당신을 교룡의 눈에서 감출 수 있다고?”

“그래. 그러고 나면 더 이상 교룡에게 조종당하지 않아도 돼. 응?”

“…….”

‘이걸로도 아직 부족한가?’

아프게 눈을 감은 일부인이 영력을 얻어 내기 위해 또 무슨 핑계를 지어내야 할까 궁리할 때였다.

“!”

갑자기 일부인의 등줄기가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수천 마리의 개미가 온몸을 기어가듯 피부가 예민해지더니 이내 산 채로 마디를 토막 내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그녀를 덮쳤다.

“아아아아악!”

불시에 고통에 당한 일부인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누군가 머리를 쇠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았고 손발톱을 강제로 뽑아내는 것 같았다.

일부인이 제 손안에 쥐여 있는 것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검은 반점들이 옷 위로 드러난 모든 피부에 번져 나갔다.

끈적한 농이 썩어 가는 살점들 사이로 차올랐다.

숨조차 쉴 수 없어 꺽꺽대던 그녀가 악에 받쳐 비명처럼 노성을 냈다.

“누구야. 대체 또 누가 죽은 거야, 누가!”

어떻게 죽은 거지?! 교룡이 보주 중 누군가 죽도록 놔두질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어떻게 혼자서만 이 지옥을 벗어난 건데! 어떻게!”

그 순간이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일부인의 턱을 움켜쥐고는 억지로 들어 올렸다.

맑게 빛나는 적자줏빛 눈동자가 고통으로 탁해진 일부인의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몸이 굳을 만큼 차가운 시선이 일부인을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억겁 같은 찰나가 지나간 후, 일부인의 턱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꼭두각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세화의 입꼬리가 비죽 위로 솟았다.

“너. 네가 교룡의 보주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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