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수상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딘가에 마물을 끌어들이는 아티팩트를 숨겨 놓은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해.’
아티팩트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는 마도구다.
일부러 위험을 초래하는 아티팩트가 있다니 비상식적이다.
키리아가 이런 의문을 떠올리는 사이 수상한 말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마물들이 여길 휘저으면 공작의 복귀도 물거품이 되겠지?”
“그럴 수밖에. 공작이 복귀하자마자 마물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할 말이 없겠지.”
“근데 후작님도 위험한 거 아니야? 대회 주관자인데 귀족이 죽는다면….”
“그것도 다 생각해두셨더라고. 소환하는 마물들은 위험도가 낮아. 대신 엄청 많지.”
어쩌구 저쩌구.
그들은 키리아가 듣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대화를 이어 갔다.
듣고 있는 키리아는 초조했다.
‘그래서 아티팩트를 어디에 숨겼는데?’
조금 더 가까이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무튼 우린 시킨 일만 하면 돼.”
그들이 자리를 뜨려는 기색이 보여 더 들을 수는 없었다.
키리아는 엿듣고 있던 장소를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을 잘근거리며 제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내가 던진 떡밥을 이용하려 하다니.”
하필 공작이 칩거를 깨고 모습을 나타낸 날, 마물들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
벌써부터 신문 1면을 장식할 헤드라인이 눈에 선한 듯했다.
“그래서 기자들을 불러놓은 거구나.”
그 아수라장을 놓치지 말라고 말이다.
키리아는 공작님의 붉은 눈을 보며 마족이라고 겁을 먹던 귀족들을 떠올렸다.
‘후작의 계획대로 마물들이 나타나면 공작님의 복귀는 불가능해질 거야.’
좌우로 오가던 걸음을 딱 멈췄다.
‘일단은 아티팩트를 찾아야 해.’
아티팩트의 생김새는 물론 숨겨진 위치조차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키리아는 굳은 얼굴로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 외진 곳은 전부 뒤져볼 심산이었다.
그런 키리아를 누군가가 의심스럽게 주시하고 있었다.
놀브 후작이었다.
º º º
“마물 소환진을 발동시키는 건 대회가 시작된 후라고 했지?”
키리아는 초조하게 사냥대회의 깃발을 쳐다봤다.
병사가 깃발을 높은 곳에 걸고 있었다.
이제 곧 대회가 시작될 거라는 신호였다.
으아, 이제 시간이 없어!
키리아는 제 머리를 움켜잡았다.
“생각하자, 키리아. 나라면 어디에 숨겼을까? 젠장 젠장.”
“앗.”
그때,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아 헤매던 릴리가 키리아를 발견했다.
표정이 확 밝아진 그녀는 얼른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남부 사교계 사람들을 휘어잡은 천사의 미소였다.
“안녕하세요. 키리아 양 맞죠? 혹시 절 기억하시나요? 예전에 데뷔탕트에서….”
하지만.
“젠장!”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키리아는 릴리의 옆을 휙 지나쳐버렸다.
그것도 차갑게 욕을 하면서!
릴리는 그만 굳어버렸다.
“날 그냥 지나쳤어? 난 릴리인데? 게다가 대놓고 귀찮아했어…?”
이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누군가가 이렇게 싸늘히 무시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릴리의 초록빛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독초를 다룬다더니, 저 사람 정말이지…!
“멋있으신 분….”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처음이야.
릴리는 멀어지는 키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다음번에는 꼭 말을 걸어봐야지 결심했다.
한편 키리아는.
“끼에엑.”
아까부터 꽃님이가 자꾸만 케이프에서 벗어나려고 해서 곤란해하고 있었다.
애써 들썩거리는 케이프를 누르며 무시하던 키리아는 결국 녀석을 꺼냈다.
“바쁜데 너까지 왜 그래? 자꾸 그러면 천막 안에 두고 올 거야?”
“끼이잉….”
그런데 자세히 보니 꽃님이의 봉오리가 반딧불이처럼 희미하게 빛을 깜박이고 있었다.
게다가 일관되게 한 곳을 가리키기까지.
“응…? 설마 저쪽으로 가 보라고?”
혹시 하는 마음에 키리아는 꽃님이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갔다.
꽃님이는 한쪽을 가리켰다가, 멈춰서 방향을 감지하려는 듯 좌우로 고개를 빙빙 돌리기를 반복했다.
‘수맥 탐지기 같다….’
그렇게 얼마쯤 따라갔을까.
천막이 있는 공터 끄트머리에서 흙을 덮은 흔적을 발견했다.
흙의 색이나 모양새를 보아, 흙을 덮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
키리아는 얼른 두 손으로 흙을 팠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덮개가 있는 향로가 나왔다.
마나 진단을 해보니, 마나가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티팩트라는 증거다.
키리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휴, 십년감수했네. 꽃님이 너, 이런 걸 찾아내는 능력도 있었어?”
“끼히힝.”
꽃님이가 줄기를 꽈배기처럼 배배 꼬았다. 칭찬이 수줍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찾긴 찾았는데…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다?”
마법사가 아니니 아티팩트를 무효화시킬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멀리 떨어진 장소에 버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갖고 있으면 그들의 계획대로 마물들이 몰려올 텐데.
뿌우우―
이때 사냥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
초조해하던 키리아가 갑자기 씩 웃었다.
키리아는 아티팩트를 쥐고 사냥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º º º
“본격적인 사냥에 앞서,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놀브 후작이 대회 참가자들 앞에서 마법 확성기로 말했다.
“여기 루쿠스 동쪽 숲은 베른울프 백작과 제가 오늘을 위해 특별 관리한 곳입니다. 출현하는 마물들의 위험도가 높지 않으니 마음껏 즐겨주십시오.”
“신비한 마물이란 것도 나오는 겁니까?”
“그건 서쪽 숲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무래도 위험도가 있으니 첫날 사냥 성적의 상위권 분들께서 참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오늘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망신을 당하겠는걸.”
사냥 참가자들이 호기 있게 웃었다.
사냥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모든 귀족들이 알게 되기 때문에, 자신과 가문의 명성을 드높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럼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베른울프 백작이 눈짓하자 병사가 뿔피리를 길게 불었다.
뿌우우―
동시에 수많은 참가자들이 말을 타고 루쿠스 숲으로 달려갔다.
“꺅, 힘내요!”
“커다란 놈으로 잡아버려요!”
천막에 남은 사람들이 뒤에서 그들을 시끄럽게 응원하는 가운데.
놀브 후작은 여유로운 얼굴로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 섰다.
그리고 몰래 소환진을 발동시키는 스크롤을 찢었다.
‘얌전히 성에 처박혀 있었다면 개망신은 안 당했을 텐데 말이오, 공작.’
숲에 설치한 마법진은 하급 마물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안전히 관리한 숲에서도 나올 수 있는 마물들이니 일부러 소환된 것이라고 의심할 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떼로 몰려와 무력이 없는 천막의 귀족과 사용인들을 다치게 한다면?
게다가 때마침 마물 공작이 복귀한 직후라면?
‘공작의 복귀는 무산되고, 수도와 공작위까지 내게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베른울프 백작도 사냥에 참가하러 갔기 때문에 이제 천막을 지키는 건 최소한의 경비 인원들 뿐이었다.
흐흐흐.
후작이 실실 웃고 있는 그때였다.
“기분이 좋은가 보군.”
“그렇습니다. 이런 날은 술 한잔이라도 해야… 응?”
깜짝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말 위에 탄 사람을 올려다보니….
“공작 각하!?”
“왜 그리 놀라지?”
당연히 숲으로 들어갔어야 할 공작이 아직도 출발하지 않고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사, 사냥하러 가신 게 아니었습니까?”
“이제 막 가려던 참이었다. 잊고 온 물건이 있어서.”
그때였다.
“킥, 키킥!”
숲에서 고블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이 고블린들을 가리키는 사이, 녀석들은 순식간에 더 많은 수로 불어나 이윽고 백여 마리 정도가 됐다.
그 정도면 천막 구역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숫자였다.
“고, 고블린들이 어디서 이렇게 많이!”
“꺄아악!”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기 직전.
말을 탄 제논이 홀로 앞으로 나섰다.
갑자기 나타난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제논에게 달려들었다.
수가 워낙 많아 마치 파도가 덮치는 듯했다.
그에 맞서듯 혼자 달려 나가는 제논의 모습은, 뒤에 남아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단 한 사람이 나서주었을 뿐인데 마물에게 느끼던 두려움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들은 그동안 잊고 있던, 북부의 주인을 향한 신뢰감이 다시금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몇십 마리가 추풍낙엽처럼 쓸렸다.
생채기 하나 없는 제논이 검에 묻은 피를 바닥으로 흩뿌리며 여상히 물었다.
“계속 덤빌 테냐.”
“키이익!”
부르르 떨던 고블린들이 다시 숲으로 달아났다.
“공작님….”
어느새 사람들은 감탄에 젖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일각에서 전부 지켜본 놀브 후작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일을 꾸몄던 오직 그만이, 고블린들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단 한 놈도 더 쉬운 먹잇감이 있는 천막 쪽으로 가지 않았어!’
그 말은 설마.
후작은 부하를 다그쳐 아티팩트를 숨긴 곳으로 왔다.
흙을 파보니 아티팩트는 온데간데없고 텅 비어 있었다.
“이, 이상합니다. 분명 여기에 묻었는데 어디로 갔지?”
“크으…! 공작이 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
“예?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후작은 뒷골이 땡겼다.
‘그 계집!’
그는 이상하게 초조한 태도로 빨리 걸어가던 키리아를 떠올렸다.
어쩐지 뭔가 찜찜하더라니, 설마 쥐새끼처럼 엿듣고 손을 썼을 줄이야!
“후작님, 어떻게 하죠? 아티팩트를 숨겼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멍청한 것. 그게 내 것이라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
자신의 계획이 공작에게 이득이 되다니, 죽 쒀서 개 준 꼴이 아닌가. 그게 가장 열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차선책이라도 쓸 수밖에.”
실패를 대비해 또 다른 방법을 준비해 놓았다.
다만 자신에게도 타격이 돌아올 거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을 뿐.
그러나 이대로 공작의 복귀가 사실로 굳어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그가 위험하고 불길한 존재라고 각인시켜야 했다.
그래서 신문기자들도 부른 거고.
놀브 후작은 자신이 직접 만든 독약이 담긴 병을 부하에게 주었다.
“이걸 화살에 발라 베른울프 백작을 쏘고 시신을 숨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