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이 조심스레 영공 원로에게 권했다.
“……일단 아가씨의 말씀처럼 범인을…… 문주 저 아이가 아니라고 여기신다면 여기 있는 다른 이들 중에서라도 한번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곁에 있던 무사 몇이 동의했다.
“맞습니다. 문주 저 아이도 그렇고, 저도 이곳에 있는 이들을 워낙 오래 보아 온 터라 의심하는 일이 참 내키지가 않습니다. 허나 이것은 원로 어른의 목숨이 달린 문제가 아닙니까.”
“뭔가가 실수로 잘못되었을지 모르고요. 그러니 꼭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일을 저질렀다 여기시기보다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시며 한번 찾아나 보시지요.”
이들은 말로는 찾아보라고 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이미 제문주를 심중에 두고 있는 듯했다.
한데 우습게도 그것은 영공 원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공 원로의 시선이 제문주를 향하자 그녀가 펄쩍 뛰며 부인했다.
“영공 어른. 절대, 절대 전 아닙니다.”
제문주가 지금 제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울먹였다
“어찌하여 이런 일에 제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한시라도 빨리 모든 것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럼 몸수색이라도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
세화의 목소리를 들은 제문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화가 두 눈을 휘며 웃었다.
“왜 그러니.”
퍽 나긋나긋한 말투가 물었다.
“결백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싶다 하지 않았니.”
“……허, 허나 이곳은 야외인걸요.”
제문주가 대답했다.
“제가 분명 백씨는 아니지만 백가에 오래 머물며 백가의 가풍을 익혀 왔습니다. 여성은 외출을 되도록 삼가고 언제 어느 때에도 의복으로 완전히 몸을 감싸며 피부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 명예라는 것을요.”
“…….”
“헌데 이곳은 몸을 숨길 곳 하나 없는 공동이 아닙니까.”
제문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남자분들께서 뒤를 돌아봐 주신다고 해도, 이리 많은 이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제 옷을 벗기고 뒤지며 몸수색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제문주의 호소를 들은 다른 이들도 “아, 그렇지. 그건 좀…….” 하며 공감했다.
그 와중에도 영공 원로의 몸을 잠식해 들어가는 검은 실선은 착실히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제 다른 쪽 다리와 왼쪽 팔도 마비가 진행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영공 원로가 세화를 향해 말했다.
“저 아이의 말이 맞지. 아무리 제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나, 여인을 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수치 줄 순 없으니. 이 늙은이는 해결할 능력이 없는 듯하구만. 아가씨께서 해결해 주어야 할 것 같소.”
혹 세화에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는지 영공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만 이것만은 고려해 주시길 바라오. 만약 강제로 몸수색을 했다가 범인이 아닌 것이 밝혀지게 된다면 아가씨께서도 죄 없는 이의 명예를 훼손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그 말을 듣고 무심하게 이동한 세화의 시선 속에서 제문주가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명예가 이곳에서 몹시 중요한 사항이라는 것을 알겠다. 내가 여기서 네 몸수색을 하는 것이 여인으로서의 네 명예를 망치는 일이라는 것도.”
세화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상황이 허락했다면 내 의심과 오해에서 벗어나는 일에 한 점 거리낌 없이 동의한다는 네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렷다?”
“그럼요!”
“그럼 몸수색이 아니라면 내가 어떤 방법을 제시해도 너는 동의할 테냐?”
“네. 그렇습니다. 다만 그전에 저도 아가씨께 두 가지만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해 보렴.”
“고매하신 주가의 아가씨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감히 참견하려는 것은 아니나, 첫째는 제가 범인이 아닌 것이 밝혀지게 될 시, 수치스러웠던 이 시간을 어찌 해결해 주실 것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당돌한 그 말을 들으며 세화가 물었다.
“둘째는?”
“둘째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셔도 좋지만 제 몸에는 다른 이의 손이 닿지 않게 해 주십시오. 혹여 수색하는 척하며 제 가까이에 증거가 될 만한 것을 몰래 집어넣을지 누가 안단 말입니까.”
“저게……!”
분노한 영채가 이를 물고 나서려는 것을 세화가 손만 들어 막았다.
시녀가 감히 제게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님을 알면서도 세화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니?”
“네, 그저 모든 과정을 보는 이들이 전부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처리해 주실 걸 믿기 때문에 부언드려 보았습니다.”
“좋다. 그러면 내 네 청에 대한 답을 해 주마. 첫째, 나는 네게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사태의 진위를 판단할 것이며, 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내가 함부로 속단하여 네 명예를 실추시켰음을 인정하고 이들 앞에서 네게 고두할 것이다.”
“……!!!”
“아가씨!!”
“조용히 하거라. 둘째, 범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네게 완전히 닿지 않을 방법은 없다. 허나 네 염려를 이해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손이 닿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결코 뭔가를 숨길 수 없는 도구를 사용할 것이니 이것은 네가 이해하여야 한다. 이에 동의하느냐?”
“그, 그럼요!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요!”
“정리하면, 내가 이후 하는 일이 네 의복을 벗기지 않으면서 모두가 범인을 찾는 방법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너도 기꺼이 허락한다는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좋다. 네 바람대로 내 방법은 누가 보아도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세화가 옆에 두었던 화살집에서 화살을 두 대 꺼냈다.
화아!
찬란한 오색의 빛이 화살대를 감싸며 터져 나왔다.
그것을 이리저리 살핀 세화가 손을 움직였다.
콰앙―!
난데없는 굉음과 진동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몸을 움츠리며 눈을 떴다.
“괜찮구나.”
들고 있는 화살대로 바닥을 내리친 세화는 그것을 영무와 영선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자, 그럼 너희는 이걸 들고 가서 저 아이를 매우 치렴.”
듣고 있던 제문주가 멍하니 되물었다.
“……네?”
‘이게 무슨…….’
도대체 저 주가 여자가 어떤 지혜를 뽑아낼지 한번 지켜보자며 흰 눈을 뜨고 있던 영공 원로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해결할 방도가 없으니 아이를 죽이겠단 겐가?!”
“이게 해결할 방도입니다만.”
세화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되물었다.
“벗길 수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두드릴 수밖에요.”
부드러운 미소가 세화의 얼굴 가득 번져갔다.
“나는 저 아이가 독을 썼고 해독약 역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넉넉히요. 왜냐하면 자기 목숨은 끔찍하게 소중히 여기는 아이 같거든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빛나는 화살대의 양쪽을 잡아당겨 강도를 확인한 세화가 덧붙였다.
“같은 맥락에서 독약은 이미 위험할지 몰라 버렸을 테고. 수색도 쉽지 않으니. 해독약을 담은 것이 병이라면 깨질 때까지, 종이라면 찢어질 때까지 온몸을 두드려 약이 흘러나오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오. 곧 신영께서 그 백가 머저리들을 눌러 버리실 수 있겠는데.”
“응? 아. 지난번 그 배신자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는 거야?”
“그렇다더군. 그럼 드디어 내게도 백기하 그 개자식의 입을 찢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건가?”
“고작 원로 하나와 노예 몇몇 정도로 뭐 얼마나 결과가 나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나 봐?”
“이것들이 배짱이 보통이 아니어서. 주가에선 노예였지만 백가에선 대우가 괜찮은지 팔자 편하게 이름도 바꾸고 살았더라고. 이름도 문주란다, 문주. 제까짓 게 가문이 어디 있다고 문주야.”
“이름이 문주라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주가의 영지였다면 머리 가죽을 벗겨 정신을 차리게 해 줬을 텐데 말이야.”
“내 말이. 그딴 것들한테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 주니 이딴 결말을 맞이하는 것 아니겠어?”
‘감히 그때도 백가의 명줄을 지척까지 끊어 놓았었지.’
과거 감옥에서 들었던 목소리들을 생각해 낸 세화의 음성이 단호해졌다.
“아까 저 아이가 말했죠. 누구나 이 일의 해결을 위해서라고 납득할 만한 방법이라면 뭐든 좋다고. 그러니 저를 막아서시고 싶은 분들께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떠올리셔서 어리석은 저를 깨우쳐 주셔야 할 겁니다.”
“…….”
그 방법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하나 이리 말하려던 이들 역시도 딱히 다른 방법을 떠올리진 못했다.
세화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러지 못하겠다면 물러나세요. 날 방해하지 말고!”
* * *
퍽!
“……!”
퍽!
“……!!!”
결국 정말로 매타작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그 모습을 더없이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평온한 눈으로 지켜보는 세화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던 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영공 원로의 상태가 너무나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의복에 가려져 정확히 어디까지 독이 퍼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까지 이미 새까매지고 있었다.
언제 저 독이 심장을 잠식하여 영공 원로의 눈을 감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퍽!
“!!”
“피가 나지 않게 잘 때리렴. 약이 가루 형태라면 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