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몸속에서부터 피어오른 열기는 그녀의 살을 완전히 태워 버렸다.
새까맣게 변한 피부가 뱀의 비늘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커헝―!
백호는 이미 사라졌건만 짐승의 울음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비늘처럼 갈라졌던 검은 딱지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흡, 읏!’
마치 생살을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딱지들이 떨어져 나간 곳에선 물결치는 새하얀 비늘이 엿보였다.
……새하얀.
너무 기가 막혀서 세화는 눈을 감아 버렸다.
‘미…… 친. 주가는 적룡의 핏줄이고, 천가는 황동 사슴의 핏줄인데. 새하얀 비늘이라니.’
이런 본신을 드러냈다간 분명 핏줄이 뒤바뀌었네, 부모가 부정을 저질렀네, 난리가 날 것이다.
‘여, 영력의 색깔은 뭔데.’
지닌 영력의 속성에 따라 기운의 색이 정해진다.
그녀는 천가의 황동색과 주가의 붉은색이 섞인 덕에 불꽃 같은 빛깔의 영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지독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애써 눈을 뜬 세화가 제 피부가 탈각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비늘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그 비늘 위로 너울대는 영력들이 고였다가 사라졌다.
‘보……!’
보라색 영력이었다.
‘……보라색이라니. 이건 또 어디서 나온 색이야. 아 설마!’
영목 아래에 옹기종기 파묻혀 있던 고시대의 영단.
아무래도 그녀의 탈피를 예고도 없이 앞당긴 원흉인 듯한 그 영단들이 바로 장가, 푸른 거북이의 영단이었던 듯했다.
‘…….’
적룡의 핏줄을 이은 주제에 비늘은 하얗고 영력은 보라색이라고?
‘하하.’
세화는 도무지 제 탈피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또다시 비늘이 벗겨지며 지독한 고통이 찾아왔다.
이를 악물고 그 격통을 참아 낸 세화가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제 비늘들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진, 짜…… 개판이네. 큰일 났네. 이걸 어쩌지.’
한 번도 제 탈피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녀가 암담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 * *
주명윤과 두 아들들, 그리고 백기하는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주명윤이 두 아들들과 말을 갈아타기 위해 초소에 잠시 들르려 할 때였다.
두두두두두!
우레 같은 편자 소리를 내며 백기하가 그들을 그대로 지나쳤다.
전마를 타고 여기까지 오더니 이대로 말을 바꾸지 않고 곧장 목적지까지 달려갈 셈인 듯했다.
“백가주!”
“너희들은 말을 교환해! 내가 먼저 달려갈 테니 중간에 나와 바꿔 주어라!”
“알겠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아버지!”
“저희도 곧장 뒤따라가겠습니다!”
아들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명윤 역시 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내달렸다.
주가의 명마들도 어디서 빠지는 종자들이 아닌데 백가주의 말은 대체 무슨 혈통을 지닌 것인지, 잠시 지체한 사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세화야.’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보호자의 도움도 없이 이틀이나 탈피를 겪고 있으니.
그 작고 여린 딸이 대체 얼마만큼 힘들고 지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백기하를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달려갈 때였다.
맞은편 길 끝에서 달려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소가주님!”
그들을 발견한 주명윤이 급히 멈춰 섰다.
주경현도 그런 그를 응시하며 천천히 호위들과 함께 속도를 줄였다.
“뭐야. 어딜 가는 길이지?”
“소가주님. 이 길로 쭉 달려오신 겁니까?”
“그래.”
“그럼 혹시 제 딸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
“딸이 길에서 보호자도 없이 탈피하고 있다고 하던데. 지나쳐 오신 거라면 혹 소가주님께서 딸의 탈피를 도와주셨을까 해서 여쭤봅니다.”
“난 아무도 못 보았는데.”
“아무도, 말입니까?”
주명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가주도 방금 이 길로 지나갔는데 그조차 못 보았다고?’
“어쨌건 탈피를 한다니 축하하네. 그럼 이만.”
“예?”
그 말을 끝으로 주경현이 쌀쌀맞게 마편을 휘둘렀다.
“이랴!”
“…….”
멀어지는 소가주의 등 뒤로 황망한 시선이 잠시 따라갔다.
‘……당신 대신 백가로 가야 하는 내 딸이 지금 길바닥에서 홀로 탈피를 하고 있다는데. 한마디 염려도 없이 저런 태도라고?’
노장의 커다란 손이 고삐를 있는 힘껏 틀어쥐었다.
‘……아냐, 됐어.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소가주의 냉랭함에 얼굴을 단단히 굳혔던 주명윤이 다시금 말을 출발시켰다.
마편이 그의 옆을 바쁘게 오갔다. 아무리 속도를 내도 느린 것만 같았다.
* * *
전마를 재촉하는 백기하의 얼굴은 무섭도록 굳어 있었다.
단단히 이를 악문 그의 마음을 아는지, 그를 태운 전마가 거침없이 길을 내달렸다.
탈피하지 못한 그녀의 몸엔 그의 영력이 함께 들어 있었다.
혹 그 때문에 미처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그녀의 성장을 망쳐 놓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어떡하지?’
그 생각에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생에 그녀가 탈피를 한 건 백가에 오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었기에 아직 시간이 있다고 여겼다.
탈피를 하더라도 제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때에 할 거라고.
한데 이렇게 빨리, 또 갑작스럽게 탈피를 시작했다니.
길 위에서 쓰러졌다는 말만 들어 보아도 전조 증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확실했다.
‘이대론 너무 늦겠어!’
이를 악문 그의 턱 근육이 단단히 굳어졌다.
건장한 몸 주변으로 새하얀 영력이 너울치며 동시에 새파랗게 변한 그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어느새 그는 말 등을 박차고 뛰어오르고 있었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몸이 부풀어 오르며 모습을 바꾸었다.
거장의 작품 같은 완벽한 비율의 근육들이 남자의 거친 호흡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핏줄이 선명한 남성의 손이,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는 짐승의 앞발로 변했다.
지독히도 선명한 검은 줄무늬가 드러나고 은빛 털이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타악!
이윽고 땅으로 내려앉은 것은 커다란 나무를 관목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대한 백호였다.
사나운 시선으로 그르렁거리며 정면을 쏘아본 짐승이 땅을 박찼다.
“커허어어엉―!”
짐승이 향한 곳은 너르게 다져진 길이 아니라 주변의 산을 일직선으로 통과하는 지름길이었다.
매끄러운 근육을 그대로 드러낸 백호가 땅을 박차며, 날아오르듯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짧게 솟은 털들이 하나하나가 유기체처럼 짐승의 움직임을 따라 출렁였다.
앞을 가로막는 날카로운 가지들을 몸으로 밀어내면서도 짐승의 몸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의 몸 주변에 떠 있는 작은 바람의 소용돌이들이 나뭇가지들을 먼저 잘라낸 탓이었다.
허공을 향해 크게 입을 벌린 백호가 다시 한번 소리를 내질렀다.
“―――!”
짐승의 발밑부터 눈꽃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주변의 모든 것이 얼음으로 뒤덮힌 것과 동시에, 짐승의 몸이 폭발하듯 지금까지보다 더욱 빠르게 앞으로 질주했다.
* * *
“…….”
영선은 입을 막은 채 천막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숨도 쉬지 못한 채 지켜보았다.
세심하게 제작된 가마는 아가씨의 주변을 맴도는 영력에 의해 벌써 타 버린 듯 재가 된 지 오래였다.
반 궤짝을 쏟아부었던 영단들 역시도 마치 물에 녹듯 영력과 뒤섞이며 사라져 버렸다.
‘이, 이게 뭐지.’
용족은 모든 환족들 중에서 가장 기질이 강하다. 때문에 다른 어떤 피가 섞인다 한들 용족의 탈피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건만.
지금 제 눈앞에선 일반적인 주씨들의 탈피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발끝까지 길어진 아가씨의 검은 머리카락은 끝부분부터 마치 불길이 솟아오르듯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그것과 반대로 아가씨의 가슴 쪽엔 커다란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투명한 푸른 영력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또 하얗고 날카로운 회오리가 아가씨의 발밑에서 소용돌이 모양을 그렸다.
‘영력이 세 가지라니…….’
마른침을 삼키던 영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지. 보통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두 가지 영력을 가지게 되니까 그럼 아가씨께선 총 네 가지 영력을 가지신 건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