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254)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주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뭐??”

“??”

“백, 백호 신수의 모습?”

그런 가주들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백만용이 경탄을 쏟아냈다.

“누가 백가의 가. 모. 님이 아니랄까 봐, 이리 동량지재의 모습을 숨기지 못하시고 태두(泰斗)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시니.”

그중, 가모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유독 높았다.

“저 백 리,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알아볼 수밖에 없는 가. 모. 님의 눈부신 위용이야말로 낭중지추라! 저 백만용은 천세 만세 억겁이 지난다 한들 가. 모. 님에 대한 충성을 결코 흐리지 않을-.”

“잠, 잠깐.”

천가주가 그의 말을 잠시 끊어냈다.

“지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백호의 모습으로 현신하였다고? 누, 누가? 백, 백가주가 아니라 다른 이가?”

“예? 누구라니요. 당연히 여기 계신 저희 백가의 가. 모. 님 말씀이지요. 세화 님께서는 하늘이 내려 주신 백가의 가. 모. 국사무쌍하시고 유방백세하실 완벽한 신수이시지 않습니까!”

“……신, 수?”

“신수라니 대체 그게 무슨-. 이 아가씨가?”

“이, 이 주가 아가씨를 말하는 게 맞는가?!”

“그야 물론입니다. 저는 이미 아가씨의 흑백모 완전하시고 포동한 발바닥조차 완벽하신 백호의 모습을 배알한 적이 있-.”

이어진 백만용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시선들이 황급히 세화에게로 이동했다.

여러 쌍의 시선들을 받은 세화가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로 제가 용의 모습으로 현신하면 일이 해결되지 않을까 하여서요. 여러 가주분들께서 판단하시기에 그 방법은 어떠한지 여쭙고 있었습니다.”

“…….”

“…….”

육문의 수뇌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세화를 보며 그저 눈만 깜빡였다.

긴 침묵이 잠시 회의실 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주명윤조차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한참 만에 물었다.

“……지금 네가 신수라 하는 것이냐? 내 딸이 신수가 되었다고?”

“왜 아버지까지 놀라세요? 아버지께선 용으로 변한 제 모습을 한 번 보셨잖아요?”

“뭐?”

“!!”

“그때요. 제가 한참이나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많이 다쳐 왔을 때.”

“아니 그러면. ……하, 하면 너 그때도 신수였던 것이냐? 그때 그것이 역린을 공격받아 일어났던 기현상이 아니야?”

“아아. 그게 제 역린이 손상돼 일어났던 이상 현상인 줄 아셨던 거군요.”

“내 주위엔 그런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주명윤과 세화가 그리 말을 하는 동안에도 온갖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고 있었다.

천가주와 강가주, 장가주 역시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만용만이 백 마디는 더 하고 싶어 입이 간지러운데도 간신히 참고 있다는 반짝이는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든 장면을 둘러보던 세화의 눈이 그들의 뒤에서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백기하의 것과 맞닿았다.

부드럽고 다정한 시선이 약간의 염려를 담아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형태가 완벽하게 유려한 그의 턱선이 미미하게 아래위로 끄덕여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세화가 여전히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는 듯 자신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음. ……그럼. 음. 한번 나가서 직접 보시겠습니까?”

* * *

“잠깐만. 재상 자네.”

얼떨떨한 얼굴로 저택을 나서던 천가주가 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백만용을 불러세웠다.

“이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신수라고는 하지만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지를 못하지 않나. 일단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세나.”

천가주의 옆을 걷고 있던 장가주가 동의했다.

“아, 그렇지. 맞지. 인,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무사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 수 있을 만한 그런 곳이 있겠나?”

백만용이 저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내리쳤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희 가. 모. 님의 두 번째 변용에 이 백모의 활약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가모님께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번잡하지 않게 모습을 바꾸실 수 있도록 제가 완벽한 장소로 안내하겠습니다.”

하여 그들은 크기나 보안의 면에서 조건이 맞는 곳까지 이동하기 위해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시간조차 초조해 다른 가주들은 연신 백만용에게 “아직이냐? 아직이야? 더 가야 하는 것이야?” 따위의 질문을 쏟아내며 재촉했다.

“이곳입니다.”

백만용이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그의 장담대로 조건이 완벽한 곳이었다.

백석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속의 한 공터였는데, 높지 않은 절벽에서 시작된 폭포가 커다란 호수로 이어져 있었다.

폭포 소리가 어찌나 시원한지. 덕분에 무슨 소리가 난다 하더라도 백석저에까지 전해질 가능성이 적었다.

호수 앞 너른 공터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었다.

백가의 영지는 차고 더운 기후가 완벽히 교차하는 탓에 대대로 만화의 정원이라 불릴 만큼 여러 가지 꽃이 자생했다.

이곳에서도 여러 종류의 꽃들이 뒤섞여 살랑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시원하게 호수로 쏟아지는 폭포.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의 화원이 어우러져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그 풍경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제대로 눈에 인식하는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래그래. 여기가 좋군.”“여기면 되겠군.” 등의 말을 쏟아내며 세화가 언제 제가 한 말의 진의를 증명할까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했을 뿐.

그들의 그런 분위기를 읽어 낸 세화가 “그럼.” 하고 운을 띄웠다.

잠시 고민하다가 폭포가 쏟아지는 호수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이들 사이로 긴장된 분위기가 팽배했다.

호숫가에 도착해 신발을 벗은 세화가 잠시 뒤를 돌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 후 미끄러지듯 물 안으로 빠져들었다.

“!!”

“!?”

“세화야!”

주명윤이 앞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낮고 부드러운 저음이 불러세웠다.

“괜찮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백가주?”

그제야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백가주를 발견한 이들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내뻗은 팔들을 다들 머쓱하게 거둬들였다.

“무, 물부터 시작해야 하나 보군요. 하하.”

“그런, 가 봅니다. 용, 용이 다 그러니까요.”

아무 말이 오고 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세화가 사라진 호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초조한 시선들이 폭포의 영향으로 물결치는 수면을 응시하는 동안에도 푸른 물결 위에는 하얀 비말들만 흩날릴 뿐 어떤 변화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아닙니까.”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장가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뭐지? 혹 뭔가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요?”

“본, 본인 입으로 신수라 하였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준비가 조금 필요할 수도 있지요.”

“…….”

“…….”

“……가주. 가모님께서 조금 오래 걸리시는 것 아닙니까.”

“…….”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늘어뜨린 미남자는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호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신수인 그가 나서지 않으니 모두 침묵하고는 있었으나 그사이에도 시간은 흘렀고 모여 있는 이들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초조하게 손을 맞잡은 주명윤의 시선이 연신 백기하를 향했다.

그리 제 딸과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그가 침착한 동안은 별일 없는 것이겠지.

‘허나 아무리 그러하여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닌가.’

노무장의 주먹이 몇 번이고 움켜쥐어졌다가 펴지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폭포수가 계속해서 시원한 소리를 내며 제 딸이 들어간 호수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화야.”

아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다.

“세화야!”

주명윤이 호수로 달려가자 마치 봉인이 깨어지기라도 한 듯 굳어 있던 가주들도 일제히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세화야!”

조금의 변화도 없는 호수면 위로 파리하게 질린 얼굴의 주명윤이 손을 뻗었다.

그가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려 할 때였다.

콰콰콰콰쾅――!!

“!!!”

천지가 개벽하듯 땅이 흔들리고 폭포 소리를 묻어 버릴 만큼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마치 절벽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소리에 놀란 가주들이 뒤로 나뒹굴었다.

그 순간 눈앞으로 투명한 적자줏빛 벽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솟아올랐다.

“……!!”

“……허억!”

그것은 벽이지만 벽이 아니었다.

얕은 곡선의 형태를 그리며 움직였으며, 호수에서부터 빠져나와 푸른 하늘을 향해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속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차르르르.

수천 개의 구슬이 일제히 어딘가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맑은 소리가 들렸다.

용오름처럼 솟구친 호숫물이 그들을 향해 햇살을 두른 채 쏟아져 내렸다.

찬란한 태양 빛을 그대로 삼킨 적자줏빛 비늘은 마치 거울 같았다.

어떻게 저 거대한 몸체가 이 호수 안에 잠겨 있었을까 의아할 정도로 한참이나 솟아오르던 것이 이내 얇아진 꼬리를 빼내며 꽃 위에 몸을 말고 앉았다.

“……!!”

“……이, 이-.”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며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숨조차 쉴 수 없게 굳어진 이들이 망연히 정면을 응시했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비늘들을 두른 무언가는 그 형체가 한눈에 다 담기지조차 않아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였다.

차르르르.

비늘들의 주인이 호흡할 때마다 빗소리 같은 청량한 소리가 음악처럼 퍼져나갔다.

“마, 맙소사…….”

“이, 이게.”

“-이게 그러니까.”

“하늘이시여.”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가주들이 말이 되지 못한 목소리만 꺼내놓았다.

높은 곳에서 우아하게 갈라진 적자줏빛 비늘의 틈새 사이로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 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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