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4화 (184/254)

촉, 촉.

젖은 소리가 이어지고, 그녀의 몸이 또 한 번 강하게 끌어안겼다.

이번에는 그녀도 그의 단단한 몸을 마주 안았다.

그의 너른 어깨에 제 이마를 콩콩 눌렀다.

“어떻게.”

“응?”

“어떻게 당신은 늘 이렇게 내가 원하는 말만 해 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그대를 보고 있으니까.”

나직이 목을 울린 남자가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내렸다.

따뜻한 대답이 따뜻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계속, 이요?”

“응. 한순간도 빠짐없이.”

어둡게 음영 진 동공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깜빡이지조차 않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마음의 깊이가 오래도록 진하게 숙성된 술처럼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촉.

쪼는 듯한 입술이 그녀의 코끝과 입 끝에 내려앉더니 다시금 뜨거운 온도로 그녀의 것을 삼켜 버렸다.

단단한 엄지가 그녀의 볼을 만지는 동안, 마치 제 영역인 양 흘러 들어온 혀는 그녀의 입안을 헤엄쳐 다녔다.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며 세화의 눈꼬리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더운 열을 뱉는 호흡을 모두 삼켜 버린 그가 고개를 기울인 채 각도를 바꿔 다시 한번 깊게 입을 맞췄다.

“하아, 흐…….”

언제 이렇게 서로에게 틈 없이 가까워져 있게 된 걸까.

단단한 벽이 그녀의 등 뒤를 짓누른다고 느낀 순간, 그의 길고 탄탄한 다리가 그녀의 몸을 압박하며 파고들었다.

밀착된 곳들이 모두 뜨겁게 달아오르고 겹쳐진 입술 안쪽에서 뒤섞인 호흡이 그들의 초조함을 끌어 올렸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 입술들이 아쉽게 서로의 것들을 놓아주었을 때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였다.

그녀의 머리 옆으로 벽을 짚은 그가 가는 허리를 더욱 바짝 끌어당겨 제 몸에 붙였다.

욕망이 선연한 제 상태를 드러내며 새하얀 귓가에 반복해서 입술을 찍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통째로 마시지 않고는 갈증이 풀어지지 않을 것처럼.

거칠게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그녀의 척추를 자극하며 심장박동을 끌어 올렸다.

“그대는, 대체 왜 이렇게 달지?”

주가로 서둘러 달리는 긴 여정에서도, 그 이후 꼬박 하루를 전력으로 날아오는 동안에도.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던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를 걷는 이처럼 바짝 쉬어 있었다.

도저히 풀 수 없는 깊은 의문이 그 목소리에 절망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대가 이렇게 달아서.”

그래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고.

그녀의 관자놀이와 하얀 귓불, 부드럽게 흐르듯 곡선을 만드는 턱선에 정신없이 입술을 누르던 그가 화가 나는 것처럼 속삭였다.

몸과 마음이 이렇듯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것은 그대에 관한 일밖에 없다고.

가장 가까이 안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한 하늘 위로 손을 뻗고 있는 이처럼 절절한 마음을 담아 토로했다.

“당신도.”

그녀도 갈증으로 하얗게 떨리는 음성을 꺼내어 말했다.

“응?”

“당신도 그래요.”

적자줏빛 눈을 들어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가는 손을 들어 그의 유려한 얼굴선을 조심히 쓸어내렸다.

긴 속눈썹을 엄지로 조심스레 매만지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떨림조차 없이 그녀의 얼굴을 무섭도록 맹렬하게 응시했다.

“당신도 내게 너무 달아서.”

흰 팔이 그를 향해 날아 단단한 어깨와 목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너무 무서워. 다른 사람들도 당신이 이렇게 탐날까 봐.”

“주세화.”

“내가 그런 것처럼 이렇게 못 견디게 당신이 가지고 싶을까 봐.”

조금의 틈도 견디지 못하고 그를 바짝 끌어당기고는,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귀를 부푼 입술로 물었다.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며 제 탁한 진심을 그의 귓가에 쏟아 냈다.

“그러니 어디 가지 말아요. 내 옆에만 있어요. 제발.”

“제, 발?”

“응. 제발.”

“안 가.”

그의 검은 눈동자 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가라 해도 못 가.”

이를 악물 듯 거칠게 그가 속삭였다.

“못 가.”

그녀의 진심은 항상 그를 절절 끓는 사막의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그가 그대로 그녀의 옷깃을 커다란 손으로 벌리며 끌어 내렸다.

눈앞에 드러난 새하얀 어깨를 삼키듯 입에 물고 큰 손으로 제 손에 꼭 맞게 들어차는 둔덕을 감싸 안았다.

“……읏. 잠깐, 잠……,”

그의 다리가 다시 한번 깊게 파고들며 예민해진 피부를 자극했다.

새하얀 어깨 위에 붉은 자국을 낸 그의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아프도록 쥐고 누른 둔덕 끝을 삼켰다.

“!”

길게 묶은 허리띠가 어느새 매듭을 풀어낸 그의 손에 끌러져 나왔다.

고정된 띠로 인해 채 모두 벗겨지지 않은 옷들이 세로로 벌려지며 그의 눈앞에 설원같이 맑은 그녀의 피부가 모조리 드러났다.

“아…….”

다급한 그의 커다란 손이 여러 겹의 옷을 파헤치며 들어왔다.

이미 뒤에 벽을 두어 한 치도 더 물러설 수 없게 만든 상태였음에도. 성급한 모습으로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가슴이 그의 단단한 가슴 위에 눌리며 밀착했다.

풀어헤친 옷과 피부의 틈 사이를 정신없이 매만지던 남자가 참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입술을 깊게 집어삼켰다.

빠르게 부풀어 오르는 입술을 빨며, 눅눅할 정도로 뜨거운 호흡이 갇힌 안쪽을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곳까지 뱀처럼 혀로 유영했다.

타액이 뒤섞이고 배 속이 온통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민감해진 척추 위를 더듬는 손을 피해 그녀가 몸을 틀었으나 달아날 곳이 없었다.

탄탄한 근육이 선명한 그의 몸은 그녀가 탈출할 곳을 모두 막아서고 있었고, 열기 어린 시선은 조금도 그녀를 놓아줄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싫어? 싫으면, ……말해. 내가, 여유가 없어서.”

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얼굴과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처럼.

“그래서 싫으면. 그대가 말해. 그러면 그만둘 테니.”

뱀처럼 날카롭고 밤처럼 짙어진 눈이 사납게 번뜩이는 와중에도.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바보같이.’

어떻게 이런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게 된 걸까.

갈급한 그의 초조가 눈에 보이듯이 다가오는 이런 순간에도.

절절 끓는 흥분으로 손끝이 떨리는 이런 순간에도 그녀를 더 생각하는.

어떻게 이런 남자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걸까.

그 행운의 이유를 세화는 제일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라,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졌다.

“안 싫어.”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말을 잘라냈다.

“그러니 바보 같은 말 말고 계속해요.”

“!”

몇 겹이나 되는 옷들이 무참히 벗겨졌다.

어떤 흥분도 상대에게 감추지 못할 정도로 틈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물기 어린 헐떡임을 삼켜 내며 상대의 입술을 삼켰다.

흥분으로 절절 끓는 이름들이 눅눅한 공동 안에서 사라져 갔다.

팔 끝에 걸려 있던 그녀의 의복마저 끌어 내린 그가 난잡하게 일어선 흥분을 제 욕망대로 움직였다.

“……!”

“……읏!”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는 듯했고 지극한 쾌감이 두 연인을 집어삼켰다.

“……아.”

대체 이렇게 서로의 맨살을 삼키는 행위는 왜 이리 기분이 좋은 것일까.

그건 지금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남겨진 듯한 느낌 때문일 터였다.

모든 것이 지워진 공간 안에 그들만 남겨진 것 같은 일체감.

소리조차 아득히 멀어지고 척추가 저릴 정도로 끌어 올려진 극렬한 자극과 상황이 주는 쾌감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자극했다.

“아…… 세화. 주세화.”

“아, 흣. ……으!”

그녀를 통째로 집어삼켜 제 속에 넣고 싶었다.

자신 외엔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제 몸으로 가리고 싶은 마음이 팽배했다.

그녀에겐 밝힐 수 없는 그 마음이 그를 몰아붙였다.

“……으,”

“흣……!”

녹아 버릴 것 같은 쾌감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게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아, 아읏!”

그가 격렬하게 몸을 부딪쳤다.

동맥이 맥동하는 하얀 목덜미를 입안에 삼킨 채 물고 빨았다.

단단하게 엮인 몸들이 함께 휘어지고 모든 감각이 몰아치듯 타올랐다.

“……!”

몸이 단단히 긴장하던 순간, 모든 사고가 일시에 지워졌다 되살아났다.

눈앞에서 불꽃이 튀기던 순간이 지나자 천천히 색과 소리가 돌아왔다.

목이 아플 정도로 습윤하게 쏟아지는 호흡이 단단히 끌어안은 서로의 어깨를 타고 흘렀다.

“하아, 하…….”

한계까지 욕망을 털어 넣은 그가 그녀의 몸을 안아 들었다.

갈증 따윈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하여 더욱더 짙어진 눈을 들어 그녀가 부드럽게 등을 댈 수 있는 곳을 찾아 방 안을 훑을 때였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방문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가주, 가주!”

다급한 백만용의 목소리가 백기하를 외쳐 부르며 복도를 지나쳤다.

‘뭐지?’

백 재상은 분명 그들이 두 형님들과 이야기하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을 텐데.

당황한 세화와 백기하의 시선이 서로에게 맞닿았다.

“빨리 가 봐요.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젠장.”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그의 욕설에 세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몸을 놓아준 그가 바닥에 흩어진 옷을 주워서 턴 뒤 어깨에 걸쳐 주고는 제 옷은 되는대로 대충 걸쳐 입고 허리띠를 맸다.

빠르게 걸어가 문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냐!”

등 뒤로 문을 닫은 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가던 백만용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백만용은 백기하의 흐트러진 차림을 눈치챌 정신도 없는 듯 희게 질린 얼굴이었다.

“지금 전서구가 가져온 소식입니다. 가주께서 빠르게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 가지고 왔습니다.”

백기하가 백만용의 떨리는 손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넘겨받았다.

“!”

짧은 문장을 확인하는 백기하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서둘러 의복을 정돈한 세화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굳어진 백기하를 확인하고 황급히 복도로 나왔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주가에 결계가 섰다는군.”

“네? 결계요?”

“그래.”

강경하기는 했으나 주가의 보주가 빼앗겼으니 결계를 세우는 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데 왜 저리 희게 질린 걸까.

“주가 초소를 견제하며 배치해둔 세 개의 무사단과 주가 영지 내부에 침투시켜 둔 첩자들에게서 죄 소식이 끊겼다고 해. 아마, 모두 죽은 것이 아닐까 싶다는군.”

“네?!!”

“그냥 결계가 아니야.”

다가선 세화의 손에 백기하가 들고 있던 종이를 넘기며 덧붙였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모조리 흡수하는 결계가 주가 전역을 뒤덮고 있다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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