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무사들은 서월을 진영 안으로 데려오기 전에 짧은 새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신호가 돌아오자 그녀를 데리고 진 안으로 들어섰다.
서월은 무사들에게 끌려가며 옆눈으로 진영의 상황을 살폈다.
탕이 그득 담긴 솥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빼곡한 막사들은 열을 맞춘 채 두 장소로 나뉘어 세워져 있었다.
한쪽의 막사는 한눈에 보기에도 북적거렸다.
벌써 등을 켠 곳도 많았고 막사를 이용하는 이들도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았다.
막사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사들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었고, 입구에는 각기 다른 색의 표지들이 마치 무언가를 표시하듯 매달려 있었다.
‘뭐지? 저 안에 뭔가 중요한 게 들어 있기라도 한 건가?’
안에서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막사들을 보며 서월이 의문을 품을 때였다.
백가의 무사들은 서월을 그쪽으로 데려가 한 막사의 문을 열고 서월을 던져 넣었다. 새빨간 색의 작은 쥐 모양 표지가 매달린 막사였다.
막사 안은 서월이 의문을 가졌던 대로 텅 비어 어떤 짐도 놓여있지 않았다.
심지어 바닥의 풀을 죄 뽑아 막사 모양대로 흙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
뭔가가 이상했지만 이어진 무사의 말에 마음을 조금 놓았다.
“저녁은 주겠지만 네 몫을 먼저 가져다줄 순 없다. 우리 일행이 모두 식사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이곳에 있거라.”
무사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무사가 반문했다.
“재상께선 어디 계시지? 재상께도 이 아이를 확인받아야 하잖아?”
“내가 모셔올 테니 넌 여기서 문을 지키고 있어.”
“알았어. 다녀와.”
서월은 부드러운 흙이 드러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쌍한 얼굴로 조심스러운 질문을 거듭하며 뭔가를 캐내는 것은 그녀의 특기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지금은 사용치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생각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움직이려 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들을 따라잡느라 하루 내내 정말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데다가 침으로 혈도를 자극해 놓은 탓이었다.
가만히 서 있던 무사는 그 소리가 신경 쓰이는지 쯧, 혀를 차더니 서월에게 말했다.
“여기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한다면 지금 음식을 조금 가져다줄 테니.”
동정심은 계속 자극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서월이 흠뻑 젖은 얼굴을 들어 올리며 불쌍하게 물었다.
“참, 참말요?”
“그래. 그 전에 네게 해 둘 말이 있는데.”
“그게 뭔가요?”
“곧 재상께서 네 영력을 검사하시기 위해 오실 거다. 아마 몇 가지 물으실 텐데 절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영력이 신수에 근접하신 분이니 네가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긴 하겠지만.”
“헉. 재상님께서 그리 영력이 많으신가요?”
“백가 가주께서 신수이신 것은 너도 알고 있지? 그분께서 백가의 힘을 기르기 위해 또 하나의 신수를 만드시는 거지. 하루가 머다 하고 영력을 넘겨받고 계시니 곧 재상께서도 신수가 되실 거다.”
“…….”
“어쨌거나 물으시는 것에 대답을 잘하고 얌전히 있으면 내일 우리가 중강을 건널 때 널 데리고 가주마. 알겠느냐.”
마치 물에 빠진 채 동아줄을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월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그러겠습니다.”
“좋아. 그럼 음식을 가지러 다녀올테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거라.”
그리고 무사가 막사를 나가자마자 서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백가 재상의 영력이 그렇게 많다고?’
그저 거짓말을 못 하도록 겁을 주려는 건지 정말인 건지.
하지만 무사의 태도는 그저 당연한 것을 얘기할 뿐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백기하가 직접 날 살피진 않을 거라 생각해 영력을 반만 빼 두었는데. 백가 재상이 검사하는 건 어떻게 하지? 그가 정말로 신수에 가깝다면 들킬 것 같은데.’
결국 서월은 한 번 더 이를 악물었다.
관절을 빼 가며 줄을 푼 뒤, 남은 영력의 절반을 또 빼내어 영단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만 빼 두면 괜찮겠지.’
아슬아슬하게 원신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조금이라도 벗어날 다른 방도가 있었다면 이런 방법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녀를 전혀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은 데다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그녀의 등을 밀었다.
만일 원신이 상한다 해도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런 말로 자신을 달랜 서월은 빼낸 영단을 다시 제 배 위에 천으로 꽁꽁 묶었다.
그런 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몸을 숙이고 기다렸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가주께서 여길 직접 오신다고? 그냥 어린아이일 뿐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
“재상께서 뭔가를 하시는 중인가 봐. 오래 걸리지 않는 간단한 검사니 그냥 빨리 처리하실 생각이신 거겠지.”
‘뭐야?!’
막사 안에서 그 말을 들은 서월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 정도 영력을 뺀 것으로는 백가 재상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수의 기감에서 벗어나긴 무리였다.
‘고작 이딴 일에 가주가 와? 백가 이 미친놈들은 무슨 일을 이렇게 위아래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처리하는 거야?’
욕을 삼킨 서월은 문 앞의 무사들의 그림자를 살피다가 재빠르게 다시 줄을 풀었다.
남아 있는 영력이 많지 않았으나, 다시 한번 몸속의 힘을 반으로 나눠 영단으로 빼내었다.
그것을 배에 감은 천 안쪽에 쑤셔 넣은 후 풀린 줄을 다시 제 몸에 끼웠다.
영단이 벌써 세 개로 나뉘자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급하게 작업한 탓에 다시 흡수하고 뱉어 내질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 영력을 빼낼 때 한 번에 이만큼 덜어 냈을 것을.
다시 작업하고 싶지만 무사들의 그림자는 마치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처럼 입구를 어슬렁거려,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무사가 돌아온 건 제법 시간이 지나서였다.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나갔던 무사는 음식은커녕 서월에게 옷가지만 하나 내밀었다.
“이것으로 갈아입어라.”
“……네?”
“내일 중강을 넘을 때 우리 일행처럼 보여야 할 것 아니냐. 그 옷은 반드시 초소병의 눈에 띌 테니 아예 지금 이것으로 갈아입어.”
“지금요? 이, 이따가 입으면 안 될까요? 식사, 식사를 가져다주신다고 하셨으니 그걸 먹고 입으면 안 될까요?”
“안 된다. 지금 입어야 해. 네게 저녁을 가져다주려 하였는데 가주께서 너를 먼저 보시겠다 하셔서. 혹시 너 계집아이냐?”
“네? ……네.”
“그러면 내가 돌아서 있을 테니 그사이 갈아입도록 해라.”
“하, 하지만.”
“타협하려 들지 말아라. 우리가 너를 초소병에게 넘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걸 모르느냐?”
“……아, 알겠습니다.”
하나 서월이 살펴보니 그녀에게 준 옷이 얼마나 작은지, 이것을 입는다면 배에 동여맨 영단의 모양이 드러날 것이다.
‘젠장. 이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딱 봐도 작아 보이는데 이것들이 죄다 눈이 삐었나.’
“저, 옷이, 옷이 너무 작은데 혹시 조금만 큰 옷으로-.”
“그것밖엔 없으니 그냥 입어. 오늘 밤만 입고 있으면 되니.”
“……그래도.”
“네가 아직 덜 급하구나. 이대로 널 초소병에 그냥 넘겨 버릴까?”
“…….”
‘숨어들 때까진 분명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선 무언가 자꾸 일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백가주가 이런 일에까지 손수 움직일 줄 알았나. 무슨 가주가 이런 아무것도 아닌 어린애를 직접 검사한다고 하는 거람.’
답답했지만 일단 방도가 없었다.
무사가 아예 막사를 나가면 좋을 텐데 뒤를 돈 무사의 굳건한 뒷모습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영단을 세 개나 만들어 둔 탓에 걱정이 산더미 같았다.
옷이 작아 뭘 감추면 그대로 드러날 테니 몸 안에 감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두고 가기도 어렵고.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며 일단 몸을 피할까? ……헌데 그러다가 이 일행의 경계만 더 단단하게 만들면? 그사이 부인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이렇게 되는 상황을 미리 알았다면 방법을 다시 찾았을 텐데 여기까지 와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결국 서월은 하는 수 없이 제 배 위에 동여매 둔 영단까지 풀었다.
막사 안에 감출 곳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없어서, 풀조차 모두 뽑힌 흙바닥을 이용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풀을 뽑아 내며 흙의 색이 여기저기가 달라져 있던 데다가 뭔가를 파낸 자국이 많아 이곳에 뭘 숨겨도 쉬이 들키진 않을 것 같았다.
‘괜찮아. 아까 표지도 확인했잖아. 빨간 생쥐였지? 여길 찾아오면 돼. 어차피 사용하는 막사도 아닌 것 같으니.’
서월은 땅을 파는 것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부산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발끝으로 흙을 후벼팠다.
그 안에 영단을 던져 넣기 전에도 한 번 더 망설였다.
오죽하면 팔에 난 상처를 벌려 가장 큰 영력의 영단만은 그 속에 쑤셔 박을까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하지만 티가 많이 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참아 놓고 거기서 빌미를 줄 순 없었다.
결국 한 뼘 깊이로 파인 흙 속에 작은 영단 세 개를 떨어뜨린 후 그 위를 꽁꽁 흙으로 다져 밟을 수밖에 없었다.
“옷을 다 갈아입었습니다.”
서월이 그렇게 고하자마자 등을 돌리고 있던 무사는 어쩐지 긴장하고 있던 이처럼 길게 숨을 쉬었다.
그가 바깥을 향해 “다 갈아입었답니다!” 하고 고하자 누군가 입구를 열며 들어왔다.
영선이었다.
‘!’
“그럼 이제부터 나를 따라오거라. 너를 백가주께 데리고 갈 것이다.”
제 일그러진 얼굴을 알아보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영선의 목소리는 부드럽기만 했다.
‘이년과 바로 마주칠 줄이야. 어떡하지? 영단을 두고 가는 것도 불안한데, 차라리 그냥 이년이라도 끌고 달아날까?’
짧은 찰나에 서월이 많은 경우의 수를 되짚었으나 결국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이곳엔 신수가 있다.
소란을 피울 수는 없으니 영선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이들이 방심하고 있을 늦은 밤에 일을 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서월이 몸의 형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은 채 영선의 뒤를 따랐다.
뒤를 돌아 제가 나온 막사의 표지도 몇 번이나 곁눈으로 확인했다.
“이 막사에 계신단다. 들어가렴.”
서월을 데리고 멀지 않은 막사 앞으로 간 영선이 눈짓했다.
‘그래. 이것만 잘 통과하면 그다음엔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출 테니 그렇게만 되면 돼.’
침을 삼킨 서월이 다른 막사들보다 훨씬 큰 막사의 입구를 조심히 열었다.
막사 안엔 아무도 없었다.
“!!”
서월이 그대로 뒤도 돌지 않고 달아나려던 순간 무언가 그녀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콱!!
어깨에 칼이 꽂혀드는 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그녀의 팔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아아악!!”
서월이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영선이 이를 문 채 웃고 있었다.
“너인 줄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았어?”
서월은 반격하는 대신 바로 뒤를 돌았다.
당연히 저년은 찢어 죽이고 싶었으나 여기서는 위험했다.
하나 뒤를 돈 순간 잠시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막사에 달려 있던 표지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없었다.
진영의 입구에서부터 몇 번째 막사인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 그것을 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놓칠 것 같아?!”
영선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그녀가 찌르는 검날을 간신히 피하며 서월이 결국 다시 달렸다.
지금은 영단을 회수할 수 없다. 일단 몸을 피하고 뒷일을 도모해야 한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까.
이변을 느낀 듯 백가의 무사들이 검을 들고 일제히 달려 나오고 있었다.
서월의 황급한 시선이 진영을 훑다가 시종들이 모여 있는 막사를 발견하고 그쪽을 향해 달렸다.
솥을 발로 차 뒤집고 물건을 넘어뜨리며 간신히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허억허억.”
그때쯤 이미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영력이 거의 남지 않은 몸으로 이만큼 달려온 것마저 기적일 정도로.
그녀의 능력이 출중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무리였을 것이다.
그때였다.
“너 같은 쓰레기들의 특징을 내가 잘 알지.”
“!”
서월이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달빛이 내려앉는 평원의 한중간에서 누군가 그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건 고맙게도 벌레보다 끈질기다는 거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세화가 무언가를 입에 넣었다.
“!! 너!!”
그것은 제 영단이었다.
그들이 떠난 후 땅을 모두 뒤엎어 찾아내면 된다 생각했던 영단이 저년의 손에 있었다.
일그러진 서월의 얼굴을 보며 세화가 웃었다.
주가 영역을 떠나길 아쉬워했다고?
아니. 자신은 자매들을 노렸던 저 쓰레기를 기다린 것이다.
여기 하루 머무른다 해도 저 여자가 올지 오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화는 저 여자가 반드시 올 것 같았다.
하여 서월의 영력 또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빼앗기 위해 이런 일을 꾸몄다. 영단은 스스로가 빼내기 전엔 결코 빼낼 수 없으니.
“네 영력은 옳고 좋은 일의 기반이 될 테니.”
옆에 놓아둔 활을 들어 올린 세화가 시위를 당기며 다정하게 웃었다.
“넌 아쉬워하지 말고 먼저 죽어 버려.”
손을 놓았다.
탕!!
쐐애액―!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영력을 그득 담은 화살이 서월의 미간을 향해 곧장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