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41)

71화

“…음?”

지켜보던 귀족들이 어리둥절한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게, 약을 바르고 한참이 지나도 백작에게선 아무 반응도 없던 것이다.

후작까지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백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키리아는 당황스러워했다. 제논 이외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 보였다.

“흥. 이게 끝이오?”

“이럴 리가 없는데… 후, 후작님이 해보세요!”

후작은 귀족들에게서 확연한 실망의 낯빛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좋소. 이번엔 내가 해보지.”

그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준비해온 약을 꺼냈다.

‘흐흐, 분수도 모르고 나대려고 한 벌이다!’

릴리에게 키리아의 약을 망치라는 지시를 한 후에도 후작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백작의 병세는 생전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기에, 어떤 약을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릴리가 저 계집이 만드려는 약의 제조법을 훔쳐봤다지 뭔가.

‘독초가 아니라 약초를 쓰고 있던 걸요? 틀림없어요. 물론 그분이 제조 중이던 약에는 몰래 불순물을 넣어 놨고요.’

‘아주 잘했다!’

후작은 릴리가 빼돌린 제조법으로 약을 만들었다.

약재와 조제 방식을 보아하니 아주 새로웠다. 과연 효과가 있을 듯했다.

재료에 독초가 들어갔다면 불안했을 텐데 약초만 있어 안심이었다.

‘흥. 독초를 쓴다는 건 이목을 끌기 위한 수작이었군! 그렇지, 어떻게 독초로 약을 만들겠어?’

후작은 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천천히 백작의 환부에 약을 발랐다.

“지켜보십시오, 여러분.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건 독초가 아니라 약초니까.”

그리고 잠시 후.

“…윽.”

백작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효과가 있나 봐!”

“의식이 돌아온 건가?”

놀란 귀족들이 일제히 집중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백작은 의식을 차린 게 아니었다.

그저 몸의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절로 신음이 나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두꺼비 같은 뭉툭하고 커다란 수포가 그의 다리에서부터 온몸으로 후드득 번지고 있었으니까.

온몸의 피부가 울룩불룩해지는 광경은 두말할 것 없이 아주 징그러웠다.

“꺄아아악!”

“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

제논까지 놀라 안색이 파래졌다.

하지만 키리아를 휙 쳐다본 그는 곧 불안을 억누를 수 있었다.

키리아는 전혀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백작님. 나중에 피부 미용수 만들어드릴게요.’

키리아는 속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놀브 후작이 사용한 약은 키리아가 싫어하는 사람을 골탕 먹일 목적으로 개발한, 일명 ‘두꺼비 독약’이었다.

건강이나 신체에 아무런 해는 없다.

다만 당하는 본인은 물론 보는 이에게까지 역겨움을 선사할 뿐이다.

‘저런 효과가 나왔다는 건, 후작이 내 제조법을 결국 훔쳐 썼다는 거네.’

사실 키리아가 처음에 백작에게 도포한 것은 두꺼비 독약의 효과를 대폭 키워주는 것이었다.

후작이 약제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켰다면 지금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좀 해 봐요!”

“이, 이런, 이건 그러니까….”

귀족들의 성난 재촉에 후작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겠지. 두꺼비 독약 같은 건 처음 접해볼 테니 해독법도 모를 것이다.

“비켜요.”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키리아는 허둥거리는 후작을 옆으로 가볍게 밀어내며 백작의 옆에 섰다.

“이건 간단히 해독할 수 있어요.”

두꺼비 독약의 해독제를 백작의 피부에 골고루 떨어뜨리자 흉측했던 수포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벌렁거리던 귀족들의 가슴도 덩달아 편안해지는 광경이었다.

이번엔 자신이 준비한 진짜 약을 꺼낼 차례.

“저는 사람을 돌로 만드는 이 병을 메두사 병이라 부르기로 했고, 이건 제가 개발한 ‘메두사 병 억제제’예요. 물론 독초가 주재료고요.”

“억제라니요. 치료가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소!”

한 귀족이 딴지를 걸었다. 그는 간밤의 내기에서 후작에게 돈을 건 쪽이었다.

키리아는 오히려 그가 이상하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그럼 처음 접하는 질병의 완벽한 치료약을 고작 하룻밤 만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원인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의술의 신이신가 봐요. 오셔서 한 수 가르쳐주세요.”

“으, 으윽.”

귀족은 얼굴이 빨개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를 알게 모르게 흘겨보던 다른 귀족들은 키리아의 대꾸가 아주 속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전에 따봉을 보냈던 귀부인이 부채 밑으로 또 따봉을 보냈다.

“…….”

그것을 외면한 키리아는 수행원에게 말했다.

“좀 도와주세요.”

수행원과 함께 백작의 상체를 조금 일으킨 후, 키리아는 챙겨온 약을 백작의 입에 흘려 넣었다.

천천히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리고 잠시 뒤.

숨죽이고 있던 귀족들이 백작의 다리를 가리켰다.

“오! 석화가 멈추고 있어요!”

다들 눈을 크게 뜨고 한두 걸음 앞으로 와 상체를 한껏 기울였다.

백작의 무릎을 향해 전진하던 석화가 확연히 느려지더니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확인하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제 처음 본 병인데 이만큼이나 효과가 있는 약을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해요….”

“괜히 공작님께서 주치의로 두신 게 아니었군요.”

제논도 소리 없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키리아에게 살짝 원망스레 말했다.

“너무합니다, 키리아. 놀랐잖습니까.”

“히히. 죄송해요.”

그의 심정이 짐작되었기에 키리아는 미안함을 담아 웃었다.

다들 키리아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후작은 이를 갈며 외쳤다.

“이게 무슨 약이란 말이야! 백작님은 여전히 의식이 없으시잖소!”

이때 한 귀족이 대답했다.

“나 말이오?”

정신을 차린 베른울프 백작이었다.

그는 끄응, 신음하며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뭔가 푹 잔 듯이 몸이 개운하군….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고, 여러분들은 왜 날 구경하고 있는 것이오?”

어리둥절해 하는 백작.

그를 보던 제논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로써 내 주치의의 실력이 증명됐군. 독초가 약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도.”

“오오오…!”

과반수의 귀족이 환호성을 올렸다.

내기 판에 끼지 않았거나, 후작의 손을 들었던 이들은 후회가 막심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환호하고 후회하는 건 비단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승부가 증명한 것은 많았다.

공작님의 인재가 황제의 인재를 실력으로 눌렀다는 것.

독초를 약으로 쓸 수 있다면 북부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저 주치의의 실력이라면 공작님을 정말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귀족들이 비로소 공작의 회복을 믿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귀족들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각하, 저와 오찬을 함께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각하, 남부에서 직수입한 최고급 와인입니다. 한 잔 드셔보시지요.”

“오후 사냥에 함께해도 괜찮을까요?”

“각하….”

재빠른 이들은 벌써 제논의 옆을 차지하려 했다.

제논은 금세 사람 사이에 파묻혔고, 키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다면 독초의 다른 활용도 알려주시오.”

“혹시 이 연고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독초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물론, 키리아에게 눈을 찡긋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거나, 갑자기 소매에 명함과 돈주머니를 찔러주고 가는 귀족들도 있었다.

“자, 잠깐. 한 분씩 말씀하세요. 으악, 왜 돈을 몰래 집어넣고 가세요? 그냥 주시면 받을 텐데!”

‘북부 귀족들, 친화력 무슨 일이야?’

연회장에서 늘 혼자가 편했던 키리아에겐 따라잡기 힘든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작님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마냥 불편해할 수는 없으니.

‘에라. 그냥 웃자.’

“하하. 아하하.”

“어머나. 어쩜 이렇게 귀엽게 웃을까요.”

“공작님께서 외모로 주치의를 들이신 건 아닌지요?”

“이것이 바로 재색겸비라는 것이군요. 마치 공작님과 우리들처럼. 허허허!”

“과연 그렇군요. 호호호!”

귀족들의 대화법, 못 따라가겠다.

키리아의 사교레벨이 한 단계 더 내려갔다.

º º º

약간의 소란이 일단락된 후, 키리아와 제논은 그간의 사정을 백작에게 설명했다.

백작은 놀라워하다, 감탄하다, 두꺼비 수포 대목에서는 으하하 폭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돼서, 메두사 병의 치료를 위해 제가 백작님의 상태를 수시로 진단하고 기록하게 됐어요.”

이야기를 다 들은 백작은 키리아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정말 감사하오. 키리아 양이 아니었다면 난 숲에서 돌이 되었을 거요.”

“그랬겠죠. 하지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분이 한 명 더 있어요.”

“그게 누굽니까?”

키리아는 옆에 있는 제논을 바라보았다.

“공작님이요.”

“나 말입니까?”

제논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키리아는 네, 대답하고는 다시 백작을 바라봤다.

“공작님께선 공작님의 모든 명예를 걸고 저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아니었다면, 제게 백작님을 치료할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사실이었다.

독초를 약으로 쓰겠다는 무명의 약제사와 검증된 실력의 황실 수석치료사 중 누가 더 신뢰받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으니까.

“으, 음.”

어김없이 표정이 구겨진 백작이 제논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또한… 뒤늦게 말씀드립니다만 돌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

“하지만 아직 각하께 수도의 관리인장을 드리지 못하는 점은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백작 역시 달라진 귀족들의 분위기를 느꼈다.

귀족들은 공작은 물론 그 주치의까지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작은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제논의 붉은 눈과 긴 소매로 가리고 있는 마물의 팔.

그것들은 마계의 흔적인 만큼 위험할뿐더러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공작님은 위험한 그 팔을 어떻게 억누를 것인가?

또, 그가 가진 불길하다는 오명은 어떻게 씻어낼 것인가?

이 두 가지가 증명되어야만 백작은 물론 북부의 귀족들은 비로소 새롭게 충성을 맹세할 것이었다.

“이해한다.”

제논 역시 이러한 점을 알고 있기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때 다른 귀족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헌데 공작님. 베른울프 백작님을 이렇게 만든 원인이 숲에 있다면 그걸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메두사 병의 원인 말이다.

키리아도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백작님, 무엇 때문에 다리가 그렇게 됐던 거예요? 마물인가요?”

“안 그래도 그 이야길 하려고 했소.”

백작은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정체가 불확실하니, 움직이는 나무에 대해선 제외하고 설명하는 게 좋겠지.’

백작이 생각했다.

경청하는 귀족들의 뒤에서, 키리아를 주시하는 놀브 후작의 눈이 악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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