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254)

바닥을 짚어 제 몸을 지탱한 백기하가 갈증을 참지 못하고 결국 달려들었다.

사냥감을 낚아채듯 그녀의 목덜미를 입술로 물었다.

다디단 피부를 핥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온통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 이상의 감각이 있을 것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흐으…….”

옅은 신음이 또다시 흘러넘쳤다.

그는 더듬듯 그녀의 턱선을 타고 올라갔다.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은 더운 숨을 낱낱이 핥아먹었다.

가늘게 벌어진 입안을 파고들어 뜨겁게 젖어 있는 입안을 긁어내듯 문지르자, 질척이는 신음이 그 안에서 뒤섞였다.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온통 그녀와 뒤섞일 수 있도록.

하여 뒤로 숨으려 하는 붉은 혀를 찾아 꺼내어 제 것에 감고, 예민하고 민감한 곳을 거침없이 찔렀다.

등줄기가 긴장되며 서로의 몸이 팽팽히 당겨졌다.

질식할 듯 헐떡이면서도 조금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붉은 혀가 그간 얼마나 그의 시선을 사로잡아 왔던지.

그녀는 백가에서 늘 옷깃을 빈틈없이 세우고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가의 일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늘 차분하고 연한 색의 의복만을 고집했다.

하여 은은한 차림에, 오히려 이 붉은 혀와 입술이 더욱 눈에 띄었던 것이다.

냉랭한 표정 사이로 열이 오른듯한 혀의 존재를 의식할 때면. 빨간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자각하고 나면.

그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점잖지 못하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수치심과는 별개로.

그 못내 달콤해 보이는 붉은 속살을 볼 때마다 어디론가 그녀를 데려가고 싶어졌었으니까.

그만하라고 애원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은 채, 복숭아 향이 날 것 같은 입술을 오래도록 빨고 싶었었으니까.

그리하여 오래도록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순간. 그는 매끄러운 그녀의 피부 위를 쓸어내리며 뜨거운 입술을 한참이나 놓아주지 못하고 빨아들였다.

호흡이 부족해진 그녀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 때도 코끝으로 따라가 젖은 입가를 핥고 가녀린 턱선을 애무했다.

그 입술은 애처로운 목을 다시 따라 내려와, 그 자신이 자국을 낸 곳 위에 녹을 만큼 입을 맞췄다.

얇고 투명한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고동이 빨라질수록 그의 머릿속도 온통 눅눅해졌다.

탐욕스럽게 움직이는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만큼 그녀의 몸 곳곳을 미끄러졌다.

“읏……, 잠, 잠깐……”

세화의 눈앞도 하얗게 날아갔다.

그의 고개가 움직일 때마다 현기증이 일었다.

“흐읏……, 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감각들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의 손이 닿고 숨결이 흐르는 곳마다 척추를 자극하듯 예민해지며 온몸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결국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반쯤 몸을 일으킨 그가 제 옷을 벗어 내렸다.

형태가 뚜렷한 근육과 그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커다란 상체가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그의 체향이 몰려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어떤 감정들이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눈 안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간에 보여 준 다정한 애정과 전혀 다른 더 깊고 단단하고 점도 높은 감정들에 그녀의 목 안쪽도 바짝 건조해졌다.

그래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빨리 와요…….”

“!”

“어서요. 나도 당신을 갖고 싶으니까.”

그의 눈이 단번에 새까맣게 짙어졌다.

그녀의 하얀 다리를 열고 다가온 단단한 몸이 그녀를 틈 없이 끌어안았다.

“세화. 주세화.”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확고한 애정이 뒤섞인 이름이 마치 들려왔다.

저 이름이 자기 것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 안에서도 커다란 감정들이 격랑 쳤다.

빨리 이 남자를 가지고 싶어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도록.

머리가 아득할 정도의 소유욕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시작된 새하얀 바람이 동그랗게 몸을 감았다.

“세화!”

쿵!

거센 영력이 그의 몸을 강제로 밀어내며 타올랐다.

쩡! 챙!

좁은 천막 안을 날뛰는 영력이 결계에 부딪힐 때마다 마치 종이 울리듯 귀를 찢는 소음이 퍼져 나갔다.

혹여 바깥에서 상황을 알게 될까 염려해 한층 더 두텁게 결계를 강화한 그가 세화의 영력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 것을 쏟아부으려 할 때였다.

흉포한 바람은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나타났을 때처럼 갑작스레 자취를 감춰버렸다. 결계를 자극하던 영력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소동이 지나간 곳을 바라본 백기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

당황한 듯한 아기 백호 한 마리가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백호가 뭔가를 설명하듯 입을 열었다.

“…….”

“휴, 큐.”

“…….”

“큥…… 캉.”

그녀는 필사적이었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온통 엉망이었다.

아니, 이게 왜 일이 이렇게 되는 거지. 마치 내가 그와 몸을 맞대는 것이 싫어 도망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대 그렇지 않다고. 지금 상황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울상이 된 그녀가, 그럼에도 계속해서 입을 열며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흉. ……컁. 냐냐.”

“…….”

“냥냐.”

* * *

방 안엔 향이 타고 있었다.

창이 모두 활짝 열려 있음에도,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방 안을 뱀처럼 떠돌았다.

머무는 이의 코를 마비시키고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짙은 향이었다.

벽 주변에 시립한 시녀들에게서는 일체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진한 공포가 시녀들의 눈가에 떠올라 있었다.

방 주인은 그 모든 방 안의 정경을 지켜보며 느른한 모습으로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새빨갛게 칠한 입술이 열리자 딱딱한 목소리가 무감하게 흘러나왔다.

“그래서. 나보고 그분께 대신 청을 넣어 달라고?”

“앞으로 부인을 위해 뭐든 하겠습니다. 부인, 제발 부탁드립니다.”

꼬리가 긴 눈이 제 앞에 꿇어앉은 이를 훑는 동안, 서월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신호탄 불꽃에 눌어붙은 한쪽 얼굴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흉측하게 일그러지며 주변 피부를 끌어당겼다.

백가 재상에게 영력이 담긴 화살을 맞았던 어깨 역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인.”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으로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녹록지 않을 텐데.

신영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몸을 바꾸며 삶을 늘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만은 안 돼!’

그런 미래를 떠올리는 서월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러다 보면.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꾸준히 영력을 취하다 보면 자신도 신수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 기회마저 잃은 채 이대로 남은 시간을 비참하게 살 수는 없어!’

서월이 찾아온 것은 신영의 첩으로 알려진 여덟 명의 부인 중 칠부인이었다.

다른 부인들은 다 제 몸을 바꾸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 절대로 서월을 위해 나서 주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다지 몸을 바꾸는 데 열의가 없는 이 칠부인을 찾아온 것이다.

다른 부인들이 안색만 조금 어두워져도 곧장 몸을 바꾸는 것과 달리 칠부인은 제법 세월을 삼킨듯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풋풋한 육신을 가진 다른 부인들보다 훨씬 요염하고 육감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저 몸이라도 내게 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쓰다 버리는 몸이라도 상관없는데.

이런 다 망가진 얼굴과 몸만 아니라면 어떤 몸이라도 개의치 않을 텐데.

하나 서월이 필사적으로 청을 올리는 중에도 무감각한 시선은 창가로 열없이 옮겨갈 뿐이었다.

활짝 열어 둔 커다란 창밖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엿보였다.

그 푸르기만 한 바깥의 정경을 가만히 주시하던 부인이 제 옆의 시녀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비가 온 게 언제였지?”

“비 말씀이십니까. 계절이 바뀌기 전 내렸던 부슬비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렇구나.”

“왜 그러십니까. 비가 오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건물 지붕에 물을 흘리게 할까요.”

“아니다. 되었다.”

그 대화 사이를 서월이 끼어들었다.

“부인.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가거라.”

“부인!”

“네 그 부탁하는 태도가 글렀다. 날 위해 뭐든 하겠다고 해도, 이미 그런 꼴이 된 네가 무얼 할 수 있는데.”

여인의 싸늘한 시선이 노예처럼 꿇어앉아 머리를 숙인 서월의 면면을 훑었다.

“뭐라도 가져와서 빌었어야지. 앞으로 뭐든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이 있으신지 말씀해 달라고, 당장 구해 오겠다고 해야지.”

마치 아이에게 시작부터 가르치듯 다감한 억양이었다.

하지만 온기라고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아서일까.

목소리를 듣고 있기만 해도 살갗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기어가는 듯 소름이 돋았다.

서월의 목으로 마른침이 조심히 넘어갔다.

“뭐든 구해 오겠습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

“부인. 부탁드립니다.”

흐음.

“그 아이.”

“예?”

“신영이 적룡의 영단을 내어 주었던 아이를 그분께서 찾고 계시다 했지?”

“그 아이? 아, 예. 허나 그 귀물은 제가 이번에 탈환해왔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그 시녀들을 데려오련?”

“예? 시녀들이라면 어떤…….”

“그런 것조차 이리 세세히 알려줘야 하나.”

작게 혀를 찬 부인이 마지못한 듯 목소리를 냈다.

“어깨를 그토록 여러 번 칼에 뚫리고도 전혀 널 놓지 않았다던 그 시녀들 있잖니.”

잘 관리된 손톱을 살피던 여자가 허공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아이들을 데려와 보련? 그럼 네 복수도 이루고. 내게 보상도 받고. 시녀들을 되찾으러 주인께서 찾으시는 아이가 제발로 이곳으로 올수도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니.”

여자의 말투는 차갑기만 해 약속을 지킬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월은 조금의 희망을 얻었다.

사실 이 여자가 아니고서야 제가 몸을 바꿀 가능성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일어선 서월의 얼굴 위로 열린 창을 넘어온 햇빛이 내려앉았다.

잔뜩 쭈그러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시녀들조차 거북한 듯이 시선을 내려 피했다.

그 표정들이 굴욕적으로 느껴진 서월이 입술 안으로 혀를 씹으며 분노를 지워 냈다.

망설임 없이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방을 나갔다.

탕.

문이 닫히자 여인의 느긋한 시선이 다시금 열린 창을 넘어갔다.

‘원하는 걸 빨리 줘야 해.’

하지만 편안해보이는 표정과는 반대로 여인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이 재앙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도록.’

푸르기만 한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 저 안쪽에 담긴 두려움을 알아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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