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이 빨라진 흰 목이 그의 불평 속에 잘근잘근 물어뜯겼다.
날개뼈가 도드라진 등줄기를 따라 손을 미끄러뜨리다가 봉긋하게 솟아오른 곳을 커다란 손으로 움켜쥐며 더운 열을 뱉었다.
“내가 그대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되고 싶은데.”
아주 오랫동안 가족이 없이 혈족들을 가족 삼아 지내 왔던 백기하의 목소리가 절절했다.
“그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벌써부터 더없이 단단해진 제 몸을 밀착하며 이른 쾌감이 드러나며 붉어지는 그녀의 눈가를 새까매진 눈동자로 더듬었다.
“감히 누구도 그대에게 불경한 짓을 할 생각 따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은데.”
이런 중요한 시기엔 내도록 그대의 바로 곁에 앉아 근심을 함께 하고 해결책을 찾아 주고 싶다고.
그리 말하는 남자의 어깨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떠올랐다.
분노 섞인 언어들을 풀어 놓으면서도 여전히 한구석에 서글픔이 매달린 눈가를 가는 엄지로 쓸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지 말아요.”
“뭐?”
“당신 옆자리는 반드시 내가 내 힘으로 얻어 낼 거니까.”
쾌감으로 흐릿했던 시야를 걷어 낸 그녀가 선이 완벽한 그의 눈매 사이, 검게 빛나는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반대하는 이들을 다 내던지고. 누구의 불평도 묵살시켜 버리고.”
그렇게 감히 누구도 당신 말에 불복 따위 하지 못할 상태로 만든 채 당신 옆자리를 차지할 거니까.
그의 팔 안에 몸을 눕히듯 기댄 그녀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내가 다 해 줄 거니까요.”
“……그럼 난 당신에게 뭘 해 주면 되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그런 건 견딜 수 없다.
이전에도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으나, 나날이 만개해 가는 그녀의 모습이 불안하기만 하다고. 그러니 뭔가를 하고 싶다고.
차마 이 말을 꺼내지 못한 그가 서글프게 물었다.
“나는 당신에게 뭘 줄 수 있지?”
이미 제 모든 걸 그녀에게 준 남자가, 그럼으로써 불사를 잃고 여분의 목숨마저 사라져 버린 남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그녀는 그저 다시 한번 그의 목을 제게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흰 다리로 그의 몸을 감았다.
“당신도 그냥…….”
이 남자의 복잡한 머리가 텅 비어 버릴 수 있도록 그가 한 것과 똑같이 상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미끈한 자극에 금세 눈 끝에서 힘이 풀리고 몸이 비틀렸다.
서로를 낱낱이 알고 싶은, 색도 크기도 다른 두 손이 상대의 몸을 본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만지며 기억했다.
이윽고 그가 제 몸을 그녀의 몸에 밀어붙였다.
“흣……흐.”
고개가 젖혀지며 그의 소유욕 가득한 시선 앞에 애처로운 흰 목이 붉은 잇자국을 새긴 채 드러났다.
단번에 그녀의 몸을 삼키고 그녀가 애원하며 밀어낼 때까지 몰아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초조함을 삼킨 채 그녀의 목선을 혀로 덧그리며 그녀가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젖은 피부가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던 순간 입술을 물고 있던 그녀가 그의 몸을 끌어당겨 꽉 안았다.
“백기하 당신도 그냥 내 옆에 있어 줘. 계속.”
“…….”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백기하의 귀 끝과 턱에 입을 맞춘 후 세화가 부드럽게 웃었다.
“좋아. 당신이라서.”
떨리는 목소리는 그가 제일 갈망했던 다정함과 애정을 담뿍 품고 있었다.
백기하의 눈끝이 뜨거워졌다. 배 속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언제 어느 때라도. 정말로 혼인을 하여도. 신수의 영원 속에 그녀와 단둘이 남는다 해도.
그런 시간이 온다 해도 이 여인을 향한 제 기갈은 전부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백기하가 결코 그녀에게 내보일 수 없는 험악한 소유욕을 감은 눈 안에 감췄다.
어느새 그는 그녀를 내리누르듯 제 큰 몸으로 감싸 숨 막히도록 세차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제 가슴 안쪽에 들어찬 것들을 손으로, 호흡으로, 행동으로 쏟아부었다.
느리게 이어지던 움직임이 사납게 빨라졌다. 혹독하게 끌어 올려지는 자극이 그와 그녀의 눈앞을 동시에 하얗게 지워 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녀의 호흡마저 아까웠던 그가 녹을 듯 세차게 입술을 빨며 그녀의 몸을 몰아붙였다.
“하……읏! 흐으.”
등줄기가 뻣뻣해질 정도로 강렬한 쾌감 사이로 한 번 삼켜져 흐려진 신음이 새어 나왔다.
형태가 뚜렷한 그의 근육 사이로 땀방울이 배어날 때까지 몇 시진째인지 모를 아득한 희락이 영원처럼 이어졌다.
* * *
덧문을 닫은 방 안에 표정이 딱딱한 네 명의 노인이 모여 있었다.
영공 원로가 제 반대편에 앉은 노인을 향해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시선을 받은 백가의 십원로 중 제유 원로 백경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어찌 이런 중한 일에 실수를 하겠습니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
“허.”
다른 두 원로들 역시도 할 말을 잊은 듯 잠시 침음을 삼켰다.
“……신수의 이빨을 이미 그 아가씨에게 내주셨다니.”
“그렇다면 우리가 반대해도 전혀 소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영체를 넘기실 정도로 이미 그렇게까지 마음을 주신 거라면…….”
제유 원로가 팔걸이를 내리쳤다.
“그게 무슨 말씀들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씨 따위를 우리의 가모로 맞아들이시겠다는 겁니까, 지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미 가주께서 마음을 깊게 주신 것이 저리 여실하니 하는 말이지요.”
“게다가 목숨이 위태로웠건 어쨌건 간에 탈피 때 얻은 신수의 이빨을 삼켰다는 건 이미 백가의 영력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는 건데. 혼인하지 않으면 그 영력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하는가!”
두 원로의 나태한 언사에 백심중의 울화가 목 끝까지 치솟았다.
“우리가 주씨의 입지를 어떻게 좁혔는데! 어떻게 육문의 시대를 열고 있는데! 그 모든 노력을 시궁창에 처박겠다, 이 말인가?”
백만용에게서 주가 가모에 대한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던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그 음습한 저열함은 원로의 바닥인가. 아니면 백가 전체의 바닥인가.>
감히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 것이 가주를 믿고 그따위 서신으로 그를 도발하기까지 했으니.
“하나 저는 좀……. 우리 가주께선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고 두 번의 탈피마저 홀로 견디며 마음 둘 곳 없이 지내 오시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런 가주께서 탈피 때 얻은 신수의 영체까지 망설임 없이 내주며 마음 주는 이가 생겼다니, 일단 망설이게 될 수 밖에요. 게다가 주명윤은 주씨답지 않게 성품이 바르고 온건하기로 이름났던 이이기도 하니.”
“네. 게다가 요 얼마간 그 부처를 저도 샅샅이 관찰했는데 성정이 꽤 괜찮았습니다. 하여.”
방 안에 자리한 나머지 두 원로가 머쓱한 얼굴로 결론을 내리며 일어섰다.
“흠. 흠. 그런 이유로 저는 제 의견을 충분히 알렸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백가를 생각지 않는 것은 아니니 너무 서운해하시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맞습니다. 영공 원로께서 지난날들 동안 백가의 수석 원로로서 무던히 애써 오신 것을 알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점 부디 너른 아량으로 이해를 부탁합니다. 제유 원로께도요. 마찬가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방에서 빠져나가자 남은 이들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제유 원로가 허공에 허. 한숨을 뱉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답니까. 지금껏 저런 자들을 믿고 함께해 왔다니…….”
“그나마 경윤 자네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 건지. 자네마저 없었으면 나는 여기서 드러누웠을지도 모르네.”
“그 어린 계집이 정말 대단하군요. 가주와 그 계집이 만난 것이 아직 한 계절이 넘지 않았다 들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가주를 그리 완연히 홀려 버린 것을 보면요.”
“누가 아니랬나. 가주가 뒤를 보아주시고 있으니 나도 섣불리 부딪치진 않는 중이지만, 백가가 제 앞마당인 양 구는 꼴이 아주 보통이 아니야.”
“주씨의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제가 준비해 드린 주가에 대한 자료들을 이미 보셨잖습니까. 가문의 피를 아주 선명히 타고난 게지요.”
“어찌해야 좋겠는가. 가주의 태도를 보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고심하던 제유 원로가 이런 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며 어떤 의견을 꺼내 놓았다.
영공 원로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나도 이왕이면 그 계집이 아주 떠들썩한 방법으로 가주에게 내쳐지길 바라지만…… 그렇게까지?”
“이미 두 번의 시도가 물거품이 되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큰 사건으로 하루라도 빨리 계집의 성품을 낱낱이 까발리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일을 치르는 아이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주가에 대한 원한이 상당한 아이들이니 그들은 오히려 일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영공 원로가 단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제유 원로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직접 물어보시죠. 문주야.”
원로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곁방에서 대기하던 제문주가 조용히 창호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 제유 원로 어른.”
“일을 단번에 성사시키기 위해 좀 크게 꾸며야겠는데, 그 과정에서 너나 다른 아이들이 다치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하겠느냐.”
“당연합니다. 주씨 여자의 정확한 신분을 알고 나니 제가 그 여자에게 특별한 원한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이 난 것을요.”
“음? 네가 저 주씨 계집과 만났던 적이 있다는 말이냐?”
“네. 주가 영지에서 노비로 살고 있을 때 주인을 따라 그 여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문주가 그때 느꼈던 공포들이 채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듯 손을 떨며 말을 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찌나 손속이 악독한지. 그이의 손에 불구가 되거나 죽어 나간 노비들이 기백이라 저택의 분위기부터가 스산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뭐라?”
“우리 육문과 주가와의 전쟁으로 인해 집안엔 큰 어른이 없는 듯했으니까요. 가르치고 제어할 사람이 없으니 악독한 주씨 피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요.”
“그럼 너와 특별한 원한이 있다는 건 무엇이냐.”
“그곳에 갈 때 제가 동생처럼 보살피던 작은 노비 아이 하나가 함께하였습니다. 하지만 서신을 전하러 간 아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문주의 눈가가 붉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문가에서 그 여자와 마주쳤는데 아이가 실수를 하였다고 그 자리에서 때려죽였다지 뭡니까.”
“뭐야?!”
“아무리 저희들이 주씨 영역에서는 산 생명 취급을 못 받는다고 하여도 어찌 그 어린것을……. 그 녀석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럽게 떠났을까를 떠올리면 오래된 일임에도 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더 악독한 년이었구나. 허. 가주께서 대체 어찌하시려고 그런 계집을 가모로 세우시겠다고.”
“어쨌든 전 언제가 되든 간에 꼭 저 계집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하늘이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여 무슨 일을 지시하시든 망설임 없이 행할 것이니 그저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제문주의 각오를 들은 영공 원로가 결정을 고심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느라 그 찰나의 순간 제문주와 제유 원로의 시선이 잠시간 마주친 것을 알지 못했다.
형형하게 눈을 빛낸 제유 원로가 제문주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