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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133/141)

133화

“어서 오세요, 키리아 님.”

키리아는 자신의 요청대로 곧바로 신전 내 유리온실로 안내되었다.

안내를 맡은 신관이 온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전달해주신 메두사꽃들을 이곳에 옮겨 심었습니다. 물론 마기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다행이네요. 좋아요.”

키리아는 흡족하게 대답하며 제논과 함께 온실로 들어섰다.

특수 제작된 유리관 안에 개량 메두사꽃과 오리지널 메두사꽃이 나뉘어져 관리되고 있었다. 덕분에 온실 안 공기는 쾌적했다.

하지만 키리아는 단순히 이걸 구경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그게…. 면구스럽게도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이 없습니다. 연구 방향조차 여러 가지를 두고 논의 단계에 있습니다.”

키리아는 걱정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현재 마계의 문은 신전에서 붙잡아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본래 북부로 돌아가야 할 대신녀도 이곳, 제도 중앙 신전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일전에 대신녀가 말했다시피, 아직까지는 임시조치일 뿐이었다.

“문의 임시 봉쇄와 이동 제한에 소모되는 신성력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신관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교대를 한다고 해도 이대로는 신관들의 신성력이 먼저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일단은, 봉인보다 마계의 문을 붙잡아두는 마법진을 우선 연구하고 있습니다.”

신관이 메두사 꽃들을 바라봤다.

“이 마계의 꽃들을 여기에 둔 것도 그런 이유죠.”

“확실히…, 마계의 문은 강한 마기에 이끌리는 것 같으니까요.”

이때 제논이 고개를 저었다.

“메두사꽃이 강한 마기를 지니긴 했지만, 마물 역시 마기를 발산하는 존재다. 이런 조치로는 마계의 문이 언제 북부로 이동되어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공작님, 지금으로선 뾰족한 방법이 달리 없습니다.”

신관이 미약하게 항변했다.

“어쨌든 마물보다 강한 마기를 지닌 것이 이 꽃들이니까요. 휴, 저희도 고민입니다. 이동 제한 마법진이 메두사꽃의 역할도 해주면 좋을 텐데.”

“어? 그거 좋은데요?”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키리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동 제한 마법진이 마기를 띠면 효과가 더욱 좋겠네요! 강한 마기에 마계의 문이 스스로 고정될 테니까요.”

“예?”

당황하던 신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하하 웃었다.

“전 그저 농담이었습니다. 어떻게 신성마법진이 마기를 띨 수가 있겠습니까? 두 상극이 충돌할 텐데요.”

“음…. 신성마법은 고대의 문자로 발현하는 거잖아요?”

키리아의 말에 제논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내 몸에 새겨진 봉인 마법도 고대의 문자로 적힌 것이죠.”

신성 마법의 근간은 고대의 문자였다.

고대 문자로 어떤 명령어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졌다.

위력을 결정짓는 건 신성력이었고.

“문자의 존재만으로도 기본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마기가 조금쯤 깃들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마기를…, 깃들게 한다고요? 하지만 충돌이….”

“처음부터 두 가지 힘으로 구성하려 하면 충돌하겠지만, 마법진을 중독시켜 보면요?”

좋은 생각이지 않느냐는 듯 키리아가 밝게 말했다.

“여기 공작님도 그렇잖아요? 본래 신성력 빵빵한 성기사단장이었는데 지금은 마기에 중독되어서 마왕의 힘도 지니고 계시잖아요. 그런다고 신성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마족에게 검으로 찔리기 전까지만 해도 제논의 봉인 마법진은 기능하고 있었다.

‘비록 불완전하긴 했지만 말이지. 그러니 보완하면 가능성 있지 않을까?’

설명하던 키리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는 신관을 보고는 머쓱해졌다.

“…그냥 뭐 의견일 뿐이에요.”

너무 막 말했나?

키리아는 신성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마법진이나 마법의 발동 원리도 그렇고.

그저 무심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입해 생각한 것이라, 상당히 거친 아이디어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른바 초보니까 할 수 있는 색다른 접근법이었다.

신관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키리아를 달래듯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확실히 재밌는 아이디어입니다. 마법진을 중독시킨다니.”

그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키리아 님의 의견은 감사합니다만….”

“아, 아뇨. 괜찮아요.”

직접 실험을 해본 것이 아니었기에 키리아도 밀어붙일 수 없었다.

신관이 생긋 웃으며 온실 출입구 쪽으로 안내했다.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대신녀님과 나눠보심이 어떨까요? 지금쯤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좋아요.”

키리아는 신관과 제논을 따라 온실을 되돌아갔다.

유리관에 있는 메두사 꽃들을 눈으로 훑으며 걸었다.

그러다 유리관 바깥에 심어져있는 작은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온실에 본래 있던 꽃들은 메두사꽃 때문에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고 들었는데.

‘미처 옮겨지지 못한 꽃인가? 메두사꽃은 아닌 거 같은데…. 크기가 작아서 신관들이 발견을 못 했나봐.’

앞서 가는 신관을 부르려던 키리아는 멈칫했다.

혼자 유리관을 피해 있는 그 꽃의 생김새가 어딘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꽃잎에 보라색 반점…?’

어라, 이거.

‘예전에 숲지기가 나한테 보내줬던 꽃 아니야?’

향을 맡자마자 현실감 넘치는 미래를 보여줬던 바로 그 꽃!

기억해낸 키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서 가까이 들여다보느라 숙였던 몸을 얼른 일으켰는데,

“늦었….”

핑글, 세상이 돌았다.

풀썩!

갑작스러운 소리에 제논이 뒤를 돌아봤다가 흠칫 놀랐다.

“키리아!”

제논이 쓰러진 키리아를 안고 가볍게 흔들었다.

“키리아. 키리아?”

키리아는 마치 잠을 자듯 평온한 얼굴로 색색 숨을 내쉬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했던 제논의 표정에 일말의 안도가 깃들었다.

하지만 키리아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º º º

키리아의 힘 빠진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있던 대신녀가 마침내 눈을 떴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리온이 마이언보다 먼저 물었다.

“대신녀님, 우리 누나…. 어떻게 된 거예요?”

“…역시, 일전에 말씀드린 것이 맞는 거 같군요.”

대신녀가 리안에 이어 불안이 가득한 마이언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키리아 양의 몸에서 영혼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그럼! 그럼 키리아가 죽었다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데!”

말해놓고서도 불안했는지 마이언은 키리아의 코 밑에 손을 살며시 대어 보았다.

과연, 키리아는 새근새근 약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신녀의 눈썹이 축 늘어졌다.

“가사상태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만약 이대로 영혼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탕!

마이언이 침대 옆 협탁을 두꺼운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대신녀의 말을 끊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신전에서 내 딸을 이런 꼴로 만들어놓고, 대신녀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이 고작 그런 겁니까!”

“…죄송해요.”

“아버지….”

리안이 마이언을 만류하기 위해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마이언의 콧수염이 분노에 차 씰룩거렸다. 지금만큼은 눈앞의 대신녀에 대한 예우를 전혀 차리고 싶지 않았다.

이때였다.

바닥에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곧 빛과 함께 마탑주 셜론이 나타났다.

제논도 함께였다.

“공작 형아…!”

리안이 안도한 얼굴로 달려가 제논의 품에 안겼다.

제논을 걱정했던 리안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제논은 삼일 밤낮을 키리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잠든 키리아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흡사 광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대신녀의 얘기를 듣고 셜론과 함께 곧장 마탑으로 갔다.

키리아를 잠들게 만든 꽃과 유체이탈에 대해 조사해보기 위해서였다.

공작님까지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리안은 그가 무사히 돌아오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키리아는.”

“잘 있어요…, 아직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래.”

제논은 눈 밑이 까만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리안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이언이 두 사람을 간절히 바라봤다.

“뭔가 알아낸 게 있으십니까?”

“쉽진 않았지만, 다행히 란페르세 공작이 그 꽃에 대한 정보를 문헌에서 찾아냈소.”

“……!”

마이언과 리안, 대신녀가 일제히 눈을 크게 떴다.

그동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답답했던 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들어찼다.

“뭘 알아내셨습니까?”

“그 꽃은 메두사꽃처럼 마계의 속성을 갖고 있소. 하지만 조금 더 특수하지.”

“특수…?”

“일명 망각의 꽃.”

마이언과 달리 어두운 낯빛으로 셜론이 말을 이었다.

“마계와 인간계의 틈새, 즉 저승에서 피는 꽃이오.”

“뭐요…?”

예상치 못한 정보에 마이언이 멍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저승에서 피는 꽃이라면 키리아의 영혼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귀가 맞는 것 같았다.

문제는,

“…저승의 꽃이 왜 신전에 있었단 말입니까. 예? 왜 하필 키리아가 그걸 발견했어야 합니까?”

마이언의 말에 점차 분노가 차올랐지만 아무도 진정하라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이때 제논이 누구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역시 망각의 꽃을 키리아에게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키리아가 쓰러진 후 리안에게 해당 꽃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제논이었다.

“꽃을 받은 키리아는 쓰러진 후 갑자기 북부행을 결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우연히 보낸 꽃으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마이언보다 더한 분노를 꽉 억누르고 있었다.

“그때도, 그리고 이번에도 누군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키, 키리아를 누가 일부러 노렸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대체 누가!”

마이언이 소리쳤다.

잠시 입을 다문 제논은 잠든 키리아의 동그란 이마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리운 애틋함이 담긴 손길.

“그걸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키리아를 데려오기 위해….”

하지만 시선만은 키리아를 노린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직접 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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