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41)

50화

“자경단원이 납치됐다고요?”

마을에 도착하기 전, 마차에서 제논이 전한 소식이었다.

깜짝 놀란 키리아에게 제논이 말을 이었다.

“새벽에 입수한 정보입니다. 흔적이 끊기는 바람에 병사들이 더 추적하진 못했지만 납치된 게 분명합니다.”

“마을에 보복하려고 납치했을까요…?”

“납치 직전에 마물들이 약제사에 대해 언급했다는군요.”

“약제사라니, 설마 저요?”

“네. 그대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키리아는 어리둥절했지만 얼마 안 가 자신이 언급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번에 그 버려진 케이브에서 만났던 포이즌 리저드들, 분명 변이 독감을 앓고 있었지.’

그렇다면 무리 전체가 병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그렇지, 마물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약제사를 찾다니?’

가울이 그랬던 것처럼 풀떼기로 치료하는 건 극혐하는 게 마물과 마족들 아닌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극혐이든 뭐든 따질 겨를도 없이 절박한 상황이라는 뜻도 됐다.

‘그렇다 해도… 날 어떻게 알고 찾는 거야? 마을을 염탐이라도 했나?’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키리아를 바라보며 제논이 말했다.

“놈들이 그대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위험합니다. 그러니 그대는 성에 남는 게 좋겠습니다. 마을의 일은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

“공작님 혼자서요?”

“몇이 오든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몇 놈을 일부러 풀어주어 케이브를 추적할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앨마에게 듣기로는….”

키리아가 기억을 더듬었다.

“케이브로 도망치려는 녀석들은 적의 추적을 우려해서 버려진다고 하던걸요? 무리에서 버렸기 때문에 케이브 위치를 모르게 된다고요.”

포이즌 리저드의 케이브는 우두머리의 마력으로 숨겨져 있다.

그 능력은 종족 특유의 보호색 같은 것이라 마법으로도 파훼가 쉽지 않았다.

제논도 그 사실을 잘 아는 바였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시도해볼 수밖에 없겠죠.”

“두세 번만 시도해도 마을이 남아나질 않겠어요. 다른 방법을 써야죠.”

“다른 방법이라면?”

키리아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절 미끼로 쓰면 되죠.”

제논의 미간이 좁아졌다.

“돌았군요.”

“저번엔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이번엔 돌았다고 하는 거예요? 저도 겁은 나거든요?”

후, 약간 떨리는 숨을 뱉으며 키리아는 팔짱을 꼈다.

“케이브를 보호하는 마력을 깨기 어렵다면, 아예 위치를 파악해버리면 되죠. 저에게 추적 마법을 거세요. 그럼 마물들이 절 납치했을 때 케이브의 위치가 드러나겠죠.”

“…약제사는 그런 업무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만.”

“전 공작님 편이라고 했잖아요.”

뜻 모를 시선으로 제논이 키리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키리아는 한쪽 눈을 장난스레 찡긋했다.

“외근 수당 주실 거죠?”

º º º

그리하여.

키리아는 순조롭게 포이즌 리저드들에게 포위되었다.

‘좋아, 마을 밖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어.’

도중에 마을 사람들이 자꾸 숨겨주려고 해서 따돌리느라 힘들었다.

“케륵, 검은 머리다.”

“약제사가 분명하다. 가방에서 풀냄새가 난다.”

‘좋아.’

꼴깍. 키리아는 침을 삼켰다.

각오는 했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성의 마물들과는 또 다른 야생의 마물들이야…. 분명 손속이 더 거칠겠지?’

조금이라도 덜 다치려면 협조하자.

키리아는 양쪽 손목을 맞대고 내밀었다.

“무, 묶으려면 묶어. 나도 내가 불리한 걸 아니까 쓸데없는 저항은 안 한다구.”

떨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면서 외쳤다.

그런데 녀석들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키리아의 말을 들은 포이즌 리저드들은 어쩐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엥…? 저기, 뭐하는 거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주 심각한 논의를 하는 듯했다.

‘설마… 납치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죽이자고 의논하는 거야?’

히익.

키리아가 슬그머니 발을 뒤로 빼고 있을 때였다.

의논을 마친 녀석들이 키리아를 쳐다봤다.

“케르륵. 인간 약하다. 함부로 묶으면 다친다.”

“그, 그래서 함부로 묶어서 다치게 하려고?”

포이즌 리저드 두 마리가 서로 팔을 연결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키리아를 쳐다봤다.

“타라.”

‘이, 이것은.’

손가마 자세…!?

손가마는 서열 1위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마물들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접대 방법이었다.

그걸 이 적대적인 마물들이 먼저 권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키리아는 포이즌 리저드들의 기색을 재빨리 살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설마 진심이야? 진짜 타라고?”

“타라.”

“내가 타면 떨어뜨려서 낙사시키려는 거 아니지?”

“…케륵, 네가 아무리 인간이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 죽지 않는다.”

그건 그래.

키리아는 조심조심 포이즌 리저드들이 만든 손가마에 다리를 끼우고 앉았다.

그러다 녀석들의 일어선 비늘에 피부가 찔렸다.

“아야!”

“헉.”

“다, 다쳤다!?”

포이즌 리저드들이 전전긍긍하며 키리아가 무사한지 재차 물어댔다.

“케륵. 역시 인간은 너무 약하다.”

“더 살살 다뤄야 한다.”

다시 숙덕대는 포이즌 리저드 무리.

결국 두 마리가 하체에 두른 가죽옷을 벗더니 곱게 접어 방석처럼 만들었다.

‘우와.’

날 자루에 넣어 대충 끌고 가던 녀석들이 맞냐.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포이즌 리저드들이 키리아를 매우 조심스럽게 ‘모셔가려’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차츰 떨림이 가라앉았다.

키리아는 푹신해진 손가마에 우아하게 착석한 뒤 지시했다.

“출발.”

“케르륵.”

포이즌 리저드 가마꾼들은 몸을 일으켜 쿵쿵 걸었다.

전혀 박자가 맞지 않는 움직임에 키리아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악, 너무 흔들리잖아…! 우욱, 멀미나서 죽을 것 같아.”

“케, 케륵! 죽으면 안 된다! 천천히! 살살!”

가마꾼들은 손에 땀을 쥐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저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녀석들이었다.

이제야 흔들림 없이 편안했다.

키리아는 납치당하는 동안, 꽃놀이라도 나온 양 주변 경치를 즐겼다.

키리아의 가마 행렬은 마침내 포이즌 리저드 킹이 걸어 놓은 은폐 마법을 통과해 케이브에 도착했다.

º º º

“일단 여기서 대기한다, 케륵.”

포이즌 리저드들은 키리아를 감옥에 가두고 떠났다.

“웅.”

키리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칭칭 감싼 가죽더미 안에서 눈만 간신히 드러낸 채였다.

케이브에 도착해서 춥다고 부르르 떨었더니, “인간, 얼어 죽는다!”라면서 포이즌 리저드들이 이렇게 키리아의 온몸을 둘둘 싸매버린 것이다.

그래서 키리아는 툭 치면 굴러갈 통통한 번데기 꼴이 되었다.

뒤뚱뒤뚱 몸을 돌린 키리아는 먼저 갇혀 있던 사람들을 발견했다.

끙끙 앓으며 누워 있는 사람이 한 명. 그리고 그 주변에 앉아 있는 남자들.

“우웅?”

앉아 있는 남자들은 납치됐다던 자경단원들이었다.

“우웅!”

무사했구나!

반가운 마음에 키리아는 뒤뚱뒤뚱 빠르게 달려갔다.

낯선 번데기가 달려오자 자경단이 움찔했다.

“우흣!”

덩치를 주체 못 하고 키리아가 앞으로 넘어져 버렸다.

두꺼운 가죽 때문에 오뚝이처럼 몸이 앞뒤로 까딱거렸다.

“우우웅!”

키리아가 버럭 성질을 내자, 그제야 자경단원들이 주춤주춤 다가와 가죽을 벗겨주었다.

드러난 키리아의 얼굴에 한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약제사님 아닙니까?”

다른 자경단원들도 키리아를 알아보고는 반가워했다.

“아이구, 약제사님! 왜 이런 곳에 계십니까?”

“설마 놈들이 공작성까지…!?”

“아뇨, 그게 아니라요.”

휴, 답답했던 숨을 내쉬고 키리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자경단이 사라진 후에 포이즌 리저드 무리가 나타난 일, 약제사를 찾고 있다는 정보 때문에 스스로 잡혀온 일 등.

전후 사정을 안 자경단은 비로소 안심했다. 동시에 기대에 찼다.

“그럼 공작님께서 직접 오신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지 않을까요?”

공작님만 쏙 빼고 오면 무척 서운할 것 같은 키리아였다.

“그렇군요…. 오랜만에 뵙겠군요.”

한스의 눈빛이 깊게 일렁였다. 대장을 이해하는 다른 대원들도 감회에 젖었다.

그들은 과거 제논의 밑에서 싸우던 시절을 반추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하라고 해도 보통 이 정도까지는 안 하지 않나?’

마물병에 걸려 칩거한 공작을 따라, 공작과 가장 가까운 마을에 터를 잡는 일 말이다.

원작에서는 나올 일이 없던 이야기에 키리아는 호기심이 들었다.

“한스 씨와 여러분은 어쩌다가 라데츠의 자경단이 되신 건가요?”

“궁금하셨을 텐데 언제 물어보시나 했습니다. 허헛.”

입을 연 건 한스였다.

“우린 인마전쟁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정보길드 사람입니다. 저와 이들 모두 길드의 정예였죠.”

“헉, 진짜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황제의 참전 명령으로 저희가 전쟁터에 섰을 때가요.”

정보길드는 황명보다 이득을 따르는 집단이다.

하지만 인마전쟁은 제국의 존속을 논할 만큼 심각했고, 또한 불리한 상황이었다.

황제의 명령에 따른 건 제국을 위해서였다.

한스와 대원들은 특기를 십분 살려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이 첩보를 수집하면, 그 정보를 토대로 제국군의 작전이 세워지고 부대가 편성됐다.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마족들이 우릴 눈치채고 말았습니다. 깨어나 보니 제국군 모두가 우릴 불신의 눈초리로 보고 있더군요.”

마족들이 한스와 대원들로 변신해, 그들 행세를 하며 거짓 정보를 보고했던 것이다.

정보원들은 공식적으로 황제의 세력이었기에, 황제까지 곤란에 처했다.

“황제는 우리 모두를 처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자경단원들이 분노에 떨었다.

“참전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때는 언제고, 책임지기 싫어서 본인만 발을 빼려 들다니!”

“마족에 대해서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던 주제에!”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이대로 죽는다면 억울함에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나선 것이 제논이었다.

“공작님께서 저희를 휘하로 거둬들이기 위해 황제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작진 않았겠죠.”

그들은 대가가 무엇인지 묻는 대신, 공작에게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이 길드를 나와 라데츠에 뿌리를 내린 이유였다.

“이제 라데츠는 우리의 집이자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약제사님은 우리의 또 다른 은인입니다. 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스와 자경단원들이 키리아에게 머리를 숙였다.

“우리는 약제사님을 두 번째 주군으로 모실 겁니다.”

갑자기 정중한 감사에 이어 가볍지 않은 맹세까지 불쑥 들어오자 키리아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뇨, 이러실 필요는! 고개 좀 드세요. 그런데 저 사람은 괜찮은 거예요?”

키리아는 여태 그냥 내버려 두었던 끙끙 앓는 남자를 가리키며 급히 화제를 돌렸다.

끙끙대는 남자는 바로 루이스였다.

‘켈베로스가 놓쳤다면서 시무룩해서 돌아왔었지. 남부로 도망친 줄 알았는데 설마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예. 이 자는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있었습니다.”

“변이 독감이 아주 심해진 상태였죠.”

키리아는 루이스의 상태를 들여다봤다.

“으, 으으….”

마침 눈을 가늘게 뜬 루이스가 키리아를 발견하고 쇳소리를 냈다.

“모, 몸이 너무 뜨거워… 도와줘….”

키리아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도와달라니 뻔뻔하네요. 게다가 지금은 약도 재료도 없어요.”

그러자 루이스가 주륵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 콧물이 장단 맞춰 훌쩍였다.

“크흡, 훌쩍, 제발 도와줘. 뭐든지 다 할게.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

뭐래?

키리아가 톡 쏘았다.

“그렇게 죽기 싫으면서 다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벌였어요? 이 변이 독감, 정말 그쪽 때문에 나타난 거라고요. 본인이 초래한 거니까 마음껏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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