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254)

퍽!! 퍼억!

둔탁한 소리가 끝도 없이 울렸다.

그때마다 주경현의 얼굴 위로, 몸 위로 격통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 컥! 헉!”

언제 이런 지옥 같은 일을 겪어보았겠는가. 그것도 주가의 소가주가.

“…….”

어느 순간인가부터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입안은 죄 터진 듯했고, 머리라도 가리고 싶었으나 두 손이 뒤로 틀어잡혀 있으니 뭔가를 막아낼 수도 없었다.

‘죽여 버릴……. 꼭 죽여서…….’

이를 갈던 주경현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음조차 바뀌었다.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해 달라고.

노예처럼 엎드려 빌기라도 하고 싶었으나, 달리 보는 눈이 있을까 봐 그것만은 차마 하지 못했다.

제 행동에 너그러운 아버지였으나 그가 백기하에게 빌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저를 죽이실지도 몰랐다.

‘……제발. 대체 언제까지.’

지옥 같은 고통을 견뎌 내지 못한 주경현이 결국 포대 안에서 눈물을 쏟았다.

어느새 엉엉 울며 제가 살려 달라고 빌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 * *

“덫을 놓는 일이 끝나도 그대로 대기하다가 만일의 상황이 생기면 소가주를 지원하라.”

다섯 복면인들이 사냥터 전역에 걸쳐 덫과 함께 뿌려 둔 약은 오직 세화만을 노린 것이었다.

소가주와 호위들에겐 미리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해독제를 복용시켜 두었다.

아들은 아직 어려 입단속을 못 할 때가 많다고.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몰래 일을 처리하라고 신영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소가주의 일행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숨죽여 움직였다.

그렇게 원로의 여식이 덫에 걸려들 때를 기다리며 신영의 명에 따라 대기하던 중이었다.

숨죽인 채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백가의 결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가? 백가의 결계라고?’

뜬금없는 상황에 방황하는 시선을 한 그들의 신형이 단번에 앞으로 튕겨 나갔다.

거세게 달려가는 그들의 뒤로 수목들이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하나 그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백가의 결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이상한 검은 포대를 뒤집어쓴 누군가만이 수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맙소사!”

“소가주님!”

그가 입은 의복을 알아본 복면인들이 서둘러 다가가 포대를 벗겨냈다.

“!!”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벗겨진 포대 안에서 드러난 소가주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안팎으로 피가 터져 부풀어 올라 알아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던데다가, 얼마나 굴렀는지 눈물과 함께 끈적한 콧물이 온 얼굴에 범벅이었다.

평소의 수려한 소가주를 조금도 떠올릴 수 없는 추한 모습에 당황한 복면인들이 일단 제 옷을 찢어 그의 얼굴을 뒤덮은 콧물들을 닦아 냈다.

비상시를 위해 가지고 다니는 환계의 약을 서둘러 꺼내 아끼지 않고 소가주의 얼굴에 쏟아부었다.

옷을 들춰 보니 복부에도 커다란 피멍이 생기고 있어, 의식을 잃은 소가주의 입술 사이로도 연신 약을 흘려 넣었다.

다행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상처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듯 보이던 소가주의 눈꺼풀도 조금씩 떨려 왔다.

시야가 완전히 잡히지는 않는 듯했지만 깨어나려는 그 모습에 복면인들이 안도할 때였다.

빠르게 멀어지는 이질적인 영력이 그들의 기감에 잡혀 들었다.

‘뭐지? 주세화와 시녀들의 것인가? 하나 그러기엔 영력이 너무 약한데?’

‘아니면 소가주를 이렇게 만든 범인인가?’

“소가주님!”

“어디 계십니까. 소가주님!”

그 순간 크게 소리치지 못하는 억눌린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리며 가까워졌다.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한 복면인 중 하나가 곁에 있는 나무를 걷어찼다.

쿵! 하는 소리가 나자 방향을 특정 짓지 못하던 호위들의 기척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호위들이 소가주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 만한 거리가 되자마자, 복면인들은 조금 전 그 이질적인 영력을 따라 쏘아져 나갔다.

그들이 땅을 박차고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호위가 시간차를 두고 도착했다.

소가주를 본래부터 가까이에서 모시던 천령이 혼절한 그를 보고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소가주님! 소가주님, 정신을 차려 보십시오. 소가주님!”

치료가 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지 못한 호위들은 부랴부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약까지 꺼내 주경현의 입에 부어 넣었다.

혼몽한 의식 속을 헤매고 있던 주경현의 눈꺼풀이 천천히 껌뻑이며 열렸다.

“으…….”

얇은 입술 사이로 신음이 길게 새어 나왔다.

그가 천천히 손으로 땅을 짚어가며 몸을 일으키자 호위가 급히 다가와 그의 몸을 부축했다.

“소가주님, 저 천령입니다. 어찌 되신 겁니까.”

“너흰…… 너희. 언제 돌아온 것이냐. 나를 공격한 놈들을 보았느냐?”

“공격당하신 겁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곁을 떠나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흰 적들을 보진 못하였고 백가의 결계가 이 주변에 펼쳐지는 기척을 느끼고 서둘러 돌아온 것입니다.”

“백가의 결계?!”

주경현의 시선이 번뜩였다.

“백가. 백가가 맞는 것이지?! 백가였지?”

“네. 분명 백가의 결계였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해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그년들은, 그년들은 어떻게 됐느냐. 잡았느냐?”

어두운 얼굴을 한 호위들이 입을 열지 못하자 주경현이 벌컥 역정을 냈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신영의 무사냐?! 고작 이제 막 탈피한 계집애 하나와 허드렛일이나 하던 시녀 셋을 못 잡아?!”

“하지만…….”

그들도 조금 전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앞서 달리는 이를 부지런히 따라잡아 가까워지는 듯했건만.

이제 잡을 수 있겠다 할 때마다 갑작스레 목표물의 기척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마치 지금껏 쫓아온 것이 허상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상태에서 백가의 영력까지 느껴지자 뭔가 일이 생겼다고 판단해 이리로 달려온 것이었고.

“빨리 그년들을 다시 찾아! 세화 그것이 백가와 내통한 것이 분명하다. 그년을 찾으면 날 공격한 백가 일당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찾아! 어서!”

소가주의 재촉에 천령이 그의 앞에 등을 들이댔다.

“영력을 써야 하니 업히시지요.”

굴욕적이긴 했으나 여기 홀로 남았다가 또 좀 전과 같은 일을 당할 순 없지 않은가.

주경현이 천령의 등에 냉큼 매달렸다.

천령을 위시한 호위들이 빠른 속도로 주세화를 찾아 달려나갔다.

* * *

그 시간, 소가주를 공격한 이를 쫓고 있던 복면인들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마치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분명 이곳에서 영력을 느꼈다 싶어 가 보면 없고. 저곳에서 영력을 느꼈다 싶어 서둘러 달려가 보면 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지?

이렇듯 농락당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의 실력이 월등하기 때문인 듯했다.

그러다 보니 복면인 중 하나가 그들만이 사용하는 수화로 흩어지자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들도 영력의 기운을 감추는 훈련을 받았고, 거의 완벽에 가깝게 기척을 없앨 수 있었다.

하나 이런 인원수가 모여 있다 보면 작은 영력의 파동이라도 생길 수 있을 테니 그것마저도 없애 보자는 것이었다.

[모두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영력이 느껴지면 그곳에서 모여.]

다섯 명의 복면인들이 숨죽인 채 제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중 한 복면인이 사라진 영력의 흔적을 찾아 빠르게 내달렸다.

사력을 다해 제 기척을 줄이고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었다.

한데 그때였다.

퍽!

“!!”

어디선가 날아온, 쇠구슬이 달린 화살이 그의 관자놀이를 거세게 강타하고 지나갔다.

일순간 휘청거린 복면인이 곁의 나무를 잡아 몸을 지탱했다.

그가 동료에게 신호를 보내려던 찰나 일제히 날아온 세 발의 화살이 다시 한번 그의 이마와 명치, 급소를 정확히 후려쳤다.

“……!!!”

신음도 내지 못한 그가 땅으로 고꾸라졌다.

땅 위를 기며 고통을 견디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갑자기, 등 뒤에서 영력의 기운이 생겨났다.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그건 정말 갑자기 생겨난 것 같았다.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콰직!!

“!!”

강한 힘으로 입안에 복면과 함께 쑤셔 박힌 돌이 복면인의 이를 온통 부러뜨렸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복면인의 고개가 한순간에 뒤로 꺾였다.

기절한 그의 목덜미를 영력의 주인이 잡아챘다.

그대로 질질 끌고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다른 쪽으로 날아간 복면인 역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완전히 기척도 없이 사라져 버린 영력의 기척을 찾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자신들도 오랜 훈련을 거쳐 영력의 기운을 잠재우는 법을 익히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자는 대체 무슨 훈련을 한 걸까. 어떻게 하면 이렇듯 완전히 기척이 지워지지?

‘설마 백기하가 직접 숨어들기라도 한 건가?’

어쩐지 두려워진 그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주변은 온통 고요하기만 할 뿐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한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조용하지?

“……맙소사.”

‘! 결계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그의 시야로 뛰어 들어왔다.

빠르게 앞으로 내달리는 그것은 타오르듯 번져가는 불꽃 같은 영력을 온몸에 휘감고 있었다.

어, 하고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다.

콰앙!!

강한 충격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한 마디 신음도 내뱉지 못한 복면인이 눈을 까뒤집으며 무너져 내렸다.

의식이 날아간 그 몸을 짓밟으며 누군가 발로 몸을 뒤집었다.

복면을 벗겨 내어 얼굴을 확인했다.

“……너였구나.”

세화가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신영의 무사들은 고스란히 처형장에서 마주했으니 이자도 분명 그 처형장에서의 한 명이겠거니 했건만.

“그러게 우리가 약을 쓰고 고문을 하는 동안 얌전히 죽었으면 좋았잖아. 명이 왜 이리 질겨서 우릴 힘들게 해. 어?”

“걸어! 가족들의 마지막도 지켜보지 못하도록 다리를 잘라 버리기 전에.”

“이 쌍년이! 귀가 먹었어?!”

그녀에게 갖가지 약을 실험하며 고문하고. 처형장에서 나갈 때는 머리채를 한 손에 휘어 감고 마치 개를 끌 듯 질질 끌고 나갔던 그 호위가 아니던가.

“아가씨.”

그 순간 그녀를 부르며 세 자매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모두 검은 복면인을 하나씩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화가 그들의 몸을 뒤져 무수한 약병들을 꺼내 들었다.

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자 과거의 기억이 물씬 덮쳐들었다.

감옥에서 이것들을 강제로 마시거나 흡입한 뒤 영력을 잃고 환각을 보기도 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그중 세 가지 약을 고른 그녀가 나머지를 소매에 챙겨 넣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다섯 명의 몸 위로 세 가지 약을 거침없이 뿌렸다.

“하하. 이년 꼴이 볼 만하네. 환각이 잘 먹히나 본데. 가족들까지 죄 이곳에 처넣고 약을 먹여 서로 죽고 죽이게 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자, 그럼 너희는 검을 얼마나 잘 쓰는지 한번 볼까? 너희가 서로 죽고 죽이는 꼴을 봐야지, 내가.”

섬뜩할 만큼 날카롭던 그녀의 시선과 입꼬리가 잠시간 비릿하게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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