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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107/141)

107화

남부의 귀족들은 공통적으로 북부 공작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이 있었다.

마물 공작, 가난한 귀족, 영지민들에게 원망받는 영주.

북부 공작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마물이 들끓어 매우 위험하고, 독초가 잡초처럼 자라며, 음식은 형편없는 곳.

한마디로 안 좋은 것들만 골라 모아놓은 것이 바로 북부였다.

그래서 공작령 방문을 되도록 피해왔다. 공작 또한 어떠한 공식적인 행사도 주최하지 않았고.

그랬던 게 최근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든 신문에서 하나같이 사냥대회에서의 일을 떠들었을 때도 사실인지 궁금했는데,

“공작이 직접 생일 연회를 열고 우릴 초대까지 하다니….”

그러니 도저히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두 남부 귀족이 본성으로 향하며 나누는 대화였다.

“허허. 그래도 너무 기대했다간 실망할 겁니다.”

“물론 알지요. 신문과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니.”

그런 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지한 평민들이나 하는 일.

“공작이 복귀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했든, 우리를 놀라게 하기엔 아직 멀었지요.”

“암요. 시시콜콜하게 헉 소리를 내는 건 못 배운 평민들이나… 헉!”

“허억!”

두 귀족은 숨을 들이켰다.

본성 연회 홀로 통하는 복도에 마물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게 아닌가!

저 앞에 보이는 건 연회장 문이 아니라 지옥문이었던가?

마물들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두 귀족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마물들은 석상이라도 된 듯 차렷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성스러워 보이는 은빛 갑옷까지 입고 있어 정말 기사처럼 보였다.

이때 마찬가지로 은빛 흉갑과 목줄을 한 검은 개가 귀족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 성에 있는 인간들은 우리가 지킨다. 걱정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

거만한 말투와 달리 세 개의 머리를 공손히 숙여 보이는 켈베로스였다.

“으, 어어, 그, 그러지….”

정말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기에 귀족들은 쭈뼛거리며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닥부터 기둥, 천장까지 온통 금장식으로 호화로운 연회 홀을 보게 되었다.

“헉!”

“허억!”

두 번째 헉.

“부, 북부 공작은 가난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만 이게 대체…? 맙소사. 이 촛대의 세공을 보십시오. 굉장히 신묘한 솜씨… 마치 드워프의 작품 같아.”

맞다. 드워프의 작품이었다.

예술작품과 같은 성의 모습에 멍하니 홀려 있던 두 귀족은 정신을 차렸다.

“허, 허어! 이렇게 사람 혼을 쏙 빼놓으려 하다니.”

“겉이 화려할수록 속은 부실하기 마련이죠. 분명 형편없는 북부 음식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이런 수를 쓴 거예요.”

그러며 그들은 연회 테이블로 시선을 내렸다.

화려하게 한가득 차려진, 윤기가 도는 음식들.

그중에서도 단연 시각과 후각을 잡아끄는 튀긴 닭요리.

“이건 무슨 음식이지?”

두 귀족은 순살 치킨을 포크로 우아하게 집어 한 입 먹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헉’이 나왔다.

“헉!”

“마, 맛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흔들리는 시선의 귀족들.

북부와 북부 공작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º º º

남부 귀족들이 정신없이 헉, 헉 거리고 있을 때.

마이언 클로버필드 백작 역시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공작성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문을 가졌다.

‘대체 어떻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변화의 조짐조차 없었는데.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자신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마이언은 연회장에 모인 남부와 북부의 귀족들, 그리고 상인들을 둘러보았다.

‘약제사는 어디 있지?’

신문을 보면 약제사는 공작이 아끼는 인재일 터였다.

그러니 당연히 연회에도 참석했을 줄 알았는데, 약제사로 짐작되는 인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의외로 총애받는 인재까진 아니었나?’

그렇게 마이언이 속으로 갸우뚱할 때였다.

“란페르세 공작 각하와 주치의 키리아 님의 입장입니다!”

알림과 함께 연회 홀 상단의 문이 열리더니, 한 쌍의 남녀가 반원형의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이언은 깜짝 놀랐다.

‘주치의가 공작의 파트너라고?’

주치의의 위치가 생각보다 범상치 않았다.

악단의 연주도 멈춘 정적.

그 속을 여유롭게 거니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과 우아한 걸음은 단연 돋보였다.

이층 높이에서 내려오고 있는 탓에, 홀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군청색의 연회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정돈한 제논 폰 란페르세 공작.

그의 섬뜩한 붉은 눈이 좌중을 훑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기품 있게 서 있는, 반가면을 쓴 주치의.

‘금발….’

마이언은 주치의의 머리 색을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미약한 실망감을 느꼈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먼 곳에서 와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군.”

제논의 낮은 목소리는 크지 않았음에도 연회 홀에 있는 모두에게 들렸다.

제논이 간략한 인사 후 연회 시작을 알렸다.

“그럼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다시 연주와 노랫소리가 흘렀고, 연회의 주인공인 제논과 주치의는 손님들을 직접 맞기 위함인지 단상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남부의 귀족들이 공작에게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마이언의 일 순위는 공작이 아니었다.

“큼큼.”

목을 가다듬은 그는 주치의를 향해 다가갔다.

역시 범상치 않은 위치라고 해도 공작에 비해서는 한가로운 모습의 주치의였다.

…라고 생각한 직후.

“약제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리키… 가 아니라 키리아 약제사님! 절 기억하십니까?”

어디선가 우르르 나타난 북부 귀족들과 상인들!

사냥 대회에서 키리아의 독초 연고와 아리키라는 부캐에 입덕한 귀족들, 절룩이는 베른울프 백작, VIP 신관들,

그리고 대신녀의 농간에도 꿋꿋하게 신의를 지킨 덕에 요즘 자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는 마기 해독수 거래 상단주들,

마지막으로 눈치가 없는 탓에 막차라도 타고 싶어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키리아의 사인이라도 받고 싶어하는 팬들처럼 흥분해서 키리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인파 한가운데 위치하게 된 마이언은 주변 등쌀에 이리저리 부딪혔다.

“이런…!”

그의 덩치가 상당함에도 파묻힐 정도였다.

“잠깐, 내가 먼저 약제사님을 뵈러 왔소…! 남부 클로버필드 백작이오.”

그러니 북부인들이 조금 양보해라, 이런 뜻이었는데.

“남부?”

누군가의 날카로운 중얼거림과 함께 마이언을 밀치는 등쌀이 심해졌다.

마이언은 당황했다.

처음 겪는 북부의 텃세였다.

그들의 눈총에서 ‘어~디 남부 촌놈이 우리 약제사님께 얼굴을 들이밀려 그래?’라는 비아냥을 읽을 수 있었다.

“…….”

보통 사람이었다면 인파가 알아서 줄어들 때까지 키리아에게 접근도 못했겠지만….

“실례하겠소!”

“커억!”

마이언은 인상만 용병왕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통나무 같은 팔과 바위처럼 두꺼운 손으로 앞을 가로막은 인간들을 좌우로 쳐내며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키리아 약제사님. 하지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 마이언 클로버필드 백작이라고 합니다.”

키리아의 앞에 도달해 공손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를 올려다보는 키리아는….

“딸꾹.”

딸꾹질이 나왔다.

“음…?”

어딘가 익숙한 모양새에 마이언의 한쪽 눈썹이 슥 올라갔다.

º º º

키리아는 연회 홀로 내려왔을 때부터 슬쩍 시선을 옮겨가며 롤스 추기경을 찾고 있었다.

아직 신전에서는 제논을 타락한 마물로 보는 입장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북부에서 거세게 이는 변화를 거부할 수도 없었기에, 연회에는 대신녀 대신 추기경이 비공식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가울이 일을 잘하는지 봐야 하는데.’

한창 추기경과 가울을 찾고 있을 때, 인파를 뚫고 거한이 떡하니 나타났다.

키리아는 거한의 정체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딸꾹.”

“…저 때문에 놀랐나 보군요.”

“으아닌데요?”

키리아는 가성으로 대답했다.

“…….”

한층 의심이 깃드는 마이언의 눈빛.

‘말을 말자…!’

키리아는 오늘 하루 과묵해지기로 했다.

마이언이 지나가는 하인에게서 물 한 잔을 가져와 키리아에게 건넸다.

키리아는 마이언을 힐끔거리면서도 일단 물을 마셔 딸꾹질을 가라앉혔다.

그때, 마이언이 아직까지도 키리아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강렬히 노려보며 말했다.

“약제사님과 긴히 할 말이 있소. 약제사님께서만 들으셔야 하오.”

“…으음.”

사람들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피해주었다.

키리아는 속으로 그들을 붙잡았다.

‘가, 가지 마!’

꼼짝없이 마이언과 둘만 남았다.

“약제사님의 활약은 익히 전해 들었습니다. 신문에서도 잡지에서도, 활약이 대단하시다고요.”

“보, 보셨나요?”

키리아는 철렁했다. 신문은 제각기 달라도, 잡지에 실린 소설 삽화는 키리아 본인의 얼굴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마이언은 잡지는 물론 소설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저는 주로 신문에서 활약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보니, 약제사님이 소문보다 더욱 대단한 분이라고 짐작이 가는군요.”

마이언이 무게를 잡고 말했다.

“그런 약제사님께 긴히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겠지만….”

“네. 너, 너무 갑작스럽네요.”

키리아는 애써 마이언의 시선을 피하며 냉정하게 말했다. 손바닥에 진땀이 났다.

“저는 동네 의원이 아니에요. 엄연히 공작님께 소속된 주치의입니다. 제 솜씨가 필요하다면 공작님을 통해서 말씀하세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 번만 제 말을 들어봐 주십시오.”

“아뇨, 죄송하지만 지금은….”

“원하시는 금액이 있다면 다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 분만, 아니 일 분만이라도….”

왜 이러는 거야, 대체?

키리아가 아는 평소의 백작님답지 않았다. 그 탓에 백작을 매몰차게 떠나기가 힘들었다.

난감한 실랑이가 이어지는 이때였다.

“이런 무례한 손님은 초대한 적이 없는데.”

굳은 표정의 제논이 다가왔다.

그가 마찬가지로 굳은 얼굴의 백작에게 명령했다.

“그대는 누구기에 내 허락도 없이 나의 주치의에게 접근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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