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54)

부름을 받고 점원 소년이 들어섰을 때, 방 안에는 온통 어둑하게 어둠이 깔려 있었다.

덧창까지 닫힌 방 안, 꺼진 등불.

그런 방 안에서 귀신처럼 앉아 있는, 어둠에 가려져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두 손님의 모습에 소년이 문을 열다 말고 화들짝 놀랐다.

‘아까 입실하실 땐 정상인들로 보였는데. 광, 광인들이신가.’

단단히 긴장한 목 사이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차, 찾으셨습니까.”

“그래.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널 불렀다.”

낮은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의 상태 때문에 유독 스산하게 들려왔다.

소년이 목소리를 떨며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일단 이 앞에 앉거라.”

그들이 가리키는 자리엔 낮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자들도 점원에게까지 자리를 권하지는 않는다.

하여 평소라면 뭔가를 묻는 정도로 제 자리까지 챙겨 주는 이 손님들에게 놀라며 제법 감동까지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체 날 뭘 얼마나 잡아 두시려고 앉으라고 권하시기까지…….’

방 안이 완벽하게 컴컴하다면 방문을 조금 열어 놓아도 되냐 물어라도 보았을 텐데.

들어와서 보니 가장 모서리 쪽, 끝 벽의 창 하나를 한 뼘 정도 열어 두어 눈앞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있다 해도 그 빛에 안심이 된다기보다는 어쩐지…….

‘매일 보던 방 안인데 어째서 이렇게 음산해 보이지.’

다시 한번 마른침이 넘어가고.

이상한 손님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가 혹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소년은 그들이 앉으라는 곳에 얼른 착석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그의 앞에 앉은 남자가 소매에서 무엇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소년을 향해 내밀었다.

“그 전에 이걸 보아라. 이 패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느냐.”

패?

방 안이 온통 어두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눈을 온통 찌푸리며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야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헉! 행수님의 패가 왜 이분들께…….’

* * *

세화가 처음 지 행수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변용술사에 대한 것만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 행수는 그들이 원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변용했을 때 입을 수 있는 의복들을 준비해준 것 뿐 아니라, 제가 가진 상단 패를 나눠주며 특정한 표식이 있는 곳에서 패를 보여 주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거라 덧붙였다.

그곳이 이곳이었다.

그녀가 왜 자신을 그리 도와주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 행수는 세화를 신영의 불 속에서 구해 온 이가 아닌가.

그건 보통 각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화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를 믿을 수 있다 판단했다.

패를 확인한 소년이 목소리를 낮춘 채 그들이 묻는 모든 부분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초소의 천 부인 말씀이십니까. 그분께서는 요 며칠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요 며칠? 그전에는 그분을 뵌 적 있고?”

“네. 저희는 그분을 천 의원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감사하게도 항상 비는 시간에 단사성 내부를 도시며 아픈 이가 있으면 도와주시곤 하셨었거든요. 한데 요 며칠은 통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

“지난번에도 며칠간 보이지 않으셨을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넘어져 발목을 다치신 채 나타나셨던 일이 있어서……. 하여 이번에도 혹시 어디 편찮으시거나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다른 이들도 걱정이 많습니다.”

‘넘어지셨다고?’

세화의 안색이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창백해졌다.

제 어머니는 의원이라는 위치상 신중하기가 남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걸음걸이마저 빠르지 않은데 그런 어머니가 넘어지셨다니.

있는 힘껏 맞잡는 하얀 손을 염려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본 백기하가 소년에게 하나를 더 물었다.

“그럼 혹시 붉은 문을 가진 저택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붉은 문이요?”

“그래. 동쪽방향, 거리 끝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 말이다.”

소년의 얼굴이 단번에 창백해졌다.

“그 저택에 관해서는 관심 가지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왜?”

“온갖 높으신 분들이 드나드시는 곳이에요. 잘못 관심 두시면 큰일 납니다.”

달리 듣는 이도 없건만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중앙 영지의 아주 높은 분이 뒤를 봐준다는 말도 있고. 일단 그 저택과 연관되어 무사한 이가 거의 없습니다.”

“무사한 이가 없다니?”

“뭐. 저희 같은 가문이 없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요. 그곳에서 종종 연회가 열리기도 하는데, 그런 자리에는 보통 무희들을 부르지 않습니까? 한데 그렇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무희들 중 몇은 그 후 꼭 모습을 감춥니다.”

소년의 목소리가 두려운 듯 조금 떨렸다.

“처음에는 좋은 곳에 갔나 했죠. 높으신 분들의 눈에 들어 중앙으로 갔을 수도 있고. 한데 그렇더라도 가족에게 말은 하고 가거나, 미처 말을 못 했더라도 그 후로 소식 한 장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사라져서는 몇 년이 흘러도 행방을 아는 이가 없습니다.”

“…….”

“게다가 예전엔 가끔 그 댁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을 뽑아 가고는 했었습니다. 그때야 뭣도 모르고 좋은 저택에서 일하게 되는 거니까 경쟁도 치열했는데요.”

“그런데?”

“작은 실수에도 엄하게 처벌하시는 통에 큰 행사가 있은 다음 날엔 수레 그득 시신이 실려 나왔습니다. 거리의 상인들이야 그곳에 오시는 분들의 씀씀이가 좋으니 받들어 모시지만, 저희 같은 이들은 그 저택과 연관되고 싶지 않아 몸을 사립니다.”

“그럼 혹시 그 저택에 사는 두 여인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나?”

“여인이요? 두 분? 아, 젊은 아가씨 두 분 말씀입니까. 그분들은 내려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중 한 분만 매일 밤 나와 거리 공연을 즐기셨는데 다른 것은…….”

“그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단 말이지?”

“예.”

“알았다. 가 봐.”

긴 문답 끝에 소년이 방을 나갔다.

“지금 가봐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 세화의 손을 남자가 제 커다란 손으로 덮으며 잡았다.

“그래. 같이 가.”

“어머니가.”

세화의 붉은 입술이 하얀 이에 세게 물렸다.

“어머니가 잘못, 되셨으면 어쩌지요? 혹 신영에게 끌려갔다거나, 아니면…….”

백기하가 잘게 몸을 떠는 세화의 앞에 다시금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몸을 숙여 그녀의 시선에 제 것을 맞췄다.

“걱정하지 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서늘하게 식은 이마에 뜨거운 입술을 눌렀다.

“나 홀로 다시 전쟁을 벌이는 한이 있어도, 장부인은 반드시 무사히 모셔 올 테니까.”

* * *

아직 다시 변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은 탓에 그들은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눈 밑까지 복면을 올려 얼굴을 감췄다.

허나 초소 안을 반나절이나 샅샅이 뒤졌음에도 어떤 성과도 없이 돌아와야 했다.

커다란 초소 내에는 어머니의 모습은커녕 그녀가 사용했다던 물품조차 보이지 않았다.

‘개인 소지품까지 없는 것을 보면 혹시 스스로 떠나신 걸까?’

며칠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어머니.

며칠 전에 이곳으로 내려왔다는 사연주와 주수연.

이것은 그저 우연인 걸까?

‘그럴 리 없지.’

세화의 눈 끝에 불꽃이 튀었다.

“사연주에게 가 봐야겠어요.”

이를 사리문 세화가 그렇게 말하자 백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백기하와 함께 조용히 날아 거대한 저택 안으로 숨어들었다.

* * *

밤이 늦었건만 저택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불이 꺼진 방이 드물었고 시종들과 시녀들이 종종걸음으로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라고는 밤벌레가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고요하게 가라앉은 저택의 내부로 진입하며, 마음이 급해진 세화가 기하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갈라져요.”

“뭐?!”

“이곳 어딘가에 어머니가 계실지 몰라요. 저택이 넓으니 따로따로 돌아보는 편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함께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세화의 의견이 합리적이었다.

하여 그들은 아침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만나기로 정하고 복도의 양옆으로 갈라졌다.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누비는 시녀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기척을 죽인 채, 세화는 할 수 있는 한 빠르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저택 곳곳을 살폈다.

허나 고요한 복도 안 어디에서도 제 어머니의 영력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더욱더 깊숙한 곳까지 나아가던 그때였다.

쨍그랑―!

세화의 귓가로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이 넓고도 고요한 저택에서 사용인들의 발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들은 것이 처음이라 자연히 세화의 몸이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몸을 숨겨 가며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복도를 오가는 이들에게 금세 들킬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갑자기 복도 왼쪽으로 자리해 있던 창호 문이 벌컥 열렸다.

‘!!’

당황한 세화가 천정으로 뛰어올라 삼각형의 형태로 솟은 기둥 사이로 몸을 숨겼다.

마치 장식품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시녀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와 늘어섰다.

그 사이로 누군가 울음소리를 내며 끌려 나왔다.

“제발, 부인.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부인!”

시녀 하나가 다른 시녀들에게 몸이 붙잡힌 채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잔혹한 눈을 하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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