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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123/141)

123화

제논은 가차 없었다.

성기사단장으로 복직한 그는 종종 성기사들을 지도하곤 했다.

그래서 이 불량배 같은 기사들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아무리 키리아의 친동생이라 해도 말이다.

“아니, 그녀의 동생이기에 더더욱.”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야!”

네 명의 용병들이 검을 빼들고 제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제논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가뿐하게 발을 움직이며 자신에게 집중되는 검들을 물처럼 흘려보냈다.

그러며 용병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눈에 흙을 눈에 집어넣듯 뿌렸다.

“크억!”

“저 미친놈이 자꾸 흙을 먹여!?”

눈에 흙이 들어간 용병들이 차례차례 제 눈을 감싸며 비틀거렸다.

제논은 주춤한 용병들의 오금을 가볍게 발로 툭툭 쳤다.

차례차례 용병들이 무릎을 꿇으며 넘어졌다.

“커헉!”

“으억!”

결국 네 명이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제논이 담담하게 말했다.

“경이 운운하는 기사도에 대해서 다시 고심해보는 게 좋을 거야.”

“제길, 이러고도 무사히 넘어갈 것 같아!?”

“우리 형제들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움찔.

키리아를 떠올린 제논은 난감해졌다.

행동에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키리아의 동생과 사이가 틀어지고 싶진 않았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키리아의 동생 리안 경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제논에게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제논은 한쪽 무릎을 꿇고 용병들과 눈높이를 맞춰 앉았다.

그리고 눈가의 흙을 다정하게 털어주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난 경을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잘 보이고 싶어.”

“뭐, 뭐?”

“어쩌면 우린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나. 경이 날 가족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

“……?!”

용병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 새끼, 변태 아니야?

용병들의 반응에 제논은 뒤늦게 아주 조금 미안해졌다. 눈에 흙을 너무 많이 넣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너는 괜찮나?”

제논은 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멈칫했다.

한쪽에 물러나 있던 리안은 모자를 벗고 있었다.

새침한 보랏빛 눈과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먀먀?”

알비가 순간적으로 키리아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닮은 외모.

누가 봐도 키리아의 친동생이었다.

“…리안… 클로버필드?”

“네! 란페르세 공작님 맞으시죠? 제가 리안이에요.”

리안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순간 말문이 막힌 제논.

대화를 들은 용병들의 표정에 낭패감이 서렸다.

“고, 공작님이셨습니까?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가족이요, 물론입니다. 공작님! 저희의 가족이 되어주십쇼!”

“다물어라.”

제논은 흙을 한 움큼 쥐어 용병들의 눈에 또 쑤셔넣었다.

“크허어억!”

고통스럽게 뒹구는 용병들.

“내가 여기 머무르는 동안 숨죽이는 게 좋을 거다.”

손을 툭툭 털며 일어난 제논이 리안에게 어색하게 말했다.

“음… 일단… 자리를 옮기지.”

“네!”

끄덕끄덕!

리안은 꿈에서나 보던 멋지고 여유로운 고수의 움직임을 보여준 제논에게 눈을 빛냈다.

아이다운 동경이 너무나 빛나서, 이 순간 누나를 노리는 불한당이란 생각은 잠시 잊혀져 버렸다.

사실 인마전쟁의 영웅인 란페르세 공작은 전부터 리안이 동경하던 인물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의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리안은 꼭 한 번 그와 만나고 싶었다. 사인도 받고 악수도 하고 싶었다.

리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 무서워서 아직도 다리가 떨려요.”

리안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게 떠는 손을 쭉 내밀었다.

“그러니까 손잡아주세요.”

“…….”

“네에? 형아.”

사르르 능숙하게 웃는 리안.

갑작스런 애교에 제논은 말문이 막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리안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함께 걸음을 옮기면서, 제논은 리안의 정수리를 힐끔 내려다봤다.

정수리 가마까지 키리아와 닮았다.

‘…미치겠군.’

작은 키리아 같아서 너무 귀엽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의 벽을 부수고 싶었다.

제논의 귓불이 붉어졌다.

“…먀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알비.

제논의 어깨에 있던 알비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신문이 들어왔다.

키리아의 삽화가 있어서 알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먀야!”

알비가 포르륵 날아가려 하자 제논이 재빠르게 잡아챘다.

“얌전히 있어. 여긴 공작령이 아니다.”

“부우….”

볼을 빵빵하게 불린 알비를 두고 제논은 바닥의 신문을 집어들었다.

[황태자비 예감? 알렌스 황태자께서 독초 약제사 영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

제논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었다. 순간적으로 숨 쉬는 걸 잊을 정도였다.

제논이 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리안에게 물었다.

“키리아 양은… 지금 어디에 있지?”

“맨입으로요?”

흠칫. 제논은 이 작은 아이가 키리아의 동생이라는 걸 새삼 인지했다.

“…네가 원하면 손을 잡아주마.”

제논의 말에 리안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건 제가 언제든 할 수 있고요.”

“…….”

“제도에 머무시는 동안 저한테 검술을 가르쳐 주세요. 매일 한 시간 이상. 하실래요?”

“…하지.”

히히. 리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누나는 지금….”

누나에게 집착하는 리안이 여유로워 보이는 이유를 생각했다면, 신문의 스캔들이 헛소문이라는 걸 알았을 터였다.

하지만 제논은 리안의 반응까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키리아의 가게 주소를 듣자마자 달려가듯 그곳으로 향했다.

º º º

알렌스는 거의 매일같이 키리아의 가게를 찾았다.

그는 올 때마다 꽃을 선물했고, 키리아는 난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꽃다발을 받았다.

물론 다 연극이었다.

덕분에 키리아의 가게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계기야 어찌 됐든, 사람이 몰리니 자연스레 제품 홍보가 됐다.

어쩔 수 없이 구매한 사람들도 제품을 써 보고는 의외로 좋은 효과에 놀랐다.

메데이아 브랜드는 이렇게 스캔들과 함께 점점 입소문을 탔다.

“브라이슨에서 수를 쓸 것 같더니 잠잠하네요. 은밀히 용병단도 고용한 모양이던데요.”

“해코지하러 올 줄 알았는데 조용하네요.”

로버트와 릴리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브라이슨도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메데이아 브랜드가 순풍을 타고 있다는 방증.

그렇지만 뭔가 약했다.

‘귀족들에게서 벽이 느껴져.’

황태자가 발길을 끊으면 손님도 뚝 끊어질 것만 같은 이 예감.

브랜드의 화제성은 충분했다.

북부에서 활약한 독초 약제사가 직접 만들었고, 세인트 워런트까지 받았으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이 은연중 벽을 세워 밀어내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대체 이유가 뭘까….’

고민하면서 키리아는 알렌스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기운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어요. 전에 처방해드린 약을 더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약을 건넨 뒤 내실에서 나온 키리아는 알렌스와 함께 이층 테라스로 나오며 말했다.

“그런데 전하.”

“네.”

“평범한 인간 맞아요?”

걷었던 소매를 내리고 있던 알렌스가 멈칫했다.

“…물론 인간이죠. 이렇게 아프다는 면에서는 평범하진 않지만.”

“아뇨, 그게… 처음엔 잘 몰랐는데 마나 진단을 할수록 전하의 기운이 되게 특이해서요.”

키리아가 눈을 도륵 굴리며 의아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공작님을 진단했을 때와 비슷한데… 마기도 느껴지고요. 전쟁 때 다치셔서 그런가. 근데 부상이라기엔 좀 마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요?”

“네. 마나랑 신성력이 없었다면 완전 마족이라고 착각했을 정도예요.”

“…….”

알렌스는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빙긋 웃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죽일까?’

어차피 지속적으로 약을 받은 덕분에 몸 상태는 호전됐다.

완치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계획이 끝날 때까지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들켜버리면 곤란하니….’

알렌스가 키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다시 한번 확인해볼래요?”

“아, 아뇨. 전 주치의도 아닌데 자세한 상태를 알 필요는….”

“그러지 말고요.”

알렌스가 내밀었던 손으로 키리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이대로 마기를 흘려보내 중독시키면 영문도 모르고 죽겠지.’

알렌스의 눈이 서늘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찾았군!”

탁.

알렌스의 손을 쳐내고 키리아의 손을 잡아채는 누군가가 있었다.

갑자기 옆에 나타난 인물을 본 키리아는 깜짝 놀랐다.

“공작님? 여긴 어떻게…?”

“어떻게라뇨?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제논은 속상하다는 듯 묻고는 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바로 키리아가 마물병 치료약과 함께 남겨 놓았던 사직서였다.

“밤마다 내 손을 잡았으면서, 뒤로는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습니까?”

그의 손에서 사직서가 반으로 천천히 찢어졌다.

그리고 정중하지만, 어쩐지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난 그대를 절대 못 놔, 메데이아.”

“……!”

키리아는 순간적으로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이것이 바로 안티보다 무서운 사생팬…?

‘내가 메데이아라고 밝혀서 각성해버린 거야 뭐야? 어, 어떡하지?’

키리아와 제논이 말없이 눈만 마주치고 있을 때였다.

다급히 난입한 공작과 키리아의 모습에, 매장에 있던 손님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삼각관계였어?”

“에이, 설마. …진짠가?”

흥분한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 탓에 키리아와 제논, 알렌스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이때 키리아는 신출내기 사장으로서 번뜩 눈을 빛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

비록 스캔들로 사업이 물살을 타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스캔들에 의지해선 안 됐다.

메데이아 브랜드 제품이 얼마나 숨어 있는 명품인지를 알려야 했다.

특히 귀족들에게 먹히려면 돈, 권력, 지위 등으로 독보적인 셀럽을 이용하는 게 최고다.

그래서 키리아는 두 남자 사이에서 소리쳤다.

“두 분,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

순간 멍해진 제논과 알렌스가 키리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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